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08
◈ 파란 (2)
마광익주 섬예가 당문비기를 쓴다.
알 만한 자들은 익히 습득한 소식이다. 입황성 본성에 한하여, 섬예 승단식 때부터 널리 알려졌다.
율령대주 운소유에게 흑색 승단의 시험을 받을 때 본성에서 드러난 일이었다.
풍문에 정통한 이들은 더 파고들었다. 머나먼 사천성에서 섬예가 당가주와 사제지연을 맺었다는 사실까지였다.
그쯤 되는 인물들의 인연은 기연에 가깝다.
무림맹회까지 왕림한 당가주가 정연신에게 힘을 실어준 것만 봐도 그랬다. 무공으로 맺은 교분이 굉장했다.
환강 초식도 마찬가지였다. 입황성 대주급 정보의 가치는 천금에 버금간다.
강호 상층부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을 깔아보고, 그들의 사멸마저 주관하는 까닭이다. 모르고 맞선다면 죽어야 했다.
섬예와 환강. 마광익주와 만천화우.
이제는 다수가 안다. 정연신과 떼놓고 보기 힘든 절기들이다.
그러나.
동시 시전은 별개였다. 알려진 바가 없었다.
두 가지 절기를 한 번에 발현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양손을 달리 움직이는 초식조차 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전신 경맥으로 흐르는 내공을 한 호흡에 달리 움직여야 했다.
십이경맥과 삼백육십오 개의 혈도, 그 이상으로 많은 세맥마저 꿰뚫는 통찰 공부가 없다면 주화입마에 가까워졌다.
두 가지 운용 흐름이 엉키지 않도록 진기 경로를 매끄럽게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환강과 만천화우쯤 되는 절기라면 그 난이도가 무시무시하게 올라갈 터였다.
동시 시전의 그림을 온전히 그려낸 뒤도 문제다.
전신 근육과 공력의 움직임을 제각기 나누어, 두 절기를 실제로 발현시키는 일이야말로 초식 시전의 백미다.
경혈 수백 개에 상반된 의념을 실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의 절초를 발휘하는 것만 못한 효율이 나올 터였다.
웬만한 삼화취정의 초고수들도 엄두를 내지 않을 일이었다.
지켜보던 군중들 다수가 고수인 자리였다. 초식 시전의 전조부터 범상치 않은 이변을 눈치챈 자들이 많았다.
뭇 고수들의 얼굴에 이채가 빛살처럼 흘렀다.
“무당파 양의심공?”
“마음을 둘로 나눴다면 이해할 만하지.”
“아무리 그래도 터무니없는 소리를.”
“무당파의 지보가 마광익주 손에 들어갔을 리는 없을 터이다.”
“허면 만천화우는 무엇으로 설명할 건가?”
“심공과 초식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 체내를 아우르는 공부가 비할 바 없이 복잡하지 않나.”
입황성 고수들의 입이 쾌속하게 움직인다. 기파와 함께 터지는 말소리가 속사포처럼 빨랐다.
구순술(口脣術)이라 했다. 집단 전투를 많이 겪는 입황성 무인들이 극한 상황에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순전히 감각으로 저런 게……?”
“쌍검 구사와도 격이 다른 난이도일진대.”
그들의 섬광 같은 논담과 별개로, 비무대 위의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고수들의 입놀림이 아무리 쾌속하다 해도 입황성 대주들의 손속보다는 느렸다.
사아아아―!
마광익주와 선목령주.
둘을 감싼 얼음의 소용돌이가 무지갯빛을 산란시켰다.
마광익주의 주변에서부터 펼쳐진 새하얀 결정들이 돌개바람으로 휘도는 광경은 실로 환상 같았다.
눈꽃의 만천화우가 천소소의 회피 신법을 제한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공능을 알 만했다.
임의로 일으킨 탓에 그녀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으나, 흑색고수의 운신에 제약을 거는 것 자체로 굉장했다.
선목령주 천소소의 한천무류빙공은 신공이다.
본래도 강력한 무학의 공능을 영성으로 더 끌어올렸다.
