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69)
169막, 뿌리깊은 오해 (3)
169막, 뿌리깊은 오해 (3)
금강 그룹의 부회장.
이신형의 입원 소식은 하룻밤 만에 뉴스란을 도배하며 대서특필되었다.
마침 청문회가 맞물려있었던지라 그룹 차원에서도 숨기기는 애매했던 상황.
다행히 원인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판별되었다.
무당이 아닌 의사로서는 자세한 속내를 꿰뚫을 수 없었으니.
정작 이신형의 머릿속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건 막냇동생에 대한 상념이었다.
그 상념을 깨고 누군가 입원실로 찾아왔다.
“형, 어쩌다 쓰러진 거야 대체?”
입꼬리를 살랑거리며 나타난 이는 계열사 중 물산 쪽을 받아낸 셋째 이현수였다.
“아무리 회사 일이 중요해도 그렇지. 몸 관리도 잘해야 할 거 아냐?”
침통한 눈길, 걱정스러운 어조와는 달리 살랑대는 입꼬리.
“···아버지한테 어떻게 따낸 부회장 자리인데.”
후계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다툰 건 이신형과 이현수 두 사람의 몫이었다.
가장 먼저 탈락한 이신우 다음으로 멀리 떨어진 이는 이연희였다.
덕분에 이신형 자신의 부회장 발표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한 건 셋째 이현수였고.
“그럼 몸조리 잘하고 형. 조만간 회사에서 봐? 괜히 꾸물대다간 임원진들 시선도 곱지 않아질 테니까.”
병문안을 핑계로 눈에 선히 보이는 경고를 남기고 떠난 이현수.
“후우···.”
차츰 짙어지려는 두통을 다스리는 이신형이었지만 객(客)은 끊이지 않았다.
이철호 회장을 대신해 나타난 비서실장은 건조한 눈길로 안부를 건넸다.
회장님께서 많이 걱정하셨다.
몸조리 잘한 다음 잘 털고 일어서라.
그닥 와닿지 않는 말이었지만 성실히 고개를 끄덕인 이신형은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익숙한 여인이 서있었다.
“아, 일어났어? 간만에 자고 있다길래 일부러 내비뒀는데.”
멀어진 후계 서열만큼, 꽤 오래 전부터 무난한 관계를 지켜온 이연희였다.
아마 그런 이연희이기에 입원실 앞에 대기 중인 비서도 들여보낸 모양.
허나 이신형의 입에서 꺼내어진 건 축객령이었다.
“···나가라.”
“응?”
그녀를 보자면 또 다시 연상되는 얼굴이 있었으니까.
한편 고개를 갸웃거린 이연희는 못 들은 척하며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참, 오빠 봤어? 우리 카드사 다음 광고 모델이 누군지.”
“···.”
“봤구나?”
그 가운데 꺼내어진 주제는 묵묵히 듣고 있던 이신형의 눈썹을 움찔거리게 했다.
동시에 침상 근처에서 슬그머니 일어서는 이연희.
“내가 부탁했어. 좀 해주면 어떻겠냐고.”
곧 넓은 입원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한 이연희는 넌지시 덧붙였다.
“흔쾌히 해주더라. 생각에도 없던 인터뷰까지 먼저 제안해주면서······.”
그리고 이내 창가 쪽에 다가간 이연희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광고 모델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드사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죠?
노골적인 질문을 첫 마디로 한 인터뷰를 직접 요청한 이신우는 가감없이 밝혔다.
누나 이연희와 관계는 물론 다른 형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까지.
「음, 솔직히 다들 아시다시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맞죠. 근데 어디까지나 옛날 일이잖아요?」
이신우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거리낌 없이 비추었다.
「많은 분들이 신경써주시는 것만큼 특별한 감정은 없어요 이제」
마침 칸에서의 수상은 물론 드라마 방영까지 앞둔 채 이신우에게 모아지던 관심.
