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너도 참 어지간하다
동방수는 격투기 카페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길고 길게 쓰여 있긴 했지만, 결국은 체급에 안 맞는 괴물이 등장했고 그 괴물이 격투계를 씹어 먹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무슨 어그로인가 했는데……. 진짜네.] [미친. 무슨 금강불괴냐? 니 킥을 몇 대 처맞았는데, 피 한 방울 안 나오냐?]└ 피가 문제가 아니라 땀도 안 난다.
[근데 이 새끼 좀 돌아이 같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너무 막 하는 것 같고.]└ 선배가 선배 같지 않았나 보지!
[ㅇㅇ 진심 돌아이인 줄. 그런데 그냥 돌아이는 아니고 완전 센 돌아이.]└ 이건 완전 인정이지. 어떻게 저따구로 세냐?
[황필현이도 괴물이라고 난린데 솔직히 완전 가지고 놀지 않았냐?]└ 황필현이가 괴물이면 동방수는 우주인이지.
[가지고 놀긴 했지. 한국도 이제 제대로 된 챔피언 한 명 생길 듯.] [스물셋에 격투 경험 없다는데 이러는 건 조금 심하긴 하더라.]└ 딱 봐도 구라인 거 아니겠냐? 어떻게 격투기 한번 못 해 봤다는 놈이 그렇게 치냐? 몸은 또 어떻고.
[그나저나 황필현은 약쟁이가 맞겠지? 그냥 어그로인가?]└ 노노. 내용 보니 다 일리가 있어. 신체 능력도 말도 안 되게 좋아지긴 했고.
└ 그런데 동방수가 약쟁이 아니냐? 그런 놈을 발랐으니?
└ 이 새끼, 최소 경기 못 봤네.
└ 황필현이 못한 게 아니야. 동방수가 개잘한 거지.
[어찌 됐든 조만간 챔피언 되긴 할 듯.]└ 이건 무조건 인정이지.
“그래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없진 않네. 흐흐. 그나저나 파이트머니는 얼마지?”
동방수가 격투기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어찌 됐든 파이트머니였다.
별다른 귀찮음 없이 몇 분만 고생하면 목돈을 주니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돈 천만 원 정도만 들어오면 그럭저럭 시작할 만할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서 종잣돈이 꼭 필요했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속해서 일하기엔 동방수의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차에 얻게 된 파이트머니.
격투기로 생기는 종잣돈과 시간만 있다면 앞으로 돈을 불리는 것엔 충분한 자신이 있었다.
‘배운 대로 되기만 하면 끝이지. 흐흐흐.’
엄청난 부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처리하려면 어느 정도 돈은 필요할 것 같았다.
우우우웅!
그때 마침 진상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상태: 파이트머니 입금됐다. 확인해 보고 문제 있으면 연락을 줘라. 혹시라도 몸 상태 안 좋아도 연락해 주고.]동방수의 재능을 알아보기도 했고, 상황상 급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었다.
일반적으로 7 대 3 정도로 계약하는 데 비해, 동방수는 무려 9 대 1.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격투 초보인 동방수에게 과한 부담을 준 것에 대한 진상태의 미안함 때문이었다.
입금된 돈은 약 1,700만 원이었다.
본래 파이트머니가 김문철에게 맞춰졌기에 1천만 원이었고. 승리 수당 500만 원에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로 선정이 돼 추가로 500만 원을 받았다.
총 2,000만 원이었지만, 체육관 쪽에서 가져갈 것은 가져가고, 세금까지 내고 나니 이 정도만 입금이 된 것이었다.
“생각보다 작긴 한데, 알바치곤 괜찮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 120만 원을 받던 놈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허세였다.
“돈이 들어왔으니 슬슬 계획대로 해 볼까나?”
첫 단추를 낀 동방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지수정은 오늘도 변함없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삑삑!
“3권 대출 확인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꾸벅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젊은 남성.
“후우.”
“수정 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는 지수정을 보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주임님. 그냥. 헤헤.”
“인생 뭐 있어? 그냥 지금처럼 편하게 살면 되지. 나 때는 말이야.”
조그마한 틈만 보여도 방언 터지듯 쏟아지는 라떼 신공.
평소라면 표정 관리를 할 텐데 오늘은 그것마저 들어 주기 힘들었다.
“주임님. 저 책 좀 정리하고 올게요. 많이 쌓였어요. 헤헤.”
적당히 말을 돌린 지수정은 카트를 끌고 책장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아직도 말이 부족했는지 아쉬워하는 주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칫! 무슨 그런 남자가 다 있냐?’
매일같이 도서관을 찾아오던 그 남자는 그날 이후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아직 반납하지 않은 책이 있다는 정도일까?
‘872.3 나-45. 어디냐?’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일하지 않을 순 없었다.
‘아오! 왜 이렇게 높아?’
가장 위 서가에 꽂아야 했기에 발뒤꿈치를 들며 손을 뻗었다.
그 바람에 티가 살짝 올라가 뽀얀 살이 드러났지만, 흔한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지수정의 손에 있는 책을 밀어 넣어 주었다.
“읍!”
갑작스러운 등장에 지수정은 입을 막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턱!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위쪽을 보니.
‘어머!!’
조금 전까지도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던 바로 그 남자, 동방수가 눈앞에 있었다.
반가움과 동시에 등으로 탄탄한 동방수의 복근이 느껴졌다.
‘자꾸 왜 이러지?’
어제 보았던 동방수의 상탈한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 맞죠.”
끄덕끄덕!
“책 반납하러 왔어요.”
끄덕끄덕!
“혹시 어제 저 보고 싶어서 왔어요?”
지수정은 동방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얼굴을 붉힐 따름이었다.