하잘것없던 수증기가 음한지기로 빙결된 순간, 그것은 일개 서리가 아니라 만천화우의 재료가 될 만한 암기로 화했다.
공력으로 단단해진 얼음 결정이다. 이 순간 무지막지한 암기의 눈꽃으로 휘몰아쳤다.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는 회오리 군데군데에 칠색의 광채가 번뜩인다. 대륙 전역을 질주해 온 대주의 견문으로 봐도 놀라운 절기였다.
천소소는 신임 대주의 새까만 눈동자를 담담히 마주했다. 마광익주에게 쥐여 잡힌 오른손 팔목이 아릿해졌다.
‘외공을 연마했군. 손아귀가 단단해.’
내공으로 외공의 효능을 증진시키는 동공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연배의 한계를 벗어난 성취다. 성주의 총애를 받는다더니, 천하목의 열매라도 한 조각 받아먹은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천소소는 무심코 일어난 생각을 부정했다.
그것은 신임 대주가 감당할 영약이 아니다.
조각에 불과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씨족의 보물은 누구라도 쉽사리 섭취하지 못한다.
선목령주 천소소는 한족으로서 경지에 이른 자들과 다르다.
씨족 특유의 날 선 오감을 보검처럼 갈고닦았다.
북해 일맥의 안법으로 말미암아 신묘한 통찰력마저 터득한 까닭에, 신임 마광익주와 마주한 순간 파악했다.
아직은 정기신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 애송이라고.
내부를 더 살펴보지는 못했다.
마광익주도 그녀처럼 진기를 신공으로 연성한 까닭이었다.
영묘한 내공이 기질 이상의 무언가를 꿰뚫는 눈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자색고수에게 능히 맞설 만큼 연마한 눈이 아니라면, 마광익주를 보는 것만으로 그보다 더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 터였다.
그녀는 구태여 마음을 놓지 않았다.
방심할 계제가 아니다. 상대가 삼화취정의 상태를 갖추지 못했다 해도 그렇다.
선목령주는 사마외도나 세가의 고수들처럼 수양이 낮지 않았다.
모든 임무를 냉정히 대했다.
지피지기가 웬만한 무공보다 중요한 덕목임을 잘 안다.
마광익주와 특별히 교분을 나눌 마음은 없으나, 입황성의 대주로서 동료 흑색고수의 모든 공적을 살폈다.
비범한 인사라는 사실을 단번에 인정했다.
‘무공 기질이 굉장히 명확하구나. 쾌(快)와 강(强)의 구결이야.’
천소소의 의식은 섬광처럼 흐르고 있었다.
명실상부한 상승의 영역이었다. 지금 물결처럼 몰아치는 감각은 초고수들의 전유물이다.
살갗 위의 호신강기를 스치는 찬바람이 비단 자락처럼 느껴진다. 굉장히 길게 쓸렸다. 만물을 아주 느리게 의식하는 경지였다.
그 가운데 지금 그녀의 복부를 향해 다가오는 마광익주의 손바닥은 유난히 빨랐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뻗어 나온 출수 같다.
그의 장심에서 일어난 기운이 불안정하게나마 종점에 이르는 동시에 그녀의 복부를 격타할 터였다.
측량 불가의 위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건 무방비로 맞아선 안 된다.
환강이라 했다.
장법의 시전 시간이 늦는다는 단점을 세 가지로 극복하고 있다.
만천화우로 천소소의 몸에 제동을 걸고, 그녀가 뻗었던 오른팔의 맥을 움켜쥐어 내공 운용을 봉쇄하는 한편, 태생적으로 빨랐을 게 분명한 내공 제어가 장법의 요결을 최대한 빠르게 맺었다.
타고난 싸움꾼의 자질이다.
이른 나이에 어찌하여 대주가 됐는지 잘 알겠다. 입황성이란 대방파의 특성에 걸맞는 인재였다.
화아아악―!
천소소의 복부 어림에서 거세게 흔들리는 흑포의 감촉이 느릿하게 전해진다.
이제 지척이었다. 장법 시전의 여파만으로도 아랫배의 복근이 조여드는 듯했다.
그 찰나의 영역에서.
