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387
◈ 신검단 (3)
흐린 경파의 회오리.
말 그대로 하늘까지 닿았다. 공월무가 만든 반구형의 공간이 실제 창천에 이르지는 못한 까닭이다.
이 순간 호신강기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용오름이 천장에 금을 내고 있을 정도로.
콰콰콰콰콰―!
소용돌이 표면에서 광륜의 파편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바윗덩이가 부서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였다. 술법무공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점차로 금이 갔다.
회오리 속에 사천제일인이 갇혀 있었다.
강제로 허공에 떠오른 모습이다. 허리춤에 걸려 있던 호리병은 산산조각 난 지 오래였다.
“이거… 이건…!”
황금빛 깃털 형상의 호신강기가 회오리에 끊임없이 갈렸다. 희미한 빛줄기들로 이루어진 강풍 틈새에서 핏물이 스며 나왔다.
그간 금시문주는 허공답보와 능공허도를 일상적으로 펼쳐 왔다.
상공에 몸을 띄운 것만으로는 그녀의 운신을 제약하지 못한다. 본래는 그렇다.
[사천의 꽃비는 교룡마저 가둔다고 했지. 사람도 다르지 않을 거다.]정연신이 말했다.
그의 호신강기는 만천화우에 기반을 뒀다. 얼핏 무질서한 듯해도 생각을 따라 움직인다.
심지어 ‘성신’의 소용돌이는 모든 궤적을 투로로 봐도 무방했다. 어검의 묘리가 더해진 까닭이었다.
“……!”
금시문주는 출수하지 못했다. 허공에서 꿈틀거릴 뿐이었다.
손목을 움직이려고 하면 팔꿈치가 통째로 들려 올라갔다.
발바닥 용천혈로 추진 경파를 내뿜고자 할 때는, 불현듯 짙어진 칼바람이 오금과 허벅지를 비스듬히 밀어 버렸다.
강맹하게 휘몰아치는 흐름이 엄청나게 복잡했다. 두 사람이 금시문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달랐다.
허공에서 몇 번이고 꺾이고 휘어지는 칼바람들. 모든 궤적이 변초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세월이 녹아 있었다.
“아… 아……!”
[이만 죽어라.]그녀를 조용히 올려다보는 마광익주.
근육의 움직임을 모두 통찰하고 있다. 혈도에서 일어나는 공력 파동마저 즉각적으로 꿰뚫어 보고 대응한다.
인체에 통달했다. 천고의 감각마저 지녔다.
동등해진 기력.
상극의 성질이 무의미해진 내공.
반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호신강기의 파편들.
그 모든 빛무리를 선룡이화결로 조종하는 정연신의 감각과, 이백여 합을 나누는 동안 완전히 파헤쳐진 적의 움직임.
금시문주는 근접 박투와 조공을 장기로 삼는 인물이다. 공월무마저 근거리 출수를 보조하는 기예였다.
싸움이 막 시작될 무렵에도 어검에 당해 속절없이 솟구친 바 있다.
완성된 만천화우의 형(形)이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형편은 그녀와 교룡이 다르지 않았다.
새는 비바람을 피하지 못한다.
방어가 불가능했다.
끼아아아아악―!
그녀가 지르는 비명은 맹금의 울음소리 같았다. 사방으로 메아리치는 반향이 몹시 컸다.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내뱉는 듯했다.
정연신은 우두커니 선 채 성신을 유지했다.
‘조금만 더.’
머릿속 상단전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은, 오히려 성신이 초월적인 고수에게 통하는 절기란 것을 방증했다.
현기증은 아무것도 아니다. 금시문주가 여럿으로 보이고 있어도 견딜 만했다.
이윽고.
반투명한 회오리가 공월무의 천장에서 콰지직 파열음을 냈고, 그 자리에서 수백 줄기의 바람으로 화했다.
무수히 많은 가닥으로 풀어 헤쳐진 소용돌이가 인근의 흙먼지를 밀어내고 사라졌다.
사아아아―
은은한 별무리가 되돌아와 정연신의 몸에 스민다.
그는 잠시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
빛의 파편들이 다시금 심장으로 모여 광륜을 이뤘다. 이전과 같은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력을 크게 쓴 까닭인데, 적당한 시간을 잡고 운기조식에 임하면 나아질 문제였다.
‘사천제일인, 초월자를 이긴 대가로는 가벼워.’
정연신은 담담히 생각했다.
눈에 힘을 주자 시야가 한결 선명해졌다. 풀과 나무 조각 한 점 없이 황폐해진 땅 위에, 먼지를 뒤집어쓴 넝마가 있었다.
금시문주였다.
산산이 찢긴 옷자락 틈새로 살갗 대신 핏물이 비쳤다. 시뻘겋게 번들거리는 모습이 참혹했다.
몸을 누인 땅으로부터 검붉은 영역이 커지고 있었다.
하아…….