「그냥······」
그러한 관심은 일말의 진심을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네요. 저나 형누나들이나(웃음)」
덕분에 원래라면 청문회를 앞두고 쓰러진 이신형에게 쏟아졌을 비난의 수위는 조금이나마 수그러들었다.
꾀병.
혹은 청문회를 미루기 위한 회피용 입원 아니냐는 의혹들은 여전했지만.
“오빤 어떨지 모르겠는데 난 이제 그냥 좋을 대로 생각하려고.”
그 즈음이었다.
슬쩍 창가에서 몸을 돌린 이연희가 제 친오빠를 빤히 바라본 건.
“사실 작년에 우리 다 같이 봤잖아?”
작년 크리스마스.
“신우 저 녀석, 정말 아무 욕심도 없었다는 거.”
아버지가 공개적으로 내건 지분을 아무렇지 않게 토막내어 모두에게 뿌린 일을 언급하면서.
* * *
오래도록 부정해왔다.
착각이 아니라고.
오해일 리 없다고.
긴 시간 마음속에 뿌리내린 감정은 그렇게 거목처럼 자라있었다.
「무슨 생각인 거냐?」
그러한 거목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신우의 한 마디부터였다.
「무슨 생각으로 지금 그 짓거릴 하고 있는 거냐고」
퇴원 후 기이한 행보를 보이는 막내 녀석을 향한 물음.
경계심이 가득 담긴 물음은 멈추지 않았다.
「유명해진 다음 폭로라도 할 생각이냐? 막상 눈을 뜨고 보니 혼자 죽기엔 억울했나보지?」
허나.
「······지금 웃는 거냐?」
입가를 피식인 이신우는 능청스레 중얼거릴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형 얼굴이라 그런가, 어째 좀 반가워서」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목은 천천히 기울어져갔다.
아주 천천히.
천만 영화.
크리스마스를 지나.
이연희가 떠나간 뒤로도 한동안 어지러웠던 이신형의 머릿속.
그 두통은 한순간에 잠재워질 수 있었다.
“···네가 여긴 왜.”
이신우.
자신의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막내를 쳐다보며.
“몸은 좀 괜찮아?”
“···.”
가장 먼저 찾아온 셋째 녀석처럼 입가를 피식이는 막내였다.
허나 그 미소 안에 담긴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난 또 쓰러졌다길래 큰일난 줄 알았잖아.”
능청스러우면서도 안도가 섞인 한숨을 내쉰 이신우는 천천히 다가왔다.
“누나가 알려줬어. 이쪽으로 오면 된다고.”
달그락.
침상 바로 옆까지 다가온 이신우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박스를 내려놓길.
병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이 움직였다.
“풋, 부회장님 병문안 선물치곤 너무 초라한가? 급하게 온 거니까 이해 좀 해줘.”
속 편하게 중얼거린 이신우는 대충 침상 곁에 몸을 기댔다.
눈살을 찌푸린 이신형은 그제야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바라는 거냐?”
이어서 이신우의 입가에서도 연한 미소가 차츰 지워지길.
그런 막내를 응시하며 거칠게 쏘아붙였다.
“어떻게든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고, 네게 바짝 엎드려 미안하다고 비는 모습을 보는 게···.”
으득.
“그게 네가 결심한 복수인 거냐?”
물꼬를 튼 말은 거침없이 쏟아져 내렸다.
희석되다 만 부정적인 감정들이 답답함과 함께 흘러내렸다.
깊게 자리했던 의문은 의심이 되었고 의심은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그게 가장 상식적인 가정일 테니까. 그래야만 말이 될 테니까.
그래야만 자신이 막내에게 행했던 일들이 정당해질 테니까.
“음, 아닌데?”
“···뭐?”
허나 입꼬리를 간지럽힌 막내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공허한 되물음이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비록 입 밖으로 꺼내어지진 못했지만.
