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424
◈ 무맥 (5)
* * *
낡은 미닫이문이 드르륵 소리를 냈다.
문을 닫고 들어온 정연신을 향해 오래된 나무 냄새가 훅 끼쳤다. 재(齋)를 지내는 법당 특유의 은은한 향내와 함께였다.
소림사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사찰. 큼지막하고 둥근 목재 탁상에 둘러앉아 있던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 작은 몸짓만으로 장내의 공기가 반투명하게 출렁인다. 별달리 강하게 기파를 뿜어낸 이가 없는데도.
‘짙다.’
정연신은 생각했다.
앞서 유현과 실없는 대화를 나눈 덕에 강호 최상층부 회합에 대한 부담을 다소 덜어낸 참이다.
하지만 이 회합장에 실린 무게감이라면, 그 소천무적의 마공 호흡조차 무겁게 만들 터였다.
“자색께서 오셨군.”
소년의 얼굴로 노인처럼 웃은 고검이 앞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무당파의 절세 안법을 수십 년간 연성한 눈동자로 눈짓하는데, 정연신은 그 시선에서 온갖 방향으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궤적을 느꼈다. 투로였다.
그는 다소 경직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구대문파라는 대방파를 저마다 홀로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정연신은 이제 명실상부한 입황성의 얼굴이었다.
“방장께서 오시고 있소. 편히 기다리시오.”
백약사태가 온화하게 주름진 미소로 말을 건넸다. 그녀에게 목인사로 답례한 정연신은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자 노력했다.
앞서 율하낭랑을 들여다봤다가 일어난 불상사 탓이었다. 그의 각법은 실전 성취로 충분했다.
“…….”
고즈넉한 침묵이 흘렀다.
청성과 아미, 화산의 장문인과 고검진인이 저마다 정연신을 힐끗, 혹은 드러내 놓고 응시했다.
개중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 이는 백약사태와 율하낭랑뿐이었다.
정연신은 그들의 시선을 비스듬히 비껴냈다.
감각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웬 실타래들이 살갗을 간질이는 듯했다.
이 순간 구파 절세고수 네 사람의 몸에서 묻어나는 세월이, 미세하게 맥동하는 그들의 근육, 경혈, 내공 호흡이 굉장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율하낭랑이 입술을 뗐다.
“다들 비무대회의 인선은 정하셨나요?”
“낭랑께서 먼저 말을 꺼내실 줄 몰랐소. 화산파는 자신이 있나 보군.”
청성 장문인 청수진인이다. 명족답게 목소리에 나지막한 음률이 실린 듯했지만, 그의 귀는 신검처럼 곤두서 있었다.
일문의 장문인으로서 화산지약의 결과에 민감하다는 의미였다.
정연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화산지약은 구파와 입황성의 대결이 아니구나.’
광활한 정파 강호의 각축장이라 할 것이다.
무림인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두 가지가 그들의 전부다. 스스로 일군 무위와 명성. 풍진 강호를 살아가는 자들은 무공으로 존중받고 별호로써 명예욕을 채운다.
설령 제 자신의 성취와 명성에 관심이 없는 자라 해도, 사문의 이름에 먹칠할 상황이 오면 동귀어진을 택하고 만다.
앞서 고검이 천하제일 비무회라고 했다. 재화와 권세 따위의 사사로운 이득에 초탈했다는 구파조차 가볍게 임할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이요? 무슨.”
율하낭랑은 설레설레 손사래를 쳤다.
“우리 본산 제자들이야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다른 문파들도 워낙 쟁쟁해서…….”
낭랑한 목소리로 화산과 타 문파를 모두 높인다. 자연스럽고도 고매한 언행. 정연신은 티 한 점 없이 만개한 매화를 떠올렸다.
어쩌면 백도 정종의 신공절학보다 눈부신 기질일지도 몰랐다.
“화산은 자신감을 가질 만하지. 장문인 아래로 검절과 삼보검룡(三寶劍龍), 난검(爛劍)이 있지 않소? 모든 배분에 빼어난 검수들이 가득하니, 화산이야말로 인선을 골치 아프게 정할 필요는 없을 듯싶어 부럽소.”
청수진인이 고개를 젓자, 율하낭랑의 입술이 옅은 호선을 그렸다.
“그러는 청성 장문인이야말로 비밀리에 청운검법(靑雲劍法)과 적하검법(赤霞劍法)을 합일시킨 기재를 키우셨다던데… 그 정도면 일대제자 배분에서는 적수가 없지 않을까요? 장래의 청성을 그 제자에게 거셨잖아요? 적운룡이 아니라.”
