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38
Chapter 9. 적성 검사(2)
꽁지 빠지라 터널로 들어서는 대상자들과 먼발치에서 유유자적 그들을 내려다보는 남녀.
[승(勝)아.]소녀가 저보다 곱절은 커다란 사내를 불렀다.
[저 자식, 이상하지?] [누구…… 아아.]그러자 승(勝)이 누구 얘기냐 물으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그의 상사가 관심 가질 만한 인물은 딱 한 명뿐이었으니.
지력 중상(中上), 무력 중하(中下), 매력 중중(中中)의 대상자.
종합 평가 중중(中中)의 이은호.
[직접 대면한 건 처음입니다만…… 건방진 놈이군요. 감히 관리자를 막아서다니.]게다가 상대는 무려 하로나.
차기 팀장 후보로 거론되는 거물급 인사가 아닌가.
징계 이력만 아니었으면 진작 진급했을 핵심 인재에게 감히…….
생각할수록 괘씸한 마음에 혼쭐을 내줘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제가 가서 단단히 혼을…….] [분위기가 바뀌었어.]하로나가 양 갈래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예?] [왜, 너무 당당하잖아.]“9시 10초 전입니다.”
분명 그녀의 위력을 봤을 텐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나서던 이은호.
그 모습을 잠시 생각하던 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하군요.]그들이 지금껏 지켜본 녀석은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인의 안전이 담보된 상황이 아니면 무리하지 않는 타입.
그런 그가 몸소 나선 거다.
“시험, 시작해 주시죠.”
‘이쯤에서 멈추라’는 무언의 압박과 함께.
마치.
[내가 질질 끌 시간 없다는 거, 꼭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건…….]시간 엄수.
‘회사’에서 지켜야 하는 무조건적인 불문율.
‘등록한 시간에 미션을 수행할 것.’
비어 있는 시간에 새로운 미션을 추가로 등록할 순 있지만, 등록한 미션을 제시간에 시작하지 않을 순 없다.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지만.
[우연일 겁니다. 예비 선별자가 회사의 시스템을 알고 있을 리 없으니까요.]승은 단칼에 부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그야 그렇지만…… 뭔가 찝찝해.]별것 아닌 변화.
말도 안 되는 걱정이었지만, 까탈스러운 상사는 마음에 걸리는지 괜한 트집을 잡아 댔다.
[게다가 대상자 ‘이은호.’ 원래 다른 이들을 구하려고 나서는 타입은 아니지 않나?] [영웅 심리 아닐까요? 13지구는 자기희생을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 들었습니다만.]꽤 합리적인 추론이었으나, 하로나는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음- 그쪽 인간은 아닌 것 같던데.]생각에 잠긴 듯 머리카락만 꼬아 대는 걸로 보아.
[뭔가 이득이 있는 거 아닐까?] [하나…… 다른 이들을 구한다고 하여 득 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휴, 괜히 찝찝하단 말이야. 이 망할 시스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하로나가 꽤 답답한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관리자가 아니라 관리자 조상이 와도 시스템의 통제권은 갖지 못하는 것을.
[아쉽군요. 대상자들의 상태창만 열어 볼 수 있었어도 이리 답답할 일은 없을 텐데.]하로나는 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됐어. 무슨 재주를 얻었건, 이번 미션은 쉽지 않을 테니.] [특별히 신경 쓰셨으니까요.] [하아, 위에서 하도 난리 치니까 그렇지.]자그마한 소녀가 짜증 섞인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기침처럼 쏘아붙인 첨언.
[게다가 우리가 못 하면 ‘센터’에 맡긴다잖아.]그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 직접 내려온 이유.
프로젝트 ‘사냥’이 제대로 안 먹혔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도 삭제되지 않은, 사상 초유의 사태.
덕분에 ‘위기를 주랬더니 죄다 살려 주면 어떡하냐’며 잔소리를 왕창 들어 버렸다.
책임지고 정리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에 대리 진행을 맡기라는 지시는 덤.
[그나저나 ‘센터’에서 왜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나야 모르지. 하여튼 싹수만 보이면 죄다 달려들어서…… 맘에 안 들어.]하로나가 이를 빠득 갈며 혀를 찼다.
승은 또 무슨 사단이라도 낼까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다행히 그 정도로 화가 나진 않은 모양.
[까라면 까야지, 뭐.]난이도를 높이라면 높이고, 인원을 줄이라면 줄여야지.
윗분들이 시키는 대로.
하로나는 그리 생각했다.
망할 대상자 하나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고.
그런데 왜일까.
