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65)
EP.365 우연이 아니라 인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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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혼자 상념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특히 오늘은 더 그랬다.
평범한 약속이었다면 빠졌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자신이 직접 모은 모임이라, 히요리는 잠깐 오늘 있었던 일을 잊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로 했다.
남녀 반반으로 딱 나뉜, 자신을 포함한 여덟 명의 일행들은, 그렇게 히요리의 주도 아래에서 카페를 비롯한 당구장,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후 저녁 열 시가 다 될 때쯤에서야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해 헤어졌다.
“잘가! 아사히나!”
“내일 보자!”
지하철역 입구.
방향이 서로 다른 친구들의 인사에 밝은 낯으로 손을 든 히요리가 마주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갈게, 바…”
순간적으로 눈앞에 마츠다의 활짝 웃는 얼굴이 생각나 멈칫하고야 말았다.
바이바이. 평소에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인사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쓰기 싫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마츠다 선배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는 겨울에 검도대회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교차로를 건너는 자신이 이런 말을 썼다고 했다.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자신을, 마츠다 선배의 기억 속에 남긴 말이 그 단어였다.
그렇기에 왠지 특별하게 느껴져서, 아무에게나 쓰기 싫다는 기분이 들었다.
“안녕!”
재빨리 말을 바꾼 히요리가 손을 흔들고는, 미호와 함께 카드를 찍고 개표구 안으로 들어갔다.
“재미없었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미호의 물음.
그에 어깨를 으쓱인 히요리가 반문했다.
“보였어?”
“내가 너랑 맨날 붙어 다닌 날이 얼만데… 당연히 보이지. 아오키 때문이야?”
포켓볼을 칠 때 팀이었던 동기.
옆에 딱 달라붙어선 자신이 포켓볼을 잘 친다며 으스대고, 과할 정도로 가르쳐주려고 하는 모습이 확실히 그 당시엔 조금 짜증났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사라졌었다.
남자들의 허세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으니까.
“아니. 오늘 놀면서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야.”
“그래?”
알만하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미호.
또 다시 생각을 읽힌 히요리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미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알았어. 난 가만히 있을게.”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호와 잡담을 나누던 히요리는 그녀를 먼저 보내고 나서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디어 마츠다 선배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그녀는, 멍하니 앉아 습관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그와의 인연을 되새겼다.
약간 엄격한 기질이 있긴 하지만 속내가 무척이나 친절한 그.
츤데레를 많이 닮은 그와 티격태격할 때마다 굉장히 재미있다는 기분이 들었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보다 말이다.
또한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많이 봐왔지만, 마츠다 선배가 대해줄 때는 기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왜일까? 단순하게 잘생겨서?
물론 그것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엄격한 성격 속에서 나오는 다정함이 은근히 취향을 저격했다.
재미없는 장난을 쳐도 하나하나 잘 받아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앞서 생각했던 인연이 참 공교로워서, 그에겐 특히나 정을 붙이게 되는 듯했다.
자신은 그를 보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을 봤고, 개학하기 전에 카페에서 몇 번 만났고…
더 나아가 책방에서도 만났지, 지금은 같은 아카데미의 선후배 사이가 됐지…
굉장한 우연이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운명일지도 모른다.
본디 이런 건 믿지 않았으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마주치니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마츠다 선배도 자신과 같을까?
하나자와 선배와 아주 잘 만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을 것 같아도, 자신과 단둘이 만났을 때 하던 행동을 보면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우웅-!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하철 도어가 열렸다.
기둥에 적혀진 역 이름이 자신의 목적지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란 히요리가 후다닥 기차에서 나왔다.
이후 역에서 나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응…?”
주머니에 열쇠가 없었다.
분명히 하교할 때까지만 해도 잘 있는 걸 인지했었는데, 언제 잃어버린 걸까?
노래방에서? 아니면 역에서 내릴 때?
모르겠지만 뭐…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
집에 아무도 없었다면 큰일이긴 하겠지만, 그땐 마츠다 선배한테 사정을 말하고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놀아달라고 하면 되지.
속편한 생각을 한 그녀가 벨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더니 말똥말똥한 눈을 뜬 어린 동생이 자신을 반겼다.
“왜 벨을 눌러?”
아이스크림이 뜨여있는 숟가락을 입 주변으로 가져가는 남동생.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용기를 홱 빼앗은 히요리가 대답했다.
“열쇠 잃어버렸어.”
“아이스크림은 왜 뺏어가?”
“내가 먹을 거야.”
“왜?”
“그냥.”
“엄마! 누나가 욕하면서 아이스크림 뺏었어!”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며 고자질을 하러 냅다 달려가는 동생.
그런 그를 잡아채려다가 빠른 속도에 놓쳐버린 히요리가 허공을 가르고 있는 자신의 팔을 회수하고는 기가 찬 듯 헛숨을 내쉬었다.
“저 밉상…”
안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콘 스프인가보다.
동생이 또 달라고 칭얼거렸겠지.
그리 생각한 히요리가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은 동생의 뒷덜미를 잡고 당겼다.
