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27
◈ 광예결 (7)
“대주께서 영물의 의중을 느끼는 건가?”
위예령이 뇌까렸다.
그녀는 얼굴 가득 의문을 띄웠다. 지붕 아래 대연무장에서 하얀 제비의 등을 쓰다듬는 정연신을 보면서다.
새까만 옷자락과 그보다 더 짙은 머리칼이 흰빛 깃털에 대비됐다.
신임 마광익주가 대주들의 상징과 같은 영물을 부린다. 눈에 비치는 기질이 조화롭고도 기이했다.
드물게 띤 미소조차 신비스러웠다. 위예령에게는 그랬다.
“우리 씨족의 느낌은 전혀 없는데, 설마, 성주께서는…….”
새파란 벽안에 이채가 스쳤다. 의혹과 추측이 전광처럼 반짝이고 사라졌다.
‘한족에게 우리 나무의 보물을? 씨족의 여론이 허락할 리 없건만.’
어떤 일보다도 중한 안건이 될 무언가였다. 용납 불가다. 황실에 흔한 성주 직전제자 신분으로도 안 된다.
피치 못할 대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혹은 마광익주가 씨족에 준하는 신분이 되지 않는 한…….
위예령이 살짝 고개를 저을 때였다.
지붕 한켠을 딛고 선 강창무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영물과 의사소통하는 일이야 명족 백색들도 가능하지 않나. 우리 대주의 격이 훨씬 높다. 무엇이든 가능해. 흑색 초고수들이 하나둘쯤 감추고 있다는 한 수로 치기도 부족하지. 원래 본성의 대주들은 신비로운 자들이다. 당장 우리 전대 대주의 내공만 해도…….”
강창무는 천림대 출신으로, 천권용력신 하후위진이 그의 대주였다.
“축기량만 따지면 자색을 논해 볼 정도란 말이 맞아. 흑색쯤 되면 그 같은 공능을 몇 가지씩 갖추고 있는 법이지. 하물며, 최연소로 대주의 위계에 오른 우리 대주는 오죽하겠나.”
“내 얘기는 그게 아닌데.”
“지금 마광익에서 가장 주목받는 청색이 유세를 부리는 건가? 씨족의 우월함을 따지는 놈들은 십삼천 놈들 중 암야전(暗夜殿)뿐인 줄 알았는데.”
강창무가 두꺼운 목소리로 놀리듯 말했다.
현재 위예령에게 마광익의 이목이 쏠려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궁술 무인은 귀하다. 명족 고수라면 더욱 그렇다.
마광결은 근접 무공이었다. 중장거리를 감당할 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위예령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월궁귀는 화살 하나로 점창파의 사일검법을 꿰어 맞힌 무인이었다.
고귀한 씨족으로서 무력대의 전후좌우를 맡는 청색고수.
중견 신입 가운데 마광익 무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잿더미 같은 놈팽이들을.”
위예령의 미간이 모였다. 드물게 인상을 찡그린 것이다.
“천림대주께서도 엄연히 명족이신데, 넌 우리 씨족의 금기를 모르는 건가? 다신 함부로 입에 담지 마. 빗대지도 말고.”
“주의하지.”
큼지막한 어깨를 으쓱인 강창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얀 제비, 백연의 발밑에서 서찰을 빼내 읽은 대주가 대연무장을 나서고 있었다.
* * *
“썩을! 망할!”
쉰 명 규모의 고수들이 척박한 땅을 내달렸다. 메마른 대지는 경공 질주의 발구름에 디뎌지고도 먼지를 내지 않았다.
선두에 선 두 사람은 입황성의 흑색 장포를 걸쳤다.
거구의 사내와 날렵한 여인의 모습이 대비되는데, 주변에 압력으로 끼치는 존재감은 동격이었다.
욕설을 내뱉은 하후위진이 손안의 서찰을 구겼다. 대노한 기색과 달리 발놀림은 가벼운 바람 같았다.
출중한 후배의 조언으로 말미암아 보신경을 고친 덕분이다.
“기이한 술법무공을 부린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데, 그게 굉장히 막강하단다. 파문당한 모산파 도사들이 신강에 자리 잡기도 전에 항복했다더군. 순천익을 잡는 데 일조했을지도 모르지. 빌어먹을 일이다!”
