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56
Chapter 35. 서브 미션(4)
재혁이와 같이 쓰는 2인실 안.
침대 두 개, 책상 두 개가 들어가고도 한참 남는 공간이라 다행이다.
더 좁았다면 여기서 이런 특강이 열릴 수도 없었을 테니.
“자- 입꼬리 조금만 더 올려 볼까요?”
“이, 이렇게?”
“좋아요, 욕쟁이 씨! 근데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웃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보여도 되니까 자연스럽게요!”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행들 사이, 지은 씨와 욕쟁이가 일대일 교습을 벌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전신 거울을 앞에 두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연습하는 두 사람.
“자, 스마일-!”
“스마일……!”
“짝다리 짚지 말구요!”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어색하게 드러난 잇몸.
똑바로 서 있다가도 계속해서 한쪽으로 기우는 몸.
소 혀가 핥고 간 듯 눌린 머리로 어정쩡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풉!
관람객들 사이에서 새어 나와 버린 웃음.
“쉿!”
솔아가 여진이에게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지만.
“뭐야? 어떤 새끼가 비웃어?!”
이미 욕쟁이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진 뒤였다.
“삐-!”
……물론 지은 씨에게 금방 저지당하고 말았지만.
“욕 금지라고 말씀드렸죠? 상냥하고 긍정적으로, 다시 말해 볼까요?”
“아니, 대놓고 비웃잖아! 그럼 뭐라고 말해?!”
“아아, 여진이가 참 재밌었나 보구나-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지은 씨의 말에 욕쟁이가 기가 찬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X발, 이딴 게 진짜 도움이 된다고?”
“또, 또!”
“……이런 게 도움이 될…… 것 같네! 존…… 엄청나게!”
욕을 달고 살면서 시키는 건 곧잘 따라 하는 모습이 우습다.
겉으로는 드세 보여도 속은 착한 고등학생 같달까.
“……누님, 소질 있으시지 말입니다.”
“진짜로. 지은 언니, 선생님 했어도 잘하셨겠는데요?”
“그러네. 재능을 썩힐 뻔했네.”
어쨌든 저쪽은 지은 씨에게 맡겨 두고.
“솔아가 욕쟁이 씨랑 한 팀이라고 했지?”
“네.”
“그럼 어렵진 않을 거야. 구매하면 치유 스킬 써 드린다고 해.”
“네? 그게 통할까요?”
“통해. 비슷한 거 해 봤거든.”
“총 5만 점입니다. 3만 점 넘으셔서 도수치료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는데, 해 드릴까요?”
[부탁하네. 훤칠한 청년이 손까지 맵다고 소문이 자자해.]오후 늦게는 도수치료 소문 듣고 왔다는 손님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하지만 제 스킬, 그 사람들한테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냐. 그리고 정 걱정되면 아로마 테라피 같은 거라고 해도 되고.”
“아로마 테라피요?”
“효과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다들 좋아하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솔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그럴듯해!”
여진이도 옆에서 한마디를 더했고.
그러자 갑자기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기는 연보라.
“아! 그럼 전 흙으로 기념품 같은 걸 빚어 볼게요!”
“그것도 좋네. 작게도 만들 수 있어?”
“네! 간단한 동물 조각 같은 건 동전 크기까지 가능해요.”
괜찮은 생각이다.
별거 아닌 선물도 정성이 들어가면 값비싼 상품보다 나을 때가 있으니까.
“흙으로 만드는 거면 재료비 걱정도 없겠네. 오늘 미리 만들어 둬도 되겠는데?”
“아……! 그러네요! 저 그럼 나갔다 올게요.”
“언니, 같이 가요!”
연보라네 조는 걱정 없겠고.
다음은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 그리고 이예지와 한울 씨네 조인데.
“아주머니는…….”
“걱정 말어. 어떻게든 해 볼 테니께.”
“아주머니 진짜 잘하시더라고요! 완전 인싸!”
“그렇습니까?”
“고럼, 고럼! 정 안 되면 청소 좀 해 준다고 하지 뭐. 근디 인싸가 뭐여?”
여기도 믿고 보내도 될 듯싶다.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연륜이 있으셔서인지 한 사람 몫은 너끈히 해 주시니까.
그렇게 각자의 영업 전략을 준비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부른 시스템.
“실적 보상.”
[실적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그건 됐고.
“베네핏 지급 기준이 궁금합니다.”
내가 궁금한 건 이쪽이다.
베네핏을 준다고만 했지, 무슨 기준으로 얼마나 주는지를 알아야 확실히 준비할 수 있으니까.
