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4)
134막, 천만 그 이상 (3)
134막, 천만 그 이상 (3)
10월.
추풍(秋風)이 간지럽히던 낙엽이 떨어진다.
언젠가 다시 푸른 잎을 돋아낼 미래를 기약하면서.
그런 낙엽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타이어 바퀴는 서울 도로변을 그대로 내질렀다.
그 안에는 최근 영화계의 모든 동태를 세심히 지켜보고 있는 어느 호랑이가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십 억은 아득히 호가할 프랑스산 외제차.
웬만한 재벌도 사치스럽게 여길 법한 그건 이철호 회장에게 있어선 꽤나 검소한 편에 속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철호 회장의 시선은 멀찍이 창밖을 향했지만.
스륵.
다시 한 번 나뭇가지와 작별을 고하는 낙엽.
서늘한 바람까지 다소 쓸쓸해보이는 풍경에도 이철호 회장의 입가에는 어쩐지 뿌듯한 색이 칠해졌다.
“이제 450만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러한 이철호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익숙하게 받는 한건호 실장.
안 그래도 이철호 회장의 최근 관심사는 온통 그곳에 몰려있었으니까.
“아마 내일이면 500만을 넘기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애써 감춘 건조한 말투 너머로는 흐뭇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가장 아픈 손가락···.”
아니, 나직이 중얼거리며 그 기운을 차 안 가득 풍겨내는 이철호 회장이었다.
“그 아픈 손가락이 저렇게 제 앞가림을 해낼 줄이야.”
“······회장님께서도 최선을 다해주셨지 않습니까.”
“최선은, 그런 소리 말게.”
아무리 제 오른팔이라 해도 입에 발린 말을 가로막은 이철호 회장은 씁쓸히 웃었다.
“내가 녀석에게 해준 게 무어가 있다고.”
이렇게 뒤에서 바라보는 것만 해도 과분한 못난 아버지이거늘.
허나 비서실장은 진중한 얼굴로 읊조렸다.
“누구보다 깊이 걱정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어쩐지 드넓은 회장실을 박차고 나갔던 그 날을 상기하는 듯한 눈으로.
“행여 잘못 든 길에서 헤매지 않을까, 모진 일이라고 겪지 않을까.”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으나 내내 오른팔로서 그 곁을 지키는 한건호로서는 모를 수 없는 이철호 회장의 속내.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셨으니까요.”
그걸 당사자에게 직접 전한 한건호는 여전히 웃음기 없는 표정 그대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
한 호흡.
“제 아무리 대단한 인물들도 쉽사리 해내지 못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건너뛴 비서실장의 말에 조금은 씁쓸함을 덜어낸 이철호 회장은 다시 한 번 창밖을 바라봤다.
막 신호등에 걸친 타이어 아래로 바스라진 낙엽.
짓이겨진 낙엽은 현재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준비할 터였다.
눈을 꼭 감고 기다릴 터다.
더 푸르른 초록 잎으로 돋아날 기회를.
누군가가 얻어낸 새로운 삶처럼.
* * *
개봉 이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500만을 달성한 영화.
무법도시의 흥행을 두고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물론 체감해볼 기회는 아직까진 없었다.
특별히 홍보를 위한 예능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짧은 인터뷰가 다였으니까.
『그동안 고생하신 만큼 자택에서 충분히 쉬시는 건 어떠십니까?』
『······휴식, 이요』
유성태 사장의 말대로.
어찌 보면 촬영 기간 내내 혹사해온 몸을 편히 쉬게 내버려두는 단계 같기도 했다.
“···조용하네.”
텅 빈 집안.
정이 들 대로 든 이 방 안은 이신우에게 있어 지난 생을 비춰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이마저 황홀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허름한 이 집안을 벗어나면 모든 게 달라져있었으니까.
감히 욕심내볼 수조차 없던 하늘은 어느새 손을 내밀면 닿을 듯 가까워져있었다.
물론 아직 시작에 불과한 단계이지만 전생의 자신이 고대했던 건 고작 이름을 알리는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이미 초기의 목표는 아득히 달성해버린지 오래였다.
“킥.”
그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과 한적한 여유를 온 몸으로 만끽하던 이신우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취미 생활이나 해볼까?”
