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3
라일락이 치즈케이크와 차를 내왔다.
“라일락, 이건?”
쟁반 한편에 나보고 읽으라는 듯 놓인 편지 한 장. 황금색 천지인 게 보통 안건이 아닌 게 분명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르진 님이 주인님께서만 개봉하실 수 있도록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셔서 일단 두었거든요.”
“흠.”
편지의 황금을 녹여 만든 봉인에 손을 대자, 마법이 풀리며 편지가 자동 개봉되었다.
‘허.’
[안녕하십니까, 황실 집사장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요즘 가을이 되어 낙엽이 …(중략)… 다름 아니라 곧 제국 건국을 기념하는 건국제가 열릴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안개섬 공략 영웅이신 마틴 폰 타르곤 울브하딘 가주님을 이 자리로 초대하고 싶습니다.]‘가주라…, 정보가 빠르군.’
상관없다.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고.
‘결국, 초대인가.’
여러 내용이 많았으나 본질은 황실에서 주최하는 건국제 기념 연회에 참여해달라는 초대장이었다.
그때 또 ‘딸랑’하며 문이 열렸다.
“아, 마틴 사장님! 돌아오셨군요.”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은 네르진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업가였다.
“네. 막 돌아왔습니다.”
“타이밍이 좋았군요. 저도 카페 개업 관련해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임페리움 뱅크에 막 다녀온 길입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원래 내가 해야 했을 일인데, 워낙 바쁘다 보니 이렇게 네르진이나 라일락에게 떠넘기는 게 대부분이다.
“허허, 감사라니요. 제 일이기도 한걸요.”
그러나 오히려 좋은지 허허 웃은 네르진이었다.
“그보다 계획하셨던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한 달이나 자리를 비웠다. 결과 보고 정도는 해줘야 예의겠지.
“네.”
나는 자랑스럽게 로브를 슬쩍 걷어내며 허리춤의 탄알집을 보여주었다. 단 열 발의 탄환만을 수납할 수 있는 울브하딘 가문의 가보 영원탄. 그중 하나를 빼 들었다. 흑갈색 탄환은 전체적으로 개의 두상처럼 생겼는데,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제가 울브하딘 백작가의 가주입니다.”
라일락이 웃었고, 네르진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틴이 울브하딘 백작이 되었다. 이건 그냥 후계자가 가주직을 승계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과거의 악행을 조금이나마 용서받았다는 각별한 증거다.
*
[잠깐, 잠깐. 정말로 다들 진정해봐. 내 말 좀 들어보라고.]이럴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회의판 위로 뛰어든 정장의 신사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빈말로도 곱다고 할 수 없는 시선들이.
[켈투…!]쿵! 거대한 용의 앞발이 회의장을 내리쳤다. 충격파에 온 지옥이 울렸다. 온몸이 화염으로 휩싸인 드래곤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 거체의 용두(龍頭)를 켈투 앞에 내밀었다.
지옥을 뒤덮은 불의 주인. 무한히 뻗어나가는 화염의 군주. 끝없는 분노의 악마군주 크라가흐가 켈투를 겁박했다.
[젠장, 알아! 안다고! 나 실패자인 거 누가 몰라! 근데 이건 아니지!] [하하하하!]그때 옆에서 다른 악마군주가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만 웃어라, 죠베르카!]켈투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왜! 내 이름값 하는 건데! 증식하는 웃음의 악마군주!]마치 광대처럼 생긴 죠베르카는 인간의 형태를 본따 만든 밀랍 인형처럼 생겨서 유쾌와 불쾌가 공존했다.
[하하하하! 웃기잖아! 그럼 브라하무스는 어디에 있는데?] [그건….] [너랑 같이 광대 놀음하다가 요양하고 있잖아! 하하하하!] […면목이 없군. 하지만 그런 만큼 더더욱 계획을 잘 짜서….]모략의 켈투, 식탐의 브라하무스, 분노의 크라가흐, 웃음의 죠베르카. 그 외에도 악마군주가 셋은 더 있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크라가흐가 신경질적으로 그 셋의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는 탈주범을 잡으려 지옥의 입구를 지키고, 누구는 천상의 빛을 막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어둠을 퍼뜨리며, 누구는 타임카오스 던전을 관리하느라 뼈가 빠지도록 고생하고 있지. 나조차 빛이 닿지 않는 지옥을 종일 뜨겁게 달구는데. 두뇌랍시고 세워 놓은 놈은 계획을 거나하게 말아 먹었지.] [그건 불가항력이었어! 그러니까….] [닥쳐!]크라가흐의 앞발이 다시 한번 회의장을 내리친다. 그 충격파가 켈투를 회의판 밖으로 밀어냈다. 지옥의 가장 높은 산에 고인 용암 위에 있던 회의판에서 나가떨어질 뻔한 켈투가 간신히 끝부분 모서리를 잡고 버텨냈다.
