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430
◈ 대종사 (4)
더운 바람이 비무대를 스치고 관전석을 향해 불어갔다.
훤히 뚫린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은 그 자체로 이미 요란했지만, 풍진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의 입놀림만큼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저자가 누구요? 무슨 자격으로 비무에 출전한 거요?”
“방금 정가동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까 패배한 백색무사가 간이본이라 언급한 무공 말입니다!”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이들이 속출했다. 박살 난 담벼락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거친 질감의 돌 부스러기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한쪽에선 하나같이 비단 무복과 고색창연한 도를 찬 팽가의 식솔들이 침묵했다.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은 채였다.
정파 강호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품행 탓에 벙찐 이들이 많았다.
다수의 좌중은 난입자가 팽가인후의 도격을 튕겨낸 뒤에야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눴다.
일부는 흑의인의 신분을 알아챈 기색으로 침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팽가 측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궁화신의 묵묵부답에 은은하게나마 득의양양한 기색을 내비치던 방금과 달랐다.
애써 충격을 내리누르는 표정들. 하나같이 입매에서 웃음기가 날아갔다. 원로를 비롯한 노고수들과 젊은 도객들이 낮은 음성으로 수군거렸다.
“나락살 마진… 전대 마광익주입니다.”
“팔을 잃고 입황마가주가 되었다 들었는데, 금방 보인 움직임은 도무지 경혈을 잃은 자답지 않았소. 당최 어찌 된 일인지…….”
“정가동공, 정가동공이라 했소.”
“마광익주가 창안한 무학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는 마광익주의 숙부이니만큼, 간이본이 아니라 진본을 하사받았을 공산이 크지요.”
명문대파 무맥의 고하를 나누는 대회다.
이만큼 커다란 명예가 걸린 비무회는 없었다. 나락살 마진이 무공을 소개한 이유가 거기에 존재했다.
환명오절로 꼽히는 팽가인후의 도를 칼집으로 다시 꽂아버린 뒤에 그 묘리를 말했다. 누구라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정가동공.
알려진 바가 드문 무공이다.
강호에 나온 입황성 무인들 중 일부가 소림의 역근경에 비견될 동공이라 말하고 다녔다 하나,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무림인은 없다시피 했다.
달마 역근경이 지닌 상징성 탓이다. 천하제일 무승들의 근골을 뿌리부터 닦아주는 개세적인 신공.
게다가 세월을 압축시키듯 빠르게 고강해지는 무신(武神)의 재능과 없던 신공을 창안하는 대종사의 자질은 별개로 치부되곤 했다.
“호오…….”
관전석에 자리한 이들 중 식견 있는 몇몇이 안광을 빛냈다.
앞서 주변의 군중들이 ‘육왕 무맥’이라 일컬은 자들로, 앳된 청년부터 나이 든 미남미녀까지 맨손에 가죽 수투를 끼고 있었다.
“고명한 철족들의 솜씨가 느껴지는 의수로군. 허나 공력으로 움직이는 손을 달았다 한들, 통째로 뜯긴 경맥의 균형을 온전히 되돌릴 수는 없을진대.”
“동공이라고 했어요. 그 공능이 소림 역근경의 반이라도 따라간다면 능히 경혈을 닦을 만해요.”
“출수는 보았는가?”
“어렴풋이요.”
“제 안법에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백도 강호였다. 문파 간의 교류와 접대가 활발한 세계로, 논검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관전석에서 마진의 무공 연원을 논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편 비무대 중앙.
팽가인후는 등 뒤의 도 손잡이 한 쌍을 모두 쥔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손아귀에서 연기처럼 움튼 무채색 경파가 그녀의 머리칼 끝단을 헝클어뜨리고 있었다.
“전신 발경…?”
그녀가 중얼거렸다. 쌍도가 도갑으로 되돌아갔을 때부터 상대의 무공을 헤아리는 모양새였다.
“제법 무재가 있다고 들었다만.”
흑의인, 전대 마광익주 나락살이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네가 헤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
팽야의 입매가 헛웃음과 함께 비틀렸다.
나락살 마진.
악명이 높은 자다. 민초들에게는 협객이라 불리지만, 강호에서는 무뢰한(無賴漢)이자 살귀에 가까운 인물로 통한다.
그가 사천 명공도의 일로 실각했을 때는 비아냥마저 돌아다녔다. 끝내 별호에 어울리는 결말을 맞이했노라고.
일부는 안도하기도 했다. 신검단 열일곱 흑색 가운데 악랄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 마진이라서다.
정말로 나락살이 섬예의 무공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라면, 그 풍문은 급보로 취급되어 많은 문파가 연화나타를 탓하고, 또 경외하게 될 터였다.
강호에 드문 절세 신공의 출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쿵!
팽야의 몸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희끄무레한 흙먼지만 동심원의 형태로 남았다.
시야를 교란시키는 보법. 겉보기로는 거의 이형환위에 가까웠다.
