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어린 사랑꾼 (2)
싸늘하게 변해 가는 로이스 얼굴에 파브로가 기겁했다.
‘화, 화나셨다!’
로이스와 함께한 지 어언 반년.
그간 로이스의 분노를 단계별로 구분해 놓은 파브로는 알 수 있었다.
현재 로이스의 분노 단계가 자신이 규정해 놓은 새로운 경지로 넘어갔음을.
다시 말해 현재 로이스의 분노는 파브로도 처음 보는 단계라는 소리였다.
‘이러다가 진짜로 저 꼬맹이를 4등분 내실지도 모른다?!’
루프트하겐의 대로 한복판에서 그랬다가는 큰일이었다.
위기 상황을 감지한 파브로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만하거라!”
2m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불쑥 캐리의 앞을 가로막자 녀석의 뒤에 있던 조직원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자신들의 도련님에게 위해를 가하면 언제든지 검을 뽑을 기세였다.
그런 부하를 캐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캐리가 탐색하는 눈으로 파브로를 쳐다보았다.
“누구십니까? 어제 보니 레이디 모아나, 레이디 루시아와도 친해 보이시던데.”
캐리의 물음에 파브로는 로이스의 눈치를 봤다.
떨떠름한 얼굴일 뿐 딱히 더 손을 쓸 거 같아 보이지 않았기에, 파브로는 속으로 안도하며 캐리의 물음에 답을 줬다.
“나? 그 녀석들의 부모와 인연이 좀 있는 사람이다. 녀석들의 이름도 내가 지어 줬지.”
“이, 이름을 말입니까?”
자신들의 조직원 못지않게 험상궂게 생긴 파브로가 세이렌의 쉼터 자매들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소리에 캐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파브로가 쐐기를 박아 버렸다.
“흠흠, 따지고 보면 내가 녀석들의 대부라고 할 수도 있지.”
캐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허, 헉?! 대, 대부?!”
두 자매의 대부라는 소리에 캐리의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녀석이 자신들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뭣들 하는 게냐! 레이디 루시아의 대부님이시다! 당장 칼에서 손 떼!”
소년답지 않은 당찬 외침에 조직원들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검에서 손을 뗐다.
그 모습에 파브로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흐허허, 생긴 건 나탈리 판박인데 기백은 영락없이 테리우스구나.”
갑자기 언급된 부모님의 이름에 캐리가 또 한 번 놀라 되물었다.
“…저희 부모님을 아십니까?”
“예전에 인연이 좀 있었다.”
“호, 혹시…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파브로라고 한다.”
“파브로… 파브로…….”
파브로라는 이름에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한 느낌이 든 캐리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기어코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녀석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혀, 혈도끼 파브로!”
“크, 크흠!”
캐리의 외침에 파브로가 불편한 듯한 기침을 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로이스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쓰는 무기는 해머인데, 갑자기 웬 혈도끼?”
로이스의 작은 중얼거림에 그의 옷깃에 숨어 있던 핀이 대신 설명을 해 주었다.
“변종 난쟁이가 젊을 적 쓰던 게 도끼라네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그래? 근데 지금은 왜 해머로 바꿨는데?”
“도끼가 커서 등 뒤에 매고 다녔는데, 전투를 치를 때마다 그거 뺀다고 귀 잘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해머로 바꿨다고 했어요.”
“…가지가지 한다.”
로이스가 한심하다는 듯 파브로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로이스에게 모자란 난쟁이 취급을 받은 파브로였지만, 캐리에게는 정반대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지, 진짜… 혈도끼 파브로 님이십니까?”
“크흠… 그 혈도끼 소리는 좀……. 아무튼, 내가 파브로 맞다.”
“저희 아버님이 슈크론파 놈들에게 붙잡히셨을 때 단신으로 쳐들어와 아버님을 구해 주셨다던!”
“그래, 그랬었지.”
