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on the protagonist's flower path RAW novel - Chapter (43)
4.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 (5)
나는 뒷골목을 돌고 돌고 돌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리고, 오르막을 걷고 걸었다.
슬슬 이그드라실이 우리를 놀리려고 한 건가 의심이 될 무렵, 아주 구석진 곳, 벽과 벽으로 막혀 햇빛이 내리쬐기는 할까 싶은 곳에 한 허름한 대장간이 보였다.
……여기 맞나?
나는 대장간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안에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계세요!”
그러자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있다, 이 녀석아!”
안에서 들려온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손님을 썩 반기지 않는 듯했다.
“바빠! 용건이 있으면 들어오고, 아니면 돌아서 나가!”
나는 까칠한 대답에 이 마이스터를 상대하는 게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저, 이그드라실 님의 소개로 왔는데요!”
갈색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여성이 망치질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엉? 아, 네가 그 녀석이 말한? 뭐야, 생각보다 사람이네?”
그럼, 사람이지. 이 사람은 대체 내가 뭐일 거라 생각한 걸까?
“내가 누군지는 알 테고. 그럼 내가 의뢰받는 방식도 알지?”
모르는데. 애초에 누구세요? 나는 이 사람이 대단한 마이스터라는 것밖에 모른다.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하던 찰나, 진지한 공기가 그 마이스터를 휘감았다.
“이름은?”
“강나현입니다.”
“그래. 시스템에게 부여받은 직업은 뭐지?”
“저격수입니다.”
“그렇군. 그럼 너는, 무엇을 위해 무기를 가지고 싶은 거냐?”
뭐야, 너무 쉬운 질문이잖아. 나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내가 힘을 기르면, 분명 소중한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소중한 것도 더 잘 지킬 수 있으니까.
나를 말없이 뚫어져라 보던 마이스터가 피식 웃었다.
“평이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군.”
뭔가 잘못했나!
“하지만 그 답에 거짓은 없으니, 나쁘지 않구나.”
큭큭 웃은 그녀가 나를 탁자로 안내했다.
“요즘은 그런 평이한 대답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놈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니.”
여러 설계도와 잡동사니가 쌓인 탁자 앞 의자를 거칠게 꺼낸 그녀가 의자를 탁탁 두드렸다.
“앉아라. 무엇이 필요하지?”
어…… 뭔진 모르겠지만, 합격인가? 나는 조심조심 의자에 앉았다.
“……장거리용 저격총과, 중단거리를 커버할 수 있는 총들이요.”
“총은 오랜만이군. 세이비어 때 그 녀석용 장비를 만든 이후 처음이야.”
“세이비어?”
“음? 몰랐던 건가? 내가 바로 국제 공략대 세이비어의 대장장이 미켈이다.”
나는 경악으로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단한 장인을 소개해 준다곤 했지만, 너무 지나친 거물한테 보낸 거 아닌가?
어쨌든 무기의 퀄리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야 그 세이비어의 대장장이라면 전설의 무기들을 만든 장본인 아닌가.
세이비어가 해체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젊은 모습인 걸 보니 그녀는 이그드라실과 같은 이종족 배신자거나 혼혈일 것이다.
그보다 세이비어의 대장장이라면…… 그 검도 고칠 수 있으려나?
내 머릿속에 덤덤이가 항상 들고 다니는 낡은 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이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 그렇다면 혹시 망가진 ‘푸른 황혼’을 고치실 수도 있으신가요?”
주제넘은 부탁인 건 안다.
하지만 간혹 슬픈 얼굴로 망가진 검을 쓸어내리던 덤덤이의 얼굴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탓이다.
예전에 덤덤이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선물은 이걸로 해야겠다.
“……푸른 황혼이라. 그리운 이름이군.”
미켈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가, 씨익 웃었다.
“좋다. 가져와라. 단, 그 소유자가 내 마음에 들었을 때만 고칠 거다.”
사실상 승낙의 의미였다.
덤덤이가 이 사람의 마음에 들지 못할 리가 없다고 나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네가 나를 위로해 줬듯, 나도 너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 * *
“흠…… 마력 속성은 무속성이군. GAH 필터는 당연히 장착할 생각이지?”
“……아, 네. 다속성 마력을 쓸 수 있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디자인은 생각해 둔 건 없고?”
“그냥 튼튼하게만 해 주세요.”
“걱정 마. 그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
미켈은 능숙한 장인답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무언가 견적을 내는 듯했다.
