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79
Chapter 18. 보물(4)
우웅-!
돌아온 파천검이 울었다.
검 끝부터 칼자루까지 온통 흑 빛 일색(一色)에, 건드리기만 해도 큰일 날 듯 불온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신.
그런 주제에 종잇장처럼 날카로운 검날은 우웅- 하며 울 때마다 오색빛깔로 반짝거렸다.
찬란하고 화려하며 따스한 빛이다.
꼭 검의 살기에 뒷걸음질 치는 이를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스윽!
빛나는 검신을 가볍게 훑었다.
분명 경기장을 깨트리는 동안 무리한 공격에 날이 무뎌져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쇠붙이를 피로 녹여 세월로 굳힌 그릇에 경이로운 칭호가 깃들었습니다.] [파쇄검(破碎劍)이 새로운 주인의 의지를 받아들입니다!] [화염파쇄검(火焰破碎劍)이 화염파천검(火焰破天劍)으로 진화합니다!]알을 깨고 나왔기 때문이겠지.
▣ 화염파천검(火焰破天劍)
– 이름 모를 대장장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하늘을 깨트린 자’가 숨겨진 혼을 깨운 검.
절대 파쇄할 수 없는 대상을 깨트림으로써 본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사용 시 공격력이 +20, 치명타 확률이 +1% 증가한다.
단, 스스로 선택한 주인이 아니면 거부할 수 있으니 주의.
– 전용 스킬 : 화염방출(Lv.1)
화염룡에게서 얻은 보주를 장착해 한 차례, 그리고 ‘하늘을 깨트린 자’의 칭호를 대신 담아 준 덕에 한 차례 더 진화한 검.
정신없는 와중이라 설명창을 진득하게 살핀 건 처음인데.
‘스스로 선택한 주인’이 아니면 거부한다니.
자격이 없는 사람의 손에선 놀아나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그래서 다친 거야?”
“이건 또 언제 봤대?”
연보라가 붕대를 감은 손바닥을 등 뒤로 감췄다.
불에 데기라도 한 모양이다.
내 검을 멋대로 훔쳐 가서 건드린 죄로.
“어? 근데 그 검, 뭔가 날카로워진 것 같은데…….”
“주인을 알아보거든.”
어쨌든 무사히 되찾아 다행이라 생각하는 찰나.
─ 쾅!
포탄이 또 떨어졌다.
이번엔 아까보다 가까운 흙벽이 무너져 내린다.
“꺅!”
“언니……!”
연보라는 저만 쳐다보는 이들을 잠시 응시하더니, 말없이 준비를 했다.
“칼 돌려줬으니까 시간 좀 벌어 주세요. 부탁…….”
“검풍.”
─ 쌔애액! 스걱!
“?!”
“이렇게?”
“어…… 네. 그렇게요!”
그래서 내가 사격하듯 날아든 포탄의 파편을 요격하는 동안.
또 흙더미를 불러오려는 건가 했는데.
“소환.”
양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펼치더니 중얼거렸다.
숨겨 둔 아이템이 또 있었나.
스륵!
반투명한 물체가 점점 색감을 더해 갔다.
노랗고 빨간빛을 더해 가는 무언가.
연보라의 품속에 안긴 채로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건.
“악기?”
통기타나 우쿨렐레 따위의 현악기를 연상시키는 물방울 모양의 악기였다.
크기는 약 70cm 정도일까.
흔히 보는 현대식 악기보다 목이 두껍고 두께가 얇다.
옛날 무협 영화에나 나올 법한 모양새.
“……후.”
악기를 양손으로 껴안은 연보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떨리는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손가락을 튕기자.
♬- ♪-
음이 흘러나온다.
기타나 바이올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쨍한 소리.
♩♬- ♪-
고저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음율이다.
하지만 팽팽하게 튀어 오르는 현(絃)과 머릿속을 파고드는 음율에 눈도, 귀도 뗄 수가 없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음폭이 귀가 아닌 피부로 스며드는 느낌.
“이건…….”
연보라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줄을 튕길 때마다 공간이 함께 튀었다.
팽팽하게, 느슨하게.
경쾌하게, 묵직하게.
그 혼을 빼놓는 듯한 선율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 쾅!
흙벽을 단숨에 뛰어넘은 포탄 하나가 머리 위에서 날아들었다.
겁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연보라의 정수리를 똑바로 노린 듯한 깔끔한 포물선.
약 2m가 될까 말까 한 지름의 포탄.
‘벨까?’