그가 말을 씹어뱉듯이 얘기했다.
곁에서 달리던 천소소의 머리칼이 길게 찰랑였다.
명족 초고수의 흑발은 경공의 역풍을 맞으면서도 뚜렷한 빛깔을 냈다. 하후위진과 같았다.
“명교 소교주의 연배가 마광익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던데. 술법무공의 대종사라는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하고.”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공력이 실린 음성이 광풍을 뚫고 선명하게 울렸다.
“여건과 운이 따르면, 수하들을 이끌고 무력대 하나를 패퇴시켜도 이상하지 않아.”
조곤조곤하게 말을 맺는다. 하후위진이 고개를 저었다.
“하도운이 당했다고 생각하나?”
“순천익의 연통이 끊긴 지 너무 오래됐어.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납득해야 해.”
“……절진을 만들어 두었을지도 모르겠군. 비열한 사술을 썼을 게다.”
흑색고수는 천하를 논하는 자들이었다.
원평일검장의 회합이 끝나는 즉시 출도했다. 고대하던 파백총람의 주석본을 보지 못한 채였다.
임무 목표가 사마외도 수괴의 머리다. 정파 무맥의 파훼법이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대총관은 그들을 가차 없이 내보냈다.
하후위진은 대총관 임진명의 능글맞은 턱수염을 떠올리며 씩씩거렸다.
“썩을 놈. 연배도 낮은 게, 버르장머리 없이.”
“우리가 배분을 따지면 본성은 파탄이 나는 거야.”
천소소가 무심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신입에게 이상한 심술을 부렸다던데.”
“신입? 섬예 말인가?”
대번에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대주들이 논할 만한 신입이라면, 원평일검장의 초고수들에게 한하여 다음 대 마연적으로 꼽히는 신임 마광익주뿐이다.
하후위진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심술이 아니라 사실을 지적한 게지. 파, 흠, 총람을 인질로 삼지 않았나. 그 품행에 걸맞은 자질과 위치였다만, 한 번쯤 오만한 심성을 꼬집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사실이지 않나.”
“마광익의 청명과 연이 있는데.”
그녀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야기를 들었어. 마광익주는 몰랐던 거야. 우리한테 주석이 필요할 줄은 상상하지 못한 거라고 하더라. 좋은 마음으로 건넸을 텐데, 우리 응대가 잘못돼서 심기가 상했을 거라고.”
“뭐라?”
“그 연배에 그런 무위야. 자기 자질에만 익숙한 게 아닐까.”
높낮이가 낮은 어조였다. 담담한 말이 하후위진의 기억을 끌어올렸다.
―생각지 못했습니다. 기초지공이지 않습니까. 주석을 달기에는 여백도 좁고. 어차피 실전에 임할 때는, 그저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대로 하면…….
진솔한 이야기였다는 의미다. 믿기 힘든 일인데, 설득력이 있었다.
천소소가 다시 입술을 뗐다.
“기초지공…… 신입한테는 그게 사실이었던 거지. 너는 그걸 오인해서, 신입에게…….”
으아아아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기다란 포효가 길바닥을 때리며 질주했다. 사자후에 가까운 울림이었다.
공력이 섞인 목소리가 수치심을 품고 대기를 찢어발겼다. 천림대주의 입에서 터진 충격파는 대열의 뒤까지 영향을 미쳤다.
천림대 백색무사들의 등에 매인 침낭이 연신 밀려났다. 발로 차는 듯했다.
천림대와 선목령.
신강에 터 잡은 최악의 십삼천과 조우하러 가는 길.
두 대주에게는 그들만의 임무가 있었다. 반드시 완수해야 했다.
* * *
마광익이 광예결 수련에 몰두한 한편, 입황성의 내성은 큰 행사의 준비로 분주했다.
곳곳에서 석재 구조물이 올라갔다. 본성의 중앙 연무장에 비무대가 만들어졌다.
승단식.
본성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녔다.
대주들의 그릇을 확인하는 자리고, 본성 전력을 객관화하는 심사대이며, 성취에 힘쓴 무인들에게 보상을 내려주는 행사다.
