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59
59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요?
경찰서는 언제나 조용한 듯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특히 무슨 놈의 범죄자가 그리 많은지 형사과에서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막내야, 그놈 왔냐?”
“그놈이라고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 누구냐. 차예리? 걔 성추행했다는 애.”
“아, 걔요. 이제 곧 온다던데요.”
“어떤 거 같냐?”
“아, 형님. 오늘따라 앞뒤 다 자르고 말씀하시네. 뭔가요?”
바쁜데 와서 계속 말을 거니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예리와 관련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었다.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그놈이 진짜 그랬을 것 같냐고!”
“그거야 뭐, 조서를 받아 봐야 알죠.”
김서홍은 귀찮은 듯 최 경사의 말을 받았다.
“쯧쯧, 형사라는 놈이. 무슨 감이라도 있을 것 아니냐.”
“차예리쯤 되는 배우가 허위 신고는 안 했겠죠. 괜히 구설에 오를 텐데.”
“그것도 그렇네. 그나저나 상대가 격투 선수라면서?”
“요즘 잘나가는 친구 같더라고요. 하여간 주먹 쓰는 놈들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격투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가득한 말이었다.
그때 제법 큰 체격의 남자가 김서홍이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김서홍 경장님입니까?”
“혹시…….”
“전화 받고 온 동방숩니다.”
그 말에 김서홍의 눈빛이 달라졌다.
민원인에서 범죄자를 보는 눈으로.
“그래요? 일단 따라와요.”
“뭐, 그러죠.”
그 태도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우선은 지켜볼 참이었다.
조사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따라 들어가려니 기분이 거지 같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춘래를 통해 얻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따라 주는 이유는 춘래의 조언 때문이었다.
더욱 억울한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극적이라나 뭐라나.
“동방수 씨. 본인 맞나요?”
“네.”
“좋아요. 지금처럼 순순히 답해 주시면 금방 끝날 겁니다.”
“네.”
“차예리 씨 아시죠?”
“알죠. 그 여자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누가 있겠습니까.”
무미건조한 동방수의 대답에 김서홍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 성범죄자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보통 경찰서에 오면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동방수에게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쾅!
“이봐요! 그렇게 대강 대답할 거야!”
그런 모습이 김서홍의 신경을 긁었고, 결국 버럭 하고야 말았다.
“뭐가 문제죠? 묻는 대로 대답 잘했는데.”
맞는 말이었다.
뭐 하나 숨기는 것도 없었건만, 혼자서 급발진.
김서홍도 자신이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내 곧 안정을 찾았다.
“후우. 좋아. 일단 조서는 다 쓰고 보지. 차예리 씨 성추행 혐의 인정합니까?”
“전혀요. 내가 또라이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여자를 왜 성추행합니까?”
“네네. 그러시겠지. 하여간 범죄자 새끼들은 순순히 인정할 줄을 모른다니까. 어디서 배우기라도 하나?”
혼잣말이랍시고 했지만, 주변에 있다면 다 들을 만한 성량으로 말하고야 만 김서홍.
“지금 범죄자 새끼라고 했습니까?”
도저히 들어 주기 힘든 언사였다.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범죄자 취급에 막말까지.
“아, 그런 놈들이 있다고요. 아무튼! 증거와 증인이 있는데, 계속 부인해 봐야 좋을 게 없어요. 깔끔하게 갑시다. 깔끔하게.”
쾅!
이번에는 화가 난 동방수가 테이블을 후려쳤다.
부르르르.
경찰서라고 동방수의 힘이 어디 가겠는가.
꿀꺽.
무거운 철제 책장이 비명을 지르자 김서홍의 표정이 단번에 긴장으로 물들었다.
‘이… 이거 괜히 잘못 건드린 거 아니야?’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흔했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협박을 한다거나, 물건을 부수려고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은 익숙했기에 보통이라면 비웃음을 사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방수의 도발에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위압감이 있었다.
그 앞에서 기를 펴고 있기가 힘들 정도.
