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610
◈ 세 자루의 검이 (3)
고고한 몽요지체의 사신이 당황할 만했다.
이 순간 스스로 열기를 내뿜고 있는 성은, 오랫동안 마경 도읍지의 방패로 일컬어졌다. 무엇이 부딪치든 부서지지 않았다.
양옆은 끝없이 높은 절벽으로 막혀 있다. 비탈길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축기량이 웬만큼 많아도 벽호공(壁虎功)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이인데, 괴력난신들의 격전으로 크게 바뀌어버린 지형 중 하나였다.
원말명초에 북방으로 걸음한 장삼봉이 ‘불 황제’를 고향땅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니까.
도읍지 흑도로 이어진 길.
쾅!
지면을 다시 박찬 치극부마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빠르게 여유를 되찾는 입매의 호선에, 굳이 천룡대주의 면승투삭을 끊으려 애쓰지 않는 모습.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일단 한번 잡히면 육원성군 문곡조차 몹시 애써서 떼어내야 한다는 것을.
‘죽으려고 작정한 놈들이다. 그대로 끌고 간다.’
그그그긍―
마침 용암성의 성문이 열리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문의 틈새에서 새까만 연기가 새어 나온다. 분명했다. 용암성주가 끝내 호승심을 억누르지 못한 것이다. 요족이기에.
끝내.
성문에서 나왔다.
마경 도읍의 관문지기로 알려진 북왕.
무시무시한 거구다. 새까맣게 그을린 몸에, 화산암마냥 쩍쩍 갈라진 살갗에서 허여멀건 김이 흘러나는 광경.
용암성주였다.
분명히 바깥으로 나왔는데, 오히려 성이 가득 차 버린 듯했다.
드높은 성곽에서 속속들이 몸을 세우기 시작한 용암성 무공군세 수백 명과는 별개였다. 성 전체가 북왕의 압도적인 기세로 채워지고 있었으니까.
쿵― 치이이이익!
한 걸음을 옮긴 것뿐인데, 도처에서 지반이 갈라지며 허여멀건 수증기를 내뿜는다. 몸속의 열양진기(熱陽眞氣)에 대자연이 동조하는 경지.
치극부마의 얼굴에 화색이 어렸다.
용암성주의 ‘화황영겁공(火皇永劫功)’이면 면승투삭을 녹일 수 있으리란 통찰.
열양기공으로 성벽을 장성마냥 단단하게 굳힐 수 있는 절세고수다.
실제로 용암에 가까운 천단광갑도 있다. 육원성군 문곡만큼이나 하수들이 범접하기 힘들기로 이름 높은 존재.
다수의 마경 강호인은 그를 살아있는 화산(火山)으로 대했다. 용암성주가 육원성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근래에 신검단주에게 죽임당한 염열신왕이 마경의 변방을 맡고 있었던 것처럼, 용암성주는 중앙 수도의 관문지기를 맡을 만한 북왕이었다.
하지만 신분이 북왕인 만큼 호승심도 어마어마하다. 이 순간 장법으로 시뻘건 용암을 만들어내고 있을 만큼.
[오라!]함성 같은 외침이 양옆의 절벽을 거칠게 긁으며 내달렸다. 육합전성의 기파에 직격당한 벽면들이 쾅 하고 크게 패였다.
그을린 돌가루들이 파스스 떨어져 내린다.
[우리 백성이 아니면 지나가지 못한다.]살아있는 천재지변.
하지만 비탈길을 질주하던 신검단의 무공군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라지기만 한다.
하나둘씩 희끄무레한 파동을 전신으로 뿜어내면서다. 그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상공에선 더욱 어처구니없는 광경.
치극부마의 눈이 커질 수밖에.
‘미친 것들이, 선봉부터 녹아서 죽으려고…?’
그는 발바닥 용천혈로 또 한 번 원형의 기파를 터뜨렸다. 즉각적으로 쾅― 앞서 나가는 몸. 절세고수의 허공답보마냥 쾌속하게 용암성주의 머리 위를 지나친다.
온몸이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듯한 요족 초월자가 고개를 들었고, 그 즉시 치극부마는 면승투삭에 묶인 오른쪽 다리를 눈치 빠르게 한 번 털었다.
화악!
밧줄 끄트머리를 붙잡고 날아오던 위지극이 비스듬하게 아래로 기운다.
용암성주의 왼팔이 희끗해진 것도 동시였다.
온다.
‘화황영겁공, 융탄(融炭)…!’
일격필살로 유명한 격공장. 순간적으로 시뻘건 장력(掌力)의 집합체를 던지는 모습이 먼저였고, 폭발적인 굉음은 그 뒤였다.
동시에 치극부마는 찰나지간 위지극이 궁신탄영(弓身彈影)으로 허리를 튕겨 올리는 모습까지 목도했다.