‘28개 조 중 1등만 하면 된다고 하면 적당히 해도 돼.’
엄청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1등은 우리 차지일 테니.
하지만 시스템은 예상외의 답변을 내어놓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음?
영업 실적은 그렇다 치고, 관리 실적이라니?
“관리 실적이면…… 다음 OJT가 관리국이라는 겁니까?”
[답변할 수 없습니다.]관리국에서의 OJT라.
이거…….
‘이번에 최대한 쌓아 둬야겠네.’
* * *
각종 사업 아이템과 마케팅 전략이 별처럼 쏟아진 밤.
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찾아왔다.
[‘천공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그래서 이 상품은…….”
“아, 그럼 고객님께는 이쪽이…….”
하루 와 봤다고 그새 익숙해진 걸까.
커다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시골 마을 입구하며, 그 속에 녹아들어 열심히 영업하고 다니는 일행들이 자연스럽다.
[아주 지들 안방이지, 이제?]와중에 공중에 떠 있는 실적 현황판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
〔영업 실적 현황〕
1. 25조 : 1,275,000점
2. 10조 : 170,000점
3. 12조 : 95,000점
4. 3조 : 47,000점
5. 9조 : 30,000점
6. 21조 : 10,000점
대놓고 보이는 실적 현황 때문에 자극이 되어서일까.
다들 어제보다 치열하게 임하는 모양.
‘고작 6개 조밖에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어제까진 우리 외에 전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이다.
“다들 실적 쌓는 속도가 엄청나네요.”
[이번 기수, 도대체 뭐야? 단체로 왜 이래?]사수 또한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특명을 완수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했었다.
OJT 둘째 날 이런 실적을 쌓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테지.
[이거 형님 때문인 거 아냐?]“그럴지도요.”
아마 어제 우리 조의 실적을 보고 다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자연히 ‘되는 방법’을 찾아 헤매게 됐을 터.
레이스에서 1등의 기록에 따라 뒤따르는 선수들의 기록도 좌지우지되는 것과 똑같다.
“10조가 솔아랑 욕쟁이 씨네 조고 3조가 보라네 조였지?”
“맞습니다, 누님! 9조는 아주머니네 조고 말입니다.”
“12조만 모르겠네. 누구지?”
12조.
어제 ‘문’이 처음 나타났을 때 봤었지.
“거기도 형님 같은 특급 영업사원이 있는 걸까요?”
“특급 영업사원은 없어도 특급 판촉물은 있을 거야.”
“무슨 특별한 판촉물이라도 있는 겁니까?”
어울리지 않는 손거울을 들고 있던 덩치 큰 남자.
드미트리네 조거든.
“있어. 수제 영양제.”
“예?”
어쨌건 간에.
“그만 놀고 움직이자.”
“아, 예!”
최대한 실적을 쌓아 둬야 다음 OJT 때 개고생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또다시 시작된 고객 응대의 행렬.
【25조, 판매 성공!】
【신입사원 ‘이은호.’ 판매 수수료로 5천 점을 획득합니다.】
【누적 실적 : 1,325,000점】
【누적 실적 : 1,375,000점】
【누적 실적 : 1,405,000점】
……
실적이 무난히 올라간다.
하지만 증가세가 더뎌지는 까닭은, 이미 이 근처에 있는 고객들은 죄다 우리 상품을 사 갔기 때문이리라.
‘재구매 프로모션을 열어 볼까?’
그렇게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고 있자니 머리 위로 들려온 가느다란 목소리.
새하얀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쭈뼛대며 등장했다.
흘러내리는 까만 긴 생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
청초한 이목구비까지 더해져 자칫 차가워 보이는 외모.
“또 오셨네요.”
[!!]어제 ‘프러포즈 대소동’을 사간 여자다.
[기억…… 하시는군요!]기억하지, 그럼.
[저…… 근데…….]“더 필요한 거라도?”
[아니에요……!]말을 하려다 말고 도망쳐버려서 당황했는데.
게다가 아침부터 근처에서 혼자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기억해 주셔서 기뻐요.]여자의 얼굴이 빨개졌다.
꼭 율이 얘길 들었을 때의 웨이처럼.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친절하게 물었다.
사후관리 측면에서.
그러자 용기가 났는지 가느다란 모깃소리로 외치듯 말하는 여자.
[부, 부탁이…… 있어요!]“저한테 말입니까?”
[네!]흐음.
물건 하나 조용히 사 간 고객이 내내 지켜보다가 나와서 할 만한 부탁이라.