“구출 과정에서 칼침을 무려 여덟 방이나 맞으시고도 당당하게 아버님을 부축하고 나오신 뒤 쓰러지셨다던?!”
“크흠… 그랬지. 다 젊었을 때 얘기다. 테리우스 녀석이 별 얘기를 다 했구나.”
“지, 지금도 아버님께서 술에 취하시면 항상 그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살면서 딱 한 분, 마음속에 진정한 형님으로 모시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고! 그분이 바로 파브로 님이라고 말입니다!”
“커흠! 거… 그 자식이 원래부터 좀 의리가 있는 놈이기는 했지, 어흠!”
캐리는 마치 전설 속 영웅을 만난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파브로를 대했다.
그럴 때마다 파브로의 어깨가 한껏 승천하는 모습이 뒤에 있는 로이스에게도 보였다.
“이런 곳에서 파브로 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흠! 됐다, 됐어!”
파브로의 입은 됐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눈은 좀 더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뒤에서 매일같이 못살게 구는 못된 드래곤에게 자신의 훌륭함을 알리게 말이다.
마치 그런 파브로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캐리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듣고 자란 파브로의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떠벌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파브로의 광대를 승천하게 만든 캐리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안 그래도 테리우스를 찾아가 볼까 했던 참이다.”
“저희 아버님을요?”
“그래, 내가 부탁할 게 있거든.”
“어떤 부탁이십니까?”
“그게 말이다…….”
캐리의 물음에 파브로가 자신들이 영약이 찾으러 다닌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캐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 부탁이라면 굳이 아버님께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하하, 네! 제가 비록 어리다고는 하나 그쪽 방면으로 꽉 잡고 있습니다. 믿어 보시죠!”
“오호?”
진짜 그러냐는 파브로의 표정에 캐리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조직원 중 한 명이 바짝 다가왔다.
캐리가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야기는 들었지?”
“네.”
“지금 당장 우리 조직 산하에 있는 모든 약재상, 암시장 수소문해서 구할 수 있는 영약은 싹 매입해 와.”
“하오나… 그 금액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작님의 재가를…….”
“괜찮다. 다 내가 책임지마. 그리고 아버님의 의형이시다. 아버님께서도 분명 나처럼 행동하셨을 거다.”
“알겠습니다.”
캐리의 지시를 받은 조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몇몇 사내를 데리고 사라졌다.
이를 지켜본 캐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루프트하겐에 있는 영약을 뒤지는 데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허… 테리우스가 아들 하나는 똑 부러지게 키웠구나.”
“이게 다 파브로 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제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크흠… 그게 그렇게 되나?”
“당연합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너희 집?”
“부탁드리겠습니다. 파브로 님께서 오신다면 아버님께서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캐리의 정중한 부탁에 파브로가 슬며시 로이스의 눈치를 봤다.
자신을 힐끗거리는 시선에 로이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그래, 그간 고생도 했으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로이스도 지난 반년간 파브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명마라고 해도 매번 채찍질만 하다 보면 퍼지기 마련.
가끔은 당근과 휴식을 내줘야 했다.
결정을 내린 로이스가 파브로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다녀와.]로이스의 허락에 파브로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치 그래도 되겠냐는 듯한 밝은 눈빛에 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여관으로 돌아가…….]파브로를 보내고 본인은 여관으로 돌아가려던 로이스.
그의 메시지가 곧이어 들려온 캐리의 목소리에 뚝 끊겼다.
“너도 오지, 꼬맹이?”
“……?”
“어차피 혼자서는 길도 못 찾아 갈 거 아냐?”
로이스의 눈꼬리가 재차 떨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감지한 파브로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그, 그래! 어린애를 혼자 돌려보낼 수는 없지! 가, 가, 같이 가자!”
“…….”
싸늘한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로이스의 시선에 파브로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내뱉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파브로는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다급히 이동을 재촉했다.
캐리가 로이스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따라와라, 꼬맹이.”
