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22)
EP.322 선업일까 악업일까 #2
점심시간이 지난 후, 괴롭힘을 당한 학생이 걱정되었던 나는 1-C반으로 움직였다.
명찰 색이 다른 덩치 큰 선배가 복도에 어슬렁거리니 시선이 집중된다.
몇몇은 날 알아보았다. 아마 겨울학기에 유도부와 시비가 붙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소심한 인사를 건네는, 얼굴을 모르는 한 여자 후배.
내가 얼떨결에 인사를 받아주자 일행들끼리 까르르 거리는데, 기분이 은근히 좋다.
역시 사람 얼굴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
C반의 열려있는 뒷문으로 향한 나는 슬쩍 교실 안을 보았다.
히요리는… 뒷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가 개그를 쳤는지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 치며 큰 리액션을 보여주는 모습이 귀엽다.
괴롭힘을 당했던 녀석은… 중간 자리에 있구나.
아까 급식실에서 내게 종아리를 맞은 놈이 치사하게 책상 다리를 툭 치고, 무리들과 큭큭거리며 또 이지메를 하고 있다.
왜 대놓고 괴롭히지 않고 저렇게 계집애마냥 구는 거지?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놈이 학생을 남들 모르게 툭툭 건드리다 말고 히요리에게로 갔던 것이다.
“아사히나! 너 에펙 한다고 했지?”
그의 우렁찬 소리에, 히요리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놈을 쳐다보았다.
“응. 시작한지 얼마 안 됐어.”
“오늘 같이 할래?”
“아니. 나 게임을 잘 안 해. 오늘은 약속도 있으니까 다음에 하자.”
“그래? 알았어.”
이야… 급식실에선 남들 삥이나 뜯던 놈이 히요리 앞에선 말투부터 달라지고, 순한 양이 되어버리는구나.
히요리에게 관심이 큰가보다.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충 교실의 흐름을 살펴본 나는 폐 안으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는 가라앉은, 그러나 C반 대부분의 학생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야, 너 이리 와봐.”
그러자 왁자지껄하던 교실에 침묵이 확 흐르면서, 내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괴롭힘을 당하던 녀석은 물론, 종아리를 걷어차인 놈도, 그리고 히요리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의 고개가 내 쪽으로 홱 돌아가는 게 보인다.
“어? 마츠…”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뜬 히요리가 날 부르려는 타이밍에,
“저요?”
내 눈빛을 그대로 받고 있던 놈이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날 향한 히요리의 말을 눈치없게 끊었으니 벌점 10점. 사형이다.
“그래, 너.”
“…. 뭔데요?”
싹퉁머리 없는 말투 봐라. 날 돋보이게 해줄 훌륭한 문제아가 될 자질을 갖췄어.
놈이 내 쪽으로 오니 친구들까지 우루루 몰려나와 공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의리 한 번 좋다. 며칠이나 됐다고…
아주 외롭구나. 나한테도 타카시가 있었더라면 믿음직했을 것 같다.
요새 잘 지내고 있나? 연락을 한 번 해볼까 싶다.
“너 방금 뭐했냐?”
“뭘요?”
“쟤 괴롭혔지?”
“아닌데요.”
“방금 책상다리 발로 찼잖아.”
“뭔 소리에요. 그런 적 없어요.”
발뺌할 거면 다른 사람들 눈치나 좀 보지 말고 뻔뻔하게 말하든가.
솜씨가 아주 허접하다.
“명찰은?”
“책상에요.”
“이름.”
“알아서 뭐하시게요.”
“이름.”
짜증이 확 올라온 표정으로 재차 물어보자, 미세하게 몸을 움찔한 놈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 니시다.”
“말이 짧다?”
“니시다요.”
“니시다 뭐 임마.”
“…. 니시다 유지요. 왜요? 뭐라도 돼요?”
주어를 붙이지도 않고 뭐라도 되냐니.
선배라고 호칭해주기는 죽어도 싫은가보지?
저런 놈의 생각 같은 건 눈에 아주 훤하다.
“어. 뭐 돼.”
“뭔데요?”
“알 거 없고, 너 내가 지켜본다.”
지금 내 눈앞의 니시다처럼, 이렇게 바락바락 대드는 기색을 흘리는 애들은 별로 무섭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테츠야처럼 음흉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놈이지.
약간 길을 걷다가 차에서 내린 여자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차에 붙어있는 연락처로 연락해 질척거릴 스타일.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마음대로 하세요. 별…”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투덜거린 니시다가 무리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 예의 없는 행동에 도의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개탄스러워하던 나는, 나 또한 1학년 때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뭐예요? 무슨 일?”
어느새 뒷문으로 다가온 히요리의 물음.
나는 일부러, 보란 듯 니시다를 검지로 가리켰다.
“니시다인가 뭔가 하는 애, 네가 잘 지켜봐라.”
“왜용?”
“동급생 괴롭히잖아.”
“누굴 괴롭혔는데요?”
“쟤. 중간에 앉아있는 안경 쓴 애.”
“노구치요?”
“이름은 모르겠고, 잘 봐. 급식실에서도 그랬으니까.”
“아 진짜요? 몰랐어요. 미호한테 잘 말해놓을게요.”
“미츠시마한테만 말해두지 말고 너도 보라고.”
