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06
■ 705화. 응모 (1) □ ᓚᘏᗢ
로만의 작품, 멸망을 향해 걸아가는 기사는 큰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아이작이 여러 조언 및 설정을 추가한 것도 작용했으나 작품 자체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단 전반적인 스토리가 암울하다 못해 비참하다. 세계관이라 해서 다를 게 없다.
신들이 모두 사라져 순리가 어긋났다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될 세기말.
이뿐만 아니라 나름 비중 있어 보이는 등장인물조차 비참하게 죽어나갔다.
오죽하면 희망을 인질 삼아 사람의 마음을 고문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될 정도.
그래도 사람들이 큰 관심을 주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조차 없었더라면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며 도리어 제논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며 욕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멸망기사가 피와 강철 다음의 존재감을 드러낸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약방의 감초를 넘어서서 한 줄기 빛 같은 인물들이 존재했기 덕분이다.
주인공의 곁을 보좌하는 성녀도 성녀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빛의 기사 라이트.
대충 눈치챘겠지만 아이작이 전생의 게임에서 등장한 캐릭터를 오마주한 것이다.
그 게임의 세계관도 멸망기사처럼 세기말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
더 나아가 순리가 완전히 어그러져 죽지 않는 자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미치광이가 아니다. 사라져버린 빛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라이트를 본받아야 할 것. 그처럼 굳센 신념을 지닌 자가 또 어디에 있겠나?]워낙 암울한 세계관이다보니 라이트의 존재감은 주인공급이라 할 수 있었다.
가끔 가다 주인공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건 물론이요, 꽤 진중한 조언도 건네는 편이니.
오죽하면 성녀가 아니라 라이트가 진정한 짝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다.
물론 라이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해서 그렇지, 이외에 매력적인 캐릭터는 많다.
[멸망기사를 읽을 때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이름 없는 기사, 성녀, 라이트 이 셋을 제외하고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을 가지지 마라.]전부 죽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주인공을 선뜻 도와주던 조연이 미쳐버리는 바람에 싸울 수밖에 없는 건 기본이다.
뒤통수를 화려하게 치는 빌런이 등장하거나 세기말에 으레 등장할 법한 사이비 교주 등등.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떤 인간군상들이 존재하는지 전부 보여주고 있었다.
[이 세상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과연 숨겨져 있던 진실은 무엇인가?] [기사는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작가와 제논은 무엇을 전달하려는 건가?] [루미너스, 모라, 히르트 이 셋을 제외한 다른 신의 존재? 이것은 진실인가?]그리고 길고 길었던 이야기의 끝이 다가왔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만물의 아버지와 관련된 떡밥도 충실히 뿌렸고, 남은 건 수거다.
단, 만물의 아버지는 고대에 존재하던 신이라고만 묘사했다. 그 신이 부활해 세상을 어지럽힌 거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신을 처치한다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게 된다.
주인공과 성녀는 그 비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피신한 후, 다가오는 종말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후로 바다가 전세계를 뒤덮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이 아무 말도 없으신 걸 보면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게 아닐까?] [분명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결말이 등장해도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느라 꽤 오래 걸렸다.
그토록 많은 복선 및 떡밥을 뿌렸어도 창조신의 존재는 여러모로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나도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바라서 조바심을 가지지 않았다. 의심이면 충분하다.
팬사인회를 하면서 전세계를 일주하고, 중간중간 의심이 부풀어지도록 노력하면 그만이니.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빠아!”
“안 돼요. 아빠 머리카락은 장난감이 아니······”
“빠아!”
“아악!”
그레이스에게 머리를 쥐어뜯기고 있다. 힘이 장사라서 그런지 뽑혀나갈 것 같은 고통이다.
그래도 그레이스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렸다. 고생을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도 되는 건가······’
어째서 헤라클레스라고 비유하냐. 이건 마리가 그레이스에게 젖을 물릴 때 발생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와다다 뛰어다녀서 그런지 모유를 먹이는 빈도가 늘 수밖에 없다.
마리는 그때마다 그레이스에게 젖을 물렸지만 빠는 힘이 워낙 강한 탓에 멍까지 들었다.
다행히 신성력으로 어찌저찌 회복할 수 있었다만 마리가 고생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힘들면 말해. 내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분유를 만들어도 되고.”
“괜찮아. 아빠가 먹을 것까지 다 먹는 것만 빼면 참을 수 있어.”
그러나 마리는 괘념치 않았다. 도리어 아픈 기색도 내지 않고 그레이스에게 젖을 물렸다.
젖을 물릴 때마다 모성애가 깃든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레이스도 힘조절을 하는 건지, 아니면 마리의 몸이 점차 변화하는 건지 서서히 적응했다.
“우애애앵!”
“왜, 왜 우는 거지?”
“피곤한 거 아니야?”
“아까 잠도 재웠는데?”
물론 우리가 초보 엄마, 아빠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특히 제일 난감할 때가 울 때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수많은 노력을 거쳤다.
여기서 빛을 발휘한 사람이 있었으니, 어머니와 유모도 아닌 아리엘이었다.
“속이 답답하다는데?”
“그, 그러니? 트림을 시켜야겠네.”
아리엘은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건 아기인 그레이스도 다를 바 없었다.
힘이 말도 안 되게 강할 뿐이지, 그레이스는 신생아다.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꺼윽.”
이후로 그레이스의 등을 토닥여주자 시원하게 트림을 한다. 정말이지 사랑스럽······
“앗. 토한다.”
“뭐?”
“부엑.”
“아이고.”
······긴 한데 손이 많이 간다. 정말이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모나 어머니에게 맡기고 싶다만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세실리, 아델리아, 케이트 이 세 명은 곧 있으면 나와 전세계를 순방할 예정이니 힘들고.