켈투도 악마군주. 고작 충격파 따위에 굴복할 격은 아니었으나, 그의 이번 모략은 약한 척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른 악마군주들도 보통 화가 난 게 아니었으니.
[켈투! 네놈이 수천 년간 이어온 통제도 이제는 진저리가 난다! 날 포함한 다른 악마군주들이 종일 노동하는 동안 너는 뭘 했지?! 그 잘난 정장을 입고 피를 마실 뿐이었지! 그렇다고 일을 잘했나?! 가장 최근의 가시적인 성과라 해봐야 100년 전의 코스모스 제국 멸망뿐!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지옥을 뜨겁게 달구던 분노의 불길이 크라가흐의 비늘 사이와 아가리 사이로 새어 나오자 켈투가 침을 꿀떡 삼켰다. 정말로 중요한 시점인데. 하필이면 지금.
[제, 제발! 내 말 좀 들어봐, 크라가흐!]켈투가 모서리에 매달린 채 토로했다.
[천칭이 기울었어! 지금 아슬아슬하잖아!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수평을 넘어서 기울게 될 거라고! 놈들은 브라하무스의 테러를 비교적 쉽게 넘기고 방심하고 있어! 이번에는 할 수 있다고! 내게 새로운 작전이…!] [하! 네놈의 그 작전! 작전! 이제는 지긋지긋해!] [하하하! 맞아! 켈투, 재미없어! 캬하하하!]크라가흐의 불길과 죠베르카의 웃음소리가 지옥을 채워나간다.
크라가흐의 발이 회의판 끝에 매달린 켈투를 툭 쳤다. 켈투의 몸이 용암산 아래로 떨어져 간다.
[참견질 말고 지켜나 봐라, 켈투. 다시 지옥 내전을 겪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야, 이…!]추락하는 켈투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자신을 회의판 밖으로 쳐낼 줄이야. 그간 다른 악마군주들이 참아오던 불만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쯧, 큰 그림을 볼 수 없는 것들은 이래서 안 돼. 어쩔 수 없지. 한 번 풀어주는 수밖에.]저 멍청한 것들 때문에 천칭이 기운다? …뭐, 상관없다. 기회는 언제라도 오니까. 아니, 애초에 브라하무스가 예외일 뿐…, 또 실패할 리가 없다. 인간들은 벌레니까. 우리가 강림하면 울고불고 숭배하고 자해하는 멍청한 것들.
[그리고 애초에 저놈들이 인간들에게 패배할 리가 없지.]브라하무스가 단순히 파괴적인 전술 병기라면, 저것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줄 아는 전략 병기니까.
*
이른 새벽. 동이 트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잠입 임무? 야간 임무? 아니. 장사 준비!
“크으, 오늘 매출 얼마나 나올지 기대되네.”
“에휴, 난 걱정인데. 사람이 생각보다 안 오면 어쩌지?”
“자네 초장부터 그런 걱정을 하나?! 잘 될 거라고 마음먹어야지!”
임페리움 제국 건국제. 고유 명절인 동시에 대륙 최대 규모의 행사이다. 장사치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
“준비는 다 끝났습니까?”
물론, 우리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네, 커피 마차에 다 실어두었습니다. 예비분 또한 준비했고요. 유사시 곧바로 보급이 가능합니다.”
네르진이 보급 현황을 보고하고.
“마틴 사장님! 들으셨어요?! 임페리움 수도로 향하는 마차편이 없어서 출발을 못 하는 사람들 천지래요!”
비앙카가 손님들의 근황을 보고하면.
“청소 임무, 수행했습니다.”
사보가 청소 도구를 든 채 내게 보고한다.
“준비 다 끝났어요, 주인님. 이제 출발하시면 돼요.”
마지막으로 라일락까지. 마지막 점검까지 마친 후에야 우리는 커피 마차에 올라탔다.
“가자, 세바스찬.”
