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다 생각이 있죠
미들급 타이틀전은 대흥행으로 끝났지만, 윤성원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최악의 기분이었다.
“설마 광섭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이야.”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챔피언이라는 무게가 있기에 이겨 줄 것이라 믿었다.
이 참혹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드르륵!
그때 방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상대가 들어섰다.
다름 아닌 윤성원을 지금의 위기까지 몰고 간 동방수였다.
“오오. 동방수 선수. 어서 오세요. 기다렸습니다.”
전의 만남과 사뭇 달리 과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윤성원이었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때와는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하지만 동방수는 별다른 표정 없이 입을 열었다.
“전 오늘도 딱 맞춰 왔습니다.”
“아이고. 당연한 말씀입니다. 동방수 선수는 전~혀 안 늦었습니다. 제가 조금 서둘렀어요. 혹시라도 귀한 동방수 선수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니까요. 하하하. 무려 챔피언 아닙니까! 챔피언!”
“뭐 그렇긴 하죠. 언제까지일진 모르겠지만.”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방수 선수처럼 강한 사람을 이길 놈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래오래 그 자리에 계시면 됩니다. 하하. 제가 적절한 도전자를 준비해 놓을 테니까요.”
동방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요. 제가 지는 걸 걱정할 리가 있겠어요? 언제 U1을 떠날지 모른단 의미였죠.”
차가운 동방수의 반응에 윤성원이 식은땀을 닦아 냈다.
‘이… 이놈이 벌써 떠날 생각을 한단 말이야!’
챔피언이 된 지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기고만장한 태도라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다 표현할 수도 없었다.
계약 조건상 남은 경기는 고작해야 세 경기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 동방수가 나간다면 U1의 미들급은 완전히 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흠흠. 그거야 서로 대화를 나눠 봐야지요. 재계약 의사는 있으십니까?”
“일단 조건을 들어 봐야겠죠?”
“조… 조건이요?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은 무립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한 번 시합이 열릴 때마다 파이트머니를 올려 주고, 승리 수당도 넉넉히 챙겨 준다.
그뿐만 아니라 PPV의 수당도 10 중 7을 가져가면서 무슨 더 좋은 조건이 있단 말인가.
물론 3에 해당하는 수익만으로도 다른 경기보다 월등히 많은 수익이긴 했다.
하지만 기분도 나빴고, 부대 비용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일은 우리가 다 처리하는데 고작 몇 분 싸우고 그런 돈을 받겠다니. 완전 도둑놈이 따로 없군.’
“랭커에서 챔피언으로 바뀌었으면 당연히 대우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 그건 그렇지만…….”
윤성원에게 압박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로서도 더 이상 내어 줄 카드가 없었다.
우물쭈물 대답도 못 하고 있는 사이, 동방수가 대화의 물꼬를 틔웠다.
“사실 조건은 관계없어요.”
이 말에 윤성원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다.
“그럼 바로 재계약하실 건가요?”
“에이, 설마요.”
‘이놈이 무슨 말을 이렇게 똑바로 안 하는 거야?’
언제나 직진이던 놈이 무슨 일인지 말을 돌려도 너무 돌리자 윤성원은 먼저 동방수의 생각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궁금해요?”
“그… 그럼요.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맞춰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별건 아니고, WFC에서 제안이 들어왔거든요.”
“WFC에서 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블랙 데빌이 그 난리를 치더니 작정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저씨도 보셨잖아요. 얼굴 더 시커메져서 흥분하는 거. 얼마든 줄 테니 오라고 난리더라고요.”
윤성원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 안 됩니다! 적어도 방어전 몇 차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아직 계약 경기도 3경기나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화를 내실 필욘 없는데요. 어차피 전 이거 아니어도 충분히 먹고살 만하고요.”
“그래도 사람이 의리가 있지, 어떻게 챔피언이 되자마자 다른 단체로 간단 말입니까!”
윤성원의 입에서 의리란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동방수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저 입에서 의리란 말이 나오다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도유망한 선수를 저 말로 현혹했을지.
더 이상 대화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동방수는 결국 그 말을 입에 담고야 말았다.
“안 되겠네요. 그냥 오늘로 계약 파기하겠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습니까! 계약 파기의 위약금이 열 배입니다. 전 경기 기준이죠. 챔피언전에서 파이트머니 4천에 승리 수당 4천 그리고 PPV 수당까지 합치면 약 7억 정도의 수익이 나왔군요. 그럼 위약금이 70억입니다. 감당되겠습니까?”
한 경기에 무려 7억 원을 벌어들이다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물론 복싱의 이벤트 매치에서 단번에 천억 이상 벌어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긴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받은 돈으로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 돈의 열 배가 걸린 위약금을 생각하면 감히 계약 파기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말이다.
“70억이요? 물론 감당이 되죠. 그 흑인 아저씨가 감당해 준다고 했거든요.”
“그… 그게……. 무슨…….”
아무리 전도유망한 선수라지만 70억을 대납해 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제가 그 부분은 거절했어요. 알아서 한다고요.”
“동방수 씨…….”
“아, 당연히 그 돈을 드린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상호 합의하에 파기하도록 하죠.”
쾅!
더 이상은 들어 줄 말이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윤성원.
동방수의 눈치를 볼 것도 없는 이 마당에 그는 이전처럼 막 대하기 시작했다.
“듣자 듣자 하니, 못 하는 말이 없군. 계약이 장난인 줄 아나! 계약 파기를 하게 되면 1원 한 장도 안 깎아 주고 다 받을 테니 그렇게 알게. 소송을 하려면 하고. 이 윤성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보게 될 테니까.”