“알았어요. 그 일 때문에 온 거예요?”
“일단은.”
노구치를 잘 대해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버리면 놈이 히요리에게 아주 큰 연심을 품을 수도 있으니 제외.
공과 사는 구분해야 맞다.
사실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차린 히요리는 알아서 노구치에게 살갑게 굴 거다.
“제가 잘 감시할게요. 걱정하지 마.”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젓한 말투를 보이는 히요리.
방금 모습이 왠지 치나미 같다고 생각한 내가 말했다.
“그래, 근데 넌 왜 자꾸 말이…”
“조용히…! 목소리 낮춰요…! 방금 경고까지 해놓고 갑자기 당황한 것처럼 굴면 얕보여요.”
“누구한테? 너한테?”
“아니이…! 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요.”
“네가 날 얕보이게끔 만들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거든요? 근데 선배. 니시다가 노구치를 괴롭히는 걸 봤던 거예요?”
말 돌리는 거 봐라. 딱밤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
“맞아.”
“구해준 건가 그럼?”
“구해줬다고 하기에는 좀…”
“선배만의 방식으로 니시다를 혼냈나보네요? 약간 울끈불끈한 느낌으로?”
울끈불끈한 느낌이란 게 폭력을 뜻하는 거라면 정확하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쑥스러워하는 거예요? 스이츄 하나 먹고 기분 풀래요?”
히요리의 얼굴색은 꽤나 환했다.
나와 대화를 해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노구치를 보호해주었다는 게 기특했나보다.
니시다의 말을 들어보고 교차검증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히요리는 그냥 날 믿기로 한 것 같다.
하긴, 방학 때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카페에서 손님과 알바생으로 만났고, 말도 자주 터서 친해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알았을 테니… 나 같아도 니시다가 아닌 날 믿겠다.
아니, 근데 왜 히요리가 날 기특해하고 있는 거지?
히요리가 미유키도 아닌데…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안 먹어. 간다.”
“알았엉.”
배시시 웃은 히요리가 한손을 마구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반말에 헛웃음을 친 나는, 그러려니 하며 C반에서 떠났다.
나름의 점수를 딴 것 같긴 한데… 은근히 찝찝하다.
일단 나는 오늘 부활동 시간에, 렌카를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줄 거다.
물론 렌카는 갑자기 왜 지랄이냐며 틱틱대겠지만 말이다.
**
수업시간 전까지 자리를 비웠던 내게 어딜 갔었냐며 물어보는 미유키.
그런 미유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일이 있었어? 마츠다 군이 나한테 소시지 덜어주기 전에?”
“어.”
“난 왜 못 봤지?”
“넌 그때 애들이랑 얘기하고 있었거든.”
“그랬어? 미안. 앞으로는 잘 지켜보고 있을게.”
미안할 게 뭐 있나.
헌데 앞으로 잘 지켜본다니, 등골이 싸늘해지는 발언이다.
“그래서 그 니시다라는 후배한테 훈계한 거야?”
“훈계까진 아니고, 그냥 지켜본다고만 했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는데 참았어?”
쥐어박는 게 아니라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는데 참은 거란다.
더 이야기하기 귀찮다는 듯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빼자, 미유키가 잘했다는 듯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음음… 가녀린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카락이 쓸리는 감촉이 나쁘지 않다.
중간중간에 두피를 톡톡 두드려주는 것도 괜찮고…
우리 미유키는 사람을 꼴리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전부 나와 지내면서 배운 것들이긴 하지만.
“니시다 유지라고 했지? 나도 잘 지켜볼게.”
“마음대로 해라. 근데 걔가 저번에 네가 말했던 예의주시할 신입생에 포함되어있는 앤가?”
“아니. 오늘 처음 듣는 이름이었어. 그런 애였으면 마츠다 군이 이름을 말해주자마자 알았을 거야.”
그럼 별 거 아니라는 소리잖아.
위험인물인줄 알고 괜히 심력만 소비했네. 나중에 노구치인가 뭔가 하는 안경잡이에게 매점 음식이라도 받아야겠다.
“그 위험인물 리스트는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건데?”
“그냥 여기 입학하기 전에 사고를 쳤던 애들을 간단하게 언급한 거지, 리스트 같은 건 없어. 그게 무슨 기업 블랙리스트 같은 건 줄 알아?”
“내가 이름을 말해주자마자 알았다고 할 정도면 이미 네 머릿속에 그 이름들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리스트가 있는 거랑 뭐가 달라?”
“오늘 왜 이렇게 논리정연해?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공부할까?”
“아 뭔 공부야. 곧 수업인데.”
“수업 전까지만 같이 하자. 조금만.”
요즘들어 미유키가 상당히 뻔뻔해졌다.
어떨 땐 요조숙녀처럼 조신하다가, 또 어떨 땐 지금처럼 생기발랄하다가…
우리 미유키는 참 입체적이라서 좋다.
어쨌거나 신님, 저는 오늘 선업을 쌓았습니다.
폭력이 조금 들어가긴 했지만 이게 저한테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겠죠?
악업은 신님께서 알아서 처리해주시고, 제게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주세요.
속으로 신에게 감사라는 공물을 바친 나는 책상 서랍에서 문제집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