반면에 마진은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거무튀튀한 금속질의 왼팔과 온전한 오른팔을 모두 늘어뜨린 채였다.
“음.”
가슴을 편 모습이 오연하다. 거칠 황 자가 새겨진 흑포의 옷자락만 세차게 펄럭거리는데, 그 분위기에서 상대의 밑천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중이 묻어났다.
기수식은 물론 표정마저 담담했기 때문이다.
화악!
어느샌가 쌍도를 뽑아 내린 팽야가 그의 측면에서 신형을 드러냈다.
산발이 된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 자루 도를 동시에 횡으로 내치는 모습. 주변 공기가 지진을 맞은 듯 흔들렸다.
순간, 마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묵빛 의수를 뻗었다.
쩌정―!
귀한 현철(玄鐵)로 이루어진 쇠 손가락이 밑에서 위로 쌍도를 튕겨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도격이 봉쇄됐다.
정가장의 묘지에 묻힌 누이가 어깨에서 의수까지 이어지는 공력의 흐름을 강건하게 붙잡아 준 까닭이다.
마진은 그대로 현철 의수를 뻗어 팽야의 앞섶을 움켜쥐었다.
“패기가 좋군.”
그가 짧게 얘기했다. 쌍도술과 같은 극단적인 공격초를 운용하면서도 출수에 조심성이 없었다는 의미. 곧장 팽야의 눈에서 무채색 안광이 번쩍였다.
짧은 순간 허공으로 치솟던 쌍도를 역수로 바꿔 쥔다.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 마진이 그녀의 앞섶을 끌어당긴 순간, 팽야는 속절없이 끌려가는 동시에 거꾸로 쥔 두 자루 도를 내리찍었다.
곧장 마진이 온전한 오른팔을 휘둘러 도초를 튕겨냈음은 물론이다.
콰쾅!
거센 충격파가 터졌다. 동시에 비무대 바닥이 크게 부서지면서 흐린 먼지와 돌 부스러기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진이 웃었다.
“용케 놓치지 않았군.”
비꼰다고 하기에는 담백한 어조였다. 그러나 이제 일가(一家)를 대표하게 된 무인에게 뱉을 말은 아니었다.
뒤로 크게 물러선 팽야가 핏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두 자루의 도를 모두 온전히 든 채였다.
“그 발경이 두 번이나 통하리라고 생각했나?”
그녀는 무공의 천재다.
연배의 한계를 넘어선 지 한참이었다. 그녀는 이따금 금의위에 초빙되어 교두로서 자금성 무사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았다.
황족을 제외하면 북직례 제일의 기재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앞서 겪은 상대의 출수를 곱씹고, 그 수법에 두 번 당하지 않는 파지법으로 도를 쥐는 게 가능하다.
그녀는 양손의 다섯 손가락을 미묘하게 꿈틀거리며 다시금 힘을 배분했다.
손바닥에 모인 혈도인 소부혈(少府穴)과 노궁혈(勞宮穴)에도 공력을 크게 실었다.
그리고 상대를 응시했다.
‘저거…….’
나락살이 장착한 묵빛 의수는 누가 봐도 기물에 가깝다.
삼화취정의 초고수가 진기를 마음먹은 대로 운용하듯, 저 의수 또한 공력을 머금고 손가락 마디까지 사람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
부와 식량이 모두 모자람 없는 입황성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보(奇寶). 철족 비전의 공정(工程)을 거친 신병이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의 육골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팽야의 눈이 재치로 반짝였다.
‘공력을 엄청나게 퍼먹겠지. 저자에게서 큰 움직임이 없는 이유야. 합이 길어질수록 내가 유리해.’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녀는 생각했다.
정가동공은 분명히 천하에 드문 동공 무학이다. 더 말해 무엇 할까. 한쪽 팔이 통째로 날아간 자의 정기신을 다시금 합일시킬 정도인데.
하지만 수백 년간 명맥을 이어 온 명문세가의 무공만큼 탄탄할까? 진기의 흐름이 안정성과 폭발력을 겸비하고 있을까?
‘이 방파대전, 비길 수도 있다.’
그녀의 입매 한쪽이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진이 툭 던지듯 물었다.
“하잘것없는 승리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잘것없지 않아서지.”
팽야는 단전의 공력을 전신 경혈로 퍼뜨리며 대답했다. 지금부터는 강격의 연속이다.
상대의 공세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언젠간 승산이 보이게 될 터였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건 본가의 명운이 걸린 비무야. 죽은 가주의 독단으로 원래 벌여선 안 됐을 일을 벌였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참이거든. 여기서 졌다간 봉문이라도 해야겠지.”
“벌여선 안 됐을 일?”
마진이 묘한 어조로 되묻는다.
두 사람은 서로가 대(對)신검단주 천라지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팽야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우리 식솔들은 그걸 반대했거든. 난 그때 명령을 받기 싫어서 자금성에 나가 있었고. 가주가 단단히 실성했다고 생각했지. 강호의 자유니 뭐니…….”