윤성원은 그 말을 끝으로 벌떡 일어섰다.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끌려다니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어디 한번 금융 치료 제대로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거친 발걸음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데니토프의 약물. 누가 구해 줬어요?”
하지만 동방수의 입이 열리는 순간 윤성원은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넘겨짚은 모양인데. 데… 데니토프는 약물을 한 적이 없고! 했다고 해도 난 관계없네.”
다른 선수라면 윤성원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동방수는 약물이라는 말과 동시에 티 나지는 않지만 위축된 그의 감정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일단 앉아 봐요. 진짜인지 한번 따져 볼 테니까. 네? 그냥 나가면 무조건 후회합니다. 저 허튼소리 안 하는 거 아시죠?”
내키는 대로 허튼소리도 하는 동방수였지만, 지금의 경고는 진실이었다.
윤성원은 슬쩍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저 말을 무시하고 나가 버리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은 윤성원.
‘무슨 얘기를 떠드는지나 들어 보자. 그래 봐야 헛소리겠지만.’
한 단체의 장으로 활동하다 보면 이런저런 인맥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한 인맥들은 유사시에 큰 힘이 되어 준다.
지금이 그런 힘을 쓸 때란 생각이 들었다.
“자, 일단 이것부터 읽어 보시죠.”
동방수는 준비해 두었던 종이 몇 장을 꺼내 윤성원에게 건넸다.
윤성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서류를 받아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서류는 뭐란 말인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안경을 꺼냈다.
‘별거 아니기만 해 봐라. 내가 무조건. 무조건 너는 죽인다.’
무력으로야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한 단체의 수장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고작 24세밖에 되지 않은 어리숙한 청년 하나쯤은 언제든지 밟아 버릴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첫 장을 다 읽기도 전에 달라졌다.
“이… 이게……. 무슨…….”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점점 더 빨라졌다.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노예 계약과 관련된 내용들.
그리고 몇몇 선수들에게 제공했던 불법 약물의 경로와 지급 내역.
마지막으로 단체를 통해 빼돌렸던 돈의 내역까지.
스스로도 기억 못 하는 것까지 세세히도 기록되어 있었다.
“왜요? 뭐 빠진 거 있어요?”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이야. 그래도 부정은 안 하네요.”
“이… 익!”
화를 내긴 했지만, 당황해서인지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 도대체 저놈이 어떻게 이 정보를 모은 거지.’
처음에는 작은 시작이었다.
법인 카드를 조금 과하게 쓰는 정도.
이쯤이야 누구나 하는 행동이라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별다른 문제가 없자 쓰는 금액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부인의 명품, 자녀의 학원비, 그리고 카드깡까지.
결국은 U1의 대주주가 보낸 투자금에까지 손을 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은 U1이 문제없이 성장 중이라 티가 나진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은 전부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 분산해서 짐을 지웠으니.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너무 흥분할 거 없어요. 이거 터트릴 생각 없으니까요.”
“그러면 이건 왜 보여 준 거지?”
“깔끔하게 계약 파기합시다.”
“무슨 명분으로?”
누가 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던가.
그런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를 함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 생각이 있죠.”
동방수가 입을 열어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윤성원은 그럴듯한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동방수와의 만남을 마친 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답은 하나였다.
‘그래, 어차피 고삐 풀린 망아지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말을 안 들을 놈이고.’
짧은 시간 동안이긴 했지만, 동방수를 통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가.
하지만 동방수란 인간은 그런 부류의 방법이 통할 인간이 아니었다.
최대 주주에게 욕먹을 생각에 답답하긴 했다.
하지만 결국 윤성원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후우. 짜증 나네.”
답답한 마음으로 장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대표님!
“우철아.”
–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기자 회견 한번 하자.”
– 기자 회견이라면…….
타이틀전도 끝났고, 딱히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동방수 관련해서 발표할 게 있다고 해라.”
– 네? 그게 무슨.
동방수라면 지금 U1에서 최고 대어가 아닌가.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뭘 발표한단 말인가.
“됐고, 바로 기자들에게 연락해라. 두 시간 후에 하자.”
이런 일은 시간을 끌어 봐야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일단은 보내 준다, 일단은.’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최후의 자존심이었다.
* * *
장우철은 확실히 일 처리가 깔끔했다.
고작 두 시간 만에 수십 명의 기자를 모았을뿐더러 장소 섭외까지 마무리했다.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의아하기만 했다.
“김 기자. 오늘 무슨 일이래?”
“내가 아나? 어쨌든 동방수 얘기라면 좀 팔리겠지. 지금 엄청 핫하잖냐.”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내용도 안 말해 주고 부르는 건 양아치 짓이지.”
“그럼 오지 말든지.”
“어떻게 안 와! 위에서 가라는데!”
말은 이렇게 했어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적의 챔피언인 최광섭을 떡실신시킨 괴물에 관한 이슈가 아닌가.
게다가 차예리와 관련된 떡밥도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다.
뭐로 보나 이슈메이커인 동방수에 관한 기자 회견에 파리가 끼지 않을 리 없었다.
“어! 저기 윤성원 대표다.”
“뭐야? 혼자 오는 거야? 동방수는?”
걸어 들어오는 윤성원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하아. 내가 이런 발표를 해야 하다니.’
짜증이 왈칵 솟구쳤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다고 계속 썩은 표정을 할 순 없었다.
프로답게 표정을 관리한 윤성원이 자리에 앉아 준비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