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155
◈ 협객 (2)
소검후 일행과 함께였는데, 입황성 측의 임무 인원은 넷에 불과했다.
정연신을 선두로 패도적인 무공을 지닌 태염룡이 오른쪽, 처신의 조언자 역할을 맡은 헌원창이 왼쪽에서 말을 몰았다.
남궁화신은 후미였다. 타고난 성정이 차분한 데다 안정적인 검법을 연성한 까닭이다.
“날마다 개안하는 기분이야. 입황성은 얼굴과 무재를 동격으로 치나 봐.”
출발할 때 소검후 취소옥이 뱉은 말이다.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점창무검과 천일검도 사문의 큰누이를 외면했다.
정연신 일행과는 아직도 어색한 사이였다. 동료가 아니라 동행인으로 봐야 했다.
‘또 다른 흑색이 따라붙을 거라고 했지. 악 선배가 아닐까 싶은데.’
무림맹은 호랑이굴이다. 헌원창을 제외한 삼인방의 무력이 비범하다 해도 그렇다.
연맹체의 크기를 따지면 입황성을 능가할 것이다.
사절의 성격을 띤 임무이기에 무력대 규모의 인원을 동원하지는 못했으나, 입황성 총관부가 유망한 신임 대주를 마냥 방치할 리 만무했다.
지원이 있을 거라 들었다. 거리를 두고 따라붙을 것이라고.
마광익은 제외일 터였다. 몸 성한 선배들이 몇 되지 않았다.
그나마 상당히 회복한 청명에게 마광익주 대리를 맡긴 참이다. 출행 전에 나눈 대화가 귓가에 선명했다.
―내 장포 빌려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여하간 마광익도 정비가 필요해. 이번 임무는 사절로서 소수만 가는 거라 해도, 다녀와서는 다른 무력대에서 인원을 빼 오기라도 해야 할걸?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다.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다. 정연신은 선배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섬예 무맥이 온갖 무력대에 퍼져 있더만. 인망은 이만하면 됐고, 다음은 명성이야. 대주가 무림 강호에서 얼마나 이름을 날리고 있느냐, 이게 또 은근히 커. 칼밥 먹는 놈들한테 무공이랑 명성 빼면 뭐가 남겠어? 섬예란 이름이 더 커져야 다른 대주들도 납득을 할 거란 말이지.
입문 당시부터 절친했던 명족 검객은 천진난만하면서도 다소 냉소적인 데가 있었다.
입담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흑색으로 행세하면서 십수 년, 아니면 수십 년간 칼질을 해 온 인간들이 네 상대야. 순천익주만 해도 ‘마령하대협곡(馬嶺河大峽谷)의 괴물’이라고 불려. 하나같이 긴 세월 동안 흑색지경의 무위를 휘두르면서 명성을 쌓았지. 이름값에 신뢰와 시간이 쌓인 거야.
순천익주는 공사 구분이 명확한 인물이었다.
정연신의 공적과 무력을 온전히 인정해 줬다. 허나 남궁화신의 소속 변경에 대해서는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청명이 이름값을 입에 담은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강호에 이름 좀 있다는 놈들 중에서 우리 전대 대주 못 알아보는 사람 봤어? 입황성 대주들의 강호 입지는 어마어마해. 개입한 사건이랑 쌓은 업적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정연신이 살아가야 할 세계를 풀어내는 말이었다.
―보통 때라면 따라가기 힘들 텐데, 이번에 네가 받은 임무가 격차를 크게 좁혀 줄지도 몰라. 하기 나름이겠지만.
무림맹 개파대전이 큰 기회라 했다.
‘정파의 온갖 방파가 모여든 연맹체니까, 활약 한 번의 효과가 보통 때의 갑절은 될 거라고…….’
사아아―
불현듯 가을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투명한 추풍 한 줄기에 묻힌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정연신은 고삐를 쥐고 준마에 박차를 가했다.
일행은 끊임없이 내달렸다.
목적지인 한중에는 역참이 있지만, 입황성 본성이 자리한 양양에서 한중까지는 역참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준마들의 발굽 아래로 펼쳐진 길이 일직선을 그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흘, 나흘, 닷새…… 상당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폐허가 된 마을들을 몇 번이고 지나쳤다.
“여기도 글렀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이렇게나…….”
“백색 선배, 또 은자를 나눠줬다간 남아나는 월봉이 없을 거요. 들러붙는 사람들 떼어내는 것도 일이고.”
