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59
Chapter 13. 불청객(4)
특별 보상으로 받은 ‘전능한 참관자의 눈.’ 그러니까 렌즈는 받자마자 착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끼고 있어야지. 누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실제로 쳐들어오기도 했고.
“아아……!”
“고마워, 학생! 진짜 고마워!”
특히 솔아가 사람들을 치유할 때.
한 명씩 나란히 앉아 가만 기다려 준 덕분에, 얼굴을 면면히 살펴볼 수 있었다.
모두의 체력이 100퍼센트까지 차는 것까지 확인했고.
그게 고작 몇 시간 전의 이야기.
그러니까.
‘체력이 깎일 일이 없단 소리지.’
용의자 다섯 중 체력이 깎여 있던 건 여자 둘이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미량이긴 했지만.
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이 냅다 얘기할 순 없었다.
그새 어디서 다쳤거나, 넘어졌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솔아에게 부탁한 거다.
타인의 상태 이상을 인지하고 치유하는 솔아에게.
‘치유 능력에만 집중했었는데.’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사람들 데리고 올라가 있어. 위험하니까.”
“알겠어요.”
활용할 여지가 많겠다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자니, 지켜보던 주방장이 버럭 소리쳤다.
“다, 당신! 숙녀한테 지금 무슨 짓입니까?”
“숙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 주방장, 아무래도 식재료나 봤지, 사람 보는 눈은 없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저러는 걸 보니.
“엉뚱한 사람 붙잡고 의심……!”
“움직이지 마세요!”
“으아악! 아, 알았어요!”
그리고 그사이, 눈치 빠른 지은 씨가 주방장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었다.
윽박지르다가 흠칫 놀라며 날을 내려다보는 놈.
“저…… 전 모르는 일입니다. 말로 해요, 예?”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 꼭 옛날 재혁이 같다.
혹여나 찔리기라도 할까 봐 마음 편히 떨지도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잔뜩 쫄아 있는 저 모습이 연기라면 주방장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저놈은 나중에 상대하기로 하고.
“그럼…… 테러리스트 유리나 씨?”
메인 빌런부터.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몰라! 폭탄이고 뭐고 모른다고!”
유리나가 벽에 얼굴 반절이 짓눌린 채로 외쳤다.
중독 상태였던 걸 들켰음에도 누구보다 당당하게 외치는 게 대단하다 싶다.
“저 여자애랑 짜고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잖아! 그쪽 말을 어떻게 믿어?”
당황스러운 목소리.
울기라도 할 것처럼 억울한 표정.
정말 누명이라도 쓴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믿어 달란 말, 안 했는데?”
저런 표정쯤은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겠지.
평범한 세상에서도 정체를 숨긴 채 살아온 살인마라면 더더욱.
콰득!
얇디얇은 손목을 꺾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손목을 비틀어서, 나뭇가지 꺾듯이.
시작부터 부러뜨려 혹시라도 있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나.
‘응?’
생각처럼 되진 않았다.
“꺅!”
연약하기 그지없는 비명에 비해 쇳덩이처럼 단단한 손목.
나뭇가지를 상상했으나 그보다 단단한 고목에 가까운 강도였다.
“방어력을 꽤 올렸나 보네.”
“이거 놔, 이 변태 자식아! 아프다고!”
유리나가 가스 테러의 범인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가지.
첫째, 유리나와 X가 동일 인물인가.
둘째, 단독 범행인가.
“귀걸이 눌리잖아! 이거라도 빼 줘! 귀 찢어질 거 같아!”
유리나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여차하면 박치기라도 해서 빠져나가려는 모양.
그래서 왼손으로 양 손목을, 오른팔을 들어 목덜미를 벽에 밀며 압박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죠. X, 맞습니까?”
“악! 그게 뭔데! 아프니까 그만 밀어!”
차가운 건물 내벽에 얼굴을 처박은 유리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누가 보면 내 쪽이 악당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광경.
하지만.
“정말 모릅니까?”
“내가 그런 걸 알아야 돼?!”
“아셔야죠. 후원금 리스트 2위로 끝났으니까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고.
X는.
“미션 끝나고, 결과 창이 떠올랐잖습니까. 바로 눈앞에.”
“!!”
