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0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7화
“자! 골라, 골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지금 막 얻어 온 따끈따끈한 저주의 부적! 없어서 못 파는 거라고!”
“불타는 대지 미션 같이 수행하실 딜러분 구합니다! 최소 중급 화염저항 스킬 있으신 분만 오세요!”
“하늘 구름 길드에서 주최하는 많이 먹기 대회에 참여하실 분은 동쪽 광장으로가 주십쇼! 우승 상품으로 유니크급 마법서가 지급되고 우승하지 못해도 배 터질 만큼 먹을 수 있습니다! 하늘 구름 길드에서 주최하는…….”
아직 도시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도시 바깥에서 마련된 간이 시장에 불과했지만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네브라는 무심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보는 대로 시장이지. 그 전까지는 도시 안에서만 활동하고 바깥의 필드는 위험 지역으로 생각했지만 자유연맹이 결성되고 나서는 상황이 좀 달라졌어. 도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넒은 땅이고 힘이 넘치다 못해 남아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바깥을 개발하기 시작했지.”
“……그렇군요.”
근심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볼 때마다 네브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이마를 왈칵 찌푸렸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 왔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행복감과 이 모든 게 최악의 악당인 유성훈의 거짓과 기만, 사기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떨고 있던 네브라를 말린 건 바로 이정이었다.
“진정해라. 말썽을 부리면 안 된다고 내가 경고했지”
“…….”
“억지를 부려서 도시로 왔으면 쥐 죽은 듯 있다가 쥐 죽은 듯 가라. 넌 아직 몸도 성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알고 있습니다.”
얼굴을 완전히 뒤덮는 투구와 두꺼운 갑주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한 네브라는 조용히 이정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체를 완벽하게 숨긴, 수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이 정도 복장은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가장 무도회, 코스프레 대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독특한 복장을 걸친 사람부터 시작해서 아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조차 널려 있는 곳에서 네브라의 모습은 노말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난리를 부려서까지 도시로 온 이유는 뭐야? 리나가 해 주는 밥은 맛이 없어서 외식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거 리나가 들으면 엄청 화낼 텐데요.”
“너한테나 화내겠지 나한테는 화 안 내.”
“……그것도 그렇군요.”
이정에게는 그야말로 간이든 쓸개든 전부 빼내 줄 듯이 헌신적으로 대하면서 자신은 그야말로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한다. 이정의 집에 묵으면서 자신의 요리만 이상한 맛이 난다던가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나온다던가 하는 일상적인 차별을 몸으로 겪은 네브라는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겁니까”
“아니, 그 녀석은 원래 그래.”
“원래요”
“응. 좀 내성적이기도 하고 낯을 많이 가려서 자기가 가족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무시해. 대신 한 번 인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 주고 믿어 주는 그런 아이야.”
“순수한 아이로군요.”
“……뭐 어떤 의미로 보자면 순수하기도 하지. 그런데 어쩌다가 이 이야기를 하게 됐더라 원래 주제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정의 추궁에 네브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사람이라. 4년이나 연락이 끊겨 있었으면 다시 찾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떻게 찾게 정보 길드라도 찾아가 보게”
“정보 길드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거든요.”
“알고 있다고 어떻게”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이정 씨가 직접 말해 주기도 했고.”
잠시 고민하던 이정은 곧 무언가를 깨닫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말해 준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거기에 현재 자신들이 찾아온 도시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설마.”
“토론토의 현 의장인 루시아를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 * *
각 도시의 탑 랭커가 주축이 된 대동맹과 유성훈이 일으킨 일반인 중심의 자유 연맹.
그 두 거대 단체의 운명을 건 격돌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성훈의 승리로 돌아가며 대동맹은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유성훈은 마음만 먹는다면 어마어마한 살육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전쟁에서도 이기고 대의도 쥐고 있는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유성훈은 탑 랭커를 위시한 최고위급 지휘자들과 일부 죄질이 중한 사람들에게만 죄를 물었고 그 결과 무혐의로 풀려난 대동맹의 대다수는 구사일생의 상황에 앞다투어 자유연맹을 지지했고, 일반 시민들도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곧 너그러운 판결에 승복하고 한층 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다만 이 관대한 판결에 혹해서 모두가 잊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 당시 재판에 올라간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만한 소수를 제외하고 전부 에누리 없는 사형, 그것도 바로 즉결 처분을 받았다는 거지. 그 일을 기점으로 대동맹에 속해 있었던 탑랭커 중 다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그게 바로 루시아야.”
