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60
■ 759화. 그놈의 입 (2) □ ᓚᘏᗢ
나를 종교로 삼는 교단에서 ‘성서’가 출판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떤 반응을 내야할지 잠시 늦어버렸다.
조짐이라도 보였다면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가 탄생하면 그에 따른 교리도 등장하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성서다. 성경의 또다른 말이자 성인의 행적 혹은 교리를 담은 책. 미리 말하지만 제논교가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이런 일을 예견했다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성서가 등장했다. 이 말은 즉, 누군가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 발매한 거지? 설마 케이트?’
성서가 발매됐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케이트였다. 그녀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가능만 한 거지, 그녀에게도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다. 작문은 배우면 된다지만 그것도 별개다.
일단 확인은 해야겠지. 나는 가장 먼저 머스크를 저택에 초대했다. 그라면 어떤 상황인지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네. 저도 초고가 아닌 초판을 받아 배포하는 식으로 출판에 나서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혼자만이 아닌, 전세계 퍼져있는 출판사가 동시에 인쇄하고 있죠.”
“··· ···”
제아무리 머스크라 해서 출판계를 완전 독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독점이라기보다는 덩치가 너무 커서 감히 넘볼 수가 없다.
머스크도 세금이 와장창 뜯긴 이후부터는 독점을 조금씩 자제하고 있다. 문어발은 꿈도 못 꿨고.
그렇다 보니 전세계의 출판사에서 동시에 배분한다는 걸 알고 있지, 그 이상은 모른다.
이를 보았을 때 누군가 차근차근 계획을 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세계에서 동시 출판이라고 하셨죠?”
“네. 저희 출판사를 제외하고, 이름값이 꽤 큰 출판사마다 출판할 겁니다.”
“먼저 그럼 계약을 누가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거죠.”
“후우.”
나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정말이지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난감한 상황도 아니다.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대충 알 것 같았으니까.
유력한 용의자가 떡하니 있는 마당에 의심 같은 건 의미가 없다. 단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을 뿐.
일단 성서에 대해서 보기나 하자. 나는 어이없는 상황에 피식거렸다가 머스크에게 부탁했다.
“······그 성서를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여기 있습니다.”
머스크는 내 부탁대로 초판본을 나에게 전달했다. 한 권밖에 없었는데 그 두께가 생각보다 얇다.
대략 백과사전의 3분의 1 정도. 여기에 어떤 내용이 실려있는지 궁금해진다.
제목도 정말 간단하다. 제논교가 추구하는 교리에도 딱 들어맞고.
나는 벌써부터 불안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겼다. 성서라 했으니 종교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을 터.
[제논년 0년.]“쿨럭!”
이윽고 첫 구절을 보자마자 헛기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내 탄생인 건 알겠다면 뭐? 제논 1년? 무슨 기원전, 기원후로 나누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야?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해 눈을 깜빡거렸다. 첫 장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머스크 씨.”
“네. 말씀하시지요.”
“머스크도 씨도 읽어보셨나요?”
“네.”
그런 말을 하니까 더 불안해지는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벌써부터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느낌이지만 다 읽어보는 게 나을 듯했다.
[제논 아이작의 기원은 이러하니라. 세계를 증오하는 아버지와, 그에 맞서싸운 필멸자의 후손일지어니.] [성조부, 클라크는 스스로 목소리를 끊었으나 그 연결은 끊기지 않았나니.] [성부, 호크와 성모, 안나가 정혼하고 동거하여 세계의 목소리가 잉태되어 나타났더니.] [그 이름이 제논 아이작이요, 또다른 목소리였노라.]이야. 누군지 몰라도 진짜 종교적으로 잘 썼구나.
그것이 내 일대기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심지어 클라크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가 페이지를 넘겼다. 책 자체는 얇은 편이어서 다 읽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제논년 1년. 제논 아이작께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었다니. 성모 안나에게 사랑을 말했노라.]“··· ···”
이제는 헛웃음도 안 나오는구나. 나는 썩소를 지으며 꾸준히 읽었다.
종교적인 의미가 다분히 들어있는 건 둘째치고 내 일대기, 그러니까 ‘생애’가 정확히 적혀있다.
자료 조사를 충실히 했는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적부터 책벌레였다니, 집에 있기를 좋아했다니 등등.
성서가 아니라 무슨 사람에 대한 기록을 빼곡히 적어놓았다.
제논 일대기 출판과 마족의 구원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다. 종교적인 의미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관련 에피소드는 거의 없었지만, 제논 일대기의 출판 이후로 훨씬 풍부해졌다.
그 끝에는 죽음과 부활 및 제논교의 탄생까지. 성서로서 안성맞춤이다.
‘그나저나 마족의 입장이 많이 들어있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종족이라지만 그들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세실리부터 시작해서 마족의 악마화와 다양한 이야기들까지. 마족의 비중이 꽤 많다.
