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8)
28화 – 인간 적응기(2)
나는 그 길로 용병 길드로 향했다.
우선은 이곳에서 랭크를 갱신한 후 사냥꾼 길드에 갈 생각이었다.
전에 신분증 삼아 받은 D랭크 용병패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돈도 벌어야 했으니까.
‘최소 C랭크. 가능하면 B랭크를 받아놔야겠어.’
일단 티그리스 왕국에서 용병패를 얻어두기만 하면 다른 나라의 국가에서 신규 발행을 받는 데에도 유리하긴 할 거다.
물론 그 전에 어느 정도의 실적을 쌓아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A랭크는 조금 힘들 것 같으니까.’
사실 시험을 통해 단번에 A랭크를 받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최근 만난 놈들의 수준이 이상해서 그렇지 보통 하급 익스퍼트 정도면 어딜 가도 인정받는 실력이었으니까.
그러나 시험을 통해 랭크를 올리게 되면 괜히 주목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익스퍼트쯤 되면 어지간한 영지의 기사 수준이었으니 그 정도가 더 심할 테지.
무엇보다 최근 일어난 전쟁들로 인해 기사들의 수가 줄어든 만큼, A랭크를 달게 되면 이 영지의 주인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연구소의 시선이 따라붙게 되는 건 덤일 테고.
‘애초에 이름부터가 왕립 연구소잖아. 이놈들이 이 나라 어디에 침투해 있을지 모른다는 거야. 괜히 시선을 끌 짓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설령 운 좋게 별 탈 없이 시험에 통과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실적을 쌓아 오른 것이 아니라 특혜를 받아 A랭크가 되면 길드의 소집령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결국, 지름길을 가고자 한다면 어떤 식으로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괜히 귀찮아지기 싫다면 랭크가 조금 낮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는 편이 낫겠지.
‘아 참. 그전에 머리 색을 바꿔야겠군. 이미 우리에 대해 수배령이 내려진 것 같으니까.’
나는 관문 밖에서 검문을 하던 병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기를 움직였다.
마력이 없는 만큼 환영 마법을 쓸 수는 없겠지만, 슬쩍 보면 검은색으로밖에 보이지 않게끔 조작을 가하는 거다.
여기서 마왕의 눈까지 사용하면 눈의 색까지 변하니 더 완벽하게 상대를 속일 수 있을 테지.
‘응?’
그런데 마왕의 눈의 상태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상태창을 보거나 벽 너머의 적을 간파하지는 못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권능이 진화했다고 했던가?’
잠시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건물 내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벽 너머에 몇 명이 있는지, 어떤 무기로 무장했는지 정도는 간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앞으로의 행보에서 큰 도움이 될 테지.
‘오픈.’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이제부터 거울 없이도 상태창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지만.
띠링!
[상태창이 열립니다.이름: 데이브 클락.
성별: 남자.
나이: 25세
종족: 하프 데몬.
스테이터스: 근력 69 / 체력 100 / 민첩 96 / 오러 230 / 마기 240
권능: 흐릿한 마왕의 눈 / 평범한 에테리얼 바디 / 훌륭한 화염의 잔 / 평범한 흡정법 / 하급 재생 /
열등한 마기 조종
가호: 상급 화염의 가호 / 중급 오러의 가호]
그런데 못 본 사이에 꽤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다. 솔직히 몰라볼 정도다.
마왕의 눈만이나 에테리얼 바디, 흡정법과 마기 조종 같은 권능이 전반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설마 가호가 생겨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처음 보는 가호군. 적어도 용사들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가호야. 희귀한 가호인가?’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상태창의 하단에 새롭게 신설된 가호라는 항목.
이전에 했던 예상이 맞았다고 해야 할까.
오러와 마기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게 되니 지금껏 마기에 억눌려 있었던 가호가 되살아난 모양이다.
어쩌면 오러가 마기를 넘어서면 반대로 권능이 사라지고 가호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균형도 맞춰야 한다는 건가? 이건 좀 성가시게 되었군. 특히나 마왕의 눈이 진화한 건 좀 곤란하겠어. 지금 수준이라면 심약한 사람은 내 눈을 보자마자 겁을 먹고 도망치게 될 거야.’