스스로 쾅 휘두른 밧줄과 몸이 수직을 이룬 것이다. 천룡대주, 북방 살귀의 감각도(感覺途)는 원래도 유명했지만 조금 더 빨라져 있었다.
몸속이 빛으로 채워진 것처럼.
쿠구구구구궁―!
위지극의 발뒤꿈치를 스칠 듯 말 듯 지나가는 장력. 그 궤적을 따라 대기가 반투명하게 일그러졌고, 허공은 지진마냥 흔들렸다.
한편 치극부마는 곡예와 같았던 움직임의 반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면승투삭의 해일 같은 출렁임에 그대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쾅!
용암성주의 뒤쪽으로 내려꽂혀 버린다. 벽력탄마냥 터져 나오는 흙먼지. 치극부마는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무지막지한 진동을 느꼈다. 신검단 무공군세의 발구름이었다.
‘미친놈들…!’
그는 꿈결처럼 몸을 일으켰다. 애초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듯이.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신투의 할천접요(割天接僥)는 그가 아니라 다른 자에게 전해졌지만, 보신경의 완성도만큼은 북왕에 가까운 것이다.
화아아아악―!
하지만 위지극은 이미 면승투삭을 크게 끌어당기면서 치극부마에게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밧줄에 실린 어기충검(御氣充劍)의 묘리가 얼마나 지독한지 끊어낼 수도 없다. 치극부마는 그대로 한쪽 다리가 들려 올라가며 쿵 쓰러졌다.
찰나지간 누운 채로 중얼거린다.
“명이 아무리 무도한 나라라 해도, 사신에게 이러는 법은 없는데? 격조 낮게.”
“나라가 아니라 신검단이다.”
쾅!
한 손으로 치극부마의 얼굴을 땅에 박아넣는 위지극. 손아귀에 무시무시한 힘이 실려 있었고, 고저 없는 음성은 내공 호흡의 일종으로 흘러나왔다.
“사신이 아니고 병마를 퍼뜨리는 벌레다.”
“확실히 내 손에 죽은 천룡대 청색들은 이제 벌레에게 먹히고 없겠구려. 꿈에선 그들을 볼 수 있는데, 보여드릴까?”
자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손가락 틈새에서, 치극부마의 눈은 무채색 안광을 터뜨렸다.
불오명정(不寤酩酊). 몽요지체의 씨족 안법. 언젠가 여령주의 명령으로 무당 장문인마저 심마에 빠트린 현혹술이다.
이 순간 위지극에게 포획당할 것을 상정하고 일으켜 둔 수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지극과 치극부마 사이에 현공진인과 그의 제자만큼의 인연은 없다. 일말의 감흥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내새끼가 지랄은.”
신검단 정가동공(神劍團 鄭家動功)
백회보위(百會保衛)의 장(章)
“……!”
안법 기파가 위지극의 상단전으로 파고들다 쩡 하고 튕겨 나가는 한편.
얼굴을 쥔 손아귀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고, 치극부마의 오뚝한 콧대가 움푹 내려앉는 동시에 광대뼈와 두개골에선 섬뜩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콰드드득―!
금나수의 압력이 무지막지했다. 치극부마의 양쪽 안구가 안와를 비집고 천천히 솟아오를 정도였다.
늘 고풍스러운 꿈을 꾸는 듯했던 미려한 얼굴에서, 여유가 안개처럼 흩어진다.
그는 기감을 급히 펼쳤다. 몽요지체는 적들의 꿈속에 들어가 상단전 신(神)을 빼앗아 먹는 것이 가능한 존재. 기감이 혼백마냥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전장을 조망할 수도 있다.
‘용암성주는 뭐 하고 있는…?!’
도읍지 흑도로 이어지는 마지막 관문의 주인.
육원성군 문곡과 같은 자라 했다.
동격 이상의 절세고수가 없다면, 적의 머릿수가 몇이건 짚단마냥 태워버리고 만다. 남제가 육원성군에 이어 용암성주를 가장 먼저 휘풍령으로 회유한 이유.
홀로 버틸 만했다. 대왕 바즈라, 고요성검주, 애신각라 흑환 같은 휘풍령의 북왕들이 당도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분명히 그랬었다.
쩌저저저정!
기감으로 훤히 보인다.
용암성주의 우수(右手)를 양손으로 막아내다 못해 쩡쩡 얼린 선목령주 천소소, 그렇게 서리 낀 오른팔에 긴 다리를 낫마냥 내려찍어서 쾅 베어버리는 여의천주 북궁아, 주먹이 불타오르건 말건 용암성주의 복부를 끊임없이 강타하다가 좌수 반격이 짓쳐들어오자마자 나뭇잎마냥 고갯짓해 피해버리는 천림대주 하후위진….
터무니없이 과감한 내공 운용이다. 본래 천단광갑에 짓눌려야 할 기량을 백분 발휘하는 느낌. 단기 결전의 합공이 무서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한편 그들의 몸에선 보일 듯 말 듯 하게 흰 운무(雲霧)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각각 무공에 있어선 동문이 아닐 텐데도 사형제로 보일 만큼.