저절로 덜덜 떨리고 있는 다리가 그 증거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자존심을 구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경찰 무시하는 겁니까?”
똥개도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김서홍이 딱 그 꼴이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 하나 건사해 보겠다고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김서홍도 격투 선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여기 파리가 있어서요. 후후.”
싸늘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동방수의 모습에 김서홍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
“겨… 겨울 날씨에……. 파리는 무슨…….”
작게 혼잣말을 내뱉은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노트북에 시선을 자연스레 박아 두고서는 일을 계속 이어 나갔다.
“큼큼. 아무튼 계속 얘기합시다.”
자세를 바로잡고 다음 질문을 이어 가려는데,
“그런데 이제 더 대답하고 싶지가 않네요.”
동방수가 조사를 거부했다.
“뭐요?”
“답을 정해 놓고 시작하는 사람이랑 무슨 대화를 합니까. 지금부터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뭐… 뭐라고?”
김서홍이 얼굴을 붉히고 씩씩댔다.
하지만 동방수는 진심인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물었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 줄까도 생각했지만, 이런 거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까지는 아니었다.
‘이… 이놈을 어쩌지?’
어찌 됐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큰 사건이었다.
잘만 처리하면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김서홍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동방수 씨. 이래 봐야 서로 좋지 않아요. 차근차근 풀어갑시다. 네?”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도 동방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오. 진짜. 어쩌자는 거야!’
괜히 처음에 기 좀 죽이겠다고 소리를 지른 게 실수였다.
설마 격투가의 자존심이 이렇게 배 째라는 식으로 발현될 줄이야.
그러길 10분이나 지났을까.
벌컥!
갑작스레 조사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김서홍 경장.”
“네!”
그들의 등장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던 김서홍이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서장이었다.
그리고 그 서장 옆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사내가 정장을 입은 채 여유롭게 서 있었다.
“이분 보내 드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고.”
“네… 네?”
“동방수 씨,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서장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동방수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굳이 경찰과 척질 필요까진 없겠지.’
마음 같아서는 깽판을 치고 싶었지만, 경찰도 나름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도 동방수의 태연한 대응에 서장이 눈을 번뜩였다.
‘역시 뭔가 있는 사람이군.’
그는 서장실로 찾아온 거물 변호사의 등장에 주저함 없이 바로 움직인 것은 옳은 판단이라 생각했다.
동방수 또한 갑작스럽게 나타난 서장을 보며 나름 상황을 정리했다.
‘역시 GK도 계속 날 신경 쓰고 있었구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서장 옆에 있는 신사는 GK에서 보낸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 당연한 말입니다. 마스터. 고성표 회장은 마스터를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끼고 있습니다.
자신은 고 회장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은인이 되기에 충분한데, 생명처럼 아끼는 회사의 성장까지 돕고 있지 않은가.
그런 동방수가 어이없는 이유로 수감되는 걸 지켜볼 리가 없었다.
“인사는 나가서 드리는 걸로 하죠.”
서장과 함께 들어온 정장 사내가 동방수를 밖으로 이끌었다.
서장은 그때까지도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가장 불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서홍이었다.
‘도대체 저 인간이 뭐길래 이 난리지?’
동방수는 원한을 잊지 않는 쪼잔한 사내였다.
* * *
“반갑습니다. 동방수 씨! 전 박앤홍의 박창기 변호사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경찰서 안에서 불편한 일은 없으셨는지요.”
“그냥 그 김.서.홍. 경장이란 사람이 윽박지르고, 무시한 거 빼고는 별로 없네요.”
“흐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 부분은 제가 서장에게 전달하도록 하죠.”
박창기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일은 어떻게 처리가 되는 건가요?”
“일단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문제가 생겨서 최악의 경우가 된다면 집행 유예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동방수에게는 참 마음에 들지 않는 가정이었다.
“제가 정말 성추행 같은 걸 한 적이 없다면요?”