가느다란 숨결이 느껴졌다.
내공 호흡이었다. 희미하게나마 공력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게, 운기조식에 들어간 모양새였다.
정연신은 무심코 십전문주를 떠올렸다. 자신과 혈염교주에게 두어 번 죽다 살아난 인물.
절세고수들은 하나같이 질릴 정도로 선천지기가 강했다. 불로장생하는 혈염교의 귀족들과 다를 바 없을 만큼.
‘머리.’
저벅.
그는 무거워진 다리를 옮겼다. 체내를 안정시키는 정가동공의 발동과 함께였다. 쌔액쌔액거리는 숨소리가 점차로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금시문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오지, 마. 저리 가…….”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금시문주의 지척에 이르러 다리를 멈춘 순간, 발치를 맴돌고 있던 분진이 훅 하고 좌우로 흩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코로 모여들던 자연지기의 흐름도 끊겨 버렸다.
기세를 뚫는 발걸음. 환익보였다.
금시문주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본래 그랬던 것마냥 아직도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법으로, 운기를…?”
“너와 맞서면 팔보까지는 완성될 줄 알았다.”
정연신이 말했다. 파훼식을 역으로 파훼해 나가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보법 증진에는 효과가 없었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시금석은 많다. 여기서 나가면 강호 전역의 태풍으로 자리 잡게 될 터였다. 절세고수들의 도전을 예상해 둬야 했다.
“성신이라도 연마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호신강기가 제법 괜찮지 않았나?”
“그런 건, 호신강기가… 아니야…….”
패자의 이야기였다. 정연신은 자신이 할 말만 했다.
“운회봉에 그만한 힘을 동원했으니, 사천의 사마외도에게 남은 전력은 없겠지? 여령과 패검종이 타지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런 거 하나하나… 몰라.”
엎어진 채 빨갛게 터진 입술을 달싹이는 금시문주. 이내 고개를 살짝 든 그녀와 정연신의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한 거야……?”
마침내.
천하를 내리깔아 보던 사천제일인의 관심이 온전히 정연신에게 향했다.
참오하여 깨달은 삼라만상의 이치로 무(武)를 쌓는 미치광이들, 절세고수 특유의 광기 어린 눈길이었다.
“뭘?”
“방금 그 초식은… 만천화우만이 아니었어. 발산 구결, 강기(罡氣), 이기어검, 조각마다 다른 투로… 인간의 상단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냐. 날 사냥하라고, 무당에서 네게 양의심공을……?”
무당파 양의심공. 머릿속 생각을 여럿으로 나눈다는 절세 무학이다.
언젠가 정연신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전신 공력을 환강으로 격발시키는 종극뢰와 선룡이화결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우웅―
체내를 안정시키는 정가동공의 대주천을 한층 강하게 일으키는 한편, 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호신강기에 어검의 묘리를 덮어씌우는 걸 하나의 무공으로 삼아 봤다. 흐름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았어.”
“…말장난이야.”
“평생 연마한 무공들을 한 번에 풀어내는 게 절세고수들의 구명절초라고 했지. 틀을 깬 네 공월무가 견식을 넓혀 줬다.”
독문무공 중 둘을 합일시켰다.
정연신은 여뢰의 손잡이를 엄지로 매만지며 생각했다. 가닥을 잡았으니 더 나아갈 수 있어.
금시문주의 눈동자에서 금빛이 옅어졌다.
“달라. 공월무는 기예가 아니라 심상이야. 상단전을 숨 쉬듯이 써도, 그렇게는…….”
“숨을 쉬는 게 어려운가?”
“…….”
정연신은 조용해진 공간에서 심득을 다듬었다. 금시문주는 천하가 인정하는 사천제일인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문답에도 통찰과 깨달음이 실려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조차 새삼스럽게 실감시키는 위치. 공월무에 대한 견해도 마음에 새겨 둘 만했다.
‘기예가 아니라 심상이다…….’
내심 뇌까린 정연신은 검을 고쳐 잡았다.
“아까는 천하로 가겠다고 했었지. 넌 영물의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디를 생각했나?”
“…이 땅의 남단.”
“해남 이무기는 본성의 패협께서 잡으러 가셨는데.”
외조부의 얼굴을 떠올린 정연신이 말했다. 자색의 강호에 대해 담소를 나누던 중 지나가듯이 들은 얘기였다.
전대 신검단주를 잘 아는 걸까. 금시문주는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꿨다.
“그럼 서쪽.”
“왜지?”
“고향이 있어. 산이 예쁜 곳이야.”
그녀가 말했다. 정연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뒤에 봐라.”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환익보가 운기조식을 끊어 버린 시점에서 끝났다. 성신을 온몸으로 감당했고, 극심한 내상을 제때 수습하지 못했다.
금시문주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죽음이 급속도로 다가왔다.
정연신이 물었다.
