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60
Chapter 13. 불청객(5)
유리나가 남긴 아이템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뭐가 많습니다, 형님!”
“그러게. 열심히 쟁여 놨나 봐.”
다른 사람들을 죽여 가며 모아 온 건지, 미션 보상으로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손에 들어왔으니 유용하게 써 줘야 예의겠지.
▣ 백사(白蛇)의 독낭(毒囊)
– 독사의 몸에서 뽑아낸 독주머니.
극독이 들어차 있으며, 흡수할 경우 1분 안에 전신에 퍼져 신진대사를 막고 장기가 굳는다.
– 사용 가능 횟수 : 10회
자그마한 주머니에 들어찬 까만 액체가 손에 쥐고 흔들 때마다 출렁거린다.
혹시라도 중독될까 싶어 슬쩍 입구를 열었다가 곧바로 닫았다.
아까 날 찔렀던 귀걸이에 넣어 뒀을 독극물이겠지.
1분이면 전신에 다 퍼진다는 극독.
당할 땐 몰랐지만, 내 손에 들어오니 든든하네.
‘마물에게도 통했으면 좋겠는데.’
“보관.”
일단 챙기고.
▣ 간편 위치 추적기
– 미래연구센터에서 만든 위치 추적기.
활성화시킬 경우 부착한 대상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단, 한 번 부착 시 회수 및 재사용이 불가능하니 주의할 것.
다음은 동그란 스티커였다. 어릴 때 멀미약 대신 귀 뒤에 붙였던 살색 스티커 모양이랄까.
위치 추적기를 쓸 일이 있으려나 싶긴 하지만, 이것도 일단 보관해 두고.
다음은.
▣ 정제된 수면 물약
– 음용할 경우, 1분 이내에 곧바로 잠든다. 지속 시간은 2시간.
– 부작용은 없으나 의존성이 높아, 과용하면 스스로 잠들 수 없게 될 수 있으니 주의.
마시면 1분 이내에 잠든다는 물약이었다.
액상형 수면제라고 봐야 하려나.
‘이건 유용해 보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아이템.
탄창도, 총탄을 장전할 곳도 없는 기묘한 모양의 총.
▣ 소에주 권총
– 소에주의 예민한 장인이 만든 수발식 권총.
화려한 장식물이 도금되어 있으며, 수사슴 뿔이 상감 되어 예술적 가치가 높다.
– 사용자의 정신력에 감응해 탄이 생성된다.
‘정신력에 감응해 탄을 생성한다고?’
그래서 탄환이 없는 거였나.
긴가민가한 마음에 직접 손에 쥐고, 사람들을 피해 방아쇠를 당기자.
— 타앙!
‘!!’
생각 외로 강한 반동에 상체가 흔들렸다.
동시에 총구에서 튀어나온 희미한 금색 빛.
눈을 찌푸리고 봐야 보일 정도로 희미한 광량(光量)에 위력마저 희미할까 싶었지만.
스윽.
다가가 살피자 움푹 파인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둥글게 박혀 들어간 보이지 않는 총알.
석화로 주먹질을 했을 때보다 약하거나 비슷한 정도의 파괴력이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
“형님! 이거… 총알이 없는데, 어떻게 총알이 나간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어느새 쪼르르 달려온 재혁이가 어리숙하게 물었다.
“총알을 자기가 만들어 내는 것 같아. 근데, 진짜 총보단 약할지도.”
“아… 그렇습니까?”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한 방에 죽지도 않겠어.”
하지만 점점 강해지겠지.
내 정신력에 감응한다고 했으니.
게다가 이 정도 위력을 원거리에서 쏘아 댄다고 생각하면…….
나도 무섭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을 잔뜩 얻어 버렸다.
‘X가 날 노려 준 덕분에.’
살해당할 위협을 넘긴 대가로 적의 목숨과 추가 보상을 얻은 거라고 봐야 할까.
하아.
이 상황에서도 죽은 자가 남기고 간 아이템의 효용 가치를 따져 대는 스스로가 우습다.
그러면서도 주섬주섬 총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있자니.
“저, 저기! 전 이제 풀어 주면 안 됩니까?”
눈치 보던 주방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은 씨의 검날을 내려다보며.
“전 진짜 저 여자가 그런 짓을 한 줄은 몰랐다고요! 믿어 주세요!”
“그럼 왜 거짓말을 한 거죠?”
“그쪽이 수상하다고, 나한테만 은밀히 할 얘기가 있으니 적당히 둘러대고 사람 없는 데로 가자고 해서…….”
흐음.
그 정도 말로 꼬드겨졌다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아니면서?
내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 판단인데.
그리 생각하고 눈을 가늘게 뜨자 주방장이 흠칫 떨었다.