레오나는 현재 애니머즈로 돌아간 상황이었기에 여의치 않았다. 아르웬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맡긴다는 게냐?]“네.”
[증손녀가 나를 엄청 싫어하는 것 같다만······]따라서 클라크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클라크 할아버지는 내 부탁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이유는 몰라도 그레이스는 유독 클라크 할아버지에게 쌀쌀맞다.
발할라에서 사고를 쳐서 원망을 샀다지만 영혼 단위로 새겨진 원망이라 하기에는 이상하다.
[아무튼 한 번 노력해보마. 얼굴을 자주 보면 되겠지.]“감사합니다. 매번 실례만 끼치네요.”
[실례는 무슨. 할 것 없이 시가만 피우는 것도 그만해야지.]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빌며 클라크 할아버지에게 그레이스의 육아를 부탁했다.
남은 건 앞으로 있을 팬사인회다. 머스크에게 운영을 부탁한 지 꽤 됐으니 슬슬 불러야겠지.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출판사로 가고 싶었으나 그 사이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 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정중히 머스크를 저택에 호출시켰다.
-그레이스! 거기 서! 뛰면 안 돼!
-빠아! 빠빠!
머스크가 저택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그레이스가 저택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약 세 번 정도는 저런 행동을 보여주는데, 공교롭게도 머스크와 대면했을 떄 발생했다.
나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 지 몰라 쓴웃음만 지었다. 뭐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온다.
이에 맞은편의 머스크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저택의 활기가 더 강해진 것 같군요.”
“······네. 그렇죠.”
“자. 그럼 얘기부터 들어가죠.”
역시 머스크다. 내 심정이 복잡하다는 걸 파악했는지 곧장 본론부터 들어갔다.
나는 바깥에서 클라크의 비명이 들리든 말든 경청의 자세로 나섰다.
나중에 시가 한 보루 사주면 클라크도 마음이 풀리겠지.
“우선 아이작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각 서점마다 계획을 전달했습니다.”
“정식으로 등록된 서점만 보내셨죠?”
“물론이죠. 한 사람당 10번 응모할 수 있되, 귀족과 부자가 편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당첨 확률은 순전히 운이다.
100개를 사서도 당첨이 안 될 수도 있고 1개만 샀는데 당첨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차별이라 할 수 있는데, 시대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재산의 대부분이 귀족이나 부자들에게 몰려있으니까.’
아직 산업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민, 그것도 농부다.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시대인만큼 남는 재화는 몇 없다. 더구나 사회상도 봉건제에서 막 벗어났다.
귀족과 부를 독점한 부르주아들이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불만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내 명성으로 전부 커버할 수 있다.
“당첨권을 경매로 부친다면 그 즉시 기회를 박탈하고, 신고자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해놓았죠. 마지막으로 사인을 되파는 경우는······”
“방법을 못 찾았죠.”
“네. 부끄럽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지구에서도 골머리를 앓는 문제인데 여기서 해결될리가 있나.
사람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말 급한 경우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 점은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정했다. 어차피 궁극적인 목표는 떡밥 뿌리기였으니.
“알겠습니다. 그러면 팬사인회의 운영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죠?”
“그건······”
머스크는 본인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나에게 설명해줬다.
미네르바 제국, 테르스 왕국, 헬리움, 애니머즈, 알븐하임, 세이비어 교국, 마키나 등등.
강대국이나 아니냐에 따라 머무는 기한이 늘어나는 게 아니고, 도시의 규모로 기간을 정했단다.
미네르바 제국은 영토가 넓다보니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기한이 늘어나는 반면 다른 나라는 아니다.
아까 말했듯이 이제야 막 봉건제에서 벗어나는 중이어서 나라마다 도시라 부를만한 지역은 몇 없다.
미네르바 제국이 최강대국 중 하나로 취급받는 이유도 도시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하여, 도시당 100명 씩 받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미네르바 제국에서 오래 머물게 되겠죠.”
“다른 나라에서 오지는 않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첨권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곧바로 회수할 예정이거든요.”
“복제가 불가능하다면······”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아이작 님을 도와준다고 하니 기꺼이 협력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을 판 것도 있겠지만 머스크의 수완을 엿볼 수 있었다.
마법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팬사인회 하나에 투자하다니. 여러모로 재미있는 상황이다.
“경호원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제가 서점마다 소식을 전달하면서 일부러 정보를 흘렸거든요. 아마 각 나라의 윗선에 전달됐을 겁니다.”
“좋네요. 준비는 모두 끝난 건가요?”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있죠.”
나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머스크가 우려하는 점이라고 하니 도통 알 수 없었다.
뒤이어 머스크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약간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사인회를 하실 때 독자분들과 1대1 대화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략 10분씩 말이죠.”
“네.”
“그때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건 조항에 넣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말이죠.”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다. 팬사인회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받아 곤혹을 겪는 일.
이미 다른 여자까지 끌여들여 밤일을 치른다는 것까지 널리 퍼져있다.
여기서 퍼질 사생활이라고 해봤자 아무것도 없다.
일어나자마자 글 쓰고, 밥 먹고, 운동 하고, 밤에는 애인들과 뒹굴거리는 것밖에 없었으니.
“이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네. 말씀하세요.”
“실례지만 제 딸에게 사인을 해줄 수 있습니까?”
“하하.”
나는 맑게 웃으며 기꺼이 해줬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이틀 후.
[제논. 전세계를 돌면서 사인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응모권은······]나는 세상을 향해 거대한 떡밥을 뿌렸으며.
“아야. 안 돼요. 그레이스. 아빠 머리 당기면 안 돼요.”
“빠아!”
그동안 그레이스의 장난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