“무고한 이들과 민생을 해치면서까지 교룡에 집착한 이유가 뭐지?”
“그게 내 천명이니까.”
그녀가 하늘이 내린 뜻을 얘기한 직후였다.
화악―!
불현듯 황금색 빛무리가 일어나 정연신의 발치까지 번졌다. 금시문주의 몸에서 비롯된 광채였다.
일순간 그녀의 몸 위로 거대한 새의 형상이 명멸하고 사라졌다.
“사람은, 이름에 집착하고… 후대의 관심을 원하지만…….”
금시문주가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술을 들이켤 때 간혹 보이던 무미건조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손때도 남기지 않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존재도 있어. 너희 손에 더럽혀지는 걸 바라지 않아서.”
이적에 가까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녀의 몸이 금빛으로 화해 갔다. 빠르게 희미해지는 모습이 몹시 신비로웠다.
산들바람마냥 정연신의 바짓단을 힘없이 쓸어대는 공력 파동.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 괴력난신이었던 걸까. 영물은 좀처럼 자신의 흔적을 지상에 남기지 않는다 했다. 인간의 탐욕이 시체에도 미치는 까닭에.
“난 패해서 죽는 게 아냐. 사바세계를 벗어나 승천하는….”
쿵!
돌연 허공에서 일어난 무채색 파문이 밑으로 내리꽂혔다.
“……!”
금시문주를 찍어누르고 반투명하게 흩어지는 바람. 그녀의 몸이 삽시간에 선명해지는 동시에, 금빛 광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네 술법을 한 번 망친 적이 있는데도 헛수작을 부리는군.”
손을 한 번 털어낸 정연신이 검파를 고쳐 잡았다. 사천에 온 뒤로 술법무공을 제법 많이 겪었다.
전투에서 쓰일 만큼 빠른 시전이 아니면 발경으로 봉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번 강호행을 끝낼 때였다.
“이만 죽어라.”
신검 여뢰가 섬뜩한 빛줄기로 화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달린 검격이 퍼억 하고 금시문주의 목을 끊어냈다. 다소 힘이 빠진 탓에 무딘 일검이었지만, 충분히 그녀의 머리를 취할 만했다.
툭.
경악 가득한 얼굴이 땅을 구른다.
동시에 머리 위 공간이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공월무의 영역이 부서지면서 밤하늘이 크게 드러났다.
정연신은 곧장 눈을 감았다. 그간 쌓인 금시문주의 발경력을 정가동공으로 흩어냈으니, 짧은 시간이나마 광륜을 돌려 축기해야 했다.
바깥은 전장이다. 공월무의 소멸과 함께 심장에 깃들어 있던 교룡의 영성도 사라지고 있었다.
‘완성지경의 법력을 기억해 두자.’
광륜의 느낌을 머릿속에 심어두는 한편, 그는 선배 대주들을 염려했다.
바깥에 모인 자들 중 다수가 대방파의 정예였다.
하나같이 여느 낭인들보다 고강한 데다 머릿수마저 수백에 이르렀다. 누구라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전력이다. 또 얼마나 지난한 싸움을 거쳐야 할까.
‘심한 내상은 치유하지 못했는데.’
사천제일인을 격살한 여파는 굉장히 컸다. 내상과 외상이 모두 그랬다.
끊어지고 터진 경혈과 뼈까지 닿은 상처. 잠시 일으킨 정가동공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소림의 명정단은 이제 없다. 태염룡에게 맡겼던 천주지문의 비약도 환골탈태에 쓰였다.
본성의 대주들에게 주어지는 요상약도 있었지만, 금시문주의 조공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아아―
밤하늘이 점차로 커져 간다.
정연신은 우두커니 선 채 자신의 무공을 헤아렸다. 검뢰섬릉식과 시화무극수는 안 된다. 몸 안으로 튕기는 힘과 공력 소모가 적어야 했다.
‘한 손 백타로 가자. 검법으로 보조하고.’
일전에 언가제일권에게서 영감을 얻은 싸움법을 떠올린 직후였다.
느릿하게.
반구형의 공간이 완전히 걷혔다.
광활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심야에 이른 산 특유의 풀 내음이 끼쳤다. 몹시 비릿했다.
촘촘히 반짝이는 별무리 아래.
시체 밭이 있었다.
부러진 병장기들이 온천지에 박힌 광경. 심후한 내공이 들어간 광역 절기를 몇 번이고 얻어맞은 듯, 굉장히 넓게 패인 구덩이도 군데군데 보였다. 고인 핏물에서 악취가 번졌다.
고요한 밤이었다.
무수히 널브러진 주검들 틈새로 십수 명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제각각 몸을 돌리거나 일으킨 까닭이다.
은은한 별빛이 그들의 새까만 장포를 향해 쏟아졌다.
“…….”
정연신은 묵묵히 그들과 눈을 마주했다. 발치에 두 동강 난 금시문주의 시신을 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