“아직 미진하오. 청운적하(靑雲赤霞)에 제대로 입문하지 않으면, 무당 장봉(掌鳳)의 십단금과 소림 십팔나한의 수좌가 내치는 백보신권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 테니.”
실로 어지럽다.
기라성 같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파의 역사가 곧 강호의 역사인데, 흔히 천년무맥이라 일컬어지는 대방파의 무학과 영약을 계승받고 협명을 떨친 이들이 등봉현으로 모이는 것이다.
정연신의 눈매가 미세하게 내려갔다. 별다른 신경전이 아님에도 압박감이 끼쳐 왔다.
‘내 무맥은…….’
그간 정연신이 흑색 출전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
아래의 위계에서 승산을 점치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대기만성을 보고 느릿하게 익히는 것이 정종 무공이라지만, 구파는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대문파였다. 가르침의 깊이가 다르다고 했다.
섬예 무맥이 정종 천년무맥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간 즉발성 무공의 얕은 깊이를 타고난 감각으로 갈음해 온 차, 그러고도 대문파 출신에서 배운 고수들에게 고전하기 일쑤였는데.
그때.
“노납이 시주들의 번뇌를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되겠소?”
나지막한 목소리가 정연신의 마음에 내려앉는다.
귀로 인식된 음성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뇌리에 직통으로 스몄다. 한마디조차 헛되이 들리지 않게.
‘혜광심어(慧光心語)……!’
정연신의 눈이 커졌다.
불현듯 사찰 한 모퉁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이파리의 형태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모양새. 달리 없다. 연대구품(蓮臺九品)일 것이다. 소림 비전의 절세 신법이라 했다.
온다.
후욱―
순식간이었다. 한쪽 눈에 삼베로 된 안대를 낀 노승이 불현듯 나타났다.
양쪽 소매가 완전히 비어있어 헛되이 펄럭이는 주황빛 승포 자락과 함께였다.
“법력…? 어쩐지 나이 일흔에 마셔본 곡차보다도 좋은 냄새가 난다 했더니…….”
늙수레한 중얼거림이 허공을 긁는다.
신승(神僧) 범허(泛虛).
그가 소림의 방장대사였다.
* * *
등봉현의 녹옥검장.
잎사귀를 녹인 듯 푸르스름한 담벼락 아래, 등 뒤로 굵직한 두루마리와 봇짐을 병장기처럼 패용한 사내 둘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란의 한가운데였다. 그들은 주변을 빼곡히 채운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만 움직였다.
“몇 명쯤 들어왔나?”
“천 명을 넘어섰네. 이젠 역부족이야.”
“장원이 아니라 도시에 묵는 이들까지 합하면?”
“물을 사람을 잘못 골랐군. 개방 분타로 찾아가 보게. 주광신개 어르신이라면 정확히 헤아리고 계실 테니까.”
“허튼소리. 그분께서 패협을 달갑지 않게 여기신다는 건 별다른 비밀도 아닐세. 당연히 화산지약에 오실 리가 없지. 여하간, 이쪽은 애초에 걸러서 받았어야 했네. 통제가 힘들지 않나. 장원에서도 몹시 애를 먹는 눈치야.”
“고르고 고른 이들이 천 명 이상인 걸세. 신분이 확실하고, 문파의 명성이 성과 성 사이를 넘나드는 이들만 받은 게야. 그것만으로도 바깥에선 원성이 자자하다고 했네. 삼류 문파에게는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고 말이야.”
두 사람은 소림의 속가제자였다. 또한 강호에 이름난 호사가들이기도 했다.
독현(禿賢)과 독견(禿見). 기연이 닿아 소림 비전의 여래명안(如來冥眼)이란 안법을 익힌 이후, 존귀한 북숭소림이 강호의 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온갖 일을 기록해 숭산으로 전달하는 이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몸을 지닌 독견이 턱짓했다.
“삼복아.”
“예, 나으리.”
누렇게 빛바랜 마의를 걸친 하인이 빗자루로 바닥을 쓸다 말고 고개를 든다.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어깨를 비롯한 팔다리 이곳저곳이 찢긴 옷감을 천으로 대충 휘감은 청년이었다.
“장원에서 의복을 주지 않던? 허드렛일도 존귀한 법이란다. 행색이 그게 무엇이냐.”
하인이 헤 웃었다.
“본가에 일이 많아서요. 월봉을 받는 족족 집으로 보내고 있습죠.”
“늘 그리도 빈곤해서야 언제 여유를 지니고 살겠느냐?”