때마침 그녀의 민망함을 달래 주려는지 동방수의 폰이 울렸다.
“흐음. 중요한 전화네요. 이거 반납 부탁할게요.”
동방수는 지수정에게 두 권의 책을 건넨 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 이게 뭐지?’
지수정은 동방수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오늘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전화라도 한번 걸어 볼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서의 권한으로 전화번호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태 솔로로 살아온 지수정에게 그런 용기 따위는 없었다.
어찌나 허탈한지 그 좋아하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환상처럼 나타나 신기루처럼 사라진 남자 동방수.
그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와 보니 다행히 잔소리하는 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칫! 직접 반납할 것이지 왜 이런 건 남겼대.’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그 남자와의 끈이었기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잠시 그 남자가 반납한 책을 바라보던 지수정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책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은 담백했다.
하지만 지수정의 심장은 거침없이 나대고 있었다.
* * *
아버지의 전화를 끊은 박현지는 손톱을 쥐어뜯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또다시 질책이었다.
요즘 들어 아버지로부터 오는 전화의 빈도가 더 잦아졌다.
언제까지 동방수를 처리할 거냐고.
간신히 사정한 끝에 6개월이란 유예 기간을 얻긴 했으나 그 안에 처리한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당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동방수를 처리했던 김주곤은 어디로 갔는지 연락도 되지 않았고.
조금은 믿고 있던 황필현마저 어이없이 동방수에게 맞고는 도핑이다 뭐다 궁지에 몰려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차라리 그날 제대로 처리하는 게 나았던 것은 아닐까.
아예 모른 척 죽어 가게 둘걸.
온갖 후회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가스라이팅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는데.
동방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더욱 짜증 나는 것은 이 와중에도 동방수의 얼굴과 몸이 계속해서 떠오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띵똥!
전혀 기다리지 않던 택배가 도착했다.
‘이건 뭐지?’
발신인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황급히 포장을 뜯어 보니 작은 USB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박현지는 컴퓨터를 켜고 USB에 들어 있는 파일을 실행해 보았다.
– 무… 물론 그냥 져 달라는 건 아니야. 만약 네가 깔끔하게 져 주기만 하면 10억을 줄게. 너 돈 많이 필요하잖아. 집도 힘들고. 맞지? 네가 어떻게 2억이란 돈을 마련했는진 몰라도 아마 돈이 많이 필요할 거야. 이번 경기 이겨 봐야 1천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면서. 세금 떼고 병원비 하면 얼마 안 되잖아? 그러니까 이거 받고 그냥 져 줘. 응? 나를 봐서라도.
“이… 이게 뭐야?”
자신이 동방수에게 시합 전에 제안했던 내용들이었다.
분명 그곳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녹음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동방수라는 말이 된다.
“마… 말도 안 돼.”
당시 제대로 옷도 갖춰 입지 않았던 동방수가 어떻게 이것을 녹음했단 말인가?
이렇게 녹음한 목적이 뭔지 알 순 없었지만, 이 내용이 유출돼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경기에서 이긴 것은 동방수이지 않은가.
“전화. 전화해야 해.”
박현지는 정신없이 전화를 찾아 동방수에게 연락했다.
자신을 피하는지 동방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 받으라고!”
조금씩 정신이 나가고 있는 박현지였다.
* * *
[돌은 년]‘이제 전달이 됐나?’
정신 나간 여자에게 예상대로 연락이 왔지만, 통화가 그리 급한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서 있는 지수정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기다리기는 해 봐야지.’
번호가 적힌 쪽지와 책을 전달하고는 전화를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바로 대화를 이어 가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아직 시간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지수정이 조금 마음에 들긴 하나 약간의 호감 정도였고, 무엇보다 지수정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거절하는 여자 때문에 에너지 낭비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미지수인 지수정은 잠시 뒤로 제쳐 놓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집중했다.
‘일단은 돈부터 벌어야지.’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대부분의 일들이 해결될 것이다.
물론 동방수쯤 되는 능력이라면 그것 외에도 힘을 발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나선미를 크게 걱정시키면서까지 일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우우우우웅!
도서관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다시 한번 전화가 울렸다.
“너도 참 어지간하다.”
동방수는 못 이긴 척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야! 동방수! 너 이거 뭐야?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 네? 도… 동방수 씨 아니세요?
“도… 동방수 씨 아닙니다.”
– 죄… 죄송합니다.
박현지에게 돌은 년이라고 하지만, 실상 만만치 않게 돌아이 짓을 즐기는 동방수였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
– 야! 동방수! 왜 장난치고 지랄이야! 지랄이!
“어디다 대고 지랄이라고 하냐. 내가 도… 동방수는 아니잖냐. 그냥 동방수지.”
어쭙잖은 말장난이었지만, 무간계에서 긴 세월을 보낸 동방수에게는 이조차도 즐거운 유희였다.
–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박현지가 답지 않게 흥분부터 했다.
“넌 나한테 왜 그랬는데? 그냥 뿌린 대로 받는 거야. 그래도 난 직접적인 위해는 안 끼쳤잖아.”
– 따귀 때린 건? 그건 기억 안 나?
“따귀랑 칼침이랑 같냐? 진짜 제대로 돌아이네. 아무튼 한 번 더 짜증 나게 하면, USB에 있는 것 말고도 이것저것 다 퍼뜨릴 테니까 조용히 살아라, 알았지?”
– 너… 너…….
“진짜 너 만나서 더러웠으니까 조용히 살자. 끊는다. 다신 안 받을 테니까 연락하지 말고.”
할 말을 마친 동방수는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쯧쯧, 아주 지랄발광하는 게 보인다. 보여.”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