입황성에서 더할 나위 없는 명예로.
마광익 전각까지 소란스러운 기척이 끼쳤다. 그럴 만했다. 황보세가의 태염룡은 예전부터 유명한 후기지수였다.
용봉지회를 몇 번이고 제패하여 제남 최강의 신진으로 불렸다.
오늘, 무명옷을 입고 청색 승단을 노린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무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신분이었다.
당대 마광익주가 이끈 환익대의 일원으로서 웬만한 청색을 능가하는 공훈을 세웠다.
십전문과 순마련의 고수들을 몇 명이고 격살했고, 환익대의 행동대장으로 행세했다.
한중의 무림맹회로 가서는 심무련 검존의 무력대를 감당해냈다. 마광익주가 영천검귀를 만나러 오기까지 누구도 죽지 않았다. 공적이 충분했다.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이제 선배 행세 못 하는 거야?”
“우린 무명이잖아. 어리고.”
마광익 무인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무명제자들은 더욱 그랬다.
곁에서 양귀비를 씹고, 몰래 술을 퍼마시는 모습을 보면 없던 정도 떨어지는 법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대주가 창시한 무공에 집중됐다.
대연무장에 수시로 모여 광예결을 수련했다. 무아지경이라 할 정도였다.
완전히 빠졌다. 백색과 청색고수들은 물론, 어린 무명제자들까지 그러했다.
“대주께서 공증인으로 가셨다고 했지?”
“맞아. 여쭤볼 게 많은데.”
“입황달변 형님은 무복을 바꿔 입을 수 있으려나.”
“글쎄. 워낙 애매해서. 칼을 들면 무섭긴 한데…….”
“금제를 못 풀었잖아. 안 될 거야.”
“잘됐으면 좋겠다.”
이야기에서 농담과 진심이 오고 갔다. 입황대협 헌원창에 대한 본성의 관심을 방증하는 대화이기도 했다.
태염룡의 존재가 큰 탓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신임 대주가 창시한 절기를 가장 먼저 익혔다 해도 그랬다.
“우리 대주님, 엄청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지?”
“맞아. 내공이 뭔지도 알려 주시더라. 마을 무관에 있는 줄 알았지 뭐야.”
“우리 자질도 꽤 특출난 편인데…….”
“대주님이 부처님 같으셨어. 그런 면이 있을 줄 몰랐는데.”
“마광익주를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나?”
“당연하지. 칼밥을 같이 먹는 한식구인데…… 누구세요?”
마광익 무명제자가 뒤돌아봤다. 불현듯 들려온 여인의 음성에 무심코 대꾸한 직후였다.
사박.
하얀색 비단으로 두 눈을 가린 여인.
허리를 곧게 세운 균형감이 우아했다. 어깨 아래로 새까맣게 내려온 머리칼에서 햇빛이 흐른다.
새하얀 궁장과 대비되는 흑발이었다. 유난히 짙은 색감으로 시선을 하나둘씩 끌어오는 가운데, 무림맹회의 예 소저가 나긋하게 걸어왔다.
“한중 무림맹회의 대내총군사가.”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삼가 마광익주의 식구들께 인사드려요.”
주변을 둘러보며 입매를 올린다. 무명제자에게 말을 건 직후부터 삼엄한 공기가 짙어졌다.
마광익 고수들은 예 소저가 대연무장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강창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맹회의 대내총군사? 용건이 뭐요?”
“여기 대주님을 알현하러 왔죠. 기별을 몇 번 넣었는데… 답장이 없어서.”
“외인이 올 수 없는 곳이오. 속히 돌아가는 게 좋겠소.”
“그 말은 여기 성주께 해 보는 게 좋을 듯싶은걸요?”
그녀가 매끄럽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연무장의 소란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흙먼지를 부드럽게 품고 올라가는 바람 소리와 함께였다.
저벅.
담장 한켠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던 청명이 바닥에 내려섰다. 허리춤에 매인 검파가 무형의 검기로 번뜩였다.
햇볕이 그쯤에서 구부러지는 듯했다. 동시에 마광익의 여러 검객들이 기파를 일으켰다.
화아아악!
허나 그들보다 먼저, 푸른 옷자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흑발을 길게 나부낀 백미려가 예 소저의 면전에 내려섰다.
