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86)
“후우··· 후우···”
잠시 공이 밖으로 나간 사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숨을 몰아쉰다.
입에선 꼴사나운 헥헥 소리가 절로 나오고, 가슴은 성난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후우-!”
크게 숨을 뱉어내며 최대한 호흡을 잡아보려 애를 써보지만 쉽지 않다. 입안이 끈적거리고 정강이는 뻣뻣하게 당기는 느낌이 든다.
슬쩍 전광판을 바라보니 시간은 9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문득, 1씩 올라가는 시계의 그 숫자가 내 체력 소모량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웃긴 생각이 든다.
84분이 지나가고 있는데, 딱 그 정도의 체력을 쓴 것 같다.
그럼 뭐지.
연장전 가면 나 죽는 건가.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 경기가 리그 경기라서 다행이지, 만약 코파 이탈리아였다면···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연장 120분까지도 막 뛰는 선수들은 대체 얼마나 체력이 좋은 걸까.
90분을 다 채우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120분을 뛴다는 건 그게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아마 아닐 거다.
그냥 괴물이지.
“지안!”
“···!”
벤치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순간 정신을 차린다. 번쩍! 하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살살 맛이 가고 있던 모양이다.
“이거!”
고개를 돌리자 무언가 하얀 물체를 흔들고 있는 감독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간식을 손에 든 주인에게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달려간다.
“감사합···”
“말할 시간에 씹어 삼켜!”
입안 가득 바나나의 달콤한 풍미가 퍼진다.
지우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어떤 것도 80분쯤에 먹는 바나나보다 달콤할 수는 없을 거다.
“···끅.”
그러나, 맛이 있는 것과 그것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끈적한 침이 자꾸만 바나나를 붙잡으려 해서, 목구멍으로 밀어 넣기 위해 있는 힘껏 삼켜야 했다.
목구멍에서 마치 만화 효과음처럼 “꿀꺽!”하는 소리가 난다.
어쨌거나, 바나나는 위대하다.
어쩌면 바나나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입에 단기가 도는 것만으로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뛰었나 보다.
86:32
FIO 1 : 1 JUV
경기는 여전히 1대1.
시간은 86분을 넘어서고 있다.
경기를 하는 입장에선 전혀 아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한 경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후반에 들어선 골도 나오지 않았고 이렇다 할 찬스도 몇 번 없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상대가 경기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에게 딱 한 번 허용했던 역습이 그대로 실점까지 이어져서였을까.
그들은 신중했고, 또 신중했다.
마치 무승부만 거둬도 괜찮다는 느낌마저 들었달까.
물론 천하의 유벤투스가-유벤투스에 있던 시절, 세리에 최고라는 자부심을 주입식으로 배웠다-그런 태도로 나오는 것에 한 편으론 자부심이 들기도 하나.
좀처럼 공을 잡을 기회가 오지 않는 건 답답하고 힘들었다.
문득 신기하긴 하다.
옛날엔 이렇게 한창 시합을 하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곤 했거든.
웬만하면 공이 나한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땐 공이 무서웠다.
그래서 내게 공이 오는 게 싫었다.
공이 올 때마다 뭐랄까, 수십 명 앞에서 서서 발표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가슴도 두근거리고 긴장도 엄청 돼서 공이 공이 아니라 폭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맨날 오지 마라, 나한테 패스하지 마라, 되뇌였는데.
그럴 때마다 꼭 공은 나한테 오더라.
참 이상하게도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수비만 하는 시간이 더 긴 경기가 내 입장에선 더 좋을 때도 있었다.
상대가 워낙 잘 차는 팀이라 공 잡을 기회조차 몇 번 오지 않는 그런 경기.
그런 경기가 내겐 가장 마음이 편한 경기였다.
“수비! 집중!”
“얼마 안 남았어! 버텨!”
오늘이 딱 그런 경기였는데, 그래서 좋냐고 하면···
내 대답은 ‘아니요’가 될 것이다.
예전과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게 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다거나, 이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매 순간 생각했다.
제발 저 공 좀 잡고 싶다고.
나는 그저 빨리 우리에게 기회가 오길 바랐고, 그중에서도 내게 공이 왔으면 좋겠다고··· 무의식중에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내가 공을 잡기만 하면 다 해결할 수 있어, 따위의 영웅 심리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팀에게 기회가 오길 바랄 뿐인 거고, 그 기회가 내게 오더라도 난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뿐이었다.
