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44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71화
토론토를 단 3일 만에 함락시켰다는 해방 전선의 선전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일종의 기만책쯤으로 생각했다.
전력으로 보자면 자유연맹에 속해 있는 도시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4대 도시에 필드 곳곳에 방어과 지연을 위한 시설들이 기본으로 지어져 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의 숫자가 많았다고 한들 평소 훈련한 대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3 일로는 점령은커녕 성 근처에 다다르기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는데 모든 지역을 완전히 점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속속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 생존자 무리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안에 첩자가 있었습니다. 견고했던 성벽이나 비축해 놓은 물자들은 전혀 도움 이 되지 않았어요.”
“첩자 아니 첩자가 있어 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그 많은 사람이 그걸 못 막 아서 당했단 말입니까 아니 그 전에 신원 파악도 안 했어요 해방 전선이 공격한 시점에서 하위 도시 사람들은 바로 잡아들여서 격리했어야죠!”
“그런 걸 안 했을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전부 잡아서 처 넣고 경비도 엄중하게 세웠는데 뚫렸다고요! 하지만…….”
“하지만”
“……저희 측 사람들 중에서도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배신자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명망이 높거나 중요한 직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소문을 퍼트려서 사람들의 사기와 결속력을 떨어트리고 여 론을 분열시켜 사람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사건을 일으켜 시선을 집중시키고 성문을 열어 적들을 들여보냈어요. 게다가 놈들은 비 밀 샛길이나 지하 통로도 전부 다 알고 있었어요. 내외에서 합공을 당하니 버틸 재간이 없었죠.”
“다른 곳도 그렇게 당한 겁니까”
“물량 공세에 휩쓸리거나 소수 정예의 침입에 뚫린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충 반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첫날에는 조금 버텼는데 필드에 있는 곳은 둘째 날에 대부분 함락되고 셋째 날에는 토론토 자체가 공격받았어요.”
“허어.”
적들이 당장 코앞까지 닥쳐와 무기를 휘두를 때쯤에야 사람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급한 대로 모여서 시가전을 벌이려는 사람도, 기다렸다는 듯이 항복하는 사 람도, 토론토를 탈출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후자를 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놈들은 저희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준비를 잘 했어요. 훨씬 더……. 놈들을 우습게 여겼다가는 저희 같은 꼴을 당할 겁니다.”
토론토가 배신자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을 듣고 사람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성훈의 주도하에 한 번 솎아지고 난 이후에도 그만큼의 배신자가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도 배신자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분위기를 파악한 성훈은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내부 감사를 통해 한 번 해방 전선과 협력하던 사람들을 추려 내기는 했지만 어 딘가에 잔당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론토의 점령에서 알 수 있듯이 내부에 있는 한 명은 바깥에 있는 백 명의 적보다 무섭습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특별운영체제를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지금 남아 있는 사람 중에 배신자가 있을 리가 없지만.’
지난번 내부 감사로 그런 사람들은 전부 걸러 냈다. 다만 손대지 않은 건 토론토 쪽의 사람들뿐, 만약의 경우 토론토를 미끼로 쓰기 위해 한 일인데 훌륭하게 걸 려들었다.
“특별운영체제”
“쉽게 말하자면 현재 각 도시와 길드별로 나뉘어 있는 지휘권을 소수에게 집중 시키는 겁니다. 맹주인 저와 각 의장님들을 중심으로 모든 대소사와 군사적 움 직임을 논하고 결정하게 되는 거죠.”
성훈은 본래 완전무결했던 권력에 일부러 흠을 내고 쪼개 여러 곳에 분산시켜 실패하거나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정책으로 생겨난 원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 리고 자신의 명예와 이미지를 더더욱 단단하게 굳혀 왔다.
그러나 이런 계획에도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전부 다 자신의 부하 들이고 자신의 말이라면 간이든 쓸개든 빼줄 사람들이라지만 바로 명령을 내리는 것과 한 계단 걸쳐 내리는 건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성훈은 이번 기회에 흩어졌던 권력을 다시 자신에게로 완벽하게 끌어올 생각이었다. 원래 아무리 성훈의 명망이 높아도 이런 식의 결정이 쉽게 받아들 여질 리가 없었지만 현재는 전시였다.
토론토가 어떻게 점령당했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성훈의 제안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천치거나 배신자쯤으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성훈은 쓸데없는 불안마저 완전하게 차단해 버렸다.
“이 특별운영체제는 해방 전선을 물리칠 때까지만 유지되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체제로 전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주장에는 그 어떤 결점도 없었고, 성훈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아주 자연 스럽게 절대유일의 권력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 설명이나 상의 없이 일거에 지휘관을 갈아치우거나 첩자를 색출해 내기 위 해 비밀경찰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는 살짝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 기도 했지만 ‘맹주님이 하는 일인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들 알아서 납득하고 물러나 버렸다.
자유연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성훈의 명령에 충실하게 움직이는 수족으로 재 탄생하게 된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죠. 이 많은 사람들이 제 결정 하나에 살아남고 죽을 수도 있다니, 부담 되서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옛날 대동맹을 상대로 덤볐을 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져도 본전이었기에 이판사판으로 덤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 니까.”