뭐든 간에 이대로 길드에 들어갈 수는 없겠지.
지금 마왕의 눈은 지나치게 눈에 띄었으니까.
나는 결국 벨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환영 마법을 걸어 달라고 요청했다.
“오러의 가호와 화염의 가호라고? 그런 건 처음 들어 보는데..”
그런데 가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벨의 표정이 묘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되물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검은 머리와 붉은 눈으로 변한 내 모습을 거울로 확인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용병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회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의 남자가 왔냐고 묻잖아!”
그런데 이번에도 성가신 일에 휘말린 것 같다.
* * *
문을 열고 길드 안으로 들어선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로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내 정체가 들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한 시선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시선이 모인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필사적으로 존재감을 죽이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 모양이다.
사람들은 얼마 못 가 다시 접수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저희가 왜 그러겠습니까.”
“그런데 왜 없냔 말이야!”
그곳에서 화를 내는 것은 이 영지의 병사였다.
정확히는 십 부장이라고 해야 하나?
병사 두 명을 거느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술이라도 마신 건가?
혀가 잔뜩 꼬인 채로 행패를 부리는 꼴이 참 꼴사납기 그지없다.
‘음.. 아무래도 날 찾는 거 같군. 그런데 수배자를 찾는 것치고는 분위기가 이상한데?’
그런데 공무를 집행하는 것치고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묘하다.
남자의 양옆에는 두 명의 병사만 해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는 것 같았으니까.
설마 저 십부장 놈의 독단인 건가?
나는 아무래도 자세한 상황을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이거 한 잔 받으시죠.”
“엉? 넌 누구야?”
나는 길드 내의 작은 바에서 음료수 두 잔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저 병사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입이 남자의 옆에 앉았다.
어딘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왕의 눈을 사용해 확인하기까지 했으니 확실할 거다.
“접수처에 볼일이 있었는데 저 꼴을 보니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무슨 일인지나 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아하? 자네 이 지역 사람이 아닌가 보구만?”
“그렇긴 합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셨죠?”
“이 지역 사람이라면 저 얼간이를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아무튼 이건 잘 마시겠네. 설명은 마시면서 해주지. 그리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그나저나 풍채가 지나치게 좋은 용병이다.
이래서야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긴 한 건가?
“저 얼간이 이름은 토트 팔레아스라고 한다네. 부모의 후광에 기대어 날뛰는 얼간이지.”
“후광이라.. 재력가 같아 보이지는 않고, 귀족의 아들인가 보죠?”
“그래, 무엇을 숨길까. 저놈은 이 영지의 주인인 오테 팔레아스 남작님의 차남이라네. 하긴. 그래봤자 아비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패륜아일 뿐이지만.”
차남이라.. 그렇다면 장자가 살아있는 한 작위를 계승하기는 힘들겠지.
그리고 영주 대리가 아니라 병사가 된 걸 보면 장자가 죽은 것 같지도 않다.
아무리 그래도 귀족의 자식이 병사가 된 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군요.”
“그래, 뻔한 이야기지. 잘난 아버지를 믿고 날뛰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듣자 하니 어제도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갔다고 하더군. 아마 그러다가 결국 팔레아스 경의 심기를 건드린 거겠지.”
“듣자 하니 아까부터 누굴 찾는다던데요?”
“그러는 척만 하는 거겠지. 진짜 누굴 찾을 거면 왜 여기 와서 저러겠어? 대놓고 남작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직접 찾으러 다니기엔 힘드니 화풀이 겸 여기에 온 걸 거야. 쯧. 저 자식의 부모가 남작님만 아니었어도 혼쭐을 내주는 건데 말이야.”
요약하자면 저 토트라는 녀석은 이른바 잘나가는 집안의 망나니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은 평소처럼 망나니짓이나 하다가 쫓겨나서 엄한 곳에 화풀이하러 온 거고.