우리 팀이 오늘 이 경기에서 이긴다.
다른 어떤 것도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그 승리까지 향하는 길에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나는 그 부담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파아앙-!
파아앙-!
공을 돌리는 상대의 패스만큼이나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간다.
이럴 때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80분이 지난 이후로 동료들 모두 집중을 외치는 것도 그게 어렵기 때문일 거다.
나도 잠깐 그 집중력을 잃고 있었는데, 바나나가 나를 깨워줬다.
원래라면 진작 교체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대다.
하지만 감독님이 내게 바나나를 건넸다는 건, 나를 뺄 생각이 없으시다는 얘기일 거다.
그 얘긴 곧 아직 이 경기엔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는 얘기일 거고.
나는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집중의 끈을 부여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전광판의 시계가 90분에 한없이 가까워졌을 때쯤이었다.
뻐어어엉-!
상대의 패스가 곧장 후방으로 향한다.
좀처럼 나오지 않던 과감한 전진 패스라 섬찟한 느낌이 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승부를 건 것일까.
수비수가 단번에 띄워 보낸 패스가 우리의 박스를 향해 떨어진다.
그리고 그곳엔 블라호비치가 서 있다.
이런 말 쓰면 안 되지만, 빌어먹게도 좋은 위치선정이다. 딱 공이 떨어지는 그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선 그 모습에 등골이 서늘하다.
그 위치를 빼앗기 위해 나스타시치 선배가 안간힘을 쓰나, 블라호비치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뿐이다.
그런 그가 힘껏 뛰어오르기 위해 무릎을 굽힐 때였다.
파아아앙-!
한 마리 독수리가 나타나더니 번개처럼 먹이를 낚아채 간다.
블라호비치보다 한발 앞서 솟구친 밀렌코비치 선배였다.
제자리에서 몸싸움까지 하며 점프를 하는 것보단, 도움닫기를 하며 점프를 하는 게 당연히 빠르고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뒤에서 달려 나온 밀렌코비치 선배의 러닝 헤더가 공을 잘라낼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파아앙-!
밀렌코비치 선배가 따낸 그 공이 토레이라 선배의 발에 들어간다.
곧바로 전방을 향해 돌아서는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선배의 발이 움직였다.
파아아앙-!
내게로 패스가 향해오는데, 공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다.
언젠가 지우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훔쳐보다가 그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였던가.
그 말이 사실이었다.
항상 가지고 놀던 공인데, 이렇게 반가운 순간이 오게 될 줄이야.
이렇게 또 지우에게 하나를 배운다.
촤아아아아-
파아앙-!
발밑으로 강하게 오는 패스를 신중하게 받아 돌려놓는다.
공간이 넓어 곧바로 돌아서도 방해가 없다.
그대로 공을 끌고 올라간다.
타타탓-!
상대 수비는 둘.
딱 봐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수비수들이라 덜컥 겁이 날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다.
조카와 놀아주던 삼촌들 덕분이다.
얼굴이라면 나스타시치 선배와 밀렌코치비 선배 쪽이 더 무섭다.
타타탓-!
있는 힘을 다해 스피드를 올린다.
그러자 두 수비 중 하나가 뒷걸음질을 멈추고 내게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달려드는 것이, 날 넘어뜨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래서 공을 툭 차 놓고, 살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툭-!
툭 건드려낸 공이 수비의 다리 사이를 통과하고, 나는 그 옆을 아슬하게 지나쳐 간신히 충돌을 피해낸다.
보폭이 크다는 건 그만큼 다리 사이의 공간이 넓다는 뜻이 되므로, 공을 빼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타탓-!
계속 달린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바나나에게 감사한다.
녀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달리지는 못했을 테니까.
바나나는 신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타타탓-!
앞서 수비가 제쳐진 것 때문인지, 남은 수비 하나는 박스 라인을 밟고 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위치와 그 너머 골키퍼의 위치가 꽤나 절묘해, 수비를 앞에 두고 슈팅을 때리기엔 어려워 보인다.
속도를 살린 채 그대로 수비를 향해 달려든다.