예전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쇳덩이를 자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이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피 맛이든 쇠 맛이든 보고 싶어 웅웅 대는 파천검 때문이겠지.
비현실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우습다 생각하며, 달려가 저 탐스러운 쇳덩이를 갈가리 베어 내려 나서는 순간.
“위험……!”
“기다려!”
탁!
똥머리 여자가 어깨를 붙잡았다.
“건드리지 마. 보라가 알아서 할 거야.”
알아서 하다니. 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는데 뭘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건가.
친구가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워지려는 찰나.
포탄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머리를 들이박음과 동시에.
‘!!’
귀를 찢으며 울려 퍼지는 폭음(爆音).
콰───앙!
포탄이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깨어졌다.
콰드득- 푸확!
안에 든 화약인지 산탄인지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수백, 수천의 조각으로 퍼져 나가는 폭약.
그리고 마침내.
파스스스슷!
포탄이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아무것도 격추시키지 못한 채 혼자서.
“방어막…….”
흙벽이 아니었다.
방어막을 만드는 능력.
이게 바로 연보라의 진짜 능력이자,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경이로운 능력에 감탄사를 흘리려는 순간.
♩♬- ♪-
강물처럼 흐르던 선율이 끊어졌다.
그리고.
“콜록!”
기침을 내뱉은 연보라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입가를 슥 닦아 냈다.
이미 붉은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 손수건을 뒤적거리더니 깨끗한 부분을 찾아서.
“피……?”
갑자기 피를 토한다고?
포탄도, 포탄의 파편조차 방어막에 막혀 날아온 게 없는데?
이상하다.
연보라의 머리 위에 뜬 체력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기둥에 박은 뒤로 쭉.
「90.5%」
「91.5%」
「92.5%」
「93.5%」
……
분명 연주를 하면 할수록 체력이 차는 걸 확인했는데…….
“왜 저러는 거지?”
연보라의 친구들은 답이 없었다.
‘뭐지? 뭔가…….’
말없이 고개를 푹 떨군 남자.
기둥이 부딪치기만 해도 안절부절못하던 친구들.
이상할 정도로 낮은 체력과 연주할수록 증가하는 체력.
그러니까…….
‘증가한 거…… 맞나?’
♩♬-!
탁!
순간적으로 연보라의 손목을 잡아챘다.
끊어진 음악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이거 놔요! 무슨 짓이에요?”
연보라가 발톱 세운 고양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나도.
“알고 하는 거야, 모르고 하는 거야?”
“뭘요!”
“체력! 줄잖아!”
버럭 소리쳤다.
깨달아 버렸으니까.
「90.5%」
「91.5%」
「92.5%」
「93.5%」
……
연주를 하면 할수록 체력이 증가하는 게 아니라, 최대 체력이 줄고 있는 거란 사실을.
그러자 흠칫 놀라는 연보라.
“……조용히 해요.”
여자가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
“……알고 있었나 보네.”
이 방어막이 제 생명을 깎아 가며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있단다.
알면서도 계속 만들어 냈단 소리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악기를 잡아 쥐자 눈앞에 반투명한 설명창이 떴다.
▣ 지국천왕(持國天王)의 비파(琵琶)
– 지국천왕(持國天王)의 유지가 깃든 현대식 비파(琵琶).
연주자 주변에 공격을 막아 내는 방어막을 생성하며, 방어막의 크기와 강도는 반비례한다.
– 단, 자격이 없는 자가 사용할 경우, 연주자 자신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하아.
대놓고 적혀 있네.
자격이 없는 자가 사용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너 이러다간 죽어.”
“알아요.”
“아는 거 맞아?”
연보라가 시선을 피했다.
“길 가다 넘어져도 죽고, 고양이가 할퀴어도 죽고,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도 죽어. 근데 계속 연주하겠다고?”
이해할 수 없다.
죽어 가면서까지 써야 할 정도의 아이템인가, 이게?
눈앞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래의 확실한 불행을 감소한다고?
아니, 그렇다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매한가지.
“다른 애들은? 번갈아 쓰면 되잖아.”
사용할 때마다 페널티가 있다면, 방어막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연주하면 될 일 아닌가.
이 안에 있는 인원만 열다섯이 족히 넘는데.
그러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연보라.
“내가 하겠다고 한 거예요. 나 때문에 싸우는 거니까.”
“너 때문에 싸우는 거라고?”
“저 새끼들, 나 죽이려고 쳐들어오는 거란 말이에요.”
뭔가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다.