‘이놈도 드디어 책임감이라는 걸 가지기 시작한 건가’
세르게이는 성훈의 근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 그에게도 연약한 면이 있다는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성훈 본인과 옆에 있는 미리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뭐, 만약 실패라도 해서 분위기 안 좋아질 것 같으면 부대 지휘관이나 명령을 전 달하려던 사람들이 배신자들이었다고 뒤집어씌우면 되겠지 뭐.’
현재 성훈이 사람들에게서 받고 있는 지지나 신뢰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뒤져 봐도 비길 데가 없을 정도였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길 가던 사람을 갑자기 때리거나 욕해도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와서 같이 때려 주고 심지어 맞은 사람도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공포나 강압으로 얻어 내는 복종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이나 흠모의 감정이 훨씬 더 공고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쓸데없는 잡담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그래서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요. 그게 말인데 일단 지금으로서는 딱히 이렇다 할 해결책이라는 게 생각 나지 않는군요.”
“맹주님! 진지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지금은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농 담만 할 때가 아니라고요!”
세르게이와의 대화에 끼어든 콜린스를 바라보며 성훈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잭 애프론이 만들어 낸 세계를 없애기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노력했던 콜린 스는 과거 로스엔젤레스와 비슷한 행보를 밟아 가는 해방 전선을 그 누구보다 증오하고 있었다. 만약 성훈이 제지를 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휘하의 병력을 이 끌고 전장을 휩쓸고 있었을 것이다.
“콜린스 님. 저는 지금 굉장히 진지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당장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적을 전부 휩쓸어 버리고 싶어요. 저희에게는 그럴 능력도, 명분도 있습니다.”
“그럼 왜 안 하는 겁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성훈이 턱으로 슬쩍 가리킨 곳에는 루시아가 있었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기는 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흐트러져 있었으며 넋을 놓은 듯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는 백치 같은 모습. 결국 콜린스는 소리 높여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루시아 님!”
“…….”
“제 말 안 들리십니까 예”
쾅!
“꺅”
“이제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릅니까”
“죄,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죠. 대체 언제까지 고집을 부리실 생각이십니 까 찬성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중립만 지키라구요!”
루시아의 우물쭈물대는 모습을 본 콜린스는 바득바득 이를 갈기 시작했다. 원래 콜린스는 루시아가 벌이는 각종 자선사업이나 복지 정책을 보고 그녀를 좋게 평 가하고 있었지만 요 며칠간 일어난 일로 그 생각을 송두리째 갈아엎을 수밖에 없었다.
“포로 약간 살리겠다고 별동대를 회군시키고 정규 병력의 이동까지 막아 버려 전쟁이 무슨 장난인줄 알아”
“약간이 아니었어요. 4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었다고요.”
“400명 거기서 공격한다고 놈들이 진짜로 포로를 전부 다 죽였을 것 같아 그건 블러핑이었어! 그리고 그 이후에 다른 놈들도 포로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끽 해야 천 단위야. 그 정도는 그냥 평범하게 싸워도 나오는 입었을 피해라고!”
“그거랑은 경우가 다르잖아요!”
“결과는 같아!”
콜린스는 루시아의 멱살을 틀어잡고 공중에 들어 올렸다. 다행히 성훈과 세르게 이가 급히 달려와 말리기는 했지만 제지가 없었더라면 콜린스는 진짜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을 것이다.
“저, 저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그런 거예요. 그게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죠”
“……쓰레기 같은 년. 자각이 없는 만큼 더 질이 나빠. 네가 그때 마검을 말리고 병력을 물려 자유연맹 전체를 지연시키는 동안 해방 전선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토론토를 공격해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400명 그 자리에 있는 400명은 살렸을지 몰라도 너는 눈에 보이지 않던 열 배, 백 배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 아넣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 버렸어.”
“저, 저는…….”
“게다가 이 상황에서조차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만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전쟁이 우스워 우습게 보이냐고! 그렇게 착한 척하고 있으면 저놈들이 감동 받아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항복이라도 할 것 같냐고!”
천막 안을 지독한 살기로 물들이던 콜린스는 짧게 혀를 차고 성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년…… 후우, 루시아 님 의견에 따라 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공격 명 령을 내리는 게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길입니다. 명령만 내린다면 제가 최선봉에 서도록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정이 간단하지 않아요. 이미 한번 포로를 앞에 두고 물러난 사건 때문에 저희들이 최대한 무고 한 희생을 줄이는 식으로 싸우겠다는 식의 소문이 퍼져 버렸는데 이제 와서 전 면전을 벌이겠다고 하면 이런저런 말이 나올 겁니다.”
“그 정도야 맹주님이라면 충분히 무마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이번에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토론토의 사람들이니 의장인 루시아 님의 의견을 어느 정도 참작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상황이 악 화된다면 당연히 대응 방침을 바꾸겠지만 그때까지는 당분간 시간을 주도록 하죠.”
‘사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는데 그러면 너무 빨리 끝나잖아 네브라가 이날만 기 다리면서 1년간 와신상담해 왔을 텐데 조금 더 그 기분을 만끽하게 해 줘야지.
물론 루시아도 좀 더 고생시켜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