정연신이 속내를 터놓는 이들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은 차였다.
“그 안대부터.”
일련검매 백미려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지금 벗어 봐라.”
* * *
신임 마광익주가 중앙 연무장의 비무대 한켠에 섰다.
모여든 인파가 굉장히 많았다. 무료한 생활에 몇 없는 행사였다.
거대한 비무대를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이들의 머릿수가 수백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선 것만으로도 기가 다할 만했다.
정연신은 달랐다. 일말의 피로조차 느끼지 않았다.
복귀 후에도 여러 일을 거듭 치렀는데도 전신에 강건한 힘이 흘렀다.
정가동공으로 닦인 몸에, 능법광륜기가 선사하는 활력이 엄청난 덕분이었다. 초고수들 가운데 지구력을 논한다면 첫 손에 꼽힐 만했다.
“다음.”
그가 말했다.
백색무사들의 비무가 한 차례 끝난 뒤였다. 두 사람은 마광익주를 흘깃 살피며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이어 다른 무인들이 쌍을 이루어 올라왔다. 그들 역시 행색이 비범했다.
남녀 한 쌍으로 강렬한 기파를 풍겼다. 백색으로 입문할 때쯤의 정연신에 비견될 정도였다.
입황성 승단식이었다.
흑색이 승부를 살펴야 했다.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섬서 출도 전 마지막 임무로, 정연신의 기감이 예민하다는 명목으로 뽑혔다.
신임 대주에게 흑색의 직무를 경험시키고자 하는 의도라 했다. 대총관의 이야기였다.
정연신의 첫 번째 대주 회합에서 결정된 바이기도 했다. 이미 인원 배분이 끝난 일이었다.
“시작하라.”
식순을 진행하는 정연신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마광익주 섬예.
하얀 북명검을 허리에 패용한 채 흑색 장포를 곱게 다려 입었는데, 메마른 입매에서 편치 않은 심사가 드러났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주변의 누구도 정연신이 자리한 비무대 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정연신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마땅한 상황도 아니었다.
‘혜아야.’
종남파의 소식을 들었다.
―슬운검파(膝雲劍派)와 취호문(吹湖門)이 멸문당했습니다. 종남의 속가문파로 서안에 자리해 있었지요. 종남 본산은 더욱 심하다 합니다. 도관들이 터 잡은 산 아래가 완전히 불탔고, 종남파의 생존자를 추산하기도 힘들다는 보고가 들어왔지요.
―검룡 위지묘화가 검선의 제자를 데리고 탈출했다는 문구도 있었습니다. 이후의 정보는 없는데, 그게 곧 희소식이지요. 패검종이 검룡을 사로잡는 순간 종남의 명맥을 끊는 셈이니, 천하에 알리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무사하다고 봐야 합니다.
대총관의 말을 속으로 되뇔 때쯤 비무가 시작됐다.
휘풍검(輝風劍) 도진(都珍)과 권린마(拳潾魔) 하후산산(夏侯刪山).
탄탄한 허리에 검을 찬 사내와 묵색 수투를 낀 여인이 마주했다. 한족 율령대와 명족 멸섬대 무인들이었다.
앙숙으로 유명한 이들이 엮였다. 의도적인 대진이었다. 총관부는 간혹 이런 식으로 무인들의 실전 기량을 시험하곤 했다.
“이리될 줄은 몰랐소.”
도진의 날카로운 눈매가 하후산산의 작은 주먹으로 향했다.
“잘됐지 뭐. 이걸로 은원을 정리하자고.”
입꼬리를 올린 그녀가 말했다. 이어 양쪽 주먹을 쿵 부딪쳤다.
권린마 하후산산은 입황하후가의 금지옥엽으로, 천림대주 하후위진의 조카였다.
도진의 집안에서 넣은 매파를 모질게 내친 바 있다.
입황성 무인들의 성품은 저마다 달랐다. 민생 안정의 기치 아래에 무수히 많은 개성을 지닌 기재들이 모였다. 갈등 없는 방파가 아니었다.
도진의 입술이 떨렸다.
“은원이라. 그대의 집안이 우리에게 준 수모를…….”
