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198)
Chapter 198 – 검도대회 마무리
청춘이라는 장르가 들어가면, 스포츠물이든 재벌물이든 액션물이든 상관없이 교묘한 반칙을 쓰는 상대가 나온다. 이건 무조건적인 클리셰다. 안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지금 상대의 살짝 야비해보이는 인상을 본 순간부터 나는 반칙에 대비했고,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었다. 비매너 플레이로 복수까지 한 건 덤이고 말이다.
반칙을 쓰는 상대에 맞서 깨끗한 플레이로 싸워 이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항상 여자 따먹을 생각만 하는 쓰레기지. 그에 걸맞게 처신한 거니까 난 떳떳하다.
마음만 같아선 더 능욕해주고 싶었지만, 이러면 다음 상대부터 복수심에 불타오를 수 있을 테니까 자제하자. 근데 쓰레기가 이렇게까지 팀원을 생각해주는 게 맞나 모르겠다.
기가 완전히 죽어버린 상대에게 점수를 추가로 따낸 나는 손쉽게 선봉전을 마무리하고 테츠야와 교대했다. 그러면서 놈에게 조언을 건넸다.
“다리 조심해.”
“다리?”
“아까 살짝 걸더라고.”
“아… 야마자키 선배도 네 상대가 이상하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아까 네가 넘어질 뻔한 거였어?”
“맞아. 야비한 팀인 것 같으니까 집중해.”
“알았어, 고맙다.”
교대를 끝내고 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나는, 표정이 굳어있는 야마자키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제가 플레이를 더럽게 했다고 화나신 건 아니죠?”
그러자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야마자키가 대답했다.
“내가 왜 너한테 화가 나겠냐? 네 상대가 하는 짓에 화가 나는 거지. 어쨌든 잘했다. 진짜 수고 많았어.”
이어진 차봉전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테츠야는 더러운 놈답게, 상대 차봉을 물고 늘어지면서 아주 끈적한 플레이를 했다. 반칙을 염두했는지 최대한으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첫 경기 때부터 지금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이 새끼도 나처럼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히 팁을 줬나 싶다.
어쨌거나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플레이를 하는데 상대하는 놈은 어떨까? 이가 갈리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쩍-!
테츠야가 상대의 받아허리에 제대로 당해 한판을 내어주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집중하라니까 집중해서 지고 있네 저 미친 새끼는. 앞날이 캄캄하다. 이러면 중견과 부장, 그리고 대장을 믿을 수밖에 없나? 옆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든 나는 텁텁한 목을 시원하게 달래며 얌전히 경기를 관전했다.
**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은 종합점수 3:2로 결승에 진출했다. 차봉인 테츠야와 중견인 모리가 내리 패배해서 패색이 짙어졌으나, 부장인 이케다와 대장이 어렵사리 승리를 얻어내었다.
우려하던 반칙은 선봉전과 차봉전을 제외하면 일어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경기가 끝났을 때 약간의 충돌이 일어날 뻔하긴 했지만, 분노한 고로가 상대팀 감독과 이야기를 잘 나누어서 나와 테츠야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었고, 일단은 일단락되었다.
약간의 쉬는 시간 후에 이어진 결승전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대회장 안의 관객뿐만이 아니라, 시상식을 기다리는 타 아카데미의 검도부까지. 널따란 대회장 안에서 경기를 치르는 팀이 단 두 팀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상위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도 모자라서 결승까지 올라온 건 정말 예상외야.”
우리를 한데 모은 고로의 격려. 어깨를 축 늘어뜨린 테츠야를 본 그가 말을 이었다.
“미우라, 네 리듬이 끊긴데다 화가 난 건 잘 알고 있다만 집중해라. 앞선 경기에 관한 건 내가 협회에 직접 얘기해서 어떻게든 해결을 할 생각이다. 지금은 멘탈을 가다듬는 게 중요해. 여태 잘 해왔잖냐.”
그에 움찔한 테츠야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건가? 더럽게 안 어울린다.
“예, 감독.”
“설령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과정에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했다면 만족한다. 모든 걸 쏟아 부어라.”
보통 이러면 준우승하는 게 클리셰던데 불안하게 하네. 마지막 파이팅을 끝낸 나는 손바닥으로 면금을 몇 차례 때리고는 선봉전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장 외곽에 섰다. 그러자,
“마츠다 군, 힘내!”
멀리서부터 미유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관중석을 보니 얼굴이 빨개진 미유키가 보였다. 주목을 받으면서 소리를 지르는 게 창피했던 건가? 귀여워가지고…
치나미와 렌카도 미유키의 옆에 있구나. 경기가 끝나자마자 온 모양이다. 어디부터 봤으려나? 아마 8강이나 4강전을 관람했을 것 같은데… 나중에 대화해보면 알겠지.
상념을 날려버린 나는 심판의 수신호에 따라 천천히 중앙 경계선으로 걸어가, 상대를 마주보며 준거했다. 이후 일어나자마자 상단을 잡았다.
“…..”
면금 사이로 보이는 상대방의 눈빛은 굳건했다. 체격조건은 나와 비슷하다. 결승까지 왔으니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을 터. 경기가 어렵게 흘러갈 듯한 느낌이다.