“어르신들의 정수리도 얼핏 보기엔 빈곤하지만 광채가 훤하지 않습니까? 저도 빛 볼 날이 있겠지요, 뭐.”
“허이구…….”
독견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별호 앞에 붙은 독(禿)은 대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소림의 본산제자와 같은 행색에 자부심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두툼한 몸을 지닌 독현이 하인의 더벅머리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성실하기로는 장원에 소문이 자자한 놈이… 점심 끼니때까지 물러서 있거라. 객지로 온 무인들에게 괜한 시비라도 걸릴까 두렵구나.”
“알겠습니다요!”
독현이 시비를 얘기한 이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장원의 대문을 향해 줄지어 서 있는 까닭이다. 전부 강호인으로 이루어진 인파였다.
햇살에 일렁이던 여름 공기가 가일층 뜨거운 기운을 받아 이글거렸고, 이곳저곳에서 공력 파동으로 인한 분진이 피어나기 일쑤였다.
“줄 서시오! 줄!”
“내가 이런 하잘것없는 자들과 같은 줄 아는가? 길을 열어라. 본좌가 형산의 용패쌍도(勇狽雙刀)다!”
“여기가 자기네 저잣거리인 줄 아는 게로군. 정파 무림, 아니 강호 무림이 이 땅으로 몰려들고 있거늘.”
“놔두게. 저러다 객사하지.”
“뭐라고?”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호전적일 수밖에 없다.
팽가와 같은 팔대세가 무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둔 참이었다.
무수한 인파가 온갖 목적을 띠고 화산지약에 참가하고자 몰려들었다. 명성, 배움, 혹은 사람과 사람 간의 기연을 얻기 위해.
그중 대방파 무인들은 진정으로 제패를 노리고 폐관수련에 들듯이 칩거했다.
이 순간 온갖 낭인들과 중소 문파의 무인들이 점차로 긴장을 푸는 이유다.
그러다가도 화산이나 무당의 검객들이 지나간다 치면 몸을 꼿꼿이 굳혔으나, 경계를 서는 구파 무인들 중 다수는 민가에 퍼져 있었다.
독현과 독견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은 큰 사달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대다수는 무림인들 사이의 다툼일세.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하던 얘기나 계속하세.”
독견이 은근하게 말했다. 독현의 입매 양옆 두꺼운 볼살이 히죽 올라갔다.
“내기 말인가?”
“그래, 대상인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판돈이 걸렸다더만. 황실이 개입할지도 모를 규모로.”
“누구나 주목할 도박판이긴 해. ‘어떤 문파가 화산지약의 제패할 성싶은가’라…… 자네 아우는 어디다 걸었다고?”
“남존무당. 미곡 두 섬짜리 승부일세.”
“안전하게 가는군.”
“자네는?”
“우리야 소림의 속가 아닌가. 방장대사께서 나서시진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큰 위협이래 봐야 다른 구파나 천축유가공을 손에 넣은 팽가 정도가 아닐까 싶네.”
“입황성은?”
“말은 바로 해야지. 입황성 본성이 아니라 섬예 무맥 아닌가. 태동한 지 채 삼 년도 되지 않은…….”
독현이 문득 말끝을 흐렸다. 곧장 그가 왜 그러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독견.
“삼 년도 되지 않았지. 그래, 입황성의 섬예는 분명히 괴력난신일세. 자네가 새삼 느끼는 경악을 나도 느끼고 있지. 하지만… 그의 무맥은 달라.”
“그야 그렇지.”
“절세고수 한 사람은 방파대전의 형세를 뒤집지만, 어떤 강력한 무맥들은…….”
소림 속가 출신의 고명한 호사가가 천천히 말을 맺었다.
“강호의 형태를 바꾼다.”
화산파가 그랬다. 섬서 지역으로 가면, 매화검에서 영감을 받아 쾌검과 환검을 절기로 삼은 문파들이 적지 않다.
무당파도 마찬가지인 게, 호광 북쪽에서 태극권이라 하면 본류보다 아류가 가득하다.
하남에서는 소림 역근경의 영향으로 몸을 닦는 동공이 대대로 성행하고 있다. 강호의 문화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처럼 이름 높은 무맥들은 대문파 간의 정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쾌검이 유독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시기에는 호신강기를 발전시키고, 호신강기가 득세하면 내가중수법을, 다시 내가중수법의 위상이 높아지면 보신경과 동공을, 거기서 또 나아가면 동공보다 힘을 빠르게 쌓을 수 있는 패도 무공이 거대한 흐름을 타는 것이다.