잠시 오른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길.
고민을 그닥 길지 않았다.
굳이 누굴 부르지 않아도 혼자서 즐겨하던 것이었으니까.
“간만에 혼영이라···.”
혼자 영화보기.
마지막으로 가본 게 독종 찍기 전이었나.
전생에 자주 즐겨했던 취미를 떠올린 이신우는 씻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당연히 무법도시를 보려는 건 아니었다.
원래라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할 경쟁작 영화.
운 나쁘게 올해의 기대작을 경쟁 상대로 만난 예매율 2등 영화를 봐야지.
솔직히 기대됐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 영화도 꽤나 잘 만든 영화로 호불호가 조금 있을지언정 괜찮은 작품이었으니까.
‘마침 주말이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설마 아무 뜻 없이 찾은 상영관에서 갑자기 출연 배우들의 깜짝 방문이 벌어질 줄은.
* * *
상영관 근처에 미리부터 대기 중이었던 배우들은 카메라 너머로 입장하는 관객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팝콘을 들고 꽁냥대며 들어서는 커플이 있는가하면 음료 하나 들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훑어보는 영화 의 출연배우 중 하나가 문득 감탄했다.
“와아, 그래도 여긴 사람들 꽤 많이 들어오는데요?”
애써 분위기를 환기해보려는 말이었지만 딱히 효과가 있진 못했다.
사실 이들에게 있어 이번 상영은 벼락을 맞은 격이었으니까.
갑작스레 튀어나와 벌써 500만을 달성해버린 .
압도적이다 못해 실로 폭력적인 예매율에 잡아먹힌 은 이제 막 200만을 넘기고 있었다.
당연히 이 또한 썩 못 봐줄 성적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남는 건 아쉬움과 실망감이었다.
특히 경력 있는 몇몇 주연배우들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 밑에 경험이 적거나 젊은 배우들은 더더욱.
‘분명, 충분히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흥행은 물 건너 간 건가, 하아.’
실패해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높았던 기대만큼 실망은 높았다.
그리고 그 실망의 화살은 고스란히 자신들을 향했다.
만약 더 좋은 연기력으로 대본과 장면들을 살렸다면 이 더 큰 주목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 가운데였다.
“다들 뭐 그렇게 축 늘어져있어? 관객들 앞에서도 그러려고?”
영화 내에서 모든 전투를 전두지휘하는 장군으로 나오는 주연배우.
그의 조용한 호통에 후배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금세 정신을 차린 후배들을 둘러보던 주연 김한석.
적지 않은 무명 생활을 보내며 여러 아쉬움을 맛보았던 그이니만큼 지금 저들이 스스로에게 느낄 실망감을 모르진 않았다.
“억울할 순 있지. 그래도 실망하진 말라고. 영화 찍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야.”
“그래, 한석이 말대로 자책할 필요 없어.”
곧이어 비슷한 연배의 주연배우도 거들며 나서길.
“그냥 적수가 나빴다고 생각하자고 다들.”
“네 선배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 사이 이제 막 세 번째 작품으로 조연을 맡은 신인 여배우도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운이 나빴으려니 생각해야지, 별 수 있나?
다만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삼키려 해도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앞선 선배의 말 덕에 자책보다는 성찰에 가까운 생각을 품은 권예은은 멍하니 카메라를 쳐다봤다.
영화관 내에 설치해놓은 적외선 카메라.
객석의 반응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걸 빤히 바라보는 그녀는 대기실의 누구보다도 집중하고 있었다.
‘다들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
기도가 통한 것일까.
서서히 영화가 시작되길 다행히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중간중간 소소한 웃음도 흘러나왔고 긴박한 장면에선 몰입감있게 관객들의 시선이 한데 모이기도 했다.
헌데 그런 그녀의 눈에 유독 밟히는 관객이 있었다.
팝콘도 음료도 가져오지 않고 맨몸으로 홀로 앉은 남성.
그게 꼭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듯이 꼿꼿이 향하는 시선은 스크린 너머로 고정되어있었다.
조금도 흐트러짐없는 자세로 몰입 중인 사내를 권예은은 빤히 바라봤다.
‘지금까지 본 관객 중에 제일 열심히 보는 것 같은데.’