강자의 냄새를 솔솔 풍기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나는 첫 발을 내딛었다.
쿠웅-!
**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는 대회장 안. 결승전을 치렀던 우리의 얼굴색이 죽어있는 것과는 달리, 상대팀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우승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우린 종합점수 3:2로 졌다. 그것도 이미 부장전부터 결과가 나와버린, 다소 허탈한 패배를 맞았다. 체면을 세운 건 똑같이 2:1로 승리한 나와 야마자키가 끝. 언더독인 예보니 아카데미의 반란은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가 끝났을 때, 고로가 준우승도 잘한 거라며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했지만 허탈한 기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역사에 쓰이지도 못하는 2등을 누가 기억해주겠는가? 준우승을 수십 번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다.
-다음은 전체 MVP입니다. 전체 MVP는 신인상과 함께 시상식을 진행합니다. 예보니 아카데미 1학년 마츠다 켄, 단상 위로 올라와주십시오.
그래도 난 입상했으니까 됐지. 서브 자원을 포함한 180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 사이에서 MVP면 좋은 결과다. 미유키, 치나미, 렌카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을 테니 괜찮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나는 단상으로 올라가, 심사위원의 간단한 덕담을 듣고 상장과 부상을 받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관중석을 올려다보니, 미유키와 치나미가 마구 박수를 치고 있었다.
빵녀는 입에 빵을 문 채로 부반장에게 안겨있는데, 쟤는 무슨 신 스틸러인가? 볼 때마다 눈길이 간다.
단상 아래 부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내려온 나는 부상을 살펴보았다. 흰색 종이에 싸인 네모난 박스다. 크기가 나름 큼지막하다. 무게는 엄청 가벼운데 뭘까?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며 상자를 연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
‘뭐야?’
박스 안에 얇은 직사각형의 종이 두 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싶어 살펴보니, 지역구와 협약을 맺은 백화점에서 쓸 수 있는 2만 엔짜리 상품권이었다.
백화점 상품권은 보통 고급스런 돈 봉투에 넣어서 주지 않나? 이걸 박스에 넣어서 준다고? 텅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어이가 없다.
그래도 공짜 돈이니까 잘 써먹어야지. 이걸로 미유키랑 치나미에게 줄 선물이나 사야겠다.
그렇게 지루한 시상식을 끝낸 나와 부원들은 똥 씹은 얼굴을 억지로 펴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밖에서 부원들을 통솔하고 있는 렌카를 만났다.
“스승님은요?”
“짐 옮기고 있어.”
“빨리 도와주러 가봐야겠네요. 여자부는 우승했어요?”
“응.”
“스승님 전적은 어떻게 되나요?”
“전승.”
역시 우리 치나미다. 뽈뽈거리면서 잘도 뛰어다녔겠네.
“1점도 안 내주고?”
“맞아.”
“부장은요?”
“나도 마찬가지야.”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각인가요?”
“이게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안과라도 가보는 게 좋겠네.”
“걱정 고맙습니다. 오늘 수고했어요.”
“…. 너도 수고했고, 잘했어.”
마지못한 척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있다. 내가 진짜 잘하긴 잘했나보다. 렌카가 저럴 정도면.
“감사합니다.”
“근데 결승전 때 1점을 내어준 건 조금 실망스러웠어. 뻔한 공격이었잖아.”
칭찬만 하면 무안하니까 또 틱틱대는 거 봐라. 츤데레 같은 것.
“아니, 좋게 가다가 갑자기 비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다음 대회 땐 더 잘해보라는 뜻에서 말하는 거야.”
이번 대회가 재미있기는 했으나, 다음 대회에 참가할 의사는 그다지 없었다. 렌카가 보상으로 뭘 해주면 긍정적으로 고민해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뻔하긴 무슨… 눈앞에서 보면 알아차리기 힘든 공격이었다고요.”
“뻔했어.”
“아닌데.”
“네가 조금만 더 넓게 봤으면 알 수 있었어.”
“시야가 좁았다?”
“그런 거지.”
“어쨌든 저 잘했죠?”
“그렇다고 말했잖아.”
“그럼 부장.”
“절대 안 해. 싫어.”
렌카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내가 물었다.
“아직 내용을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소원 들어달라고 할 거였잖아.”
“감사합니다. 조만간 말할게요.”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어이없어하는 렌카에게 히죽 웃어보인 나는, 큼지막한 박스를 든 치나미가 이리로 걸어오고 있자 그녀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왜 혼자 옮기고 있어요? 같이 하면 되지.”
“빨리빨리 일하고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요. 아, 그리고 후배님.”
“예.”
“이 스승은 제자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네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여전히 노인네 같은 말을 하는 치나미. 피식한 나는 그녀가 든 박스를 빼앗아 버스 짐칸에 옮겨놓았다.
저 멀리 테츠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가 보인다. 그러던 와중에서도 내 쪽을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는데, 테츠야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이 예뻐 죽겠다.
그나저나 검도대회는 이걸로 마무리인가? 나름 만족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든다. 우승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서 이런 거겠지.
너무 담아두지 말고, 이젠 기말고사와 수학여행에 집중하자. 부원들과 함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며 일을 끝낸 나는, 테츠야 특유의 폐기물 같은 기운에 갇혀있는 미유키를 구원해주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