그녀는 고민했다. 상승 영역의 초고수란, 한 호흡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다음 손속을 명료하게 가져가는 자들이었다.
무수한 생각이 본능의 영역에서 흘렀다.
‘어찌해야 할까.’
남은 왼손으로 출수하기에는 이미 반 호흡이나 늦었다. 신공의 빙결이 마광익주의 날숨 한 번에 깨질 줄은 몰랐다.
분명히 전신 세맥을 채운 진기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진동했을 것이다.
몸속 경혈이 어떻게 짜여 있길래 그만한 역동성을 감당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놀랐다.
‘일어나라.’
그녀는 속으로 읊조렸다.
동시에, 한천무류빙공의 서늘한 공력이 단전에서 빛살처럼 솟구쳤다.
정기신이 일치된 초고수의 의념은 내공과 함께 흐른다. 진기 수발력이 마음의 속도에 가깝다는 의미다.
우웅!
배꼽 위 음교혈(陰交穴)까지 단숨에 치달은 진기가 주변 복직근으로 퍼졌다.
정해진 구결로 내공의 얼개를 짜내는 속도가 마광익주의 손바닥보다 빨랐다.
정통 흑색고수의 진기 운용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선목령주 천소소는 빙공의 달인이었다.
음한지기는 본질적으로 정중동의 묘한 정지 상태가 핵심 요결이다. 신공의 영역에 이른 빙공은 무수히 많은 공능을 선사했다.
내공 방벽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다른 무맥의 고수들보다 용이하게 호신강기를 신공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심벽천빙패(深璧天氷牌).
무형의 진기 방벽이 복부를 둘러쳤다.
녹지 않는다는 만년설의 심상으로 빚어낸 호신강기였다.
선목령주의 또 다른 절기로, 이 열 겹의 내공 옷자락이 선사하는 방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얼마 전에 만난 양가창(楊家槍) 고수들의 연수 합격조차 몸으로 받아낼 정도였다.
웬만큼 이름을 날린 무인들도 한 겹을 깨지 못했다.
천소소가 걸친 흑색 장포의 바깥쪽은 한 점의 얼룩도 없이 매끄러웠다. 심벽천빙패의 강도를 방증하는 모습이었다.
그 신공이 온전히 짜인 순간.
마광익주의 오른손이 그녀의 복부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터졌다. 두 초고수의 머리칼이 새까맣게 치솟아 올랐다.
눈발처럼 휘돌던 만천화우의 꽃잎들마저 팔방으로 비산했다. 장법의 발경력이 발 아래로도 몰아친다.
벽력탄의 화력을 압축시켜 터뜨린 듯했다. 비무대 바닥으로 균열이 질주해 나갔다.
‘큭.’
천소소는 올곧은 자태로 장법을 맞이했다. 잡히지 않은 왼손으로 다음 출수를 준비하면서다.
겉보기로는 고고하게 허리를 편 모습. 거침없이 펄럭이는 옷자락과 대조되어 미려해 보일 정도였다.
초고수들의 겨룸이 자아내곤 하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광익주의 성명절기, 환강이 여섯 겹의 심벽천빙패를 단번에 박살 내는 순간에도 냉정한 시선으로 상대를 살폈다.
여기까지도 찰나였다.
이 출수가 끝나야 의미있는 타격을 줄 수 있다.
싸움을 길게 가져가면 마광익주의 전투 감각에 휘말린다.
큰 초식을 준비해서, 비무를 짧게 끝내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천하에 드문 신공인 심벽천빙패를 믿었다.
우우우웅―!
장심에 깃든 힘은 확실히 무지막지했다. 복부에 끼치는 공력의 여파가 곧장 일곱 겹째를 부술 것 같았다.
허나 내상을 입힐 만큼 치고 들어오지는 않을 터였다.
‘이 한족 사내는 강해. 첫 수를 받아내고 이런 형국을 만들었지. 굉장히 감각적인 손속이었어. 다음 수를 제대로 내치지 않으면 또 한 번 정타를 내어줄 수밖에 없을 거야.’
그녀는 섬광처럼 생각했다. 다음 삼 초식째에 선공을 가져가야 해.