상영 일주일 이후부터 시작한 탓에 이번이 3번째 상영관 방문이지만 그동안 지켜본 관객들과는 다른 분위기.
감기기운이라도 있는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은 그 즈음이었다.
“뭐야, 예은이 너 왜 그래?”
“네? 아, 아니.”
자기도 모르게 큰 화면으로 상체가 쏠린 그녀가 다소곳이 앉았다.
상영이 끝나기까지만 해도 두 시간.
처음엔 지켜보던 배우들도 흥미를 잃고 눈을 돌렸지만 그녀처럼 쭉 바라보는 이라고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하얀 미간을 좁히며 화면을 뚫어져라 보던 그녀는 그제야 볼 수 있었다.
몰입한 사내의 은은하게 웃고 있는 입가를.
‘웃고··· 있다.’
순수히 즐기는 얼굴 그대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내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쩐지 그 모습이 내내 신경쓰였던 권예은.
“안녕하세요 최명헌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한석입니다.”
“칠복 역을 맡았던······.”
자리에 함께 한 주조연 배우들의 인사가 끝나길 질문 타임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맹렬히 꽂힌 권예은의 시선은 한 사람을 향했다.
그리고 추가 질문 시간이 찾아온 그때였다.
“저기.”
마이크를 쥔 권예은이 꼿꼿이 편 검지로 이신우를 가리킨 건.
“다섯 번째 줄에 하얀 마스크 쓰신 관객분.”
당황한 티가 역력히 묻어나는 그를 지목한 예은은 왠지 피어나는 미소로 마저 물었다.
“혹시 영화에 대해서 따로 말씀해주실 것 없을까요?”
설마.
“딱히 없으시면 감상평이라도······.”
그 마스크 사이로 비치는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린 옆자리 여성 관객.
“꺄, 꺄아악!”
먼저 그 정체를 확인한 그녀가 놀라움의 비명을 지를 줄은 꿈에도 모르고.
* * *
역시나 기존에도 관객수 400만은 도달했던 은 별점도 나쁘지 않았던 작품답게 즐거운 감상을 주었다.
중간에 쓰고 온 마스크가 답답해 벗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어두운 상영관 내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이라곤 없을 테니까.
‘하아, 오랜만에 영화 보니까 좋네.’
그렇게 막 상영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따라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봐 버릇할까 싶던 참.
“아-아, 안녕하세요! 어어, 여러분! 지금 나가시면 후회하실 건데요?”
갑자기 나타난 MC가 출연배우들의 깜짝 방문을 예고하고 바로 그들이 들이닥친 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난데없이 곤란한 자리에 껴버린 나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필이면 지금?
그래도 일단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다행이지.
특별히 주목받지 않는 한 정체가 밝혀질 일은 없을 테니까.
딱히 튀는 짓도 하지 않았고 굳이 마이크를 건네받지도 않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질문 타임 동안 손 한 번 들지 않고 완벽히 투명인간으로 지나가길.
‘이제 끝난 건가?’
슬슬 막바지를 향해가나 싶던 와중이었다.
마지막 질문을 받은 탓에 마이크를 쥐고 있던 여배우.
어찌 보면 이 의 가장 큰 수혜자로서 스타가 될 운명을 타고난 그녀.
“저기.”
권예은이 꼿꼿이 나를 가리킨 건.
“다섯 번째 줄에 하얀 마스크 쓰신 관객분.”
솔직히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은근히 시선이 맞부딪히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냥 기분 탓이려니 했거든.
“혹시 영화에 대해서 따로 말씀해주실 것 없을까요?”
그게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 끝마친 질문에 다른 관객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바로 옆자리 여성 관객의 시선도.
“딱히 없으시면 감상평이라도······.”
“꺄, 꺄아악!”
정확히 그때였다.
오른쪽에서 비명을 지른 여성이 부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길.
“마, 맞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거리기 시작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이신우 배우님···.”
그건 아주 작은 한 마디였다.
마이크도 들지 않고 놀라움에 젖어 그저 중얼거린 한 마디.
“맞으시죠? 이신우 배우님!”
허나 그 한 마디는 자리에 있는 모두의 귓가를 세차게 두들겼다.
‘···이건 좀, 곤란한데.’
별안간.
느슨했던 상영관 안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