확실히 난세였다. 가뜩이나 기근이 약탈을 자아내는 세상인데, 식량이 귀했다.
정연신이 살아오면서 크게 느끼지 못한 바였다. 가풍이 어땠든 간에 대지주 집안인 정가장에서 자랐다.
입황성에 들어와서도 먹을 일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흉년의 영향은 아직 천하제일 방파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은 돈으로 음식을 구할 만했다. 값어치가 비쌀 뿐이다.
더구나 임무 수행 중인 입황성의 무인들이 경유하는 장소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럴듯한 객잔과 관청이 아니면 완전히 한적한 들판이나 숲속 정도다.
정연신 또한 그랬다. 노숙, 고급 객잔, 입황성 기주지부, 사천당문…….
흑색 승단 전에 지나온 곳들은 흉작의 여파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분지로서 고립된 사천부터 그러했다.
천하에서 손꼽힐 만큼 비옥한 땅이다. 기주만 해도 어마어마한 구경꾼들이 정연신의 싸움을 지켜보지 않았나.
허나 오랜만에 들른 서쪽은 사정이 다른 듯했다.
산적들이 들끓고, 도처의 방파들이 군벌마냥 행세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정연신이 준마 위에서 마주한 광경도 그랬다.
품에 구리 일 문조차 없거나, 사냥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든 자들이 노략질을 일삼았다.
흉년의 여파가 온 천하로 번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실감할 정도였다.
‘여기는 특히나 심해.’
정연신은 문득 고삐를 잡아당겨서 말을 멈춰 세웠다. 일행들 또한 무리의 수장을 맡은 소년의 뒤로 나란히 자리했다.
호광성 운양부(鄖陽府)의 서단.
자그마한 호수를 낀 마을 곳곳에서 두꺼운 연기가 피어오른다. 울음소리도 더러 들려 왔다.
그간 지나친 어떤 곳들보다 황폐화되어 있었다. 무림맹이 자리한 한중이 코앞인데.
숨 막히는 적막이 감돌았다. 약탈의 흔적이다.
“…….”
다그닥.
정연신은 다시금 말을 몰았다. 마을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걷도록 했다.
“무당파는 뭘 한 건지 모르겠네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구파일 텐데.”
소검후가 말했다. 동시에 헌원창의 대답이 들렸다.
“치안을 얘기하는데 무림 방파부터 찾는 것도 문제요. 관은 무얼 하는지 모르겠구려.”
양쪽이 모두 못마땅하다는 어조였다. 그러고 보면 헌원창은 예전부터 묘하게 대방파를 혐오했다.
정연신은 언젠가 이 나이 많은 친우의 삶을 들을 수 있길 바랐다. 자신이 죽기 전에.
잠시 동안 말발굽 소리만 울렸다. 처참하게 부서진 목책에 다가설 때까지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가운데, 태염룡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경파의 흔적인데? 저기 패인 곳 말이여. 무림 놈들한테 당했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걸까. 다소 능청스러운 어조였다.
황보세가의 망나니 소가주로서 온갖 곳을 활보하고 다녔다더니, 이런 경험이 흔한 듯했다.
정연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림맹과 무당파가 멀지 않은 마을에서 활개를 친 도적들이다.
평범한 무공과 간담으로는 벌이기 힘든 일이었다.
무너진 울타리를 넘어섰을 때였다. 웬 소년 하나가 달려왔다. 정연신 또래다.
반쯤 폐허가 된 마을을 등 뒤에 두고 달음박칠쳐 오는데, 남루한 행색임에도 눈빛에 강단이 보였다.
“대협! 입황성의 무사님이 맞으시지요?!”
이 와중에 정연신은 아주 작은 보람을 느꼈다. 어깨 측면에 새겨진 거칠 황 자가 효능을 발휘한 듯했다.
이제는 누구든 정면에서도 알아볼 만한 것이다.
마진의 옷으로 갈아입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헌원창이 손 쓸 일은 없을 터였다.
뒤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듣고 보니 미약하게나마 통쾌함도 느껴졌다. 내 옷이라고.
“무슨 일이 있었니?”
짧은 상념을 접은 정연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강호인을 대할 때와 판이한 태도였다.
점창 제자들과 태염룡의 들숨 소리가 커졌다. 살짝 놀란 듯했다.
“…무공 세계든 성정이든 독특하단 말이지.”
태염룡이 능청스레 중얼거린다.