[……그런 것 치곤 꽤 신나 보이십니다, 하로나 님.]이 와중에도 기대가 되는 이유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되는 이유는.
[아닌데? 하나도 안 신나는데~?]* * *
“뭐, 뭐야? 하나도 안 보여!”
“정전인가 봐! 어떻게 좀 해 봐!”
“손전등 켜면 되잖…… 어, 어라?”
어째선지 모든 전등, 그러니까…….
터널 벽에 박혀 있는 조명이건, 사람들이 들고 온 손전등이건 간에, 모든 인공의 빛이 죄다 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극한의 어둠.
“왜 이렇게 깜깜해? 설마 입구도 막힌 거야?”
“꺅! 누가 내 발 밟았어!”
여기저기서 당황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메아리쳤다.
시야가 차단된 탓에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해진 걸까.
바스락!
사람들의 짜증 섞인 말이나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고.
스윽.
옆에 선 지은 씨와 스친 손등이 온기를 전했고.
사락!
붙잡힌 셔츠 자락에서 옅은 샴푸 냄새가 났다.
“으, 은호 씨! 거기 계시죠?!”
“네. 지금 지은 씨가 밟고 있는 발이 제 발입니다.”
“꺅! 죄송해요!”
옆에 선 지은 씨가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붙잡은 셔츠 자락을 놓진 않았지만.
어둠이 무서운 걸까.
왠지 손톱도 물어뜯고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순간.
딱!
예상했던 소리와 함께.
[방어진이 구성되었습니다.] [‘어둠길’을 무사히 돌파하세요!]소리로 된 이정표가 흘러나왔다.
“방어진이라면…… 함정이라도 있는 건가?”
“오, 오빠가 먼저 가!”
“뭐? 나도 무서운데…….”
한마디 한마디에서 당혹감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 사이로 근처에 있던 재혁이가 타이밍을 물어 왔다.
“형님! 지금입니까?”
‘불’을 사용할 타이밍을.
하지만.
“아직이야.”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불을 피웠다간 우리 위치만 들키고 말 테니.
그러니 일단 지금은 겁먹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정도로만.
“다들 지도 보이시죠?”
어두컴컴한 와중, 지도를 열자 희미한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원이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의 등대나 다름없는 녹광(綠光).
너무 약해서 평소에는 ‘빛’이라 인지조차 못 했지만, 지금은 한 줄기 희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도는…… 보, 보인다!”
“그러네! 진짜 보여!”
“안전 구역은 터널 끝에 있나 봐요!”
지도에서 가리키는 진짜 ‘안전 구역’은 터널의 반대쪽 끝.
어둠길, 즉 터널을 끝까지 통과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시야가 차단된 채로.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사람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씨, 발밑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저기까지 걸어가?”
“X나 길잖아!”
분노를 가장한 두려움을 잔뜩 쏘아 대면서.
「9:40」
남은 시간은 9분 40초.
생각을 가다듬고 있자니 똑똑한 솔아가 ‘아!’하며 뭔가 생각난 듯 물어 왔다.
“아저씨! 이 터널, 아까 1.3km라고 적혀 있었어요. 9분 안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죠?”
“맞아. 뛰어가면 충분할 거야.”
물론.
“……장애물이 없다는 가정하에.”
“네에? 장애물이요?”
장애물, 그러니까…….
– 난이도 : 중상(中上)~상상(上上). 방어진 구성에 따라 상이.
터널 속 어딘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방어진.’
파일철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야행성 마물이라고 했다.
시각이 차단된 생존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일 수 있도록.
하지만.
– 불과 연기 중 선택하여 피울 수 있으며, 최대 1시간까지 지속된다.
치명적인 핸디캡은 없애면 되고.
“출발합니다!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네! 은호 씨!”
“알겠습니다, 형님!”
장애물은 치우면 된다.
그렇게 몇 분을 뛰다시피 걸었을까.
저벅.
“무, 무슨 소리 안 나?”
“무슨 소리?”
저벅. 저벅.
절대적인 암흑 속, 예민해진 귓가에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터널 깊숙한 곳에서부터.
“!!”
놈들이다.
깜깜한 어둠으로 터널의 시야를 차단하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생존자들을 썰어 버리는…….
이번 미션의 ‘방어진.’
“다들 무기 들어요!”
“네?”
“아저씨! 왜요?!”
설명할 시간이 없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벌써 지척까지 다가온 놈들.
이 정도면.
“재혁아! 지금!”
“예!”
쿵!
재혁이가 여태 힘들게 이고 지고 온 짐을 땅에 내려놓았다.
소리만 들어도 눈에 보이는 듯한 움직임.
이어서.
후두두두두두둑!