육식동물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그래서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그 여자의 뭘 믿고?”
“그야 당연히… 예쁘니까……?”
“…얼굴이 예쁘니까, 폭탄 테러 같은 건 할 사람으로 안 보였다?”
하아, 살인마의 동료가 하기엔 너무 한심한 변명이다.
너무 한심해서 오히려 믿음이 갈 정도로.
“참관 미션. 무슨 기억을 내보냈죠?”
그래서 시험 삼아 툭 던졌다.
혹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 속 인물이라면.
그걸로 X의 동료인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겠지만, 어떤 인간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건 또 왜…….”
“말해요!”
“으악! 할게요! 말할게요!”
주방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하자 지은 씨가 찌릿 노려보며 단검을 바투 쥐었다.
그러자 흠칫 놀라며 서둘러 입을 여는 주방장.
“……방….”
“뭐라고?”
“…먹방… 했는데요.”
……뭐?
예상치 못한 답변에 모두의 얼굴에 당혹감이 비쳤다.
그러자 손수 시범까지 보여 가며 손을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요리해서 바로 먹는 거! 했는데 꽤 반응 좋던데요?”
요리에 먹방이라고?
확실히…….
‘있긴 있었어.’
솥 같은 프라이팬에 가득 찬 면발을 게걸스럽게 흡입하던 먹방이.
너무 평범한 일상이라 눈여겨보진 않았지만.
그러니까.
“어떤 요리였습니까?”
“로제 파스타요. 10인분.”
파스타.
맞네, 이 남자.
평범한 먹방으로 시작했다가, 갈수록 후원금에 미쳐서는 온갖 추태를 부렸지.
면발을 하늘로 날리고 난리를 치더니…… 그렇게 지저분하게 먹는 이가 설마 호텔 주방장이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일단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하지만… 저 여자랑 공범일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괜찮으시겠어요?”
담담한 내 말에 재혁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지은 씨도 걱정 어린 얼굴로 물어왔다.
하지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이놈을 공격해 봤자 실익이 딱히 없어 보이니까.
“증언을 해 주시죠.”
“무슨 증언이요?”
“저 여자가 절 죽이려 하고, 먼저 덤벼들었다는 증언.”
일단 써먹자.
곧 사람들이 몰려올 테니까.
* * *
기나긴 밤이었다.
누군가 날 죽이려 들었지만, 대신 내가 놈을 죽였다.
시스템이 시켜서는 아니었다. 순수한 의지였다. 놈도, 나도.
하지만.
“손이 떨리거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거나… 뭐 그렇진 않네요.”
괜찮은 걸까. 이렇게 무덤덤해도.
그런 생각에 머릿속의 말을 툭 내뱉자, 지은 씨가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에요. 은호 씨가 강한 사람이라.”
강아지처럼 처진 눈꼬리가 오늘따라 처연해 보이는 미소.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은호 씨.”
“네.”
“이런 세상이 되어서 악해진 걸까요, 아니면 원래 악한 사람들이었던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악한 사람은 용서할 순 없지만 이해할 순 있는 이유가 있으리라 굳게 믿던 사람인데.
그래서 조심조심 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원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거니까요, 사람은.”
“…그렇죠. 의미 없는 질문이었네요.”
지은 씨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조금 깨어났네, 지은 씨.’
모두의 마음이 본인 같지 않다는 걸 깨달아가는 모습에 좋아해야 할까, 안타까워해야 할까.
모르겠다.
그래서 말없이 어깨를 토닥이고 있자니.
“여! 청년들!”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AM 08:30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야외 광장은 하나둘 채비를 갖추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저, 그…… 괜찮지?”
“얼마나 걱정했나 몰라! 아이고, 세상에… 그 험한 일을 겪고….”
경비 아저씨가 머뭇거리며 우려 섞인 말을 건넸다. 청소 아주머니는 제 아들처럼 호들갑스럽게 걱정했고.
욕쟁이가 어젯밤 있었던 사건을 자기식대로 해석해 전달한 탓이다.
‘유리나가 테러리스트였고, 내가 목숨 걸고 그를 해치웠다’라고.
“저 사람……지?”
…물론 모두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어젯밤에 ……대.”
“멀쩡……. 어우, 너무 무섭… …아?”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태원에서 온 이들이었다.
만난 지 하루건 이틀이건, 그래도 유리나의 가면만 봐 온 이들이기에 믿기 어려웠을 거다.
그런 여자가 날 죽이려다 죽임당했다는 것보단, 내가 다른 의도를 갖고 애먼 사람을 죽였다는 쪽이 더 신빙성 있었겠지.
‘저것도 그나마 주방장이 증언해 줘서 넘어간 거지만.’