“큰 착각을 하는군. 내 믿음은 중요치 않다.”
마진은 찰나지간 관전석을 힐끔했다. 그곳엔 차양막의 그늘 탓에 홍색으로 비치는 장포를 걸친 정연신이 앉아 있었다.
옆자리의 고검진인을 외면하듯 이마를 살짝 짚은 모습이 어른과도 같다. 숙부의 드높은 패기가 부담스러운 듯했다.
―저거 거짓말 아닙니다.
정연신은 이제 자색이다. 상단전의 공능이 얼마나 강력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의 언행에서 진실 여부를 판단할 정도는 될 것이다.
‘벌써 저리 헌앙한 장부가 되었으니, 장차 저 아이를 바르게 이끌 수는 없다고 봐야겠지.’
마진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누이 마연상의 대리인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언제나 파격을 거듭하는 조카에게 올바른 본을 보여야 했다.
“다음 출수로 끝내주마.”
그가 말했다. 팽야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뭐?”
“다행히 너와 본성의 이해가 제법 일치하는 듯싶다. 십삼천이 언제 다시 뭉쳐서 준동할지 모르는데, 굳이 여기서 시체를 또 한 번 늘릴 필요는 없겠지.”
팽가주를 격살한 입황성 자색의 숙부가 얘기했다.
팽야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절초를 내칠 준비가 끝난 참이다. 헛소리를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우선 일격.’
무림 호족.
달리 무림세가라고 불린다.
상대를 압도적으로 짓누르고 보는 경향이 짙다.
대대로 씨족의 이권을 중시한 덕에 무림 강호에서 가문을 번영시킬 수 있었다. 인근의 문파들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여 온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팽야의 도에서 웅장하고 막힘없는 공명음이 움텄다. 오호단문도, 탄룡광호(呑龍曠虎). 용을 삼킨 호랑이라는 초식명 그대로다.
막강한 힘을 일으킨 그녀의 팔이 잔상을 휘감고 진동하기 시작했다. 강격을 장전하여 부하가 걸린 까닭이었다.
팽야는 이것을 다섯 번 내칠 수 있다. 그래서 오호단문도다.
나락살 마진을 다시금 일으킨 정가동공, 섬예 정연신의 무학이 어느 방면까지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도 남는다.
이 순간 비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군중들 역시 생각이 같을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녹옥검장의 대문조차 넘어오지 못했으니까.
두 무맥이 서로의 고절함을 견주는 자리.
팽야의 발끝이 바닥을 쿡 찍었다. 일견 가벼워 보이는 발놀림. 하지만 진각이었다.
비무대가 호숫물마냥 동심원을 그리며 크게 출렁였다. 굉음은 뒤늦게 일어났다.
쿵! 화아아악!
다음 순간 그녀는 마진의 면전에서 쌍도를 교차로 내지르고 있었다. 앞으로 쇄도하는 데 쓴 각력이 날붙이의 파공음을 짙게 만들어냈다.
그 앞에서 보폭을 넓힌 마진이 주먹을 뻗었다. 두 자루 도의 교차지점을 향해서였다.
이번에는 의수가 아니다. 그 반대쪽 팔, 피륙이 살색인 맨손으로 일권을 가했다.
쩌저저저정―!
다섯 합을 생각하고 있던 팽야의 눈이 커졌다.
무색 안광이 일렁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광경. 두 자루의 날붙이를 산산조각으로 부수며 다가오는 주먹이 있었다.
‘뭐……?’
뿐만 아니었다.
팔방으로 흩어지면서 햇빛을 산란시키는 쇳조각들 틈새로 나락살의 행색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어깨 한쪽으로 비스듬히 솟아있는 칼 손잡이. 뒤늦게 인식했다. 실로 충격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랬다. 본래 전대 마광익주의 성명절기는 전장에서나 쓰일 법한 실전 도법이라 했다. 그가 처음 내보인 출수 탓에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팽가 전체에 엄청난 치욕을 안기는 사실. 심연으로 파고들어 간다 한들 이 수치심을 어찌할 수는 없을 터였다.
‘별 자라 같은…….’
콰아아아아!
뒤로 튕겨 날아간 그녀의 신형을 마진이 따라붙었다. 찰나였다.
그가 수도(手刀)를 세워 팽야의 복부를 후려친 순간 원형의 충격파가 쩌엉 폭발했다. 팽야는 그대로 비무대 바닥에 내리꽂혀 버렸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
정오의 햇살은 몹시 밝았다. 누가 누워있는지, 누가 서 있는지는 누구나 식별할 만했다. 침묵이 장내를 덮을 새도 없이 관전석에서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팽가가 패했다.”
입황성 신임 자색의 목소리였다.
비무의 공증인으로서 입을 열고 있던 고검진인이 멈칫했다.
제 숙부를 내려다보며 미세하게나마 입꼬리를 움찔거리던 연화나타 섬예는 곧장 무심한 표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