“저 자식이…….”
자꾸만 도발해 오는 캐리에게 분노한 로이스는 얼마나 잘사는 집이기에 저렇게 자랑을 하는지 봐 주겠다는 심정으로 녀석을 쫓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번트 가문을 찾게 된 로이스와 파브로.
그들이 거대 저택의 문을 통과하기 무섭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이이이! 혀어엉님!”
“오! 테리우스!”
구불거리는 긴 금발에 파브로만큼 훌륭한 덩치를 가진 중년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와 파브로를 얼싸안았다.
‘뭐야… 저것들 친형제 아냐?’
로이스가 그리 생각할 정도로 둘은 꽤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종종 연락이라도 주시지. 이 아우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하,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성공한 걸 보니 나도 기쁘구나.”
“이게 다 형님이 그때 절 구해 주신 덕분입니다, 흐하하하!”
“원 녀석도, 흐하하!”
어깨동무를 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중년의 사나이들.
아들에게 미리 연락을 받고 달려온 테리우스 남작은 오랜만에 만난 의형을 정말로 기쁘게 맞아 줬다.
그런 테리우스의 옆에 선 단아한 여인.
파브로가 그녀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오! 나탈리! 여전히 아름답구나.”
“파브로 님의 정정하신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단아한 중년 미인은 입을 가리고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의 모습에 로이스는 이 집안의 느끼한 꼬맹이가 누굴 닮았는지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은 어디 갔지?’
로이스와 파브로를 초대했던 캐리는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게 남들이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로이스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서 있을 때.
테리우스가 저택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자자, 형님, 이럴 게 아니고 안으로 드시죠. 사정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애들 풀어서 필요한 물건 전부 준비해 놓으라 일렀습니다. 준비되는 데 며칠 걸릴 것 같으니 여기 머무시면서 저와 회포나 푸시죠.”
“그, 그러…….”
의동생의 이야기에 냉큼 답하려던 파브로.
그는 그제야 뒤통수가 뜨끈뜨끈 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와 함께 분노한 드래곤의 시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술독에 빠져 죽을래? 아니면 내 손에 맞아 죽을래?]서슬 퍼런 로이스의 협박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파브로가 식은땀을 흘리며 재깍 답의 방향을 돌렸다.
“…러어어! 고는 싶지만, 챙겨야 할 아이가 있어서 말이다.”
“이 아이는……?”
“조, 조카다.”
“그렇습니까?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님께 조카면 제게도 조카 아닙니까! 저희 애들 시켜서 무사히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탈리, 저 아이 좀 챙겨 줄 수 있겠소?”
“후후, 아무렴요.”
“아, 아니… 그게…….”
자신의 눈치를 보는 파브로의 모습에 로이스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가 봐준다는 듯 메시지를 보냈다.
[하아… 됐다. 그냥 놀아. 공짜로 영약도 구해다 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대신 영약을 꼭 챙겨 와라. 핀도 같이 보낼 테니까.]로이스의 명령에 핀이 두말하지 않고 곧장 파브로의 주머니로 숨어 들어갔다.
이에 파브로의 표정이 대뜸 밝아져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는 로이스의 마음이 변할까 잽싸게 테리우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 남은 로이스.
그에게 다가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휴… 어쩜 이리 이쁠까?”
남작 부인은 쪼그리고 앉아 하얀 로이스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줌마랑 같이 갈래? 맛있는 거 줄게.”
맛난 거란 소리에 로이스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남작 부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말캉거리는 아이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남작 부인이 로이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이스는 또 보기 싫은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아, 또 저 녀석이냐!’
“맛있는 거 준비해 올 테니까 잠깐 여기서 형이랑 놀고 있어.”
남작 부인은 로이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사라졌다.
때마침 한쪽 책상에서 무언가에 열중이던 방 주인인 캐리와 로이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때 로이스는 확신했다.
‘저 녀석과는 전전생에 악연이었을 게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