“흠…… 총신은 미스릴 계통 금속으로 제작해야 내구성이 좋겠군. 이봐. 딱히 무기를 바꿀 생각은 없지?”
“네. 가능하면 헌터로 데뷔한 다음에도 계속 쓰고 싶어요.”
“그래. 그렇다면 더 강한 출력 및 마력 변환에도 대응 가능하도록 S등급 필터를 장착해 두마.”
“감사합니다.”
미켈과의 의논 끝에 주문을 끝마친 나는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한층 빨라진 걸음은 그리운 장소, 그러니까 우리 고아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경쾌한 발걸음이 더더욱 가벼워졌다.
이게 정말 얼마 만이지? 가디언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이다. 기분 좋은 기대감과 상쾌함이 온몸을 감쌌다.
어느새 저 멀리 익숙한 고아원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고아원 건물은 검은 천칭이 거래의 대가로 준 것이다. 반듯하고 깔끔한 모양새로 적어도 고아원 아이들이 외풍에 시달리지 않도록 했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달려간 나는 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고아원 앞에서 선생님과 웬 수상한 로브를 쓴 사람 둘이 대화하고 있었다.
누구지?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몰골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기꾼이나 사이비는 아니겠지?
그때 선생님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원 의사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후원자인가? 드문 일이다.
그리 생각한 순간, 어딘가에서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이종족 혼혈 고아들을 지원하는 고아원은 드뭅니다. 선생은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시는구려.”
“아닙니다. 출신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니까요.”
이성이 생각하기에 앞서 등골에 서늘함이 맴돌았다. 이미 다 나은 배가 욱신거렸다.
저 목소리는, 분명, 중간고사 때 갑작스럽게 난입했던 그……!
오싹, 위기감이 소름과 함께 치밀어 올랐다.
“선생님!”
나는 대번에 선생님에게로 달려가 앞을 가로막았다.
“나현아?”
“음?”
내가 미친 듯이 달려와 인사도 없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봤지만 그쪽에 신경 쓸 새는 없었다.
로브를 쓴 두 사람은 나를 보더니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한 명은 로브 위로 올라와 있는 귀의 실루엣과 아래에 어렴풋이 보이는 꼬리의 그림자로 보아 수인 내지 수인 혼혈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인간인가?
대체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날 해코지하러 온 건가? 협박?
머릿속 안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가 악물렸다.
이자들은 ‘와일드 헌터’.
소설에 등장한 빌런 단체로, 이종족과 이종족 혼혈들을 현혹해서 자신들의 동료로 만들고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종족 혼혈이 특히 많은 고아원이다. 그러니 대단히 위험한 상황.
난 선생님을 막아서며 재빠르게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두 명에게 겨눴다.
“나현아, 무슨 일이니!”
“선생님, 물러서세요!”
선생님은 당혹스러운 듯했지만 내 말대로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이 일정 반경 밖으로 벗어날 때까지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과 날카롭게 대치했다.
이곳은 그저 작은 고아원일 뿐이다.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고 상처 입히는 놈들이 침입해 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내 소중한 집이라고!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거야? 내 뒷조사라도 한 거야?”
“너는 그때 체육관에서……. 그렇군. 이곳 출신인가.”
“대답해!”
그 남자는 악을 쓰는 나에게 대답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 고아원에서 살아왔다면 적어도 혼혈을 차별하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겠군.”
“뭐?”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린 순간, 다른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위기는 곧 기회 아님까.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이 애를 이용해 보면 어떻슴까? 마침 아카데미에 잠입시킬 스파이가 필요했잖아요?”
“그건 그렇군. 이곳 출신이니 후원자인 우리와 자연스럽게 접촉하기도 쉽겠어.”
“게다가 순혈 인간이니까 의심받지도 않겠죠. 자, 한번 가 보죠.”
히죽 웃은 그가, 로브 안으로 무언가를 잡는 동작을 했다.
그가 무언가를 허공에 던지자마자 불길할 정도로 새까만 마력이 내게 쏟아졌다.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총을 다시 움켜쥐었으나 금세 손부터 저릿해지면서 무기를 쥔 게 맞는지 짐각조차 되지 않았다.
질척하게 가라앉는 마력이 몸을 축축 늘어지게 만들었다.
시야가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며 검게 덧칠되어 갔다. 검은 마력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시야 사이로 어떻게든 그들에게 총을 쏘려 했으나, 오감이 둔해지며 총알이 제대로 쏘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큭……!”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고통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둔해진 감각 사이로 두 남자 중 하나가 내 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젠장, 내가 가족들을 지켜야 하는데……!
최대한 마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