그럼 하나밖에 없지.
“환불은 안 됩니다.”
[…… 네?]아무래도 어제 사간 ‘프러포즈 대소동’이 영 형편없었던 모양이다.
꼭 이런 고객들이 있다.
새 옷에 온갖 흔적을 남겨 놓고선, 택을 안 뗐다며 환불해 달라고 하거나.
상품 몇 개를 같이 가입해 할인을 받아 놓고선 마음이 바뀌었다며 하나만 환불해 달라고 하는 등.
세상은 넓고, 고객은 다양하니까.
하지만.
“죄송하지만 저희가 환불 정책은 따로 없어서 환불이나 반품은 불가합니다.”
[네, 네?]“대신 다른 상품 사실 때 할인을 해 드릴게요. 최대 10%. 어떠십니까?”
여자가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렸다.
그러더니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는 듯 입을 뗐다 붙였다 하는 여자.
“아, 아니면 혹시 살까 말까 고민하시던 ‘여름이었다’로 바꾸고 싶으신 겁니까?”
[네?!]“교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우선 카탈로그 보시고…….”
[그게 아니라……!]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끊은 여자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너무 멋있으셔서…….]……응?
“저요?”
[네!]“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에요!]맞는데, 갑작스러운 거?
게다가.
띠링-!
【서브 미션 발동!】
【미션 : ‘준비된 신부’와 데이트하시오】
데이트 미션은 또 뭐야?
거기다 뭐?
준비된 신부?
【보상 : ‘준비된 신부’의 호감도 대폭 증가】
【실패 시 : ‘준비된 신부’의 호감도 하락】
……이런 것도 미션이 돼?
* * *
데이트라.
햇수로 27년을 살면서 한 번도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고등학교 때 애들 장난처럼 몇 번 나가 본 게 다였지만.
하지만 다 옛날얘기다.
내 다리가 멀쩡하고, 촉망받는 운동선수였고, 나름 인기 있는 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
“아…… 미안, 은호야. 나 진혁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모든 인간관계는 한순간이다.
남녀 관계는 더 그렇고.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끝이다.
그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연애 감정은 사치야.’
그리 되뇌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사실 진지하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눈앞의 고객은 어제 처음 본 여자.
더군다나 사람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으니.
“업무 중이라 빠져나가기 곤란하기도 하고요.”
[업무 중…… 아…….]여자가 시선을 땅으로 떨궜다.
그 모습이 꽤 실망한 얼굴이라서.
“데이트는 무리지만…… 잠깐 걷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탑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고 있어서요. 아는 곳이 있으시면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
그래서 겸사겸사 제안했다.
[네! 있어요!]그러자 주먹을 꼭 쥐고는 눈을 반짝이는 여자.
[그, 저쪽 산 아래에 가면 약수터도 있고…… 어린 애들 뛰어노는 동산도 있어요! 그리고 저 뒤쪽으로 돌아가면…….]괜찮겠지.
잠깐 정도는.
* * *
재혁은 바빴다.
“아, 그러면 이건 어떠십니까? 인기가 많지 말입니다!”
[흠…… 얼마여?]“총 1만7천 점입니다!”
계산이 빠른 편도 아닌 데다가, 어르신들이 한 명씩 줄 서서 기다리는 대신 너도나도 할 말을 해 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재혁아, 여기 좀 봐줘라.”
“예! 어디 다녀오시려고요?”
“아아, 여기 이분이 사람 많은 곳을 알고 계신다고 해서. 잠시 시장 조사 좀 하고 올게.”
“어…… 예……?”
“오래 안 걸릴 거야.”
타이밍을 놓쳤다.
“가시죠.”
어딜 가는 건지, 그리고 무슨 기억을 누구에게 판다는 건지 묻지 못했다.
“그…… 혀, 형님! 잠깐만요!”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진 은호의 뒷모습을 쫓다가.
“네, 계산 완료되었습니다.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고객님.”
[젊은 아가씨가 말도 예쁘게 하네, 그려!]마찬가지로 바삐 움직이던 지은에게 달려가 물었다.
“누, 누님!”
“응?”
“형님 말입니다.”
“은호 씨가 왜?”
꿀꺽!
침을 삼키며 내어놓은 물음.
“누구랑 같이 시장 조사를 하신다고…….”
“응? 시장 조사?”
“예……!”
재혁의 말에 지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놀랄 일인가 싶어서.
“그래? 근데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려?”
“그게…….”
그러자 재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뱉은 이야기.
“형님 앞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