패협 마연적이 그 시기에 절대자로 군림했다.
광활한 강호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건, 결국 무림을 주도하는 거대 무맥들이었다.
“저마다 배분이 다른 네 사람이 다른 무맥과 승부를 결한다고 했네. 섬예 혼자라면 또 모르겠으나, 그가 만든 무맥이 구파의 세월을 뚫을 수 있을지는 영…….”
독견이 날렵한 턱을 내저어 보였다. 옆자리의 독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소림만 해도, 비무에 나갈 이들이 수두룩해서 내부적으로 경합마저 벌였다고 하더군.”
“그게 대문파의 증거일세. 백보신권을 대성한 자, 금강부동신법을 일상적으로 쓰는 불목하니, 반선수(盤禪袖)가 달인의 경지에 이른 우리의 사형까지…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패가 많아. 과거 입황성에서는 남궁세가와 생사결을 벌이기 전에 섬예와 백기린이 경합했다고 하던데, 본성도 아닌 섬예 무맥에게 그러한 저력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군.”
“동의하네. 팽가만 해도 수십 종의 파훼법이나 각파 무인들의 특성을 정리하기 바쁘다더군. 우리도 그렇지만 말일세. 그에 비하면 신생 무맥은 그 나름대로 번뜩이는 재치를 지녔어도, 결국엔 옅고 얕을 수밖에…….”
두 호사가가 조곤조곤 얘기할 때였다.
문득 두껍게 줄 서 있던 인파가 술렁였다.
흔치 않은 일. 본래 무림인이란 산골 객지에서 홀로 수련했어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게 되는 종자들이다.
몸을 채우고 있는 내공을 느끼노라면 그리될 수밖에 없다.
“제법 널리 알려진 명사가 왔나 보군.”
“장원에는 자리가 없을 텐데.”
“묵다가 외유를 나간 이가 돌아온 것일 수도 있지. 지금 수군거리는 이들의 말이… 아, 남궁. 백기린 남궁화신이로군.”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는 청년이 돌아왔구만.”
“그도 급했겠지. 팽가를 비롯한 대방파의 준비가 몹시 본격적이니 말일세. 어디서 은거기인들의 문파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봤자… 신검단의 집결 이후로 여력이 사라졌을 텐데. 도처에 흩어져 있는 입황성 무인들이야 많겠지만, 진정 섬예 무맥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때 청량한 목소리가 저녁노을을 꿰뚫었다.
[흑색의 위계로 명하노니.]낭랑한 육합전성이었다. 푸른 하늘처럼 맑은 느낌으로 번졌다.
[오늘부로 신검단의 등봉현 암행을 파한다. 본성 천금무고에 비치된 섬예 무맥의 공부를 익힌 각 무력대 인원은, 나를 임시 대주로 받들어 숙소까지 호종하라. 경합을 벌인 뒤에 그 결과를 본성의 자색께 보고할 것이다.]백기린 남궁화신이었다.
독현과 독견의 시선이 마주쳤다. 불현듯 두 사람의 뇌리를 스친 깨달음이 오고 갔다.
강호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몰린 곳이다. 입황성이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섬예 무맥과 별개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잠행을 왔을 터였다. 민가를 지키기 위해.
하지만 백기린의 육합전성은 해당 인원을 섬예 무맥으로 한정시켰다.
몇이나 해당될까.
툭.
두 사람이 등진 담벼락에서 울린 소리였다. 쥐 죽은 듯이 잠자코 쪼그려 앉아있던 하인이 빗자루를 놓은 것이다.
곧이어 그는 어깨에 엉망으로 덧대어 있던 천 자락을 찢으며 몸을 일으켰다.
황(荒) 자가 드러났다.
“하남성 임무를 다시 맡긴 글렀네. 얌전한 땅이었는데.”
하인 삼복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독현과 독견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데,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독현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런가? 자네만큼 내공을 잘 갈무리하는 이가 흔치는 않을 터인데.”
“명류대라서. 우린 암행만 하거든.”
삼복은 그대로 발을 옮기며 대답했다.
녹옥검장으로 들어가고자 줄지어 선 인파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데, 그의 발자국이 하나씩 땅에 새겨질 때마다 강풍이 훅 번져 사람들을 좌우로 밀어냈다.
마치 수풀이 갈라지는 듯했다.
“환익보……?”
독견의 중얼거림이 망연하게 흘러나왔다. 인근의 사방팔방에서 새로운 기파들이 연신 터져 나오는 와중이었다.
그날.
등봉현에 있던 입황성 무인들이 모두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