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74
Chapter 39. 수면 아래(5)
PM 09:00.
누군가를 불러내기도, 누군가의 부름에 이끌려 나오기도 늦은 시각이었다.
그래서일까.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의아함과 불신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죠?”
“어차피 내일 다 모일 텐데. 굳이 오늘 왜 모은 겁니까?”
브라질에서 올라온 남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모든 교육 과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9시 정각, 신입사원분들의 부서를 결정할 ‘잡 마켓(Job Market)’이 열릴 예정입니다.] [모두 희망 부서를 미리 선정해 주세요!]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부서를 결정할 ‘잡 마켓(Job Market)’이 열린다.
그러니 그때 다 같이 모여 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뜻.
“그러게. 밤도 늦었는데.”
“무슨 공지 사항이라도 있는 겁니까?”
하나둘 모여든 이들 또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서를 고르기 전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뭡니까? 불안하게……!”
“맞아요! 말해 줘요. 뭘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1분 뒤에 시작하죠. 거의 다 오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느지막이 입장하는 편한 차림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 와중에 외출복 차림 그대로 들어와 손톱을 물어뜯는 여자 또한.
“사람을 왜 오라 가라…… 어?!”
그리고는 초조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다,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벤!”
욕쟁이와 같이 운영국에 끌려갔던 이들 중 한 명.
미국 대표의 일행이었다.
어두운 금발에 녹안.
서양인치고 그리 크지 않은 체구.
‘닮았네.’
꼭 닮은 외양으로 보아하니 가족 같은데.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얼마나 찾아 헤맨 건지, 온몸이 땀에 젖어 엉망이었다.
“벤?! 진짜 벤자민이야?”
뒤이어 달려온 미국인들 또한 땀에 젖어 있는 건 마찬가지였고.
“당신 뭐야? 왜 당신이 벤을 데리고 있지?!”
여자가 황급히 달려와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심장 박동을 듣고, 눈꺼풀을 까뒤집었다.
당연하게도 내 쪽으로 집중되는 이목.
“어? 어떻게 된 거야?”
“신입사원 대표가 해코지라도 한 건가?”
작은 소란이 모이고 모여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지은 씨가 통째로 옮겨 준 응접실 소파에 몸을 뉜 세 명.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싼 사람들.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서두르는 지각생들까지.
“거의 다 모인 것 같습니다, 형님.”
속삭이는 재혁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부터 해 줘요! 이 사람들은 왜 이런 거죠?”
“여기 세 분은 오늘 미션에 실패해 운영국으로 이관됐습니다.”
“……역시.”
“그리고.”
금발 여자가 이미 엉망이 되어 찢어진 아랫입술을 또 깨물었다.
“운영국이라면…….”
“미션 실패했나 보네.”
“근데 어떻게…….”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라.
“……입에 담기도 싫은 끔찍한 짓을 당할 뻔했습니다.”
“!!”
내 말이 끝나자 긴가민가하던 몇몇을 중심으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영상!”
“뭐?”
“아까 익명 게시판에 영상 뜬 거! 보여 줬잖아!”
“그게 그럼 진짜였다고……?”
그래서 정신을 잃고 있는 거냐. 말도 안 된다. 그럼 우리가 그리 당했을 수도 있었던 게 아니냐….
수많은 가정과 공포가 잔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물결의 중앙에 선 여자가 건넨 물음은.
“……어떻게 돌아온 거야?”
비리 직원들의 만행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답했다.
“데려왔습니다.”
사족 없이 돌려준 한마디.
그러자 여자가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숙였다.
“……신세를 졌네.”
그리고 그동안 사건의 진상과 게시판에 폭로한 영상의 존재가 연회장 안을 휩쓸었다.
“뭐어?!”
“그런 미친놈들이 있다고?”
“미친, 그 새끼들만 그런 거야, 아니면 그런 놈들이 한 트럭인 거야?”
조용하던 한밤의 연회장 위로 경악이 쏟아졌다.
미션 페널티라고 보긴 했지만, 이 정도의 일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모양.
그럴 만도 하다.
모든 OJT 미션에 붙어 있던 게 아니니까. 저 페널티는.
“지금까지 페널티가 걸려 있었던 미션은 두 번이었습니다.”
“두 번……?”
“맞아! 조사국이랑 관리국만 있었잖아!”
첫 번째는 OJT 첫 부서였던 조사국 미션.
【미션 : ‘정기 관찰 보고서’를 복사하시오.】
【진척도 : 0/100부】
【보상 : 미션 보상 1포인트, 복지 포인트 1,000점】
【실패 시 : 소속 변경(인사국→운영국)】
첫 미션이어서인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성공시킬 수 있는 미션이었다.
나야 청정 놈이 복사기를 없애버리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모두 청소나 커피 타기, 보고서 타이핑 등 평범한 업무를 맡아 쉽게 해치웠다 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마지막 부서였던 관리국 미션.
【미션 : 참관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적절한 미션을 발동하시오.】
【제한 시간 : 1시간】
【후원금 목표 : 1만 점】
【보상 : 미션 보상 2포인트, 복지 포인트 2,000점】
【실패 시 : 소속 변경(인사국→운영국)】
‘눈’ 너머로 계약직들을 굴려 참관자들의 후원을 이끌어 내는 것.
