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9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26화
네브라 곁에 붙어 있느라 한동안 회의에 참석하지 못 했던 성훈은 자유 연맹의 일이 꽤나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리내는 자신이 없었던 공백을 완전히 커버하며 자유연맹을 완벽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최고 권력자가 자리를 비우고 있으면 어떤 조직이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한 달 만의 귀환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미리내!”
“별것 아니야. 내조는 아내의 기본 아니겠어”
담담한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검 이외에는 젬병이던 미리내가 이런 일에 익숙해 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눈에 선했다.
협박에 의해 하게 된 결혼이지만 미리내는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팔망미인이라는 말을 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뽐내고 있었다. 이런 아내가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 해방 전선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 따로 정보 통제를 해서 그 쪽에 대한 이야기는 잘 퍼지지 않게 손을 쓰고 있어. 다행히 의장이 바뀐다는 빅뉴스랑 간부진인 상위 랭커 여러 명이 죽어 나가는 사건이 있어서 관심을 돌리는 건 간단하더라고.”
“응 상위 랭커가 죽어 나가? 그건 무슨 소리야”
“신경 쓸 만한 건 아니야. 네가 없는 틈을 타서 뒷주머니를 차려거나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에 무명 길드를 동원해서 깔끔하게 처리해 버렸어. 완벽하게 사고 사로 위장했으니 뒷수습은 걱정할 필요 없고.”
“…….”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처럼 미리내는 좋은 의미로, 그리고 안 좋은 의미로도 자신을 닮아 가고 있었다. 예전의 허당끼가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죽이네 살리네 말하며 더러운 뒷 수작에도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걸 보면 가끔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외에 알아둬야 할 사실 몇 가지를 들은 성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총 6명의 의장과 그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가볍게 인사를 하자 성훈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되돌려줬다.
자유연맹의 모든 힘을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맹주의 직위를 맡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에너미 메이커 계획을 생각해낸 시점부터 최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온화하고 순하게 보이게 하는데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의장님, 정기 회의에 아무 말도 없이 빠지시고 일정을 무단으로 어기시면 곤란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미션이나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는 게 그만…….”
“쯧.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신보다 명백히 아래에 있는 의장의 시비조의 말에 발끈하지 않고 우물쭈물대는 모습은 온화하고 순하기보다는 그냥 호구같아 보인다는 말이 어울렸다. 실제로 회의실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사과를 하는 성훈을 보며 슬쩍 비웃음을 짓는다든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소수 존재했다. 단순히 삼류 사기꾼이었지만 막판에 줄을 제대로 잡아 인생 역전에 성공한 이서준, 현실과 타협하고 혼자서만 살아남은 루시아, 잭 애프론의 뒤를 이어 로스엔젤레스를 지배하게 된 콜린스 등 유성훈의 진실한 면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굳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시는 거지? 결혼도 하고 나이가 들다 보니 조금은 온화해지신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일단 아르벤 오빠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저 녀석의 저 눈은 뭔가를 꾸미는 눈이다. 이거 좋지 않군. 대체 이번에는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마음을 읽는 능력 따위가 없어도 세 사람의 생각을 손에 잡힐 듯이 훤하게 읽을 수 있었던 성훈은 속으로 가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간단한 안건 몇 개만 나누고 오늘 회의는 빨리 마무리하죠. 일단 가장 먼저 다 뤄야 하는 안건은 이것 같군요. 청명 의장님, 다음 의장 선거의 진출에 포기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예.”
“청명 의장님처럼 근면하시고 일처리를 확실히 하시는 분도 없는데 괜찮다면 무슨 이유에서 의장직에서 물러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별것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일만 해 온 것 같아 잠시 재충전도 하고 구파의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려 할 뿐입니다. 최후의 무대를 공략하기로 한 날까지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은연중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구파를 유지하고 있는 무력 집단의 상당수와 수뇌부가 무단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가미카제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그 이유도 일부 있기는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오랫동안 조직을 운영해서 인지 반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꽤 있더군요. 단순히 길드 내에서 있을 법한 의견 충돌일 뿐이니 맹주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속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성훈으로서는 청명의 매끄러운 대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형제지간으로 사선을 넘어오면서 생긴 정 때문일까 이유는 어찌 되든 좋았지만 멋대로 조직을 배신하고 나간 송일학과 그 패거리들을 감싸 주는 게 성훈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게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청명과 송일학의 사이를 좀 더 틀어지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듯싶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아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실 테지만 얼마 전 로스엔젤레스의 하위 도시가 해방 전선이라는 세력에 의해서 통일됐다고 들었습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그다지 신경 쓸 건 없지만 무시할 수 없을 만 한 소문이 몇 개 떠돌고 있어서 말이죠. 루시아 님”
“예, 예”
“토론토에서 해방 전선에게 상당한 양의 자금과 병력을 지원해 줬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자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병력의 지원 규모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루시아 님이 원래 자선이나 복지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어도 일개 하위 도시에 보낼 만한 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토론토의 남는 자금과 병력을 제 개인적인 판단하에 지원한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당히 예민한 곳을 찔렀는데도 표정에 변화가 없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성훈은 가볍게 감탄했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성훈은 예상이 빗나가자 짓궂은 마음으로 한 번 더 찔러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 해방 전선이라는 길드가 그렇게까지 지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그 도시에서 빠져나온 범죄자들이나 부적응자들이 다른 도시에서 여러모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고 듣자하니 해방 전선은 자유연맹과 저를 타도한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감싸줘도 모자랄 판에 적대하는 사람들을 감싸 준다는 건 영 내키지 않는데요.”