배낭을 탈탈 털어 어젯밤 열심히 모은 나뭇가지를 쏟아 내는 동안.
“아아아아악!”
“누구야? 대체 무슨 일이야?!”
“하, 하나도 안 보여!”
보이지 않는 적에게 공격당한 이들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퍼졌다.
‘어떤 마물이지?’
푹! 채앵-!
‘뿔? 발톱? 아냐, 이 소리는…….’
“X발! 저 새끼들은 우리 보는 거 같은데?!”
“미친…… 어떻게 싸우란 소리야? 너무 불리하잖아!”
한쪽은 보이고, 한쪽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우위.
하지만.
“형님! 준비됐습니다! 이쪽이요!”
“잘했어. 소환!”
얌전히 당해 줄 순 없지.
[‘경봉수(京烽燧)의 횃불’을 활성화하시겠습니까?] [봉화(烽火)와 봉연(烽煙) 중 선택하세요!]“봉화(烽火)!”
묵직한 각목의 촉감을 느끼며 소리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꽃.
— 화르륵!
‘됐어!’
연기 없는 불이라니.
말도 안 되지만 다행이다 생각하며, 까슬한 나뭇가지 위로 마른 횃불 머리를 갖다 대자…….
타닥! 타닥! 화르륵-!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한 어둠 속.
발치에서부터, 작지만 시뻘건 불길이 타올랐다.
화아아아아아악!
곧이어 그 불꽃은 장작을 매개로 환한 빛을 만들며 모두의 시야를 밝히고.
“정신 차리고 무기 들어요! 빨리!”
“!!”
너울거리는 불길이 터널 천정에까지 닿을 듯 치솟았다.
그러자 삽시간에 불그스름하게 밝아진 시야.
터널 바닥이며 벽면에 내려앉은 수십의 그림자.
그리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듯, 터널 전체를 판막처럼 가로막고 선 불투명한 벽.
‘저게 방어진인가.’
불투명한 벽면이 불길 때문인지 붉은빛 장막처럼 너울거렸다.
그 앞을 수십의 적이 가로막고 서 있었고.
‘스물? 스물하나?’
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열감에 당황한 사람들은 물론, 막 달려들던 놈들까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기에 서둘러 소리쳤다.
“저놈들을 뚫고 벽 너머로 가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시야를 밝혀 줬으니, 눈앞의 적을 해치우라고.
우리가 살길을 함께 뚫어 내자고.
“마, 마물?!”
“헉! 보인다!”
“다들 무기 들어!”
그러자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꼬나드는 사람들.
점점 밝아지는 시야에 눈앞의 적을 또렷이 응시했다.
그나저나.
– 난이도 : 중상(中上)~상상(上上). 방어진 구성에 따라 상이.
방어진, 그러니까 상대할 적이 인간형 마물이었나.
제안서에는 분명 ‘어둠에 익숙한 야행성 짐승’이라 적혀 있었는데.
게다가.
‘갑옷에 투구까지?’
박쥐 따위의 마물 대신 얼굴이며 몸을 다 가린 병사들이 나타나다니.
뭐…… 상관은 없지만.
“우리 쪽 인원이 두 배입니다! 둘씩 붙어요!”
할 만하다.
기습과 장비 때문에 밀리고 있긴 하지만 숫자는 이쪽이 훨씬 우세한 상황.
아마 적응만 하면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을 거다.
‘어둠길’의 핵심 전략인 ‘어둠’을 몰아내 버렸으니.
타앗-!
검을 뽑아 들고 눈앞의 갑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눈앞의 마물이…….
“꺄아아아악!”
찢어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
급기야 양팔을 들어 머리를 감싸고는 벌벌 떨기까지.
‘……사람?’
머리를 다 덮은 투구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이놈.
아니…… 이 여자.
“이, 이은호 씨?!”
특히나 이 버릇은 분명…….
내가 아는 그 여자다.
“……어?”
당황한 지은 씨가 옆에서 멈칫하는 사이.
다가가 투구를 벗겨 냈다.
스륵!
벗겨진 투구.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긴 웨이브 머리.
겁먹은 듯 꼭 감은 눈.
“……어? 어어?!”
음…….
그러니까.
우리가 처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적이…….
“……이예지 씨?”
회계팀 이예지라고?
“이은호 씨……!”
랜덤 박스에서 운 좋게 검을 뽑아 놓고선 벌벌 떠느라 휘두르지도 못했던 이예지?
KTX에서 귀(鬼)에게 겨우 검을 박아 넣고도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던 그 이예지?
하아.
“……적 앞에서 눈 감지 말라니까.”
이걸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