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58
Chapter 55. 전복(顚覆)(1)
모두의 머리 위로 캄캄한 그림자가 졌다.
〔타도 노동조합! 타도 이은호!〕
〔민폐노조 해체하라!〕
〔양심이 있으면 책임지고 물러나라!〕
……
저급한 텍스트를 나열해 둔 나무 팻말도.
시뻘건 천에 적힌 공격적인 문구도 죄다 그림자에 가려진 뒤.
— 많이들 모여 주셨네요.
이은호가 제 발밑에 모인 시위대를 슥 훑으며 말했다.
십오만의 대중이 저를 등질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 조합장 이은호입니다.
마치 손님이라도 맞이하는 말투였다.
‘통곡의 성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거나,
‘손님방은 이쪽입니다.’하고 말하는 것처럼.
[조합장…… 맞지?] [저 날개는 뭐야? 비행 능력자였어?]분위기가 바뀌었다.
[뭐야? 왜 저렇게 태연해?] [그러게? 지금 상황을 모를 리는 없고.] [혹시…….]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며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일이다.
그럼에도 조합장이 저토록 태연한 걸 보면 ‘아. 뭔가 있나 보다’, 싶던 것이다.
— 다들 1만 배로 오른 가격은 확인하셨을 겁니다.
순식간에 캄캄해진 사위.
그리고 그 속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선 사내.
나타나기만 해라.
매질을 해서라도 해체시키고 만다.
그리 생각하던 이들조차, 어쩌다 보니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게 된 상황.
‘어떻게 하면 주목받는지 아는군.’
저런 놈들은 둘 중 하나였다.
대중 앞에 서는 게 익숙한 놈이거나, 본능적으로 아는 놈이거나.
‘분명 구조 조정 전에는 사회의 말단 계층이었다 했지.’
그렇다면 후자라는 소린데…….
‘전 직원을 입맛대로 휘두를 정도의 카리스마라.’
섬뜩!
무아의 기나긴 생에서도 이 정도의 인물은 하나밖에 없었다.
‘……알겠네. 왜 신경 쓰는지.’
죽어 있던 무아의 눈동자가 기대감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 이번 물가 폭등 사태는 회사의 일방적인 탄압입니다.
[회사 핑계 대지 말고 똑바로 설명해 줘요!] [그래! 난 지금 일주일도 안 남았다고!]빨간 띠를 두른 몇몇이 윽박지르든 말든, 이은호는 태평했다.
마치 잔뜩 흥분한 어린애를 다루듯 친절하지만, 감정 없는 얼굴로.
— 그럼, 여기서 질문.
손을 슥 들어 올리며 물었다.
— 거기 ‘적폐노조 철폐하라’ 피켓 드신 분?
[나, 나?]—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이유가 뭘까요?
[?!]〔적폐노조 철폐하라〕
붉은 페인트로 적힌 피켓을 들고 〔타도!〕라 쓰인 머리띠까지 둘러맨 사내가 ‘그야…….’하며 슥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순진한 직원들을 현혹시키고! 사기를 저해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려서 결국엔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쳐서가 아니요!]열변을 토했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직원들을 위한답시고 입에 발린 말을 했지만, 결과를 보라고요! 아무것도 못 사고, 못 입고, 못 먹게 만들지 않았소?!] [옳지!] [그래. 결국 이렇게 됐잖아!]그러자 주변의 몇몇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하기까지 했다.
‘근데 저놈…… 아.’
어쩐지 열정적이다 했다.
하필이면 영감이 보낸 놈을 콕 집어 묻다니.
운이 나빴…….
‘아니, 설마 일부러?’
— 조합 가입하셨습니까?
[내가 미쳤다고!]저놈은 이은호가 무슨 말을 해도 초를 칠 놈이다.
애초에 그럴 작정으로 온 거니까.
— 그럼 괜히 피해를 입으셨네요?
— 이번 물가 폭등은 비조합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으니까.
하지만 이은호는.
[그래! 쓰벌, 우린 조합 가입도 안 했는데 왜 피해를 봐야 되냐고!] [맞어!] [내 말이 그 말이야!]‘……웃어?’
— 맞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 중 대부분은 억울한 비조합원이죠.
‘……동의해?’
— 그런데 말입니다.
심지어 얻을 건 다 얻었다는 듯 미소 띤 얼굴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펄럭-
십오만의 시위대가 한 명도 빠짐없이 저를 볼 수 있도록.