“게다가 하늘에서 그렇게 축포를 터뜨려 댔는데, 설마 그것도 못 봤다고 하실 건 아니죠?”
유리나가 입을 닫았다.
콧잔등을 찡그리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게, 아차 싶은 표정이다.
더 들을 것도 없겠네.
자, 그럼.
‘유리나가 X라고 보고.’
남은 건 단독 범행이냐는 건데.
“나, 난 아무것도 몰라! 저 여자가 시키는 대로 얘기한 거야!”
저놈은 살인마의 동료라기엔 너무 없어 보이긴 하지만, 혹시 모른다.
근처에 다른 일행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면.
‘혼자 공격해 오면 단독 범행. 누군갈 기다리는 눈치면 공범이 있는 거야.’
혹여라도 숨어 있는 동료가 있다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니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럼, 잠깐 놀아 줘 볼까.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있고.
‘보자, 총이 어디 있을 텐데…….’
X가 기억 속에서 쓰던 총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면, 분명 어딘가에 숨겨 뒀을 거다.
시스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물건은 ‘아이템’으로 인정받지 못해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유리나는 얇은 티셔츠에 핫팬츠 차림.
몸 어딘가에 숨긴 건 아닌 모양새다.
‘어딨지? 두고 왔을 리는 없는데.’
그렇게 말없이 총의 행방을 찾고 있자니.
“아아-.”
유리나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더니 느릿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도톰한 입술을 열어.
“들켰네.”
한마디를 속삭이듯 흘렸다.
방금 전까지 비명이나 질러 대던 여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 있는 말투.
기묘한 간극에 나도 모르게 오싹함마저 느낀 순간.
스륵!
유리나가 고개를 흔들어 머리칼을 어깨 너머로 넘기더니.
달칵!
볼펜 누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귀걸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놈을 압박하고 있던 오른팔, 바로 위에서.
유리나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고 있던 커다란 링 귀걸이.
저 정도 크기를 굳이 달고 다녀야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저것도 무기였나.
“석화.”
……중요한 건 아니지만.
“후후, 독성이야. 1분이면 온몸에 퍼질걸?”
기습적으로 찔러 들어온 독침. 그리고 보나 마나 주지도 않을 거면서 장난칠 해독제.
뻔한 이야기였다.
누가 봐도 두 번째 사망 플래그.
하지만.
콰득!
단단하게 굳어 가는 뼈와 근육과 피부의 감각이 느껴진다.
불순물 따윈 파고들 수 없다는 듯 저들끼리 뭉쳐 버린 느낌.
그리고…….
툭!
독침이 팔뚝에 꽂히다 말고 툭 부러지더니 튕겨 나갔다.
여태 노렸을 회심의 공격이.
“뭐, 뭐야?! 이게 갑자기 왜……!”
“이런 바늘로 상대하려고 했다면 실망인데.”
“……!”
유리나가 이를 악물더니 머리를 홱 뒤로 꺾었다.
기습으로 틈을 만들려는 건가.
그래서 홱! 뒤통수를 피해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피했다.
그러자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오히려 비집고 들어오는 놈.
‘빨라!’
엄청난 속도. 몸을 유연하게, 하지만 강하게 놀리는 체술.
확실히 일반인은 아니다.
이거…….
‘순수한 몸싸움으론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마른 몸에 비해 힘도 상당하다. 내가 스킬 성장에 집중하느라 기본 스탯에 소홀하긴 한 모양.
이 상황에서 전문가에게 전문 분야로 덤비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러니까.
‘흐름을 바꿔야 해.’
* * *
‘됐다!’
유리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앞의 이놈, 이은호.
두뇌파일 거로 생각했는데, 신체 단련도 꽤 한 모양이다.
독침이 통하지 않아 당황했지만, 그럴 수 있다. 방어력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면.
하지만, 두고 보자고.
‘이마에 총알이 박히고도 웃을 수 있을지.’
─ 타앗!
놈이 방심한 틈을 타 몸을 빼냈다.
됐다.
이제 최대한 거리를 벌린 뒤, 총을 소환해 쏴 버리면 그만.
독침이 안 통한 걸로 봐서 방어력이 보통이 아닌 듯하지만…… 괜찮다.
‘한방으로 안 죽으면 두 방. 그래도 안 되면 계속 쏘면 돼.’
죽을 때까지 쏴 버리자.
