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 두 개의 시간선(2)
시공의 저편으로 쏟아진 불꽃.
외신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외신 역시도 나름의 타격을 입은 거겠지.
비로소 놈의 시야 밖에서 행동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태양신. 듣고 있냐?”
나는 눈앞의 상태창을 보며 놈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전생이자 영혼의 근원. 그리고 내가 넘어서야만 하는 벽.
“내 세계가 위험에 빠졌다. 그런데도 날 보내주지 않을 거냐?”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태양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번의 퀘스트도 그렇고 외신의 팔을 삼켰을 때도 그렇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상할 정도로 시기적절한 도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이 시대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냐?”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기보다는 아마 태양신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거겠지.
그러나 직접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더라도 간접적인 힌트 정도는 줄 수 있을 거다.
“과거와 미래. 그 양쪽의 해결책이 여기에 있다는 거냐?”
그것이 내가 이 대화를 시도하는 이유였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기 전에.
나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리기 전에. 이 세계를 구해내기 위해서.
“그럼 도대체 내가 뭘 해야 하는 거냐. 설마 지금처럼 두루뭉술한 말을 반복하려는 건 아니겠지?”
부릅뜬 눈이 하늘을 바라본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온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솔리아와 솔루이의 각성을 도와라. 난이도 SSS.]눈앞을 뒤덮는 퀘스트 창. 아무래도 드디어 태양신의 대답이 도달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대답을 듣고도 심란함을 버릴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이 순간 내게 부여된 것은 내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임무였다.
나는 다만 얼이 빠진 채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솔리아의 각성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틀림없는 태양신의 성녀였고, 언젠가 각성할 것이 확실시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솔루이라니? 내가 손쓸 새도 없이 죽어버린 그를 각성시키라고?
“..나더러 죽은 사람을 되살리라는 거냐?”
내뱉은 말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퀘스트 창은 할 말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참기 힘든 황망함 속에 잠긴 채 한숨을 내쉬었다.
“..뭘 어쩌라는 거야. 대체.”
모든 것이 멀어지고 있었다.
구원도, 희망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도.
* * *
그로부터 얼마 동안을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시도해 본 것 같다.
물론 가장 먼저 의심해 본 것은 단테가 뭔가를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비록 퀘스트 난이도가 SSS라는 정신 나간 수치를 가리키고 있긴 하지만, 시스템이 불가능한 임무를 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그러나 아무리 상황을 살펴본들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단테는 무언가를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솔루이는 죽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더러 뭘 하라고?”
참을 수 없는 막막함이 정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무언가를 착각한 거였다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러나 퀘스트 창을 몇 번이나 읽어내려 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참을 수 없는 막막함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열쇠..”
그렇게 얼마를 더 고민했을까. 불현듯 뇌리를 스친 것은 솔루이의 목소리였다.
내가 사신장을 죽이려 했던 순간 나의 앞을 막아섰던 그 소년.
분명 당시의 솔루이는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사신장을 죽여선 안 된다고, 그들이야말로 멸망을 헤쳐 나갈 열쇠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신장도 이미 죽어버렸잖아.”
그런데 도대체 그 열쇠를 어떻게 쓰라는 걸까.
사신장들 역시 내가 저 하늘 위에 있는 사이 외신에 의해 죽어버렸는데.
비록 끝을 낸 건 나였지만, 그들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외신 역시 솔루이의 예언을 들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기에 외신은 사신장을, 솔루이를 가장 먼저 제거한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솔루이의 의도치 않은 실수였던 셈이다.
솔루이도 외신이 그 대화를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겠지.
하기야, 그 당시의 누가 그런 걸 눈치챌 수 있겠냐마는..
“..아니, 정말로 그런가?”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솔루이는 어리니까 실수할 수 있지. 하지만 거기에 있었던 건 솔루이가 아니었잖아..?”
내가 아는 바알은 어떤 사람이었지?
그렇게 맥없이 사라져 버릴 존재였던가?
그런 존재에게 나는 배신당하고 수도 없이 많은 부하를 잃었던 건가?
‘..그럴 리가 없지.’
근거는 없었지만, 불현듯 그럴 리 없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면 뭐가 바뀌는 거지?
바알이 이 모든 걸 예측하고 있었다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설마 바알은 자기가 죽는 것까지도 계획에 넣고 있었던 건가?’
이어지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허나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도대체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것이 이 세상을 통틀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얻은 거라고는 이게 전부인데.”
나는 내 안에 흡수된 사신장의 심마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것은 이미 나의 심마이기도 했다.
외신의 목소리는 매 순간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환각을 보여주며 내 행동을 유도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이 순간까지도 연합군과 합류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내 손에 죽는 것이 적이 아니라, 아군일 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것이 열쇠일 리 없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심마는 데모닉을 삼켰을 때부터 이미 있었잖아.”
무엇보다 솔루이가 콕 집어 사신장을 고른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다.