루시아는 성훈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듯한 느낌으로 가볍게 고른 선택에 의해 기껏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네브라의 계획이 처음부터 무너질 수도 있었다.
“확실히 맹주님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렇죠 그럼 적당히 경고를…….”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맹주님의 자비를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 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지금 자유연맹은 경쟁자조차 없는 유일무이한 자리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조금 비난하는 말을 들었다고 강압적으로 타도하려 하는 건 위신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좋지 않은 소문을 낳을 겁니다. 예전 대동맹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민중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죠. 지금은 섣불리 매를 드시기보다는 오히려 대범하게 나가서 자유연맹의 넓은 아량을 알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대적인 사람마저도 끌어안을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가 아닐까요”
루시아의 입에서 나온 청산유수의 발언에 사람들은 모두 납득했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물론 성훈은 다른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워우. 단순히 인의나 자비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한 대의명분과 체면까지 들먹인다 이거지. 루시아가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이런 변명까지 생각할 수는 없을 테고 아마 네브라에게서 들은 말이겠지. 자기는 온갖 불법적이고 더러운 짓을 저지르면서 나한테는 명분과 정의를 내세우냐’
마음만 먹는다면 명분 따위는 무시하고 다 때려 부숴 버릴 수 있다.
지금 강경하게 나오면 확실히 루시아의 말대로 불평불만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 사건 몇 개 일으켜 관심을 돌리고 복지 정책 몇 개만 추진하면 사람들의 인식이야 얼마든지 뒤집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은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정의의 영웅이라는 가면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뭐, 좋습니다. 루시아 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해방 전선에 관한 일은 일단 두고 보기로 하지요. 아니, 아예 한 도시가 아니라 자유연맹에서 해방 전선을 지원하는 건 어떻습니까? 4대 도시에 남아도는 게 아이템이요 전력인데 조금씩만 모아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 진심이십니까”
“진심이고 말고요. 자세한 지원 내역은 차후에 상의를 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상당한 양의 지원이 이루어질 것 같군요.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루시아님이 제 실수를 지적해 주셨으니 앞으로 해방 전선에 이루어질 지원에 대해서는 전부 루시아 님의 이름을 내세우고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성과에 루시아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어떻게든 네브라의 힘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루시아를 보면서 성훈 역시 사심 하나 없는 순수한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욕먹는 역할을 사서 맡아 준다는데 나야 환영이지. 루시아 너는 과연 나중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해방 전선은 나중에 분명히 자신을 향해 칼을 빼들고 세계를 혼란 속에 빠트릴 것이다.
그때가 되서 해방 전선에게 우호적으로 나섰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입장에 처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뻔할 뻔 자다. 고개를 숙인 성훈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변해 있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겠다.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얼마든지 일을 꾸며 보라고. 나나 자유연맹에 대한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 과거 대동맹의 잔당, 민족 감정에 휩쓸린 사람, 범죄자들 누구든 좋아.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전부 모아서 한꺼번에…….’
“의장님”
“아, 미안하군. 잠깐 해방 전선에 대한 지원을 고민한다는 게 말이야. 하하하하.”
입안 가득히 고여 있던 침을 삼킨 성훈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오랜만에 맹주라는 신분으로 돌아온 이유는 고작해야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청명 님이나 해방 전선, 그 외의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흉흉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축제를 열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축제요 길드 차원에서 간단한 이벤트 같은 건 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간단한 축제가 아닌 올림핌 같은 느낌의 모든 도시가 참여하는 축제입니다. 안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상위 아이템의 품귀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그동안 창고에 쌓아 뒀던 아이템들을 상품으로 내걸어서 거창하게 한번 벌여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