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45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72화
부정적인 답변을 들은 콜린스는 오랜만에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경멸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농락하는 행위를, 그것도 예전의 잭 애프론보다 더 심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놈들을 그냥 놔두라고 지금 해방 전선에 붙잡혀서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만 해도 눈이 돌아가 버릴 지경이다.
그러나 콜린스는 성훈의 눈을 바라보고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당할 리가 없어. 이렇게 보여도 뒤로는 이미 대책을 마련해 뒀 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고통받는 사람은 늘어나고 해방 전선에 유리한 판 이 짜이게 된다. 어떤 수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루시아 님이 의견을 바꾸시면 바로 대응 방침을 바꾸는 겁니까”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죠. 토론토의 의장이 직접 찬성을 했으니 책임소재나 명분도 명백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목례를 남기고 회의장 바깥으로 나와 버린 콜린스는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루시아만 마음을 바꾸면 된다. 그렇다면…….’
이미 지금도 루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불씨는 마 련됐으니 남은 건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붓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주처럼 좋은 소리만 듣고 귀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지내셨을 테지.
비난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이번 기회에 알게 해 주마.”
한편, 콜린스가 나간 이후 성훈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쩝. 아직 회의가 안 끝났는데 그냥 나가 버리시다니. 일단 저희끼리 마저 진행 하죠. 세르게이 님, 현재 병력 배치는 어떻게 됐습니까”
“말한 대로 삼중으로 이루어진 포위망을 구성했다. 숭숭 뚫려 있는 허술한 포진 처럼 보이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유기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배치고 외곽의 방어 요새는 4할가량 완성됐어. 3일 정도만 더 있으면 완벽하게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거다.”
“무시무시한 속도로군요.”
“초인들 데리고 일하는데 평범한 작업 속도가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현재 상황만 본다면 누가 보더라도 자유연맹이 불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단 3일 만에 4대 도시 중 하나인 토론토를 접수하고 포로, 아니 노예들도 다수 획득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자유연맹도 충분히 얻은 이득이 있다.
해방 전선은 원래 네 개의 성에 병력이 나뉘어 있었지만 이번 공격을 위해 대부 분의 병력을 토론토로 집중시켜 버렸다.
도망칠 구석 따위는 남겨 두지 않겠다는 배수진의 각오는 훌륭했지만 그로 인해 현재 비어 버린 하위 도시는 남겨둔 예비 병력이 차근차근 정복하고 있었고 토 론토에 있는 이들도 빠져나갈 수 없게 이곳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개 조하는 중이었다.
‘벌레라는 건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하나 죽이면 끝이 없어. 싸그리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해 버려야지.’
“이쪽에서의 선제공격은 불허하지만 포위망 근처에 접근한다든가 저쪽에서 먼 저 공격을 했을 경우에는 다시는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쓴맛을 보여 달라고 전달해 주십쇼. 그런 경우에는 포로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든 방패로 내세우든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습니다.”
“자, 잠깐…….”
“이봐, 천사표 아가씨. 제발 적당히 좀 해. 그쪽 도시 사람인 만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알겠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죽거나 다쳐도 된다는 말이야 저쪽이 인질을 내세우면 하라는 대로 다 해 줄 거야 진짜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
성훈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미리내와 콜린스, 세르게이가 알아서 루시아의 말에 태클을 넣고 있었다.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성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전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루시아는 결국 입을 다 물었다.
“그리고 꾸준히 탈출하는 사람이 나오는 걸 보면 놈들도 아직 완전히 토론토를 수중에 넣은 게 아닐 수도 있으니 그쪽으로도 준비해 주십시오. 탈출한 사람들은 따로 격리해서 감시하는 거 알고 계시죠”
“이 일 한두 번 해 보냐 걱정하지 마.”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 루시아 님”
“예, 예”
“최대한 사정을 봐드리기는 하겠습니다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인명 피해는 최소화하는 쪽으로 계획을 짜기는 하겠습니다만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눈으로 절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네 브라 바로 그 사람이니까요.”
텅 빈 천막 안에 홀로 남은 루시아는 생각할 게 있는지 한참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예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여러 가지 의미로 혼탁해져 있었다.
* * *
쾅!
주먹질 한 방에 쪼개지는 책상을 바라보며 랏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대형 길드쯤 되는 아지트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강철과 동등한 강도를 가진 철목을 이용한 가구를 가져다 놓는데 여기는 평범한 목재를 쓴 듯싶었다.
“진정하세요. 이런 가구도 바꾸려면 전부 돈이 들어가요.”