“…….”
“당시 루시아는 어디까지나 아르벤이라는 녀석에 의해서 이용당했던 희생양일 뿐이었고 시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의 입안자라는 사실 덕분에 화를 피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대체 왜 찾는 건데? 자신을 구해 준 유성훈을 지지하면 지지했지 복수하자는 일에 참여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으득!
이정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리가 돌아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네브라는 참고 또 참았다. 명백한 거짓. 하지만 이세계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제가 아는 루시아라면 그녀는 절대 유성훈을 좋아하거나 그의 편을 들지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하는 쪽이겠죠.”
“성녀 루시아가 원망하는 모습이라는 게 상상이 영 안 되는데. 그렇게까지 자신한다면 나야 믿을 수밖에 없지. 대신 일이 잘못된다 싶으면 난 바로 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두라고.”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요.”
곁에 있어 준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믿음직했다. 다소 퉁명스럽거나 톡 쏘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4년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겪다 처음으로 만나고 호의를 베풀어 준 이정은 네브라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정지! 여기서부터는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루시아님에게 이 쪽지를 전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의장님에게?”
건물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은 네브라의 위아래를 조심스레 훑어보다 무덤덤하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별로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는 쪽지도 아니고 루시아가 항상 일반인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경비병은 갑작스러운 부탁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경비병은 벙 찐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왔다.
“……올라가십쇼. 루시아 님은 맨 위층의 안쪽에 있는 집무실에 있습니다.”
루시아의 격렬한 반응을 처음 본 경비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 의문의 기사가 루시아와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추측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으니 여기서 기다리지.”
이정의 배려에 네브라는 살짝 목례를 하고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변했다.’
한때는 더 호프의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건물. 함께 울고 웃으며 고난을 헤쳐 왔던 동료들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의 구조는 익숙하다. 동료들이 장난 삼아 남긴 흔적이나 여러 가지 사고를 치면서 낸 작은 상처들은 분명히 남아 있다. 네브라는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자신은 영웅이 되라며 온갖 더러운 일들을 자진해서 처리하던 렉터, 언제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줬던 알렉스, 매사에 게으름을 부리면서도 일이 닥치면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던 칼.
그 이외의 여러 동료들이 살아서 돌아온 듯하다. 그렇게 홀린 듯한 기분 속에서 네브라는 눈을 감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곧 문 앞에 다가가 굳게 닫힌 문고리에 힘을 줘 벌컥 열어젖혔다.
눈을 뜨자 상상 속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풍경이 있다. 익숙한 가구, 익숙한 향기, 익숙한 느낌, 그리고 단 한시도 잊지 못한 여인도 있다.
“……루시아.”
“…….”
과거와 같은, 아니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하고 있는 루시아.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루시아는 힘없이 주저앉아 서럽게 울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네브라는 주저앉은 루시아를 가볍게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 * *
너무 울어 목이 쉬고 눈이 퉁퉁 부을 지경이 되어서야 루시아는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아, 아르……아르벤 오빠. 지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죠”
“……현실이다. 분명한 현실. 그러니까 울지마. 처음 만났을 때도 서럽게 울더니만 넌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남들 앞에서는 안 울어요. 오빠 앞에서만 우는 거지…… 지금 여기에 오빠가 있다는 건 유성훈이 오빠를 풀어 줬다는 건가요”
루시아의 말을 들은 네브라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분위기에 취해 버려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자신은 루시아를 마냥 기쁘게만 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패하고 재판을 받던 당시 루시아가 거짓 증언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녀가 자신과 동료들을 진짜 배신할 리는 없었다. 아마 유성훈에게 협박을 당해서 거짓 증언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감옥 속에 갇혀 오로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네브라는 과거의 아르벤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묘한 시선을 뒤늦게 알아차린 루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일 때문에 제가 의심스러운가 보군요.”
“나는 너를 믿어 루시아. 다만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할 뿐이야.”
애초에 그 말이 믿지 못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애써 되삼킨 루시아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당시 저는 유성훈에게 거래를 제안받았어요.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거짓 증언을 해주면 아르벤 오빠와 일부 동료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죠.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는 오빠들과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했어요. 어떻게든 유성훈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래서인가.’
유성훈이 자신을 왜 살려 두는지 항상 궁금해 했었다. 그저 최대한 오랫동안 살려서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루시아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