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621
◈ 홍천 (2)
* * *
오늘날의 패협.
선 굵은 미형(美形)의 이목구비다. 어떤 초월자라기보단, 단단한 검이 사람의 용모로 빚어진 듯한 인상. 그러면서도 어쩐지 아이가 있을 법한 사내의 얼굴이었다.
다면적이란 말이 옳았다.
저벅.
낡은 분홍빛 장포의 끝단을 거침없이 열어젖히는 가죽신. 걸음걸이가 별호만큼 묵직하지도 않다.
그저 굵직한 발목 위로, 다리에 근육이 가득 찬 느낌만 묻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강제로 끌어당긴다.
그러다 좌중이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패협은 스스로 선택한 존재의 지척에서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북도가 상대였다.
마연적은 말에 탄 거구의 초월자를 비스듬히 올려다봤다. 노인처럼 뒷짐을 진 채였다.
“그 도끼는 필시 신병(神兵)일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말투였다.
모든 품행에서 완고한 기질이 흐른다. 정연신의 피가 묻은 도끼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
정작 북도는 도끼를 허리춤에 꽂으며 기다란 언월도를 쥐어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신병이 맞다. 가느다란 북새풍도 우리의 손에 잡히면 신병이기로 바뀌지 않는가. 전대의 삼(三)이니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다.]“무슨 헛소리냐?”
어느새 주먹을 가볍게 움켜쥔 마연적이 건성으로 대꾸할 때.
북도의 전투마가 거꾸로 치솟는 벼락마냥 앞발을 들어 올린다.
어떤 소리보다도 빠른 기수식. 인마(人馬)의 그림자가 마연적을 덮어씌우자마자 두 개의 말발굽에서 압도적인 경파가 터져 나왔고.
쩌정!
그 흐릿한 발경력의 파동을 거꾸로 짓눌러버리며 소멸시키는 풍압. 바로 마연적의 손짓이 일으킨 장법 발경이다.
그의 초식은 잘 보였다. 공간 자체가 일그러졌던 까닭이다. 장력(掌力)이 전투마의 발굽까지 치솟아 오르다 못해 상체를 송두리째 분지르기 직전까지도.
[어림없는.]북도의 의념이 찰나를 격하고 울렸다. 이처럼 치명적인 일격을 대비해 두었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어느새 전투마의 기다란 목을 밟고 선 그가 언월도로 장력의 맥을 끊어버리기까지 찰나였다.
거대한 창날이 일그러진 공간을 유영하고.
콰― 콰― 쾅―!
짧은 순간 기이하리만치 끊겨서 터지는 굉음. 양쪽의 발경력이 초월적으로 짙었던 탓이다.
그때 북도의 눈은 웬 가죽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합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뭉개버리는 능공허도(凌空虛道). 어느새 뒷짐 진 자세로 상대의 눈높이를 밟은 마연적이다.
홀연히 북도의 머리를 짓밟는 광경이 나방의 날갯짓마냥 분절되어 펼쳐진다.
너무 빨랐다.
쾅!
벼락처럼 뽑은 손도끼로 이마를 막아낸 북도가 전투마와 함께 내려앉는다. 그렇게 궁궐 바닥을 거세게 진동시킨 굉음은 뒤쪽의 벽면까지 이어졌다.
정연신이 애신각라 흑환의 등 뒤로 나온 용환검을 궁궐 벽에 박아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항거불능의 검력(劍力)이었다.
검푸르게 변색된 칼날의 파편들이 쩌저정거리며 이리저리 흘러내린다. 마경의 다음 대 황제를 몸째로 벽면에 고정시킨 광경.
정연신은 흑환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움직이지 마라. 검이 뽑히면 죽는다.”
“이 정도는, 아니었을진대…!”
흑환의 기다란 콧수염 아래로 대로(大怒)가 섞인 침음이 흘러나올 때였다. 문득 용희명의 음성이 멀리서 울렸다.
“요긴하게 써먹었나? 다시 가져간다. 이쪽도 급해서 말이다.”
스스로 지이잉 울린 용환검이 정연신의 손아귀에서 빛살처럼 뽑혀 나오더니, 상석의 돌의자로 날아서 되돌아간다.
검신(劍身)이 암청색 광채를 털어버리며 무지갯빛을 되찾은 것도 동시였다.
흑환의 복부에서 핏물이 채 터져 나오기 전에, 정연신은 거꾸로 쥐어서 뽑은 여뢰를 흑환과 벽면에 재차 꽂아 넣었다.
쿠구구구궁!
그림 같은 발검의 궤적을 따라 뒤늦은 충격파가 꼬리를 물고 흐릿한 파문을 그린다.
“검이 뽑히면 정말로 죽는다.”