쾅―!
다음 순간 용암성주의 시뻘건 아가리에 허벅지를 물린 북궁아가, 그의 머리 일각을 한 손 수도(手刀)로 부숴버렸다. 신음조차 흘리지 않은 채였다.
대전사 혹은 병장기에 불과한 흑검(黑劍)들이 왕을 도모한다.
입황성이었다.
“미친…!”
순간 치극부마는 왼발로 자신의 오른발을 내리찍었다.
면승투삭이 내가중수법으로 그를 점혈시키고 있었던 탓이다. 살점이 뼈째로 짓눌리는 소리와 함께 끊어지는 발목.
하지만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도 잠시.
“부탁이다. 여기서 죽어라.”
스산한 목소리였다.
그는 무색의 안광으로 점철된 위지극과 눈을 맞춰야 했다. 천룡대주가 처음으로 드러낸 살기였다.
“남제의 협력자인 명교주가 단주 대리를 데려갔다. 마땅히 우리가 되찾아야지. 남은 삶은 입황성에서 보내셔야지.”
“컥, 큽!”
“행선지는 너희도 알다시피 마경의 도읍지인 흑도(黑都)다. 우리는 남제와 명교주의 머리를 치기 전에 물으러 가는 거다. 단주 대리께서 어디에 계신지.”
“네놈, 들은 절대…!”
위지극은 발버둥 치는 치극부마의 귓가에 조용히 하라는 듯 쉬이― 하고 입소리를 냈다.
사내치곤 작은 머리를 쥔 손에 시화무극수 진벽의 공력 파동을 실으면서였다.
“이 천단광갑은 역시 더럽게 단단하다만, 네놈의 성품처럼 잘 우그러드는 모양이다. 이런 건 많이 상대해 봤어. 부수지 못해도, 누를 수만 있으면 돼. 사람은 잘 죽거든.”
끄, 끄아아아아악!
기다란 비명이 북새풍에 섞이는 한편.
그때쯤 까마득한 상공에선 열일곱 겹의 파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암적빛 연기로 이루어진 칼들의 질주에 성벽이 줄지어 직격당했다. 무시무시한 충격파와 함께였다.
쿠구구구구궁―!
거대한 돌담이 무너져 내린다. 성곽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공군세도 마찬가지다.
검붉은 장포의 사내가 그 위를 박쥐마냥 지나쳐 날아갔다.
이상하리만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능공허도(凌空虛道)였다. 애초부터 용암성주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던 듯했다.
[나를 두고 북왕 격의 전력을 보존하겠다…?!]용암성주의 외침은 발구름 소리에 묻혔다.
수백 명의 청색무사가 좌우로 갈라져서 비탈길을 내달렸던 것이다. 구름처럼 일어난 신검단의 무공군세. 누구도 대주들과 맞닥뜨린 북왕을 신경 쓰지 않았다.
천룡대주의 손에 머리가 깔린 치극부마도 마찬가지였다.
조법이나 금나수 따위로 팔뚝을 도모해 봐도 생채기만 남을 뿐, 마치 굳건한 전각의 용마루마냥 미동도 없었던 것이다.
끝내.
치극부마의 목울대에서 격조가 사라진다.
허락된 것이라곤 강제적으로 후욱 흘러나오는 호흡과 바보처럼 새된 음성뿐이었다.
“어, 어어어…….”
“네놈들이 걸친 갑옷이 얼마나 단단하든 상관없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위지극이 치극부마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몽요지체 미남자의 안구는 굳은살로 가득한 손 틈새에서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몽중인 것처럼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못한 채였다.
“천수를 누리는 강호인은 몇 없거든.”
푸확!
끝내 자그마한 머리가 호신강기째로 우그러들었다. 덧없이 짧게 울리는 두개골의 뼛소리와 함께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마지막으로 치극부마의 눈동자에 비친 광경.
또 다른 흑색들이 십수 개의 밤하늘마냥 날아가고 있었다. 웬 단발의 소녀가 파괴적인 나선의 기류를 한 손에 싣고 고양이마냥 내달리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치극부마가 모셨던 치극왕에게, 그가 받들던 남제에게 이어져 있었다.
휘풍령의 꿈 전령이 죽었다. 중요한 척후가 말 그대로 뭉그러들었다.
“…하지만, 신검단주는 금분세수에 실패가 없는 호상(好喪: 자연사)의 직책이다. 네놈과는 달라.”
천천히 일어난 위지극의 손끝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공의 마찰로 가열된 공기가 허연 연기를 치익― 내뱉는다.
땅바닥에 남은 것은 머리가 움푹 찌그러진 사지 멀쩡한 비료뿐. 이제 마경의 지기(地氣)를 북돋아 줄 것이다.
신검단이 마경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했다.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