조사국과 달리 실패할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는 미션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의할 점은.
“왜 그 두 개 미션에만 무시무시한 페널티가 붙었던 걸까요?”
왜 감사국이나 영업국 미션에선 없었던 페널티가 저 둘에만 붙었냐는 건데.
“그러게…… 뭐가 특별해서?”
“비슷한 것 같은데…….”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특별한 점이.
“조사국 미션은 입사해 처음으로 받은 과제였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를 시켜, 회사의 가이드를 따르지 않는 놈을 걸러 내기 위한 거름망 역할이었겠죠.”
마치 인성 검사에서 ‘불을 지르고 싶은 적이 있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물어보고.
인턴이나 신입 사원이 입사하면 중요한 일 대신 잡무를 맡겨 태도를 보는 것처럼.
“그, 그럼 마지막 미션은요? 그건 왜 중요한 건데요?”
“그게 회사가 우리에게 바라는 핵심이니까요.”
정확하게는 우리가 됐으면 하는 인재상이라 해야 할까.
“일주일 전까지 한솥밥 먹던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실적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직원.”
순간, 공간 전체에 내려앉은 정적.
눈을 마주치던 몇 명은 그 말에 움찔했고,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든…….”
“그리고 계약직, 그러니까 직급이 떨어지면 저런 일을 겪게 된다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게다가 직급이 주는 권위의 달콤함까지 맛보게 할 생각이었겠지.
“……우리도 관리자들처럼 만들고 싶을 테니까.”
“……!”
한마디를 내뱉자 들려온 알림음.
— 띠링!
[‘다단계 사업자’ 칭호 효과 발동!] [목소리에 신뢰감이 깃듭니다.]휘익-
열린 곳 없는 실내에 산들바람이 불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한 줄기 연기처럼 인파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하긴…… 말이 돼.”
“그치? 나부터도 점점 아무렇지 않아지니까…….”
“솔직히…… 우리 아까 뭐에 홀린 것처럼 미션 입력했잖아.”
먹힌다.
칭호 효과 덕분인지, 아니면 아까 본 영상이 충격적이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느 쪽이건 간에.
“지금까지야 목숨을 담보로 협박당해서였다지만, 이젠 다릅니다.”
지금이다.
지금껏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걸 모두에게 전할 차례다.
“회사가 원하는 대로만 따라갈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 시스템이 제재를 가하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회사’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
그리고 ‘시스템’이 원하는 것.
언뜻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달라.’
만약 같았다면 내가 ‘회사’에 전혀 도움 안 될 반골 특성을 개방할 이유가 없었다.
비리 직원을 처단하라는 지시가 ‘히든 미션’으로 내려올 이유도 없었고.
즉, ‘시스템’이 곧 ‘회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시키는 대로 하지 말라고?”
“그, 그럼 어쩌라는 거야?”
“미션을 안 할 순 없잖아!”
당연히 다 데려갈 순 없을 거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어느 부서로 가실 건데요?”
“그래! 어딘지 알아야 따라가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내 말 한마디에 모두가 아, 그렇구나-하고 따라올 만큼 순진한 이들은 아닐 테니.
‘방법은 있어.’
▣ 부서 선택권(일회용)
– 원하는 부서명을 적은 뒤 제출하면 해당 부서로 배치된다.
‘부서 선택권’을 200% 활용하는 방안.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혹여라도 회사 측에서 알게 되면 미리 내 선택지를 막아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쉽진 않을 겁니다.”
발만 뻗으면 디딜 수 있는 잘 닦인 길은 아니더라도.
“골칫덩어리로 찍혀 제재가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힘든 길을 골랐다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 해도.
“회사에 무작정 놀아나는 게 아닌, 사람처럼 살고 싶다면.”
웅성거리는 이들의 머리 위로 다시 한번 산들바람을 흘려보냈다.
“결코 손해 보는 선택은 아닐 겁니다.”
담담하되, 최대한의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솔깃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져 나간다.
“뭐여? 청년 가는 부서로 따라오라고?”
“그럼 나야 당연히 좋은데…….”
“저는 가겠습니다, 형님!”
“저도요!”
그리하여.
“왜냐하면…….”
쐐기를 박으려는 찰나.
“그걸 어떻게 믿지?”
걸려온 태클.
“난 네가 더 수상한데. 올해의 사원이니 뭐니, 혜택은 있는 대로 다 받아 놓고.”
연수원에서 계주 미션 때도, 공성전 때도 마주쳤던 거인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생각해 봐. 저놈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제일 일을 잘했단 뜻인데, 뭐? 시키는 대로 하지 말자고? 무슨 꿍꿍이야?”
어쩐지 아까부터 못마땅한 얼굴이다 했는데.
내 말에 반박할 타이밍을 고르고 있었던 모양.
“아아.”
인파가 갈라져 거인과 나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주저 없이 쏘아 보낸 긍정.