다시금 속삭이는 정연신. 흑환은 찰나지간 초월적인 흑광(黑光)을 뿜어내다 말고 두 눈 가득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혼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한 호흡도 되지 않아 스스로 눈동자를 내리더니 초점까지 되찾았다.
절세고수 특유의 생명력에 요족의 강건함이 섞이면 이렇게 된다.
동시에.
정연신의 등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이미 몸에 각인되어 있던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내달린다. 사람의 전신 경혈을 뼈째로 동결시키는 듯한 기척.
다름 아닌 남제의 접근이었다.
이런 기질의 존재감을 지닌 인물은 천하를 통틀어 그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북방제일인이다. 황제의 그릇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력을 겸비한 자.
정연신은 무시했다.
저벅.
자연스럽게 흑환의 무릎을 밟고 올라선다. 눈높이가 맞추어졌다.
여전히 고고하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제의 후계자. 차기 황제로 몹시 유력했던 제 형마저 무위로 무릎 꿇린 북왕이다. 기 싸움으로는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을 터였다.
흑환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용음사사왕이 네게서 등 돌린 이유를 안다. 너는 신검(神劍)이지 사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마경에 발 디딘 순간부터 줄곧 그러했다.”
[북제, 멈춰라.]한편 남제가 귀신마냥 정연신의 등을 완전히 점하고 있는 와중에.
정연신은 환강이 실린 손으로 흑환의 머리를 일곱 번 후려갈겼다.
희끗해진 손이 초근접 박투의 간격을 왕복하기까지 한 호흡. 연이어 폭발한 발경력의 파동에 실제로 울린 굉음은 한 번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머리 뒤편의 벽면이 거미줄마냥 깊숙하게 패여 나간다. 정연신의 속삭임이 무지막지한 진동에 겹쳐졌다.
“죽어선 안 돼. 네가 천하의 분기점이다.”
“……!”
정연신은 이번에야말로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흑환을 힐끗 확인하고 돌아섰다. 이래서 천단광갑이 좋다는 생각과 함께였다.
천외천(天外天)의 신선마냥 상대를 제압하기 쉽게 만들어 줬던 까닭이다.
‘중첩이 없는 환강으로는 부서지지 않으니.’
한편 체공 중 어깨를 뒤로 젖힌다. 신법 풍신. 주광신개의 어깨춤이 덧대어진 듯한 움직임이었다.
후우웅!
눈앞까지 짓쳐들어왔던 남제의 손날이 코끝을 스치고 떨어진다. 찰나지간 지진을 맞은 것마냥 반투명하게 물결치는 안면부의 내공방벽.
수도(手刀)의 여파가 격한 떨림으로 호신강기를 저밀 때, 정연신은 나뭇잎마냥 물 흐르듯 회전하여 남제를 지나쳤다. 삽시간에 서로 등을 마주한 형국이었다.
그 상태에서 남제가 말했다.
[개방주의 보신경을 이어받은 건가.]“계승 중이다.”
[천하제일쾌에 이른 신검단주… 본국에 그와 같은 위협은 또 없을 거다.]“술을 마시면 더 빨라질 수도 있는데.”
천천히 돌아선 정연신이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한잔 준다면 받을 용의가 있다.”
동시에 남제의 시선이 거뭇한 안개를 뚫고 내리꽂힌다. 신공 안법 망랑안(望狼眼). 칠흑의 안광에서 비롯되어 짙고 농밀한 눈길이었다.
[…….]이 순간 북방제일인이 훑어본 정연신의 표정은, 어쩐지 무심하다기보단 밤하늘을 흐르는 구름처럼 잔잔했다.
달빛 같은 원한이 무언가에 연신 가려졌다가 드러나고, 또 흐려지길 미미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남제와 같은 인물은 그것이 무엇인지 곧장 알아보기 마련이다. 다름 아닌 대의(大義)였다.
[…변화의 방향이 어떻든, 너처럼 기질이 판이하게 바뀐 자를 본 적이 있다. 이 땅에서 한차례 나담을 벌이고 돌아간 승려가 그러했다. 범허. 소림의 주지승.]“이 땅에서 또 다른 조부님을 만났다. 마땅히 삼년상을 치러야 할 은사(恩師)를.”
정연신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때쯤 사방팔방은 절세고수들이 일그러뜨린 바람으로 가득했다. 장내에 굉음이 들어찬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정연신의 음성은 누구의 귀에나 선명하게 꽂혔다.
“……!”
북도의 허리춤에 꽂힌 도끼와 강건한 옆구리 근육을 일권(一拳)으로 송두리째 뭉개버리는 마연적.