아까부터 연보라만 죽어라 찾아 대고 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다만 내가 굳이 끼어들 스토리는 아닌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았는데.
“……인성 검사 때 우리 애들이랑 붙었어요.”
연보라가 꾹 다문 입을 열었다.
“인성 검사?”
“악몽 미션이요.”
몽마의 환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이 죄다 괴물로 보이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미션.
우린 몽마를 모두 잡아 버리고 겨우 빠져나왔었다.
내가 ‘명령 불복종’ 칭호로 몽마의 말을 알아들었고.
지은 씨가 높은 정신력으로 몽마와 사람을 구분했으며.
방비의 영약을 나눠 마신 덕분에.
하지만 셋 중 어느 하나도 없었던 이들은…….
어떻게 빠져나왔지?
“그때…… 너무 무서워서…….”
연보라가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벽을…… 쳤어요. 우리 쪽으로 올까 봐.”
사방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혀 있는 경기장.
그 안에서 저들만 살겠다고 벽을 세워 경기장을 갈랐다는 소리다.
몽마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그래서 이들이 손수 만든 안전 구역에서 벌벌 떠는 동안, 벽 너머에서는 살육전이 펼쳐진 모양이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몽마들과 갇힌 채로 서로 죽고 죽이며.
그래서 지금 상황을 해석하자면.
“너랑 네 일행들을 살리려고 벽을 쳤다 이거지? 나머지 사람들이 몽마에게 당할 동안.”
“……맞아요.”
저만 살겠다고 남들을 버린 냉혈한.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그중에 살아남은 놈들이 널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거야?”
“네. 가두지만 않았어도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죽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대신 살아남은 살육의 방관자.
그리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나였다면?’
내가 특성도, 아이템도, 지은 씨 같은 동료도 없었다면.
그랬다면 다 같이 마구잡이로 싸우자고 대책 없이 나섰을까?
나를 방어할 수단이 있어도 쓰지 않고?
……안 그랬겠지. 절대.
“그리고 넌 그걸 책임지겠다고 방어막을 만들고 있는 거고? 네 덕에 살아남은 친구들은 가만히 있는데?”
“…….”
연보라가 후회스러운 것도, 분한 것도 같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하아.
까칠한 고양이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순 맹탕이었네.’
쾅-!
“아무튼 그쪽은 신경 꺼요! 내가 다 책임질 거니까!”
또다시 날아드는 포성(砲聲)을 들은 연보라가 악에 받친 얼굴로 말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음을 말해 주고 있음에도.
스윽.
연보라가 제 몸보다 큰 비파(琵琶)를 다시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
“보라야…….”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려 주길 바라는 것처럼 연보라의 손은 느릿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아무도, 그 누구도 말려 주지 않았다.
대신 연보라에게 쏟아지는 조심스러운 시선과 머뭇거림.
괜찮겠지. 곧 사라질 사람이니까. 굳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되겠지. 조금쯤 막대해도 상관없겠지…….
회사를 옮겨 다닐 때마다 느꼈던 익숙한 눈빛이다.
그래서, 그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벅.
나도 모르게 나서 버렸다.
멍청한 연보라도.
방관하는 약해 빠진 놈들도.
갓 스물이 된 대학생들을 이런 상황까지 몰아간 이 세계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마음은 알겠는데.”
탁!
연보라의 비파를 빼앗아 들었다.
저항은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마음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임도 강해야 지는 거야.”
“……!”
“네가 하는 건 자살이고.”
빠직!
머리 위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깨어졌다.
콰앙-!
이내 방어막의 잔해를 뚫고 떨어지는 포탄.
그래서 종잇장처럼 얇은 손목을 이끌어 저 멀리 보내 버린 뒤.
“왜, 왜 이러…….”
“가속.”
“느으으으으으으으은…….”
떨어지는 포탄마저 느릿해진 시간 속에 홀로 섰다.
그리고.
스걱! 스걱-!
온갖 화약을 품은 쇳덩이를 껍데기 벗기든 조심스레 베어 내고는.
석화로 강화한 손으로 고이 모아서…….
후두두두둑!
흙벽 밖으로 되레 던져 버렸다.
“검풍!”
[화염방출(Lv.1)을 사용합니다!]칼바람에 불씨까지 얹어서.
째깍!
“……에에에에예요? 어, 어어?!”
제 속도를 되찾은 연보라가 순식간에 바뀐 시야에 휘청거리는 것과 동시에.
쿠과과과과과광-!
하늘에서 포탄이 터졌다.
말했잖아. 꽤 강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