“본 공자가 민초로 태어났으면 어린 대주의 보살핌을 받았겠군. 단명하는 삶에다가 가문까지 몰살당했으니, 이 얼마나 가련한가 말이야.”
조금쯤 놀리는 듯한 어조였다. 자학에 가까운 말인데 풍류가 있었다.
정연신은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소년을 내려다봤다.
마을 소년이 말 위의 흑포 소년을 응시하는데, 얼굴에 분노와 슬픔이 뚜렷이 보였다.
굳이 더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다. 가산과 혈족을 잃은 것이다.
“원수에 대해 얘기해 보렴.”
정연신이 말했다.
목적지인 한중에 거의 다 도착한 참이다. 시일에 여유가 있으니, 입황성 대주로서 민초의 고변을 들어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 마을은 누가 봐도 강호인들에게 당했다. 내버려 둘 일이 아니었다.
* * *
화산파의 장문제자는 어떤 욕설 하나를 떠올렸다. 해동의 남사당패란 놀이패가 쓴다는 말이었다.
‘엿 먹었다.’
화산잠룡 유현은 숙고 끝에 결론지었다. 엿을 먹인다는 게 훼방을 놓는다는 뜻이라 했다.
의미 그대로 쓴다면, 그는 아주 거하게 엿 먹은 셈이었다.
무림맹회의 본단에 일찍이 도착한 참이다.
배정된 거처에 머물다 보니 몹시 따분했다.
무림맹에 와서 본 또래 후기지수들 가운데 눈에 차는 놈들이 없었던 까닭이다.
조금 더 나이가 찬 인간들은 ‘예 소저’라 불리는 맹인 미녀에게 관심이 쏠려 있었다.
산해경에서 이르는 꼬리 아홉의 여우에게 홀린 듯이.
‘세가 놈들은 역겹고, 구파의 수행자란 인간들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도착하지도 않았고.’
일탈을 생각했다.
보신경으로 온 사방을 누비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겼다.
화산 비전의 암향표(暗香飄)를 수련할 겸,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사질들을 데리고 산보를 왔다. 그러다 섬서의 경계에 닿은 것이다.
반쯤 폐허가 된 마을을 봤다.
덩그러니 남겨진 마을 소년의 호소가 시초였다. 눈물 젖은 고변을 들었다.
호숫가의 섬에 터 잡은 문파에게 약탈을 당했다고.
“원시천존이나 부처님의 문파는 아니었어요. 섬에 장원을 지어놓고 주기적으로 약탈을 하러 왔지요. 돼지나 송아지, 작물이 자랄 때쯤이면 그놈들이 와서 다 거둬갔어요. 반항하면 때려죽이고…….”
“무어라?”
의기 높은 화산파의 제자들은 분기탱천했다. 가슴에서 협심이 솟았다.
“얼마 전에는 남아있던 식량을 모두 쓸어갔어요. 말에 철갑을 입힌 무림인들을 접대한다고…….”
“무림인이란 건 어찌 알았느냐? 병사들일 수도 있을진대.”
유현의 사질이 물었다. 마을 소년은 곧장 대답했다.
“놈들이 자기들끼리 ‘심무련의 영웅들’이라고 했거든요. 심무련이면 십삼천 아닌가요?”
“……하남에 근거를 둔 대방파인데, 어찌 호광 끄트머리에?”
그때부터 화산 제자들은 자신들끼리 논의했다.
“끝단에서 끝단이니, 거리가 가깝긴 하지.”
“그렇다 해도 미심쩍은 게 사실일세. 도대체 무슨 간담으로? 개파식을 연 무림맹이 여기서 멀지 않거늘.”
찜찜함과 별개로 유현 일행은 호숫가의 섬까지 건너왔다. 그래야 할 만큼 마을의 참상이 끔찍했다.
본디 강호의 협객이란 억울한 이의 복수를 대행해 주는 자다. 구파의 제자 된 도리로 못 본 척 넘어가기 힘들었다.
무림맹의 개파에 발맞추듯 등장한 심무련도 문제였다.
심상치 않은 사건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단서를 잡아야 했다.
‘무위를 너무 과신했지.’
유현은 회상했다. 등 뒤로 두 손이 묶여 있었다.
그럴듯하게 지어진 장원의 연무장이다. 세 명의 사질과 등을 맞댄 채 주저앉은 채였다.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자들의 얼굴에 조소가 어려 있다. 족히 스무 명은 넘었다.
개중 남색의 관복을 입은 여인과 큼지막한 도를 든 사내가 눈에 띄었다.
부부였다.