“엄마, 나 열쇠 잃어버렸엉.”
“집 근처에서 잃어버린 건 아니지?”
“응.”
“그럼 됐어. 내일 아침에 식탁 위에 여분 올려놓을 테니까 갖고 가.”
“여분 있어? 저번에 다 떨어지지 않았나?”
“이번에 많이 만들어놨어.”
“아빠가 도어락으로 바꾼다며?”
“그랬어?”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빠는 언급 안 해?”
“응. 모르던데? 아마 잊어버렸나봐.”
“그래? 나 씻는다?”
“스프는 먹고 씻지?”
“살 빼는 중이야.”
그 말에 히요리의 손에 덜미를 잡혀있던 동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내 아이스크림은 뺏어먹어? 아이스크림 살 많이 찌는데?”
“아직 안 먹었으니까 된 거 아니야?”
“그런가?”
“그런 거지.”
“그럼 아이스크림 돌려줘.”
“싫어.”
“왜?”
“내 맘이야.”
“그렇구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납득하는 동생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약하게 친 히요리는, 아픈 척 엄살을 피우는 그의 아이스크림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침대에 폴짝 점프해 앞으로 누웠다.
이후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 어플을 켰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내온 수십 개의 채팅.
그 중에선 오늘 같이 놀았던 친구들의 메시지도 있었다.
스즈키가 보낸 메시지가 최상단에 있는 게 눈에 띄는데, 얘는 가만 보면 항상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한다.
가장 최근에 받은 메시지가 상단에 뜨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거다.
음습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본래라면 눈살이 찌푸려져야 정상이지만 이런 이성 친구들이 더러 있었기에, 히요리는 그러려니 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는 마츠다에게 [마츠마츠켄]이라는 한 마디를 보내놓은 뒤,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허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마츠다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자고 있는 건가? 아니면 하나자와 선배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심보가 고약해진다.
사이 좋은 커플을 훼방 놓을 생각 같은 건 없긴 하지만, 자신은 마츠다 선배와 인연이 깊다.
하나자와 선배도 자신처럼 마츠다 선배와 면식이 없을 때, 그를 마주친 적이 있었을까?
그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
왠지 내가 갖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솔직히 빼앗으라고 하면 빼앗을 수 있을 것 같기도…?
덜컥.
“누나! 아이스크림 먹을래?”
갑작스레 노크도 없이 방으로 들어온 동생에 의해 상념이 깨져버린 히요리가 콧방귀를 끼며 되물었다.
“민트초코지?”
“응.”
“너나 먹어.”
“누나 민트초코 좋아하지 않아?”
“네가 싫어하는 거 넘기는 거잖아.”
“맞아.”
“의도가 불순해서 안 먹을래.”
“왜? 나는 싫어하는 걸 먹지 않아서 좋고, 누나는 좋아하는 걸 먹어서 좋으니까 된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네? 책상 위에 올려놔. 그리고 물 좀 가져와.”
“그럼 게임기 빌려줘.”
“오늘 한 시간 했어?”
“응.”
“그럼 안 돼. 엄마아빠한테 허락받아.”
“몰래 할래.”
누굴 닮아서 저렇게 막무가내일까? 하여튼 꼬맹이들이란…
자신과 빼다 박은 동생의 뻔뻔스러움을 인정할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은 히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환한 얼굴로 기뻐한 동생이 물을 가지러 방 밖으로 나갔다.
[왜.]그 사이 마츠다 선배에게서 와있는 답장.
그에 냅다 채팅창을 터치한 히요리가 화면을 두드렸다.
[내일 같이 운동해요.] [웬일이야? 일주일은 앓는 소리할 줄 알았는데.] [편견 금지.] [다리는 괜찮냐?] [저 농구하는 거 봤잖아용.] [네가 느끼기에 괜찮냐고. 이거 솔직하게 말해줘야 돼.] [딱히 아프지는 않아요.] [그러면 같이 하자. 갈아입을 옷 챙겨.] [넹.]그러고 보니 마츠다 선배에게 빌린 옷을 돌려주어야한다.
까먹지 말아야지.
“누나! 여기 물.”
대화를 끝낸 히요리는 동생이 얼음까지 동동 띄운 큼지막한 텀블러를 갖고 오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켠 그녀는 장롱을 열어 게임기를 찾고 동생에게 넘겨주려다가, 좋은 생각이 들어 히죽 웃었다.
“야.”
“응?”
“내 계정으로 동물들의 숲 켜서 과일 열린 거 모아놔.”
“나 그거 안 할 건데?”
“엄마한테 안 이르는 대가야. 한 바퀴만 돌면 2시간동안 하게 해줄게.”
“진짜?”
“진짜.”
“알겠어.”
“저장은 꼭 해라. 나갈 때 문 닫고.”
게임기와 타이틀을 받은 동생이 헤실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동생이 모은 아이템은 마츠다의 호감도 교환용으로 써야겠다.
공평한 교환을 해서일까?
아니면 마츠다와의 약속을 잡아서일까?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 히요리는, 흐뭇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