붉은빛 언월도와 오채색 쌍장, 깃털이 실린 검강 등 그물마냥 짜인 궤적들을 무지갯빛 검격으로 휘적휘적 걷어내는 용희명.
마연적이 오른쪽, 망한 검이 왼쪽이다. 각각 미미한 우세와 명백한 열세였다.
동시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균형이 궁궐을 점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싸움터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격.
푸화아아아악!
온갖 벽면에서 흐릿한 분진이 별무리처럼 폭발하는 한편, 터무니없이 응축되고 응축된 발경이 서로에게 때려 박히며 억눌린 충격파를 터뜨린다.
그것만으로도 궁궐이 송두리째 무너지기 시작했다. 검은 돌가루를 폭포수마냥 쏟아내면서.
용음사사왕의 뒷덜미를 쥔 소천무적은 어느새 허공에서 아래를 관망하고 있다.
중앙은 정연신과 남제였다.
[술을 달라….]남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무(武)를 견주어야지.”
정연신은 맨손으로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폈다. 그의 협(俠)은 신검단주의 신념으로, 큰 도리를 따질지언정 유약하지 않았다.
그때.
“거 살살 좀 하지…!”
좌측에서 짐짓 태연스럽게 용희명의 침음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그의 석좌를 산산조각 낸 염정. 이 순간 돌 파편들을 밟고, 거대한 언월도로 용환검을 찍어누르며 낙하하는 중이다.
동시에 푸르스름한 별빛으로 휩싸인 노반천자의 깃털이 용희명의 등을 쾅 후려갈겼다.
화아아아악―!
찰나지간 무지갯빛 비늘 형태의 내공방벽이 드러났다. 용희명의 호신강기. 정연신조차 본 적 없는 기예다.
이 순간 검강과의 마찰로 불티를 쩌저정 화려하게 튀기는데,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음을 뜻했다.
육원성군 염정과 북왕 둘의 합공이면 누구라도 버티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멀찍이서 잠시나마 관망 중인 듯했던 서역의 노승, 법왕의 의념이 메아리마냥 울린 것도 그때였다.
[원매멸명(寃枚滅明).]공월무였다. 궁궐에서 처음으로 발동된다. 어떤 절세고수의 생애를 일수(一手)에 관통하여 뻗어 나오는 수법. 한순간 법왕의 오른손이 징처럼 압도적인 공명음을 터뜨리며 눈부신 순백색으로 물들고.
쾅!
동시에 남제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무지막지한 진동이 흑도 전역으로 번져 나간다. 규모의 격이 달랐다.
온갖 진귀한 법보와 진기 토납의 술식진은 물론, 그동안 마경의 땅 밑에 축적된 시체들의 선천지기까지 광역으로 끌어들인 끝에 구축된 일국(一國)의 진법.
[개변(改變), 아신(我身).]남제의 손짓 한 번으로 투신 재래의 공능이 근본부터 뒤바뀐다. 술식(術式)의 힘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되도록 묘리를 비틀어버린 것.
흑도에 발을 들인 자.
남제의 영역에 진입한 격이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궁궐 내부의 공간이 반투명한 만다라마냥 어지러운 원을 그렸다.
정연신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던 돌 조각이 거짓말처럼 십 장 바깥으로 밀려나고, 한참 먼 곳으로 튕겨서 데구루루 굴러다니던 천궁왕의 머리가 대신 발밑에 놓인다.
황제의 무공.
모든 것을 밀고 당기는 압도적인 발경력으로 궁궐 내부마저 주무른다. 싸움터의 배치를 제멋대로 바꾸는 공능이다. 흡사 공간을 희롱하는 것처럼 비쳤다.
동시에.
후욱!
“……!”
정연신을 응시하고 있던 남제와, 용희명에게 일장(一掌)의 공월무를 날리기 직전이었던 법왕이 위치를 바꾼다.
정연신은 손을 새하얗게 백열시키며 지척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법왕과 시선이 부딪쳤다.
원매멸명(寃枚滅明). 오른 손바닥이다.
무엇인지 모를 공월무가 정연신의 복부로 짓쳐들어오기까지 찰나였다. 영겁처럼 늘어진 순간에 정연신이 법왕의 우장(右掌)을 툭 잡아챈 것도 그때다.
젊은 신검단주는 이미 맨손으로 자신만의 발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린 절기였다.
파천(破天).
쿠르르르릉―!
정연신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법왕의 손이 아니라 은은한 빛무리가 딸려 올라오고 있다.
앞서 법왕의 우장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던 장력(掌力)은 물론, 그가 둘러치고 있던 천단광갑이 빛으로 이루어진 털옷처럼 벗겨지는 중이었다.
“…….”
순간 전장이 멈췄고.
“춥나?”
정연신은 조용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