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 지그문트의 제자들(1)
클로드의 안내를 따라 숲속 한복판에 멈춰 선다.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쇠와 불꽃의 냄새.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대장간이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지그문트가 여기에 있는 건가?
그런데 왜 대장간이 숲속에 있는 거지?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뭐야, 인간이잖아?”
그러나 대장간에 있는 건 누가 봐도 드워프는 아니었다.
한창 쇠를 두드려 괭이를 만들고 있는 남자.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것 같은 그는 이종족의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간이었다.
“무슨 반응이 그래? 인간 마을에 인간 말고 누가 있다고.”
“넌 아까 그 여자가 인간 같았냐?”
“…”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폭탄들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클로드가 나에게 묻는다.
“그건 뭐야? 동그란 쇠? 대장간에 선물로 주려고?”
“그럴 리가. 아, 일단 경고하는 건데 이거 폭탄이니까 손대지 마라. 아까 그 여자 몸속에 있던 거랑 같은 거야.”
“포, 폭탄이라고?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는 거야?”
“그야 내가 이 마을에 찾아온 단서가 그거였으니까.”
주위에 대충 흙을 파 폭탄을 파묻는다.
클로드가 기겁하며 나를 말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터지면 어쩌려고!”
“안 터져.”
물론 말과는 달리 언젠가 이 폭탄이 터지긴 할 거다.
하지만 그걸 감당하는 건 내가 아니지 않겠는가.
나는 클로드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 나를 질린 듯이 바라보는 클로드.
“악마 같은 녀석..”
“그렇겠지.”
클로드의 비난을 가볍게 넘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전에 망가진 검을 수리하고 갈 작정이었다.
물론, 절반밖에 남지 않은 검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명색이 대장장이인데 검 비슷한 거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쓰고 버릴 검이라도 있으면 전투에 있어 큰 도움이 될 터다.
“..이 농기구들.”
그런데 이 대장간에서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
아니, 가만 보니 익숙한 것은 대장간만이 아니다.
벽 쪽에 쌓여있는 이 농기구들에서 느껴지는 이 기운에서부터 이 마감 방법까지..
“어쩌면.”
아무리 봐도 하르트를 떠오르게 하는 장소다.
물론 대장장이 본인의 실력은 하르트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긴 하지만..
심지어 만들고 있는 건 검이 아니라 농기구. 내가 가진 검과 비교할 대상은 아닌 셈이다.
“역시.. 하르트의 검을 닮았군.”
그러나 이 괭이에 깃든 기운은 분명 하르트의 것을 닮아 있었다.
비록 그 수준이 하르트에 비해 조악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르트? 그게 누군데?”
클로드가 그런 내 말에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혀를 차며 되물었다.
“너보다 3배는 더 살았을 사람의 이름을 너무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냐?”
“아, 미안.. 이 아니라 너도 그렇게 부르잖아!”
나는 두 개의 물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형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닮은 물건을 만들어 낸 두 명의 대장장이.
그러나 하르트는 스승에게서 도망친 뒤로 평생을 드미트리 령에서 살았다고 했다.
저 대장장이가 드미트리 령 출신이 아닌 이상 서로 아는 사이일 리가 없다는 거다.
분명 저들 간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뭐, 이번엔 고맙다.”
“어? 응.. 그, 그래.”
사실, 그 연결고리가 뭔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황은 더없이 명백했으니까.
‘지그문트의 또 다른 제자라는 건가?’
하긴, 하르트가 도망치고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상황이다.
그동안 새로운 제자를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비록 실력은 하르트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이봐, 너. 지그문트의 제자 맞지?”
“..넌 누구지? 어떻게 스승님의 이름을 아는 거냐?”
“네 사형되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서 왔다. 지그문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사형? 나한테 사형이 있다고?”
그런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이놈은 하르트에 대해 모르는 눈치다.
나는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대장장이들에게 있어 이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을 테니까.
“너도 그걸 보면 알 거다. 네가 만든 물건에도 비슷한 흔적이 묻어 있으니까.
“이건..!”
아니나 다를까 대장장이는 내가 내민 검을 보며 경악하는 눈치였다.
아니, 매료되었다고 해야 할까?
마치 인세에 더없이 지고한 보물을 마주한 것처럼 몽롱하게 변하는 눈동자.
대장장이는 떨리는 손으로 검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신이나 악마에게 홀린 것만 같은 얼굴이다.
“어, 어떻게 강철만으로 이런 검을 만든 거지? 분명 마법 금속은 아닌데?”
“왜 네가 놀라는 거지? 너도 지그문트의 제자라면 그런 검을 본 적은 있을 거 아니냐.”
“아니, 이 정도의 검은 나도.. 하기야 스승님께서는 마법 금속의 제련에 집중하고 계시니..”
뭐든 간에 지그문트의 제자가 맞긴 한 건가?
그런데 어째 이 녀석도 하르트의 솜씨에 경악한 거 같은 눈치다.
지그문트라는 드워프가 하르트의 말처럼 대단하다면 이런 검도 여러 번 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하르트의 솜씨는 내가 보기에도 대단하니 당연한 일인가?’
어쩌면 야금술에 있어선 하르트가 지그문트를 뛰어넘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더 아쉬웠다.
솔직히 배부른 소리이긴 하지만.
‘내가 눈이 높아지긴 했나 보네. 원래는 내 힘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무기면 만족하려고 했으면서.’
애써 아쉬움을 삭이며 검을 받아 든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얼굴로 검을 바라보는 대장장이.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지그문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스승님께서는 돌아오시지 않은 지 오래되셨다. 나더러 이곳에서 야금술을 연마하라고 하셨지.”