“말은 바로 해야지. 관심이 없다는데 추파를 보낸 게 도 소협이잖아. 장강의 물살처럼 질리도록 말이지.”
하후산산이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시작하라고.”
멀찍이 서 있던 마광익주가 툭 내뱉었다.
도진이 움찔할 때였다. 하후산산은 제 대주에게 명을 받은 것마냥 잽싸게 기수식을 취했다.
까만 수투로 덮인 손바닥이 일순간 가공할 경력을 내뿜었다.
쾅!
무색 경파가 폭발했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장풍을 동반한 일격이었다.
도진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비산하는 흙먼지와 함께였다. 느낌 같아서는 흉골이 안쪽으로 휘어진 듯했다.
숨통이 턱 막혔다. 장법 한 수에 전신의 호신강기가 잠시 옅어졌다.
하후산산이 단기전을 걸었다. 일격에 실린 공력이 어마어마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념이 묻어나왔다. 섬예의 활약 이후로 본성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전투법이었다.
도진은 굳은 얼굴을 유지했다. 익히 예상하고 올라온 바였다.
그는 한때 깊은 마음으로 사모한 여인의 성품을 꿰뚫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짜낸 파훼 검식과 함께.
율령대 무인들의 강점은 누구나 안다. 따지는 쪽이 모자란 인물이다. 강호는 인명에 너그럽지 않았다.
‘일검 승부요……!’
통제가 불가능한 호흡을 무시하며 진기를 끌어 올렸다.
손아귀를 타고 올라간 내공을 특정한 공력 구조로 짜냈다. 율령대 비전의 파훼법을 기수식에 실었다.
쿠웅!
연격을 날릴 셈으로 지척까지 쇄도한 하후산산의 눈썹이 올라갔다.
시야가 엄청나게 밝아졌다. 사방 곳곳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도진이 양손으로 내려친 검이 무형의 진기와 함께 햇빛을 끌어모았다.
“휘검일봉(輝劍一縫)!”
관전석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터졌다.
도진의 가문은 명문 검가였다. 매서운 검법 절초로 유명했다. 하후산산의 전진 보법을 노려 절묘하게 내려친 검초도 그랬다.
일순간 칼 귀신으로 보일 만큼 적절한 출수였다.
무인의 기량이 지닌 바 전력을 넘어서는 날이 간혹 있는데, 그러한 행운이 오늘 찾아왔다. 도진이 의도치 않은 바였다.
‘더 빠르게 내쳤어야 했다! 이리 짧은 간격으로는……!’
콰아아악!
권린마 하후산산이 연성한 붕맥권법(崩陌拳法)의 경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녀의 몸에서 무색의 파동으로 휘날린다.
진기의 짜임새를 낱낱이 파헤치는 일검이었다. 강풍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피차 움직임을 틀지 못했다.
흔한 일이었다. 무인은 도검과 내공을 다루는 자들이다. 비무 중 불상사가 드물지 않았다. 그로 인한 죽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후산산은 허리를 낮추고 쇄도한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짧은 순간이었다.
검격 경파가 온몸을 저며 오는 게 전신에 쥐가 난 것 같다. 못해도 중상이다. 죽을지도 모른다.
짙은 우윳빛 검광이 쇄골부터 베어낼 듯 커진 순간.
스윽.
빛살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검극처럼 날을 세운 정신이 아니었다면 결코 인식하지 못했을 무언가였다.
도진의 검이 우뚝 멈췄다. 두 손가락에 끼인 탓이다. 어느새 옆으로 파고든 마광익주가 팔을 뻗고 있었다.
담담하게 들어 올린 손 아래로 칠흑 같은 소맷자락이 길게 늘어졌다.
“권린마가 졌고, 휘풍검이 이겼다.”
검을 막아낸 손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아지랑이처럼 흘렀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광예결의 경파였다.
세공된 금강석마냥 손을 아름답게 탈바꿈시키는데, 광채의 기류 속에서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몹시 정교한 출수라는 의미였다. 차원이 다르게 고절했다.
―얼른 내려가라. 번잡스럽다.
마광익주의 전음이 두 사람의 귓전에 흘러들었다. 속삭임 같은 말이 천둥처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