— 조합에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피해를 봤다.
— 이게 무슨 뜻일까요?
모두에게 던진 질문.
그리고.
— 회사가 여러분을 ‘문제아’로 봤다는 겁니다.
[문제아?] [우리가?]— 조합에 가입했건 안 했건, 모두 탄압의 대상이라는 거죠.
‘!!’
만들어진 해답.
[……!] [그런……!]거짓말이다.
회사가 노린 건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불온 세력’일 뿐, 전 직원이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 전 직원을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하나 없으니까.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왜…… 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글쎄요. 물갈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헙!] [!!]1만 배라는 충격적인 수치.
당장 시간 연장에 실패하면 삶이 끊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조합이건 뭐건 간에, 회사가 눈 밖에 난 직원들의 ‘시간’조차 언제든 정리할 수 있다는 깨달음.
[……너무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X발, 내가 여태 벌어 온 게 얼만데!]모두 느꼈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단발적인 일이 아님을.
그리고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선동과 날조가 습자지처럼 약해진 직원들의 이성을 찢어발기며 침투했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기만하려고.”
이은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런 뜻이었나.’
“하지, 뭐. 영웅 놀이.”
‘영웅이 되겠다’ 하지 않았다.
‘영웅 놀이’를 하겠다 했다.
쇼(Show)가 필요하면 하고.
적의 과(過)를 부풀려 자신의 공(功)을 키우는 가짜 영웅.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순수하고 고결한 영웅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 시계 가격이 폭등하자마자 찾아온 조합원분들이 계셨습니다.
—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셨죠.
해야 하니까.
— 추가로 얻은 삶을 축복이라 믿었습니까?
할 수 있으니까.
— 윗대가리의 손짓 한 번에 끝장나는 시한부 삶이 진짜 축복, 맞습니까?
하고 싶으니까.
— 남의 손에 맡겨진 인생은 축복이 아니라 족쇄입니다.
놈은 모두의 앞에 서서 족쇄를 풀었다.
— 혼자 싸운다면 그렇겠죠.
알렸다.
개. 짐승.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 하지만.
화륵-!
횃불이 점멸한다.
스스스스스슷-!
세상이 다시 어두워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쉿.”
무아의 몸을 붙드는 장갑과 딱딱한 갑주의 차가운 감촉.
떠오르는 부유감.
그리고.
번쩍-
파아아아아앗-!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광휘(光輝).
‘!!’
이은호의 몸을 감싼 황금빛 갑주가 빛을 발한다.
캄캄한 하늘에 별처럼 박혀, 태양 대신 태양 빛을 발한다.
[윽!] [무슨 빛이……!]어둠 속에서 갑자기 쏟아진 빛에 적응하지 못한 시위대가 눈을 가렸다.
그 빛의 장막 속에서 이은호는 말했다.
— 집단은 다릅니다.
그러곤 제 전리품을 들어 올렸다.
— 족쇄를 채우려는 자가 있다면 싸웁니다.
[저, 저건……!] [운영국장?!] [국장님이 왜 저런 꼴로……!]— 그럼에도 가로막는다면.
무아의 손목에 채워진 제어구가 이은호의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인다.
— 그대로 돌려줍니다.
딱─!
그리고 손가락을 튕긴 순간.
【행정명령 – 해제】
미리 입력해 둔 명령이 국장의 이름으로 전사에 퍼져 나감과 동시에.
펑! 퍼엉-!
폭죽이 터지며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 우리는 이길 겁니다.
‘……!’
— 바로 오늘처럼.
저릿-
국장은 눈을 감았다.
모를 일이었다.
겨우 닫은 눈꺼풀에 왜 태양처럼 빛나는 이은호의 잔상이 남아 버렸는지.
* * *
[미친, 바로 해결됐어!] [뭐? 진짜로?] [상점 봐봐! 전부 원상복구 됐다고!]시커먼 얼굴에 절망과 독기가 가득하던 조합원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애초에 시위의 원인이었던 물가 문제가 해결된 상황.
시위대로서는 더 이상 독기를 품을 이유가 없었겠지.
게다가.
[와…… 어떻게 한 거야?] [운영국장을 이긴 거야 그럼?]아무리 팀장이고 조합장이라 해도 신입사원.
저보다 한참 후배라 생각해 내심 무시했던 내가 국장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모습을 봤으니, 다들 꽤 충격을 받았으리라.