“그냥 괜찮나 보고 싶기도 했고··· 이 말도 전하려고 왔어. 인터뷰 본 거지?”
얼어붙은 이신형의 입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미안해.”
“···.”
단 한 마디조차도.
“미리 해명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고.”
꿈쩍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이신형을 대신해 이신우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뉴스 볼 때마다 자꾸 신경쓰였거든. 형이고 누나고, 이제 다 지난 일인데 괜히 나랑 관련지어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거 말야.”
손가락질이란 것도 사실은 상당히 순화된 표현이었다.
신인배우의 행보가 찬사를 받을수록 반대급부인 세 남매를 향한 비난은 지속적으로 심해져갔으니까.
거기엔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만한 말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던 건 이신우의 솔직한 마음이었고.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은 딱히 안 해도 돼. 내가 편하자고 벌인 일이니까.”
제멋대로 중얼거리는 막내를 보며 이신형은 목구멍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그러지 않고선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왜···.”
부르르 떨리는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피가 나도록.
“넌 왜···.”
죽였다.
스스로를 죽였다.
『야밤에 고속도로 질주한 G그룹 막내 사망? 음주운전 의혹 확인중······』
막내가 스스로를 죽였다.
아니, 스스로 죽이게끔 내몰았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자살 시도한 G그룹 막내아들, 감춰져있던 재벌가 암투 수면 위로 드러나나』
그리고 막내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에게 잘못이란 단 한 줌도 없었음을.
해서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울 만한 최악의 방법이었다.
그랬던 막내가 다시금 눈을 뜨게 된 그 날부터였다.
억누른 기억이.
외면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건.
근데 왜.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어째서.”
죽도록 미울 텐데.
죽도록 저주스러울 텐데.
아무런 앙금도 내비치지 않는 거냐?
목구멍까지 꺼내어진 말이 나오지 못하고 연신 꿈틀거리길.
그 속내를 어렴풋이 읽어낸 이신우는 마른 미소로 화답했다.
“···우리 사이가 좀 나빴던 건 맞지만. 어쩌겠어?”
헛웃음이 지어졌다.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봐야지.”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을 만큼 괴로웠을 녀석이.
상처입다 못해 속이 썩어문드러졌을 녀석이.
“피는 반쪽짜리더라도 반쪽짜리 형제는 내가 유일하잖아, 안 그래?”
피식.
어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
“···.”
굳게 닫힌 입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못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 끝에서야 이신형의 목젖은 움찔거렸다.
“미안하단 말은 못하겠다.”
긴 한숨처럼 내쉰 말은 한동안 도돌이표를 돌다 다시 이어졌다.
“고맙다.”
오래도록 묵은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처럼.
“용서해줘서.”
중얼거리는 이신형의 입은 닫힐 틈 없이 연거푸 벌어졌다.
“네게 저질렀던 일과 너를 괴롭혔을 일 모두···.”
문득 되뇌어졌다.
지난 과오가.
아무리 지난 일이라 해도 그저 없던 일로 칠 수는 없는 과오들이.
“그러니까.”
꿀꺽.
마지막 남은 응어리까지 토해낸 이신형은 그제야 삼켰다.
“언젠가······.”
억지로 외면하고 있던 죄책감을 삼켜냈다. 그리고 고했다.
“그걸 다 없던 일로 칠 수 있을 만큼 내가 뻔뻔해졌을 때.”
여태 외면해왔기에 아직은 품에 안고 있어야 할 죄책감.
“네게 꼭 사과하마.”
그 죄책감이 제 책임을 다할 그 날.
뒤늦은 사과를 전하겠노라고.
* * *
한바탕 파도가 지나간 뒤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 병실.
어느새 자취를 감춘 해를 대신해 은은한 달빛만이 창가로 스며들어오는 가운데였다.
끼이익.
마지막 객(客)이 찾아온 건.
“···아버지?”