“지금 나는 충분히 진정하고 있어. 만약 진정하지 않았더라면 책상 하나가 아니라 건물 몇 개를 날려 버렸을지도 모르겠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착착 토론토를 정복하고 자유연맹이 인간 방패 전술에 굴해 돌아갔다는 소식을들을 때만 하더라도 네브라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아닌 주인의 자격으로 더 호프 길드의 아지트에 들어갔을 때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잃어버렸던, 동료와의 추억이 어려 있는 것들을 하나씩 되찾 을수록 뭔가 이뤄 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 차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전쟁을 벌일 때는 좋았지만 뒤처리를 시작한 순간부터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 상황은”
“십 단위는 빼고 계산하면 저희 쪽 사망자는 약 8,700명가량, 토론토 측은 26,300명 정도 돼요. 여벌 생명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 온 최종 집계예요.”
평지에서 맞붙은 것도 아니고 성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 대로 세 배나 적은 피해만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건 그 어떤 용병술의 천재가 온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해방 전선의 압도적인 승리로 보였고 실제로 네브라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
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던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려면 최대한 소비는 줄이고 긴축 운영을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네브라는 반대로 얼마안 되는 자금을 전부 짜내 이번 전쟁의 군자금으로 투자했다.
부족했던 자금을 토론토를 점령해서 충당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원래 처음부터 그랬지만 해방 전선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존속하는 것조차 불가 능한 집단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 치워 숫자를 불리고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다가 끝내 먹을 게 없어지면 자기들끼리 잡아먹어 자멸하는 그런 무리들.
그러나 탐스러운 과실인 줄 알고 접수한 토론토는 벌레 먹고 썩어 버린 과일이 었다.
“이게 말이 돼 예산이라고 있는 게 꼴랑 수십 억 길드에 창고에 있는 아이템들도 유니크가 대다수”
“토론토는 대부분의 예산을 사회에 재환원하거나 복지 사업에 지출한다고 들었 는데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요”
“그래도 명색이 4대 도시 중 하나야. 대형 길드, 아니 건실한 중소기업도 이것보 다는 더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건 말이 안 돼.”
“……으으음.”
곰곰이 생각하던 네브라는 곧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이 있는 걸 깨달았다.
초기에 해방 전선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토론토에서 대규모의 자금과 장비, 전력들을 끌어온 일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받아 온 자금만 하더라도 거의 삼백조 길드, 그 정도라면 토론토로서도 상당히 무리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현실에 헛웃음을 터트리던 네브라는 잠시 후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적을 리가 없어. 당장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창 고에 비축된 아이템이나 소모품 같은 물자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즉 이건…….’
“한 방 먹었군.”
“누구한테요”
“유성훈. 미리 명령을 내려 둔 건지, 아니면 우리가 공격했다는 정보를 듣고 나서 손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돈 될 만한 걸 가져가 버렸다. 다른 곳이라면 불가 능했겠지만 토론토는 남은 것이 얼마 없었으니 대부분 챙길 수 있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토론토가 아닌 다른 도시를 쳤어야 했나…….”
“그쪽은 더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어요. 그나마 토론토라서 3일 만에 점령한 거지 신시, 로스엔젤레스, 모스크바였다면 아직 도시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 했을 걸요”
그것도 그랬다. 애초에 해방 전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전병력을 동원한 기습으로 허점을 찌르기는 했지만 이번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유성훈은 토론토가 공격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대처해 놓고 있었다.
“급한 대로 토론토 사람들 장비랑 인벤토리라도 벗겨서 상점에 팔아넘겨. 그렇게 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상점에 파는 건 거의 헐값으로 계산되니 생각하시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돈이 들어 올거예요. 게다가 이기기는 했지만 늘어난 포로 유지 비용이나 전후 처리 및 포상금으로 빠져나가는 금액을 계산하면 잘해야 현상 유지, 삐끗하면 오히려 적자예요.”
“토론토인들에게는 유니크가 아닌 레어 등급의 마약을 지급하고 모두가 아니라쓸 만한 놈만 추려서 지급해라. 어차피 병사로 쓰기보다는 인질이나 방패 역할로 쓰게 될 테니.”
“그렇게 한다면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네요. 보름 정도”
전쟁을 벌이기 전과 별로 변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부실한 조직이 무너지기전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한다.
“놈들이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지”
“예. 저희를 말려 죽일 생각인 것 같네요.”
“흥. 그래 봤자야.”
해방 전선의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유연맹이 싸움을 피하고 시간을 끄는 식으로 장기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해방 전선은 정말 손발도 쓰지 못하고 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전방에 나와 포위망을 구성해 주다니, 마음 같아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자유연맹과 해방 전선의 머릿수는 비등하지. 하지만 우리가 토론토를 장악한 순간부터 차이가 갈렸고 수비를 위해 3할가량의 병력을 남긴 시점에서 그 간극이 더 벌어졌어. 거기에 더해서 병력을 퍼트린다고 정말로 이렇게 해서 우리를 잡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단순무식하게 병력을 한 지점에만 집중 투입해도 포위망을 뚫는 건 일도 아니 다.
‘내부 정비가 끝나는 대로 저 같잖은 포위망을 돌파해서 다른 도시를 갉아먹어 주지. 유성훈, 네 최대의 실수는 나에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