[월!]거대화한 세바스찬이 커피 마차를 끈다. 창문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사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마다 기대를 한가득 품은 표정이다. 당연히 그 목적은 돈. 우리도 마찬가지다. 남의 돈 벌어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옆 점포, 맞은편의 점포 모두 경쟁자인데.
‘하지만 자신 있다.’
대동제에서도 증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무대는 더 크다.
“도착했어요!”
임페리움 랜드! 엘리도르 후작인 아놀드가 야심 차게 기획했고 몇 년 동안 매진한 끝에 결국 성공적으로 개장한 테마파크! 오늘의 무대는 이곳이다!
돌아보니 네르진도 전투를 눈앞에 둔 노장처럼 씨익 웃었다.
“오늘은 쉽지 않겠군요, 사장님.”
“그래도 과실은 달콤할 겁니다.”
“네. 엘리도르 후작도 제법 크게 투자했으니까요.”
건국제의 메인은 언제나 대광장이었다.
‘그러나 임페리움 랜드라는 변수가 생겼지.’
대체 어떻게 했는지 엘리도르 후작은 대광장에서 행해지던 대부분의 행사를 섭외, 임페리움 랜드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수를 써놓았다.
“손님이 미어터질 겁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나서셨으니 저희도 든든합니다.”
“저도 똑같이 손 두 개 달린 사람입니다만.”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왔다. 루리였다.
“마틴!”
“루리 생도.”
“헤헤, 장사 준비는 잘하고 있어?”
“네, 덕분에요.”
임페리움 랜드 내에서 푸드트럭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루리의 덕이 컸다. 물론 커피 마차가 가진 브랜드 값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인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무슨 일이십니까?”
“시찰! 건국제 준비가 잘 되고 있나 보러 나온 거야!”
“그렇군요. 바쁘시겠네요.”
피는 못 속인다고, 엘리도르 가문의 정통 후계자인 루리의 능력도 아놀드 못지않게 뛰어나다. 범대륙급 축제이니 루리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터. 오히려 시간 내주어 찾아와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커피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응응! 근데 나 커피는 이미 아침에 먹었는걸! 그러니까 다른 맛있는 걸로 줘!”
밝게 웃고 있지만 어쩐지 피로해 보이기도 한다. 밤새 업무에 매진했겠지. 그렇다면….
“그럼 커피 마차의 시그니처 메뉴인 ‘쟈쟈라 티 릴렉서’로 드리죠.”
“응? 처음 듣는 메뉴인데?”
커피 마차 단골인 루리조차 생소한 이 메뉴는.
“건국제를 위해 개발한 신메뉴입니다. 커피로도 있는데, 카페인 과다 섭취는 몸에 안 좋을 수 있으니까요.”
“헤에, 세심하네. 마틴은. 그보다 쟈쟈라는 그거지?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종류.”
“네, 알로에와 비슷하면서도 더 달고 맛있습니다.”
“마틴의 추천이니까 한번 먹어볼까?”
오늘의 첫 손님이다. 커피 마차 위로 올라서 음료 제조를 시작했다. 쟈쟈라의 속살과 단물을 섞어 갈아놓은 농축액과 여러 허브 우린 물과 얼음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쉐이크. 마치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드는 것처럼 통에 넣고 흔들었다.
“자, 여기.”
일회용 컵에 담아서 건네주었다.
“주문하신 쟈쟈라 티 릴렉서입니다.”
제조 공정도 커피를 타는 것보다 훨씬 짧다.
“우와, 연두색이네?”
“드셔보시죠.”
“응!”
한 모금 마신 루리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분홍색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난다.
“맛있어! 상큼해! 상쾌해! 달아! 좋아!”
맛있게 마셔주는 게 바리스타에게는 최고의 포상이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개선 사항이 있을까요?”
“아니! 없어! 완전 좋아! 짱 좋아!”
내 주위에 몇 없는 또래 여자애다운 사람이 루리다. 시음 대상으로 부족함이 없다. 호평을 듣자 한껏 자신감이 올랐다.
“마틴은 요리도 잘하네~.”
루리가 있지도 않은 꼬리를 살랑이며 내게로 다가온다.
“아가씨, 가셔야죠.”
“에엑?”
정장을 입은 수행원들의 만류에 루리가 ‘갑자기?’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전 8시 전으로 돌아봐야 할 점포의 개수만 100개가 넘습니다.”
“흐잉….”
울상이 된 루리가 날 보며.
“마틴…, 다음에 올게.”
“언제든 환영입니다, 루리 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