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원래 하던대로 해야지
한성훈의 말을 들은 임현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치킨 게임입니다. 최대한 많은 물량을 빨리 생산해 싼값에 뿌리는 것. 그러면 새로운 제품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지금보다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임현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경쟁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를 단순히 제품의 질로 찍어 누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정보로,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권력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왔기에 지금의 힘과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동방수를 상대로는 대부분의 전력이 막혔다.
권력으론 대통령 라강철을 등에 업고 있었고, 제품의 질로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점유율 우위와 현금 싸움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동방수가 현금이 많다고 알려지긴 했으나, 그래 봤자 개인으로 움직이니 오성을 이길 순 없을 것이었다.
임현우의 판단이 내려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성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의미 없는 자충수인지도 모른 채.
* * *
서운영은 DBS 인베스트먼트를 맡은 이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하루가 다르게 회사의 자산은 늘어나고, 규모는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온전히 서운영의 공은 아니었다.
대부분 동방수에게 받은 정보를 제대로 활용했을 뿐.
비록 그 스스로가 쌓아 올린 것은 없으나, 시키는 것을 제대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동방수의 정보를 통해 투자를 진행하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매매 패턴을 보여 줄 때가 있었다.
서운영과 같은 뛰어난 인재에게는 이런 순간이 늘 고비였다.
그렇다고 동방수의 뜻을 거부하진 않았다.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언제나 명령을 제대로 이행했다.
그 덕분에 DBS 인베스트먼트는 한국에서 손꼽는 영향력을 과시하는 괴물 같은 투자사가 되었다.
물론 단기간에 덩치가 커지다 보니 귀찮은 일도 많이 생겼다.
정치인들이 돈을 요구한다거나 강제로 투자금을 맡기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서운영은 동방수를 믿고 단호하게 거절해 왔다.
이렇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키워 낸 DBS 인베스먼트.
이제 이 회사의 중추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달 수익은 어떻지?”
“말해 뭐 하겠어. 이번 달도 미쳤다, 미쳤어.”
“이렇게 투자가 쉬울 줄은 몰랐다.”
서운영을 따라 DBS로 들어온 중추들 또한 그 기쁨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선택을 한 것은 인생 최고의 판단이었다.
만약 서운영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이런 성취감을 얻었겠는가.
“진짜 동방수 사장님은 정체가 뭐냐?”
“그러니까. 천재도 정도가 있지.”
“형님에 관한 건 생각하지 마. 그래 봐야 자괴감밖에 더 들겠냐?”
“크크. 그래도 운영이 덕에 우리도 자산이 많이 늘었다.”
“그러니까. 오성에 있을 땐 할당량 채우느라 바빴는데, 여기선 투자금들을 싸 들고 달려드니.”
회의를 명분으로 모였으나 실제로는 오랫동안 동방수에 대한 찬양과 자축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할 일이 실질적으로 많지가 않았다.
동방수가 건네준 정보를 살펴보고, 그 정보에 따라 사고팔기만 반복해도 다른 펀드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익을 얻는다.
그 수익을 가지고 강소기업들을 하나둘씩 먹다 보니 50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지닌 회사만 해도 100여 개가 넘은 상태였다.
“야, 이러다가 진짜 한국을 통째로 먹는 거 아니냐?”
“못 할 것도 없지.”
마치 땅따먹기하듯 상장된 좋은 기업들을 먹어 가는 중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네 명이었던 직원은 어느새 30여 명으로 늘었고, 자산의 규모 또한 수십 배 늘었다.
덕분에 직원들의 사기는 드높았고, 하루하루 성장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회의를 빙자한 티 타임은 한참을 더 이어졌다.
그러다 업무 시간이 되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좋네. 좋아.”
혼자 남은 서운영은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성공의 여운을 즐겼다.
그런 서운영의 마음에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들어찼다.
“다 좋은데, 좀 그렇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는 듯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연애 사업.
돈은 죽을 때까지 써도 못 쓸 만큼 많아졌고, 자신에게 굽신대는 사람도 늘었으나 한쪽 가슴이 텅 빈 듯 공허했다.
“하아, 세연이는 잘 사나?”
문득, 아니 꽤나 자주 최세연이 떠올랐다.
최세연이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과외를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선생과 제자 사이라곤 하지만 막상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자 그 좋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멍청하긴 멍청했네.”
최광태와 최세연의 기대와 호의를 가난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의 서운영이라면 최광태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충분히 최세연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냥 연락해 보지 뭐.”
서운영은 오랜만에 최광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최광태는 오늘도 하릴없이 매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워낙 외진 곳에 있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전자 상가까지 방문해 컴퓨터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놈은 잘 지내나 모르겠네.”
아들처럼 아꼈지만, 끝내 떠났다가 몇 년 만에 나타나 컴퓨터 한 대를 사 들고 간 서운영이었다.
그 후로 종종 연락이 오긴 했지만, 최근엔 바쁜지 꽤나 오랫동안 문자 한 통 없었다.
양반은 못 되는 걸까?
때마침 서운영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삼촌! 저 운영이요!
“아! 바빠서 삼촌한테 문자 보낼 시간도 없다는 그 친구?”
– 에이, 또 왜 그러세요.
“큼큼. 무슨 일이냐?”
몇 달이나 연락이 없던지라 조금은 서운해하던 차였다.
– 죄송해요, 삼촌. 요즘 조금 바빴거든요.