“그 부분이 조금 어려운 부분입니다. 요즘 들어 젠더 갈등이니 성평등이니 해서 말이 많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먹고사는 데 바빴던 동방수가 그런 이슈에 대해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상식선을 벗어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그런 이해하기 힘든 주장들이 때론 먹힌다는 거죠.”
“예를 들면요?”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다.’란 말, 들어 보셨나요?”
“전혀요.”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니, 그 무슨 참신한 개소리인가.
그럼 버튼을 누르면 눈물 흘리는 연기자는 다 증거 공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성추행 피해자가 눈물을 흘렸을 때 그걸 증거로 채택해야 한다는 참신한 헛소리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부분 때문에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말도 안 되네요.”
“안타깝지만, 법이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야겠지요.”
미간이 절로 구겨지는 상황이었다.
“그럼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요?”
“우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차예리 씨를 만나야겠지요.”
“만나서요?”
“아무래도 합의를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 쪽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직접 만나기 껄끄러우실 테니.”
박창기는 성추행이 진짜인지 아닌지 묻지 않았다.
아니, 그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찌 됐든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자신은 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기만 하면 됐으니.
‘상대가 유명 연예인이라 조금 귀찮긴 하지만 이 정도는 문제가 안 되지.’
무려 고성표가 신경 쓰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든 깔끔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무슨 말인진 알겠네요. 그런데 변호사님.”
“말씀하시죠.”
“제가 만약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요?”
“증거 말입니까?”
“네.”
동방수의 태연한 대답에 박창기의 표정이 달라졌다.
상대도 만만치 않은 변호사를 쓴 상태이고, 워낙 유명 배우였기에 많은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의뢰인에게 확실한 증거가 있다니.
“무슨 증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조심성이 좀 많아서요. 언제나 녹음기를 들고 다니거든요.”
동방수의 입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 * *
그 시각 차예리는 집에 처박혀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는 거지? 이 정도 했으면 구속됐든지 해야 할 것 아니야.”
자신의 명예(?)에 손상이 갈 것까지 감수하고 일을 벌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부탁을 듣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고소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상황을 과격하게 몰아갔다.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는 듯했다.
많은 기사가 동방수를 저격했고, 경찰서에 출두한 것까진 확인했다.
문제는 그 후로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쩐 일인지 후속 기사도 전혀 없었다.
“그래. 이거 말고 다른 죄도 있어서 오래 걸리는 걸 거야.”
차예리가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
우우우우웅!
차예리의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차예리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 경찰서인데, 지금 무고죄로 고소장이 접수되어서요. 서에 오셔야겠습니다.
“네?”
오라는 연락은 안 오고 갑작스러운 고소미였다.
* * *
잠시 잦아드는 듯했던 사건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차예리 성추행 고소 불발. 오히려 무고죄?] [청순의 대명사 차예리. 알고 보니 스폰과 성매매?] [H씨 사건으로 주목받은 대나무 숲. 이번에는 차예리 저격.]└이게 무슨 소리냐? 아니지? 아닌 거지?
└하아. 예전에 여진 아씨가 뽕 맞은 거보다 더 놀랍다.
└이래서 연예인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
└더러운 연예인들. 동방수는 무슨 잘못이냐?
└이거 어디 가면 확인 가능하냐?
└이야. 완전 대박이네. 차예리 완전 꽃뱀이잖아.
└뭔데? 나도 좀 알려 줘라.
└링크는 이쪽으로. →
빌어먹을 동물의 왕국.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여론은 빠르게 돌아섰다.
그 기사를 보고 있던 박창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 내가 할 것도 없었네.”
경찰서에서 동방수를 꺼내 준 것 외에는 특별히 어떤 도움을 준 것이 없었다.
그나마 서장에게 언질을 줘 경장 하나를 물 먹인 게 도움이 됐으려나?
“아니지. 그것도 아마 알아서 했겠지. 대단한 친구네. 아주.”
어쩐지 GK에서 중요하게 다룰 때부터 알아봤어야 할 일이었다.
박창기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