얄팍한 개인기 따위는 접어두고, 지금은 살린 속도 그대로 방향 전환만 하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내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타탓-!
수비와 서너 걸음 앞에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왼쪽으로 튕겨 나가며 공을 친다.
그러자 시야가 환히 열리고, 나와 마주하는 건 수비수가 아니라 골키퍼였다.
슈팅은··· 가볍게.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그러나 골망은 묵직하게 흔들렸다.
와아아아아아아-!!!
골망이 흔들리는 순간 온몸에 힘이 다한 나는 그대로 뻗어 버렸고, 덕분에 난 팬들의 함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우와 메시지를 할 때의 내 핸드폰처럼···
땅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
쉬운 문제보단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더 재밌다. 그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오늘 시합의 승리가 그랬다.
2대1.
힘겨웠지만 우리는 이겼다.
“이 자식!”
“사랑한다! 넌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야!”
“다음 생엔 내가 네 아빠 할래!”
경기에서 이겼는데 왜 이런 끔찍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배들이 내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도록 놔둬야 했다.
반항할 힘도 없거니와, 그게 막 싫지 않기도 했다.
“요 귀여운 자식!”
“···아!”
자, 잠깐. 그래도 이건 좀.
볼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린다.
나스타시치 선배의 두꺼운 손이 내 볼을 꼬집고 있었다.
으, 뭐가 이렇게 아파.
“뭐해, 인마! 애 아파하잖아.”
“아오, 나스타시치!”
내 반응 때문인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리곤 모두가 나스타시치 선배에게 눈총을 보내는데, 나스타시치 선배도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어··· 그, 짜증내려던 건 아닌데···
“괘, 괜찮아요. 그, 선배 덕분에 골 넣을 수 있었어요. 훈련 때 도와주신 덕분에.”
선배를 좀 도와주자.
“선배보다 상대 수비수 제치는 게 훨씬 쉽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렇지? 역시 그렇지?”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던 나스타시치 선배가 다시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선배가 또 손을 내게 뻗는데, 이번엔 다른 선배들의 제지로 그 손이 내 볼에 닿지는 못했다.
“이 새끼 격리시켜!”
“아오, 나스타시치! 일로와!”
두 명이 달라붙어 나스타시치 선배를 끌고 가고, 어쨌든 덕분에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다.
휴우··· 힘들다.
경기를 이기는 건 다 좋은데, 그다음이 항상 이렇게 힘들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커룸으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
누가 내 앞을 막아서길래, 고개를 올려다봤더니 블라호비치가 서 있었다.
“···어?”
조금 놀란 탓에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는데,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손을 내민다.
“더 잘해지는구만.”
“···아.”
그 손을 맞잡는다.
그러자 그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혹시 유니폼 줄 수 있어?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유니폼··· 아, 네.”
유니폼을 달라는 말에 힘겹게 상의를 벗는다.
이건 지우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삥 뜯기는 걸로 오해하기 딱 좋은 장면 같아서···
“죄송해요. 땀이 좀···”
“쓸데없는 걱정하는 건 여전하네.”
땀에 푹 절은 유니폼을 건네자, 블라호비치는 그 자리에서 옷을 벗더니 내 유니폼을 입었다.
“···”
생뚱맞게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아야 했다. 사이즈가 안 맞아서 몸을 구겨 넣는 것도 그렇고, 입고 나서도 옷이 너무 꽉 꼈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포인트가 유니폼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근데도 그 보라색 유니폼이 그에겐 잘 어울렸다.
“내 건 안 필요하지?”
“···아. 주세요.”
“자. 이건 불태우거나 그러면 안 돼.”
블라호비치는 내 손에 자기 유니폼을 들려주곤, 웃으며 몸을 돌렸다.
불태우면 안 된다니.
경기 내내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더니, 그도 사람은 사람이었구나 싶다.
팬들이 그의 유니폼을 한 자리에 모아 불태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신경 쓰였던 것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터질 듯이 꽉 끼는 유니폼 때문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흐음.
잘 모르겠다.
경기 전과 경기 중엔 그를 후회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이렇게 짧게나마 악수를 나누고 나니 생각이 또 바뀐다.
그가 후회하거나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유니폼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뭐, 그와 별개로 유벤투스에게 또다시 이긴 건 매우 기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