비장의 열쇠라는 게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였다면 굳이 사신장을 고를 이유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대체 뭘까? 이미 죽어버린 사신장에게 도대체 뭘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영혼..”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이 생각이 외신에게 흘러갈까 두려워서다.
“..어쩌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발상이었지만, 나는 그 생각에 확신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외신을 경계할 정도로 말이다.
“..침착하자.”
나는 내 안의 마기를 긁어모아 한쪽으로 밀어냈다.
지금부터는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외신을 속일 수는 없을 거다.
다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태양신의 환생이야. 그 말은, 내가 가진 힘은 태양신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선후관계가 반대이긴 하지만 태양신의 힘을 모르는 나는 이런 식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개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벨제뷔트로써의 삶, 역할이었다.
‘사실상 마족이라는 존재는 마왕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았지.’
종족의 쐐기. 생각해 보면 나는 마왕으로서의 삶을 그렇게 불러왔었다.
모든 마족은 죽음과 동시에 마왕을 거쳐 윤회하는 까닭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영혼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태양신에게도 같은 힘이 있다면?’
나는 호루스족의 모습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강한 힘과 긴 수명을 가진 그들.
하지만 호루스족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아마도 그들의 불타는 날개일 것이다.
종족의 상징이자 힘의 근원이기도 한 그들의 날개.
이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돌이켜 보면 그들의 모습은 전설 속의 피닉스를 닮아 있었다.
“..그런 거였구나.”
나는 그제야 태양신의 힘이 ‘순환’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영혼이 수차례의 환생을 거듭한 것도, 그 결과 이 시대로 돌아오게 된 것도, 마족들이 부활한 것 역시도.
나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사이, 이 거대한 흐름 속에 갇힌 채 끝없는 반복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사신장의 영혼은..’
나의 눈이 허공을 바라본다.
한때는 마왕의 눈이라 불렸던, 그리고 이 순간은 전혀 다른 눈이 되어 버린 그것.
“..거기에 있었구나.”
다음 순간, 그 눈에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이십니까?”
멍한 얼굴의 사신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그들의 얼굴.
‘인식해야 비로소 보인다는 건가?’
하기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사념들 역시 그랬으니까.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힘을 빌려왔던 사령과 망령들.
그러나 나 역시도 평소에는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그들을 보려고 해야만 그들이 보였다는 거다.
“여기는 대체 어디죠?”
기억을 잃은 사신장들이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말을 걸려는 순간 사신장의 뒤로 무수한 그림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지?”
그곳에 있는 것은 거대한 흐름이었다. 아니, 등불이었다.
뿌리처럼 뻗어나간 거대한 가지를 밝히며 늘어선 무수한 영혼들의 모습.
그 등불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내 손으로 훈련시킨 호루스족의 병사들부터 시작해 헬리오스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꽃과도 같았다.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며 선을 이루는, 시작점 없이 무한히 순환하는 원.
“..아.”
그런데 왜 거기에 너희가 있는 걸까.
이 시대에는 존재할 리 없는 마족들의 얼굴이 보인다.
내 손으로 지킬 수 없었던 이들이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였군.”
나는 내 손에서 데이브 클락에게로 전해졌던 불꽃을 기억했다.
본래라면 닿을 길 없는 그 불꽃이 데이브에게로 이어지던 그 순간의 일을.
아마도 그 기적 같은 순간의 이유는 이 거대한 원이었을 거다.
시간도, 공간도,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원.
나와 데이브를 잇는 등불들의 선.
“그런 거였어..”
그 순간 머릿속을 관통하는 것은 거대한 깨달음이었다.
이윽고 하늘을 향해 뻗어지는 손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명 그리고 황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세월.
후욱.
세 개의 검술이 이 자리에서 합쳐지기 시작했다.
“시공검. 네가 보여주고 싶은 건 이거였나?”
이 순간, 나는 반쯤 넘어서 있던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완벽하게 정복할 수 있었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시공이라는 개념이 이해되고 있었다.
적들이 얼마나 멀리 있건 간에 벨 수 있었고, 회피 불가능의 공격을 날리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나 자신이 시간을 넘어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세계 자체의 섭리가 나를 막고 있기도 했고, 반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의 권능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래서 성검을 안 준 거였군.”
나는 이것이 태양신이 나에게 준 용사로서의 징표임을 깨달았다.
놈이 나를 용사로 삼은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나에게 시공의 개념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이었던 거다.
“하지만.. 이걸로 뭘 하라는 건데?”
그러나 제아무리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힘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그래봤자 필멸자의 수준.
나의 검은 여전히 외신의 털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시공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해도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지금의 나라면 과거에 개입해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의 섭리를 어기게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내 손으로 또 다른 왜곡점을 낳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아니, 아니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왜곡점을 낳지 않고서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쩌면.”
나는 내 손 위에서 휘몰아치는 마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뚜렷한 왜곡점을 남기고 있으면서도 섭리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외신의 힘.
그것의 정체가 또 다른 ‘시공의 파편’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