“못 믿을 수 있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
“뒤통수 치는 놈 눈엔 뒤통수 치는 놈만 보일 테니까.”
“……뭐?”
벼르고 있었거든.
▧ 올해의 사원 비추 후기 ▧
치졸하게 후기 글이나 조작해 제 채널을 홍보한 놈.
#E13-OLV-19
OLV.
올리버.
──┤대상자 올리버├──
[거인화(Lv.12)], [경질화(Lv.5)]─────────────
공성전 때 모래의 늪에 빠트리기 전.
제3의 눈으로 확인했던 익숙한 이름이었다고.
“데스 게임 보고 싶은 분들은 차라리 다른 신입사원 채널 추천합니다.”
“!!”
거인. 아니, 올리버의 눈이 확장됐다가 다시금 찌푸려졌다.
“계약직들끼리 머리 깨고 죽이는데 올해의 사원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시간 훅훅 가네요.”
잠시 동요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이다.
“그게 왜?”
가만 듣고 있더니 코웃음까지 치며 반박할 정도로.
“내가 썼다는 증거 있어?”
“증거가 꼭 필요한가?”
“당연하지! 진짜 재미가 더럽게 없어서 썼을 수도 있잖아?”
흐음.
글쎄.
“잘 아네. 게시글이라고는 말도 안 했는데.”
“……!”
올리버가 찔린 얼굴로 흠칫 떨었다.
입 끝을 덜덜 떨면서 파리해진 게 구석에 몰린 쥐새끼라도 보는 듯하다.
제게 쏠리는 비난의 눈빛에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는 모습.
하지만.
“저 자식이……!”
“어떡하죠, 은호 씨?”
“끌어내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아냐.”
그래도 상관없다.
“직접 들으면 믿겠지.”
곧이거든.
* * *
“……평아!”
쏟아지는 햇살.
그럼에도 끈적이지 않는 마른 기후.
어딜 봐도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태평아!”
시끌벅적한 북새통 사이에서 눈을 떴다.
“어……?”
끔뻑. 끔뻑.
“엄마……?”
태평은 제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아 오는 여인을 올려다봤다.
어찌 된 일인지 고개를 꽤 많이 들어야 했다.
소년은 그 감각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얘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하하, 냅둬. 길만 안 잃어버리면 됐지.”
“그래도요……!”
너털웃음을 짓는 커다란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기억 또한.
“와, 저거 봐! 할리우드 간판이네!”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그래?”
“좋죠! 태평아, 이리 와!”
HOLLYWOOD.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핸드프린팅이 바닥 곳곳에 박혀 있는 길을 걸었다.
엄마랑 아버지 손을 양쪽에 잡고.
“글쎄요 여보, 태평이, 나중에 영화감독 될 거래요.”
“그래? 어떤 영화?”
“히어로 나오는 걸로 만든다는데…… 영웅이니 히어로니, 그렇게 좋아한다니까요?”
젊고 건강한 엄마가 쑥스러운 듯 시선을 떨구며 덧붙였다.
“당신처럼 멋있는 영웅이 좋다나 뭐라나.”
“뭐? 그런 거야, 명태평?”
그러자 마찬가지로 젊고 건강한 아버지가 씰룩이는 입매를 겨우 가누며 물었다.
하지만.
“움…….”
태평은 고민했다.
무거운 머리를 잠시 기울였다가 다시 세우기까지.
“아버지…… 때문이었나?”
이상하다.
맞는 말인데.
왜 뭔가 놓친 기분일까.
분명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었는데…….
“어머, 얘가 왜 이래?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이 아버지 같아서 좋다더니?”
“하하, 인석 참. 그래, 언제부터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지?”
소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였냐면…….”
제 것인지 아닌지 모를 기억을 더듬으며.
그리하여 내뱉은 말과.
“────부터?”
귓속을 찌르고 들어와 머릿속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경고음.
삐──────익!
움찔!
“바, 방금…… 이상한 소리가…….”
소년은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고양이들이 놀다 버린 실타래처럼 엉망이었다.
그러자.
“태평아.”
늙은 아버지가 말했다.
“친구가 부르네.”
“……친구?”
그리고…….
쌔애애애애액-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를, 엄마를, 할리우드 간판을, 주변 모든 가게와 길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
저 하나만 두고.
그러더니.
부웅-
어딘가로 떨어졌다.
둥글고 넓은 건물.
할리우드의 거리를 활보할 법한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 꼿꼿하게 선 사람과.
“욕쟁…… 아니.”
붉은 의자에 쓰러져 있는 낯선 남자.
“명태평 씨.”
‘!!’
……아.
나구나.
【‘귀(鬼)의 학살자’를 마주합니다.】
“잡템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 반송입니다.”
【학살자의 언령에 반응합니다.】
탁!
남자의 말이 무게추 달린 수갑처럼 발목을 붙들었다.
그러더니 끌어내린다.
점차로 무거워지는 몸뚱이.
“그리고.”
그 무게가 무거워 도망이라도 치려는 순간 들려온 마지막 한마디에.
“……!”
번쩍!
소년은 눈을 떴다.
“……X발.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