[강하다, 강하다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다행히 분노의 빈자리에는 의심 대신 놀라움과 경외심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회사가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거 아냐?] [왜? 너무 강해서?] [강한데 사고도 많이 쳤잖아. 겁내 폭로하고.] [하긴, 말이 되긴 하네. 근데 수법이 너무 더러운데?]더불어 그간 꾸준히 뿌려 왔던 회사에 대한 의심의 씨앗 또한 천천히 뿌리를 내렸고.
[솔직히 회사가 미친 짓 한 거지.] [그니까. X발, 반항 좀 했다고 전 직원 목숨줄 잡고 흔드는 게 말이 되냐?]고작 불만 몇 마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저 불만이 쌓이고, 또 쌓여 결국 철옹성 같은 탑이 될 거다.
【조합장의 발언이 전사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물장구로 시작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커져 가는 순간.
【축하합니다!】
【조합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눈앞에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재 조합원 평균 충성도는 『57%』입니다.】
【특명을 종료하고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N】
단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물가에 조합원들이 동요하는 사이 떠올랐던 특명.
【2】단결
– 흩어진 민심을 한데 모아 취하라
– 충직한 민심이 모일수록 굳세지리라
시스템이 ‘혁명가’에게 원하는 대로, 직원들의 민심을 취하는 건 성공했다.
‘솔직히 강제로 취한 것에 가깝지만.’
1만 배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하게 만들고, 이를 극적으로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오는 순간적인 카타르시스가 충성도를 잠시나마 극대화시켜 주리라 믿었다.
그걸 위해 새로운 적을 만들어 냈다.
비난의 화살을 내가 아닌 공통의 적, 즉 회사 쪽으로 돌려놨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불타는 그 순간에, 나를 향했던 불길을 그대로 회사에 반전시킨 셈.
[하, 이번에 조합원들은 아이템도 다 공급해 줬다던데. 나도 가입해야 되나?] [뭐? 왜?] [또 이런 일 생기면 어떡해?]지금 저들에게 나는, 그리고 노동조합은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홍수 속에 유일하게 떠 있는 노아의 방주처럼 느껴질 것이다.
[조합…… 조합이 뭐 하는 데라고 했지?]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건이 있나요?]벼랑 끝에서 겨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
원인도, 해결책도 없는 절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놀라움.
제 문제를 해결해 준 구원자를 지금껏 비난했다는 머쓱함까지.
조합원이건 아니건, 나를 향해 보내오는 눈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호 씨!’
‘최고!!’
지상의 팀원들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들거나, 엄지를 척 들어 올리거나, 벌린 입을 뻐끔거리며 감탄하고 있었고.
하지만.
【현재 조합원 평균 충성도는 『57%』입니다.】
【특명을 종료하고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N】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창을 다시 한번 훑었다.
‘종료 여부를 확인한 건 처음이야.’
특명을 ‘종료하겠냐’ 물어 왔다는 건, 아직 종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일 터.
이 말인즉슨.
– 충직한 민심이 모일수록 굳세지리라
57%의 충성도로 만족하고 넘어가겠느냐.
아니면 ‘충직한 민심’을 더 모아서 마무리하겠느냐는 물음이겠지.
그래서 나는.
슥-
손가락을 뻗고.
달칵-
주저 없이 눌렀다.
【N】
기껏해야 57%.
이 정도로 끝내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특명을 유지합니다.】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더 높여 보상을 획득하세요!】
충성도를 모으고, 보상을 업그레이드한다.
‘심플하네.’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순 없다.
가장 빠르게 충성도를 끌어올릴 방법이 필요한 셈.
그래서.
‘저기 어디에…… 아.’
“거기, 스톱.”
[?!]〔적폐노조 철폐하라〕
붉은 페인트로 적힌 피켓.
〔타도!〕라 쓰인 머리띠.
뒤바뀐 분위기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는 놈을 불러 세웠다.
“그 옆에 ‘이은호 죽어라’ 피켓이랑 ‘회사 천국 노조 지옥’ 플래카드도 남으시고.”
딱 봐도 놈의 동료로 보이는 프락치들도 불러 세웠고.
[뭐! 왜! 무슨 소릴 하려고?!] [난 업무가 바빠서 이만!]에이.
그냥 도망가면 섭섭하지.
“잠깐 얘기 좀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