“뭐라고?”
그런데 설마 여기서도 엇갈려 버린 건가?
설마 다른 영지로 가버린 건 아니겠지?
‘하긴, 그랬다면 퀘스트가 이 마을을 가리키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이 대장장이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건가?
나는 염제의 눈을 사용해 대장장이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겁을 먹고 물러서려는 대장장이.
나는 그의 멱살을 잡으며 눈을 마주했다.
“대체 어디로 갔다는 거지? 왜 너를 두고 간 거냐. 이런 숲속에 대장간까지 만들어가면서..”
“야! 그만둬!”
비록 클로드가 그런 나를 막아서서 어쩔 수 없이 풀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압박을 풀지는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저, 정말이야! 나는 스승님을 따라갈 만큼 실력이 뛰어나진 않다고! 사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사제? 제자가 또 있나?”
“그, 그래. 나랑은 다르게 그쪽은 수제자지만.”
수제자라. 이름만 들어서는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놈의 실력이 너무 별로인지라 별 기대가 되진 않았다.
“그래봤자 이런 검도 못 만드는 수준인 거 아니냐?”
“사, 사제를 우습게 보지 마! 사제는 스승님께 정수를 다루는 걸 허가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대장장이라고!”
“..정수라고?”
그런데 설마 여기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대장장이를 노려보며 물었다.
“심해의 진주와 바람의 결정. 그중 어느 쪽이냐.”
“그, 그 이름을 어디서..”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둘 다 아니야. 아니, 어쩌면 더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뇌정까지야. 나와 함께 있었을 때 사제는 스승님을 도와 한 자루의 창을 만들었지.”
번개의 정령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로군.
그나저나 뇌정을 제련할 수 있을 정도의 대장장이라니.
확실히 재능만큼은 대단한 모양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축이 된 것은 지그문트였을 테지만.
“정말 대단한 창이었어. 창은 이미 어디론가 보내버렸지만.”
“..그런데 이상하군. 네 스승이 정말로 재료를 다루는 걸 허락했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제자와 스승이 같이 검을 만드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보아하니 이 대장장이는 지그문트와 연금술사 간의 계약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해. 정수를 제련하여 넘겨주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지그문트일 텐데.. 왜 거기에 제자를 개입시킨 거지?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보통 영혼의 계약의 당사자라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철저하게 계약을 이행하려 할 텐데.
무언가 위화감이 든다.
아무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알아볼 곳이 마땅치가 않은데..’
문제는 나 역시 영혼의 계약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무려 마왕씩이나 되는 존재가 그런 계약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마족에게도 영혼은 소중했으니까.
애초에 영혼을 걸고 계약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 아닌가.
생각할수록 나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이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있었군.’
생각을 이어가던 중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나는 적당한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즉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마법사.
“쿨럭!”
“그, 그림자에서 사람이 나왔어!”
“대체 저 그림자는 뭐지?”
그러고 보니 프로키온을 본 게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째 몸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물을 준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 보니 인간은 삼일 정도만 물을 못 마셔도 죽는다고 했던가?
하긴 탈진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기는 하다.
소드 마스터인 마릴은 먹을 것과 마실 것 없이도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겠지만 프로키온은 아니었으니까.
흑마법을 잃은 건 둘째 치고 나에게 심장의 서클까지 봉인 당한 처지가 아니던가.
“무, 무울..”
“미안하지만 불밖에 없는데?”
“여, 여기 물이요!”
그러던 중 클로드가 안쪽에서 물을 가지고 왔다.
황급히 물을 받아 마시는 프로키온.
그런데 저런 몸 상태로 급하게 물을 먹으면 더 위험하지 않나?
‘말린다고 해서 들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한참이나 물을 들이켜던 프로키온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클로드를 마주하는 프로키온.
“고, 고맙네. 덕분에 살았어..”
“별말씀을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왜 이런 꼴이..”
“저, 저 남자가 나를..”
그런데 지금 어디서 누명을 씌우려는 거야?
“야, 물러나라. 그놈 흑마법사니까.”
“뭐, 뭐라고요?”
기겁하는 클로드를 물러서게 한 다음 프로키온을 일으켜 세운다.
공포에 질린 눈빛.
프로키온이 몸을 떨며 소리친다.
“나,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내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래, 알고 있지. 그런데 지금 널 꺼낸 건 정보를 원해서가 아니라 네 마법사로서의 지식 때문이야.”
“..내 서클은 네가 봉인했잖아.”
나는 말없이 프로키온에게 계약서를 던져주었다.
“서클은 필요 없어. 말 그대로 지식만 있으면 되니까.”
내 말을 들은 프로키온이 계약서를 살핀다.
이채가 스치는 그의 눈. 보아하니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은 것 같았다.
프로키온이 불타는 것만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대답을 하기 전에, 원하는 게 있다.”
“오. 거래를 하겠다는 거냐? 일단 들어보지.”
그런데 설마 이런 순간에서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인류를 버리고 마족과 계약을 할 만큼의 기개는 있다는 걸까?
나는 묘한 기대를 품은 채 프로키온의 제안을 기다렸다.
만약 터무니없는 것을 요청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손가락 하나쯤은 받아 가겠다고 생각하면서.
“지식을 대가로 먹을 것을 받고 싶다.”
“..뭐라고?”
“빵과 고기. 가능하면 술도..”
“허..”
그럼 그렇지. 기개는 무슨.
나는 점점 말끝을 흐리는 프로키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술은 없어도 되긴 하는데.”
“쯧.. 대답부터 해라.”
프로키온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