‘꽤 강한 무림 문파가 지부대인이랑 손잡고 인질을 들이미는데, 이걸 어떻게 이기냐고. 권력과 무력이 쌍으로 부패해서는.’
이곳 운양부의 지부대인이 엮인 줄 몰랐다. 아주 곤란하게 됐다.
어설피 상대할 자들이 아니었는데, 모조리 사로잡히고 말았다. 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겁박한 까닭이다.
“이거 참 계륵이로군.”
관모를 쓴 여인이 입술을 뗐다. 운양 땅에서 가장 권세가 높은 자다.
그녀가 지부대인이었다.
사람은 무공을 연성하는 순간부터 신체의 제약을 탈피하기 시작한다. 성별로 타고나는 차이 역시 마찬가지다.
장정 일백 명을 손쉽게 몰살하는 사마외도의 여고수들이 드물지 않다. 내가기공의 자질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까닭이었다.
십삼천주의 태반이 여인이었고, 구파 중 아미파(峨嵋派)의 장문인은 비구니로서 천하를 논했다.
명족이 신선의 씨족으로 추앙받는 시대.
송나라의 관행이 무너졌다. 명족 여인이 관직에 진출한 것이다.
명나라 건국 이래, 황실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온 ‘선대의 선대’ 태황후가 명족으로서 천하의 관념을 뒤집었다.
여인들의 과거시험 응시를 허하였다.
명족과 무공의 존재가 컸다. 세상이 격변했다.
천하의 뭇 영애들이 향시를 통과하여 거인이 됐고, 회시를 거쳐 전시에서 급제의 우열을 가렸다.
현 한림원 대학사가 제갈세가주의 누이다.
지부대인이 여자라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부가 각각 사파 잡배와 탐관오리라는 게 문제일 뿐이다.
“부인의 말이 맞소. 참으로 계륵이구려. 돌아간 심무련 고수들에게 넘기자니, 화산 고수들을 잡은 우리 행적이 알려질 테고…… 이대로 보내는 건 말이 되지 않고.”
그녀의 곁에 선 사내가 말했다. 섬의 주인이자 중양방(重陽幇)의 방주였다.
그간의 약탈을 진두지휘한 흉수이기도 했다.
“역시 살인멸구가 맞겠소. 추적이 온다 한들, 부인께서 아니라고 둘러대면 될 일이지. 지부대인의 말을 누가 의심하겠소?”
“똑같은 말만 며칠째인지.”
유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자질이 비범한 탓에 만사를 하찮게 보던 성품이 드러났다.
“피차 목을 치기 부담스러운 거 아냐? 아닌 말로, 네 부인이 권세 높은 벼슬아치가 아니었으면 내 손에 살아남았겠냐고. 지부대인이 아니라 지현 정도였어 봐. 네 머리가 매화향으로 절여졌을걸? 검향(劍香)이라고 아냐?”
“이놈이 제 처지도 모르고……!”
“화산 제자는 입을 다물라. 면식이 있어 살려두었거늘, 경거망동이 도를 넘는구나.”
지부대인이 대노한 부군을 제지하며 말했다. 유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패한 관리를 무시하는 품행이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는데, 지부대인에 오르기까지 험한 정계를 헤쳐 온 그녀에게는 닿지 않은 듯했다.
“기근에는 신분의 고하가 없다. 허나 관과 칼이 제 역할을 해야 민초가 바르게 사는 법이지. 네 의협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나,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그릇이 더 크다. 네 얕은 잣대를 들이밀지 마라.”
지부대인이 말했다.
그들 부부는 민초를 완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진기가 산공독으로 흩어진 가운데, 배가 움푹 들어가는 듯했다.
화산파의 도복까지 고매함을 잃었다. 보잘것없이 쪼그라든 매화 문양이 유현의 형편을 방증했다.
그러던 어느 때였다.
저벅.
땅만 비추던 시야에 새까만 가죽신이 끼어들었다.
“너, 나쁜 습관을 들였어. 태염룡한테도 맞고 있더니.”
웬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
“사문의 어른들을 떼어놓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됐구나. 그러다 객사한다.”
조곤조곤한 말투였다.
“……!”
유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순간 나타났다고 믿기 힘든 인영이 눈에 비친다.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찬 소년이었다.
머리 뒤로 태양 볕이 내리꽂히는데, 대충 걸친 흑색 장포를 타고 빛무리가 만들어졌다.
어깨 어림에서는 황(荒) 자가 요란한 금광으로 아롱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