“뭐? 투자인지 뭔지 하는 거 때문에 말이냐?”
– 네. 회사 운영이 쉽지가 않네요.
아니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주어진 매뉴얼대로 사고팔기만 하면 되었고, 그럴 때마다 돈이 복사가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게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바쁜 놈이 무슨 일로 연락을 다 했냐?”
– 저, 삼촌. 혹시……. 세연이는 잘 지내나요?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삶에 방해가 될까 봐서.
그런 서운영의 마음을 알았을까?
최광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세연이? 갑자기 세연이는 왜? 보고 싶기라도 해?”
– 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연락이긴 했으나 기꺼웠다.
조금 비실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느 모로 보나 뛰어난 서운영이 아니던가.
그런 서운영에게라면 언제든 본인의 조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짜식. 솔직하지 못하긴. 내가 세연이에게 연락 넣어 보고, 다시 연락 주마.”
– 감사합니다. 삼촌! 조만간 찾아뵐게요!
“오냐. 죽기 전에만 찾아와다오.”
뚝!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최광태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 *
막상 연락을 넣고 나자 마음이 초조한 서운영.
혹시 자신을 잊지는 않았을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못하며 최광태의 전화를 기다렸다.
안 좋은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인가?
최광태는 힘없는 말투로 최세연의 소식을 전했다.
최세연이 지금 일을 하고 있고, 거기서 한 남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그리고 그 남자의 이름이 이상규라는 정보였다.
– 확실하진 않으니까 너무 실망하진 말고.
“알겠습니다. 삼촌. 감사해요!”
– 그래, 진짜 조만간 보면 좋겠다.
뚝!
소식을 접한 서운영은 전화를 들었다.
* * *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동방수는 갑작스러운 서운영의 전화를 기분 좋게 받았다.
“운영이 네가 웬일이냐? 전화를 다 주고.”
– 혀… 형님. 혹시 정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갑자기 무슨 정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정보 요청을 한 적이 없던 서운영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묻는다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 개인적인 부탁이긴 한데, 오성 증권의 이상규라고. 이놈의 사생활에 대해 좀 알아봐 주세요.
“이상규? 그놈 네 사수였다고 하지 않았어?”
– 그렇긴 한데, 요즘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서운영이 오성 증권에서 일할 때 마지막에 죄를 뒤집어씌웠던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않은 상황에 다시 거론된 것이었다.
“알았다. 최대한 빨리 알려 줄게.”
– 네, 감사합니다. 형님. 자세한 얘기는 따로 말씀드릴게요.
“오냐.”
뚝!
서운영이 자세한 얘기를 미뤘지만, 동방수는 그때까지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그의 옆엔 최고의 인공 지능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예원아. 무슨 일이래?”
“서운영이 최근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러다 외롭다고 느꼈는지 최세연이 생각났던 모양이에요.”
“최세연? 그게 누군데?”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고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동방수다운 대답이었다.
황예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최광태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에는 춘래가 만들어지기 전이었으나 그 정도 정보는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최광태 아저씨의 조카였고. 그 여자분이 운영이와 섬싱이 있었다?”
“그렇죠. 그리고 최세연이 지금은 오성 증권에서 일하는 중이고, 이상규란 인간이 추근덕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왜 운영이가 정보를 요청한 거지?”
“아마 너만 행복하다면 괜찮다, 사랑하니까 보내 준다. 그런 개소리를 하려는 게 아닐까요?”
동방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면 어떻게든 잡아서 행복하게 해 줄 생각을 해야지, 보내 준다니.
더군다나 이상규라면 치를 떠는 서운영이 아니던가.
“진짜 개소리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닌데 말이야.”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원래 하던 대로 해야지. 문제가 될 만한 정보를 싹 끌어모으고, 최세연과 어떤 관계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까지 제대로 분석해 봐. 이번 기회에 운영이에게 복수할 기회를 줘야지.”
“알았어요. 오빠.”
황예원이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 * *
이상규는 자신에게 보고하러 온 여직원을 유심히 쳐다봤다.
대놓고 보는 시선이 불쾌한지 그 직원은 슬쩍 눈을 돌렸다.
‘진짜 깔쌈하네. 크크크.’
입사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최세연은 입사할 때부터 부서 남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오성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명문대란 타이틀은 의미가 없었다.
다만 그 외모가 예사롭지 않았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에서도 느껴지는 미모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차장님?”
“흠흠. 거기 두고 가. 내가 시간 날 때 확인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지?”
“네?”
“상사가 얘기하면 알아들어야지 뭘 또 되물어. 오늘 저녁에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가볍게 한잔하자고.”
“오늘은 삼촌이랑…….”
“삼촌 핑계는 그만 대고. 삼촌이 회사 생활 대신해 줄 거 아니잖아! 세연 씨는 다 좋은데, 그렇게 상사 말을 무시하는 게 문제야.”
최세연은 어금니를 깨물고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벌써 몇 번째 만남인지 모른다.
업무에 관련된 얘기라고 해서 나가 보면 온갖 쓸데없는 얘기뿐이었다.
‘하아. 그냥 관둬야 하나?’
사실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삼촌이지만 아빠 같은 최광태는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였고, 힘들면 언제든지 관두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어디 최광태에게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많은 직장 중 이곳 오성 증권을 택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회사에 비해 더욱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최광태가 많은 돈을 벌어 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키워 준 은혜는 갚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술은 마시지 말아야지.’
괜한 구설수만큼은 피하고 싶은 최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