죽어서 몸에 남은 피를 모두 쏟아 내고 벌레처럼 꿈틀거릴 때까지.
그래서 ‘렌즈’를 내놓을 때까지.
‘이놈 정도면 렌즈 말고도 쓸 만한 아이템이 많을 거야.’
지금껏 만났든 멍청한 놈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똑똑해 보이니까.
기껏 숨겨 온 정체를 들켜 버린 게 아쉽긴 하지만…….
‘다 처리하고 뜨자.’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저 위에 있는 사람들, 다 너 때문에 죽는 거야.”
“뭐?”
“그러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할 때 죽었어야지.”
“…….”
이은호는 말이 없었다.
뭔가에 집중하는 듯한 표정.
똑똑한 놈들은 제 마지막도 직감하는 건가.
우습네.
어쨌든, 이제 애들 장난은 끝이다.
“소환!”
* * *
“그러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할 때 죽었어야지.”
“…….”
이미 이긴 듯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유리나가 오른손을 꿈틀거렸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는 모습.
아까부터 이마에 와닿는 놈의 시선.
나 외의 사람들까지 과녁판처럼 훑는 눈길.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내 눈엔 보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기에.
‘지금이다.’
X의 영상을 본 뒤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맨몸으로 총을 상대하는 방법.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팔다리에 총알을 막아줄 쇳덩이를 덧대고, 헤드 샷을 피할 수 있도록 투구를 쓰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빈틈은 있었다.
온몸을 철갑으로 두를 순 없는 노릇이니.
아니, 만약 가능하다 해도 그 모습을 본 X가 바보가 아닌 이상 총을 빼 들지 않을 테고 말이다.
‘애꿎은 주변인들만 죽어 나가겠지.’
그래서 내린 결론은.
‘쏘기 전에 처리하자.’
몸속에 숨겨 둔 거라면 팔을 잘라 버리고.
인벤토리에 보관해 둔 거라면 소환하자마자 빼앗는다.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최선의 방어니까.
그래서 유리나가 ‘소환’을 내뱉으려는 순간.
도톰한 입술이 동그란 모양을 하며 모인 바로 그 순간.
“소…….”
“가속!”
“화아아아아아아…….”
유리나의 얇고 긴 손가락 사이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냈다.
물방울이 둥둥 뜬 것처럼 빛을 왜곡시키더니, 이내 반사했다.
선명한 다갈색을 점차로 드러내면서.
아무것도 없던 공기가 한 데 뭉치고, 색을 더하고, 마침내 묵직한 질량까지 얻었을 때.
탁-!
빼앗았다.
팔뚝만 한 길이의 얇고 긴 총을.
‘음?’
권총보단 길고, 소총보단 훨씬 짧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
탄창도, 총탄을 장전할 실린더도 없이 화려한 장식만 잔뜩 새겨져 있는 총을 잠시 살핀 뒤.
“보관.”
고이 넣어 뒀다.
‘당연히 현대식 총일 줄 알았는데.’
하긴, 총을 인벤토리에서 꺼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나.
어쨌든 지금은.
“소환.”
손에 착 달라붙는 검을 집어 들고.
“주우우우우우우욱어어어어-!”
째깍-!
다시 제시간의 축에 자리한 뒤.
“……어, 어?”
벙쪄서는 아무것도 없는 맨손을 폈다 접었다 하는 여자에게 말했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 나 때문에 죽는 거라고 했지?”
“……?!”
“넌 너 때문에 죽는 거야.”
─ 타앗!
자리를 박차 오르며.
“설마 내 총…… 네가……?”
“잘 가라.”
“잠ㄲ……!”
─ 푸욱!
바로 찔러 넣었다.
뒷말을 기다리지 않고.
악당 대사를 끝까지 들어 주다가 뒤통수 맞는 그런 전개는 사양이니까.
칼날 부리 검이 X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말라서인지 꼬챙이 꿰듯 꿰뚫고 나온 검 끝.
쿨럭!
X가 울컥 피를 토했다.
이어서 점점 빛을 잃어 가는 텅 빈 눈이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보나 싶더니.
풀썩!
몸이 축 늘어짐과 동시에 흘러나온 메시지와.
[대상자 ‘유리나’를 처치하였습니다!]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정체 모를 아이템들을 내려다보며…….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