‘이유야 어떻건 간에 나에게 있어선 잘된 일이군.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
물론 저놈은 그냥 아버지의 임무를 주워듣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행패나 부리러 온 걸 거다.
하기야 정말로 여기에 수배자가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아마 팔레아스인가 하는 남작 놈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래서 무능한 아군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건가?’
그런데 연구소 놈들의 권력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어제의 그 사건으로부터 아직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질 줄이야.
새삼 이 마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줬던 농부에게 감사의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연구소의 힘은 티그리스 왕국의 중심에까지 침투해 있는 것 같군.’
어쩌면 이 왕국 전체가 연구소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그렇지 않고서야 왕국 내에서 그런 끔찍한 실험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계속 조심해야겠어.’
뭐든 간에 지금은 일단 사냥꾼 길드를 먼저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사태를 보아하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런. 곤란해졌군. 저놈이 자네를 봤어.”
그런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아무래도 운명이라는 놈에게는 내가 이대로 발을 빼게끔 방관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저놈은 용병이라는 직업 자체를 하찮게 보는 놈이거든. 화가 난다고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걸 보면 알지 않나. 문제는 그렇게 행패만 부리는 게 아니라 좀 만만해 보인다 싶으면 아무에게나..”
음.. 대충 알겠군. 실로 망나니다운 일이야.
“이봐, 너!”
쯧. 일이 꼬였다.
나는 한숨과 함께 놈과 눈을 마주쳤다.
한심한 몰골이다. 오만함과 표독스러움으로 점철된 눈빛.
저 빵빵한 볼에는 뭐가 차 있는 거지? 심술인가? 아니면 노래?
‘그런데 시비에 걸린 게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힐끗 눈을 돌려 용병의 모습을 살폈다.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은 주제에 눈빛은 지독히도 차갑다.
설마 이놈이 뭔가를 한 건가?
하긴, 뭐든 간에 이대로 가면 내 처지가 곤란해지겠지.
‘그렇다고 용사 놈들처럼 저놈을 쥐어팰 수는 없지. 눈에 띄는 건 곤란하니까.’
생각은 짧았고 판단은 빨랐다.
마침 좋은 무기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나는 마왕의 눈을 사용해 놈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망나니 놈의 마음속에 진득한 공포의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봐, 거기에 있는 너.. 어어?”
그런데 힘을 너무 준 것일까?
시야 한구석에 녀석의 형편없는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못 볼 걸 봤군.’
영주의 아들이라기에 그래도 기본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어지간한 농부만도 못한 능력치다.
저래서야 한평생 술만 마시고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네, 병사님. 부르셨습니까?”
“그, 그게..”
이 정도라면 너무 겁을 줄 필요는 없겠지.
딱 봐도 줏대가 약해 보이니 적당히만 해도 물러설 것이다.
무엇보다 이놈은 적인 나에게 일부러 정보를 알려준 녀석이 아닌가.
반면, 나는 적들의 무능한 아군을 일일이 제거해 줄 만큼 상냥하지 않았다.
“네, 말씀하시죠.”
눈에 마기를 모아 녀석의 마음을 흔든다.
모르긴 몰라도 더 이상 술기운을 느끼지는 못할 테지.
멀쩡한 상태로도 위압감을 느낄 텐데 술에 절어있기까지 했으니 견딜 도리가 없을 거다.
“..우욱. 이, 이만 나가자. 몸 상태가 안 좋다.”
“..네, 가시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곧 푸르죽죽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녀석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이 쏟아진다.
녀석으로서는 억울할 법한 일이었다.
“얼간이가 맞긴 하군요.”
“..그렇지?”
하긴, 누굴 원망하겠는가.
평소 쌓아왔던 업보의 탓이라 생각해야겠지.
“그런데 자네.. 운이 좋구만?”
“그러게요.”
나는 미심쩍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용병의 시선을 뒤로한 채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나에게서 뭔가를 느낀 모양이다.
조금 전의 그 기운도 그렇고 역시 보통 용병은 아니라는 건가?
‘굳이 정보를 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용병을 향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접수처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