마광익주가 소년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위협적인 초고수로 보였다. 그래서 사내였다.
찰나의 영역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환강의 힘이 복부에 맺힌 무형의 심벽천빙패를 연이어 부술 때까지도 그러했다.
발경이 멈추지 않았다. 근접 격타의 짧은 호흡을 굉장히 길게 가져가고 있었다.
배에 깃든 환강의 장력이 꺼지지 않는다.
만년설 봉우리를 끊임없이 내려치는 벼락 같다.
복부에서 몰아치는 장법의 태풍도, 사고의 영역에서 한참 동안 시선이 마주친 마광익주의 눈동자도.
천소소의 푸른 눈이 커졌다. 명족 특유의 영롱한 벽안이 온전히 드러났다.
‘공력 운용을 추가로……?!’
섬전 같은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만천화우와 환강의 이중 시전이 아니었다. 애초에 공력을 삼중으로 엮어두고 반격초를 내쳤던 것이다.
연이어질 환강을 손목의 내관혈(內關穴)에 포탄마냥 장전했다.
익히 알려진 바로 단기 결전을 선호한다더니, 숫제 생각을 끊어내는 수준이었다. 동격의 흑색고수에게 두 합 승부를 걸어 올 줄은 몰랐다.
이 단타가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은 염두에 두지 않은 걸까.
그때는 여력이 있을 리가 없다. 아무나 단기 결전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저만한 공력의 부하를 견디는 경맥도, 담대하게 승부를 거는 전투의 감각도 믿기 힘들었다.
콰콰콰―!
거센 진동이 시야를 뒤흔든다.
심벽천빙패가 연속으로 부서졌다. 복부를 짧게 끊어치는 듯한 감각이 거침없이 끼쳐 왔다.
배 앞쪽 허공에 부딪친 듯한 마광익주의 손바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환강 경파가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뒤늦게 출수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다.
소용돌이치는 경력의 폭풍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격한 진동과 함께 천소소의 앞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반듯한 이마에 맺힌 상단전 기파가 반격초를 명하듯 이지러졌다.
한천무류빙공 특유의 서리가 낀다. 호신강기를 믿고 큰 초식을 준비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왼손이 살짝 들려 올라간 순간.
일곱 겹, 여덟 겹, 아홉 겹…….
콰콰콰!
의식을 상승의 영역에 담가 놓았는데도 무서운 속도로 박살 났다.
삼화취정 상태의 출수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미 시전된 마광익주의 괴력보다는 느렸다.
쩌어어어엉―!
마지막 한 겹이 부서지기까지 한 호흡이었다.
천소소의 입에서 작은 기침이 터졌다. 맑은 핏물이 정연신의 어깨에 튀었다.
“……!”
순간 비무대 주변으로 빙공이 번진 듯했다. 쉴 새 없이 논담을 나누던 고수들의 입매가 멈췄다.
얼어붙은 것마냥 고요한 침묵이 사방을 물들였다.
그때였다.
목에서 어깨까지 유려하게 닦인 천소소의 승모근 너머.
정연신은 관중석 먼발치의 인물과 시선이 마주쳤다.
백설처럼 하얀 피부의 미남자였다.
걸치고 있는 흑색 장포의 소맷자락이 헐렁한 반면, 팔뚝 어림의 품이 좁아 탄탄한 근육의 태가 옷 안으로 비쳤다.
몹시 날렵하게 짜인 육신이었다.
신검단 용모파기의 상단에 위치한 걸로 안다.
‘보혈대주 진명조.’
창백한 안색에 가느다란 얼굴선을 지녔다.
보혈대주의 전신을 감싼 흑포가 차가운 질감으로 다가왔다. 팔짱을 낀 채 비무대를 향해 턱만 살짝 들어 올리고 있다.
사마외도의 무공을 얼마나 연성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온몸에서 요사스러운 기질이 묻어나왔다.
순간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혼잣말인지, 마광익주에게 건네는 말인지 아리송했다.
정연신은 짧은 순간 보혈대주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망할. 염병할. 제기랄.’
보혈대주 진명조가 무표정으로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