[제논년 19년. 제논 아이작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야말로 오만이요, 철학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것이리라.]그러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밟혔다. 이 말은 분명 내가 레티시 백작, 그러니까 체리의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다.
잘못된 신념을 품어 체리를 망가뜨렸던 그. 내가 저 말을 함으로써 체리는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설마?’
덕분에 용의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 늘어난만큼 성서가 어떻게 집필됐는지 알 것 같았다.
케이트와 체리. 이 두 명이서 성서를 집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로 마음이 맞다 못해 핵융합까지 일으킬 정도니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겠지.
어쩐지 체리가 차기작을 잘 안 내려고 하더라. 나도 그동안 전쟁의 신을 집필하느라 바빠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제논년 21년. 제논께서 신들의 과오를 말씀하시니,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짧지도 길지도 않은 책을 읽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구절을 읽고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은 ‘제논년 24년’만 딱 적혀있다.
아무래도 미완성본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하긴 내가 죽기 전까지 성경은 꾸준히 발매될 것이다.
‘······체리야.’
이제는 내 인생을 스토킹하고 있구나. 역시 근본은 어디 가지 않았다.
나는 허탈함에 웃음을 흘렸다가 조용히 책을 덮었다. 앞으로 이 책이 널리 퍼지겠지.
어쩌면 후속작이 더 나올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승천하기 전까지는 꾸준히 출판될 것이다.
‘그러면 진짜 성경처럼 두꺼워지려나?’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목소리의 초판을 머스크에게 돌려줬다. 머스크는 갖고 있어도 된다 했으나 내가 거절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은 가세요?”
“글쎄요. 저는 잘······”
머스크는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만큼은 머스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될지 알 것 같다. 무려 내 인생을 종교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보나마나 온갖 말들이 오고 가겠지.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있다.
‘왜 하필이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구절을 떠올렸다. 마리와의 하룻밤이 적혀있던 구절.
종교적으로 탈바꿈했다지만 상세히 적혀있었다. 새벽 내내 운우지정을 나눴던 날.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여인들도 저마다 다른 이유로 밤일을 가졌으며, 묘사 또한 다소 적나라하다.
그나마 다행히 순화했기에 ‘사랑을 나눴다’ 정도로 끝났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전부 알겠지.
‘이거까지 쓸 필요는 없는데.’
케이트와 체리의 성격상 꼬박꼬박 빠짐없이 적느라 이 사달이 난 모양이다.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겠지.
조금만 꾹 참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녀들도 슬퍼할 테니.
지금로서는 앞으로 터질 구설수만 잘 조절하면 된다.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다.
[성서에 적힌 내용은 제논의 일생을 담은 것.] [앞으로 모든 년도는 제논년으로 통일하자.] [인류의 신께서 원하신다.]나는 그런 적 없는데요. 며칠 후 신문에 실린 내용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성서라 그런지 부적절한 내용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제논년’ 하나에 꽂혀있었을 뿐.
루미너스가 퍼뜨렸던 ‘인류의 신’으로서의 예언 때문에 상징성만큼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일까.
“제논이시여! 부디 확답을 내려주소서!”
“우리를 하나로 통일시켜주실 분은 제논 님밖에 없습니다!”
내 저택 앞에서 간절히 부탁하더라. 지구처럼 기원전 기원후를 분리해달라고.
이 세상은 저런 개념이 없어서 각 국가마다 년도가 다 다르다. 알븐하임과 헬리움은 무려 1000년이 훌쩍 넘는다.
반면 신생국인 스타비르크는 3년도 되지 않았다. 이러니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다.
‘지구에서도 다른 곳이 있지 않았나?’
대충 들은 바로 북한은 기원이 아니라 다른 걸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쪽은 수령을 신으로 취급하니 그런 거겠지.
아무튼 저기 앞에서 엎드려 부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야 될 것 같다.
너네 마음대로 하라고.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더라도 세상이······”
“제논 님의 선택이 곧 세상과 인류의 선택입니다!”
“··· ···”
그거 참 황금옥좌에 올라갈 것 같은 대답이시네요.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대답에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이에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걸었다.
“혹시 제논 님의 세상에서는 신의 탄생을 기념일로 두는 경우가 없으셨습니까?”
“네? 아니, 그건 아닙니다. 부활절과 성탄절이라고, 부활과 생일을······”
“그럼 그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옳소! 옳소!”
“··· ···”
뭔가 점점 이상해지는데.
내가 한두 마디 하면 저기서 뼈와 살을 덫붙였다.
“제논이시여! 피와 강철에서는 ‘서기’를 기준으로 삼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건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것도 신의 탄생을 기준으로 잡은······”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제논 님을 기준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될 겁니다!”
“··· ···”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