그나마의 역할을 해 줬다 싶어 어깨를 으쓱하고 있자니.
내 눈치를 보던 청소 아주머니가 등짝을 찰싹 때렸다.
“고생했으면 좀 더 자지! 왜 이리 일찍 일어났어?”
“하하… 괜찮습니다.”
“괜히 일찍 나와서 쓸데없는 소리나 듣고 말야. 에잉! 뭘 봐?!”
그러자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이들 몇몇이 움찔 놀라더니 시선을 피했다.
나쁘지 않네. 챙김 받는 기분.
AM 08:50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을 느끼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누군가는 멀쩡한 하늘을 보고 한숨 쉬고, 다른 누군가는 땅을 발로 차며 또 한숨 쉬면서.
평화로운 산속 풍경과 대비되는, 짜릿한 긴장감.
“누님! 오늘 미션은 뭘까요?”
“그러게? 적성 검사는 끝났는데.”
“하, X발. 입사 시험인지 뭔지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욕쟁이의 말대로다.
입사 시험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 단계가 남았을 뿐.
‘적성 검사 다음에 올 건 하나밖에 없지.’
그때, 산속을 가득 채운 긴장감 사이로 경쾌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용산구’ 지역 생존자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9시 정각, 프로젝트 ‘인성 검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인성 검사?”
적성 검사 후에 마땅히 와야 할 단계를 알리며.
[생존자분들께서는 9시까지 모두 지정된 구역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앗!
그리고 눈앞에 오랜만에 보는 지도가 떠올랐다.
시야 한쪽을 가득 채우는 반투명한 창.
녹색 안전 구역의 왼쪽은 산이랑 공원이, 오른쪽 절반은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곳이다.
“안전 구역이 하나밖에 없어요!”
대충 어딘지 알겠다.
용산구의 마지막 미션 장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안전 구역이… 너무 큰데요?”
“네?”
100m는 족히 넘는 지름.
여태까지 생겼던 안전 구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다.
하지만 용산구에 남은 생존자는 2백 명 남짓.
저 정도 크기라면 모든 생존자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거다.
그 말인즉슨.
‘이게 끝이 아니야.’
안전 구역에 들어가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
‘인성 검사 미션 중에 저 정도 공간이 필요한 건…….’
그거다!
“재혁아! 이것 좀 가져가 줘!”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물은 다 챙겼고.
일단.
“녹사평역입니다! 뛰어요!”
“네!”
뛰자.
* * *
“허억…….”
“다 왔어요!”
“저기! 안전 구역입니다!”
녹사평역 사거리에 도착했다.
화려한 이태원 거리로 들어가기 전, 있는 건 도로뿐인 초입.
“후… 다 모였나 봐요!”
“사람이 많습니다, 누님!”
지나는 차량 하나 없었지만, 그곳은 곳곳에서 모인 인파로 북적거렸다.
제 키보다 큰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
주변 이들의 무기와 능력을 파악하려는 듯 연신 두리번거리는 사람.
눈 밑이 퀭한 사람.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행동하는 사람.
……
“인성 검사라니… 다 모아 두고 뭘 하려는 걸까요?”
지은 씨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지만, 굳이 내가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용산구’ 지역 생존자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성격 급한 관리자님께서 곧장 시작해 주셨으니.
[지금부터 프로젝트 ‘인성 검사’를 위한 사전 미션을 시행하겠습니다.]이제 진짜 시작이다.
입사 시험의 마지막 관문.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진짜 ‘인성 검사’의 시작.
[경기장이 생성되었습니다.] [‘눈’을 개방합니다.]— 찌걱!
유리창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눈이 하늘을 뒤덮고.
【‘관리국 까마귀’가 반가운 친우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관리국 뱃사공’이 언제 또 친우가 됐냐며 헛웃음을 짓습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왠지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라며 입꼬리를 올립니다.】
‘눈’이 열리자마자 찾아온 참관자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이어서 들려온 안내 방송.
— 파앗!
[사전 미션은 대상자들의 인성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 조사입니다.] [대답하신 내용은 추후 진행될 미션의 사전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오니, 솔직하게 대답하세요!]“설문 조사라면…….”
한번 해 봤지.
지난번 모의 전투 미션 때.
“생매장?!”
“썅, 이거 또 대답하면 땅속에 파묻히고 그러는 거 아냐?”
욕쟁이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제안서를 미리 읽고 온 나조차도 이 설문 조사 후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었으니.
‘문항 자체는 평범할 거야.’
평범한 ‘인성 검사’처럼.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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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료를 짓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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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거.
[대상자 ‘이은호,’ 인성 평가를 시작합니다!] [솔직하게 대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