막내와의 일로 지친 몸을 뉘이던 이신형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병실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선 이철호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침상 곁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몸은 괜찮으냐?”
그와 동시에 긴장을 머금고 있던 이신형도 즉답을 꺼냈다.
“···그냥 잠깐 피곤했을 뿐입니다, 회복되는 대로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아직 링거 바늘조차 뽑지 못한 몸을 억지로 기울이며 확언하는 이신형.
그런 첫째의 모습에 이철호 회장은 묵묵히 눈을 감았다.
“신우 녀석이 다녀갔다지.”
“···!”
일순간 움찔거린 이신형은 티내지 않고 바로 말을 받았다.
“예, 낮에 다녀갔습니다.”
그런 장남의 반응을 읽었는지 못 읽었는지 이철호 회장은 나직이 말을 골랐다.
‘화해를 종용하려 하시는구나.’
아마 낮에 있던 소란은 비서관의 귀를 통해 아버지인 이철호 회장에게 닿았을 터였다.
그걸 듣고 나타나신 거겠지.
언제나처럼 네가 이해해라, 장남으로서 동생을 품어주어라 같은 말을 전하러.
허나 예상은 그대로 빗나갔다.
“무리하지 말거라.”
“···네? 무어라고 하셨···.”
단지 그뿐이었다.
이철호 회장이 막내의 이야기를 꺼낸 건.
“신형이 너는 내가 왜 네게 부회장 직을 맡겼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
오히려 정반대의 질문을 건네는 이철호 회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이신형은 생각을 골랐다.
그리고 이내 오전에 왔던 셋째 동생의 말이 기억에 스쳤다.
『···아버지한테 어떻게 따낸 부회장 자리인데』
그 시간이 길어지던 찰나, 이신형은 슬며시 답을 내밀었다.
“제가 장남이라서입니까?”
“아니다.”
“그럼 셋 중 실적이 가장 좋았어서입니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오답의 행진에 자연스레 한 꺼풀이 꺾인 즈음이었다.
“신형이 너를 믿고 있어서다.”
그 말과 함께 움찔거린 이신형의 눈동자.
그 너머로는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부담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서투르나마 따스한 마음을 드러내는 아버지가.
“네가 회사만 바라보고 살지 않더라도, 고작 며칠 쉬는 것 정도로 너에 대한 믿음이 동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막내아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어느 정도 청산한 이철호 회장이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 중 산턱 하나를 넘어보려는 이철호 회장은 연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다짐해보였다.
‘···너를 비롯해 연희와 현수에게도 꼭 사과하마.’
못난 아비라 미안하다고.
내 모자람으로 인해 너희를 힘들게 하였다고.
막내 녀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 * *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은 방영 날짜만을 기다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신인여배우 홍예린의 소속사 계약 체결과 그 외 자잘한 인터뷰와 광고들.
어느새 폭발적으로 치솟던 대중들의 관심도 방영 날짜가 다가오자 더 큰 폭발을 연쇄로 맞이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온 가정의 리모컨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이신우.
드디어 그의 첫 번째 주연 드라마가 방영을 막 앞둔 1분 전.
KBC 드라마국 내부.
모니터링되는 화면만을 쳐다보는 관계자들의 낯빛은 침도 삼키지 못한 채 점점 창백해져갔다.
그 창백함이 극에 달한 건 마지막 광고가 끝난 직후였다.
오프닝이 막 시작되는 그 순간.
겨우 한 시간.
단 한 시간 만이었다.
차지윤의 전작인 이 기록했던 첫 회 시청률 12프로.
그보다도 한참 높은 숫자.
“시, 십팔?”
“헛 것 아니지? 저거, 어?”
“됐다! 됐어어어어!”
“우와아아아!”
꼭 축제라도 맞이한 듯한 누군가의 환호처럼.
18퍼센트.
미친 기록을 첫 회 만에 세운 드라마는 인정사정없이 휩쓸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온 거실과 안방을 철저히 접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