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s your manaton? RAW novel - Chapter 122
122. 꼬물이의 가출
꼬물이가 바닥에 쓴 것은 커다란 물음표였다.
세 개의 뿌리로 동시에 그려서 금세 완성한 물음표 위에 가장 긴 뿌리를 올리고는 톡톡 두드리는 꼬물이었다.
“글쎄?”
평상시에 이렇게 겁이 많은 녀석이 아닌데 나호는 이 골목에 오면 유난히 겁이 냈다.
꾸루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또? 또? 또?
꼬물이가 대기실 바닥에 글을 쓰더니 뿌리 하나를 대기실 입구에 가져다 댔다.
꼬물이의 뿌리는 대기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 뿌리가 있는 곳이 한계치였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 노크를 하듯이 톡톡 두드리며 뿌리 하나만 내보내달라고 하고 있었다.
바로 좋다고 허락을 해주고 싶지만 꼬물이에게서 나는 냄새가 걸렸다.
그런데도 계속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꼬물이었다.
“나와도 좋아.”
허락을 하자 꼬물이의 하얀 뿌리가 밖으로 나왔다.
꼬물거리는 뿌리는 땅위로 막 돋아난 덩굴손 같았다.
무언가를 감아야 안정을 찾을 것처럼 움직이는 여린 덩굴손!
지금 꼬물이의 뿌리가 딱 그랬다.
탐험을 마친 꼬물이가 대기실의 입구를 바닥으로 내려달라는 몸짓을 했다.
원하는 대로 대기실의 입구를 바닥으로 옮기니 그 상태에서 앞으로 전진하는 꼬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몇 센티미터 움직였을 뿐이었다.
조금만 더!
신주쿠 뒷골목 작은 공원 바닥에 새겨진 한글이었다.
조금만 더!
다른 존재도 아닌 식물이 새긴 한글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글귀였다.
“그래 조금만 더 가보자.”
대기실의 입구를 조금 더 앞으로 옮겼다.
단 한 걸음이었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걸음이었다.
대기실 입구를 옮기고 난 후 우리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꼬물이가 너무 의외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꼬물이가 자신의 뿌리를 공원 바닥에 박기 시작했던 것이다.
“꼬물아! 왜 그래?”
꼬물이가 대기실에 뿌리를 내렸을 때 반반이도 꼬물이를 꺼내지 못했었다.
밟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작고 여린 식물이었지만 그만큼 엄청난 힘을 자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꼬물이가 신주쿠의 뒷골목 작은 공원에 자신의 뿌리를 박아 넣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꼬물이가 이곳에 있겠다고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시스템마저도 막지 못할 것이다.
“나도 모르지.”
대기실에서 몸 전체를 꺼내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었다.
이건 누가 보든지 꼬물이의 가출이었다.
조금만 더!
우리의 맘을 알았는지 다른 뿌리 하나로 바닥에 다시 글을 쓰는 꼬물이었다.
더 뿌리를 박아 넣겠다는 것인지 조금만 이곳 흙을 느껴보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꼬물이의 몸은 대기실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뿌리를 땅으로 넣고 있는 모습은 처절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혹시 냄새로 상처를 입었나 싶기도 했다.
쭈루!
르루!
꿀꿀꿀!
소환수들도 우울한 소리를 내며 걱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꼬물이는 이런 주위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땀이 뚝뚝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드러난 뿌리에 물기가 올라있었다.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였다.
그런 꼬물이가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꼬물아!”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만질 수도 없는데 잠시 부르르 떨던 꼬물이가 안정을 찾았다.
뿌리 표면에 돌던 물기도 사라지고 하얗게 질렸던 것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뒤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돌려 감기를 하는 것처럼 박아 넣었던 뿌리를 빼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휴우우! 이 녀석! 걱정했잖아!”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꼬물이는 내 말에는 신경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공부하지 않는다고 나호에게 잔소리를 듣던 쪼롱이를 보는 것 같았다.
ㄴㄲㅇ
ㄴㄲㅇ
ㄴㄲㅇ
이미 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뿌리가 바닥에 반복해서 쓴 글씨였다.
그러더니 나오는 족족 같은 글씨는 쓰는 꼬물이었다.
이제 가장 긴 뿌리만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꼬물이 주위에는 한글의 초성이 새겨지고 있었다.
ㄴㄲㅇ
ㄴㄲㅇ
ㄴㄲㅇ
이게 한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꼬물이 주위로 가득해서 마치 미스터리 서클을 보는 것 같았다.
“모르지. 보물이라도 발견했을지.”
“여기에? 보물?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퐁!
단단하게 박혔던 뿌리를 꺼냈을 때 이런 소리가 났던 것 같다.
그런데 꺼내진 것은 하얀 뿌리만이 아니었다.
“어?”
쫑?
꼬물이의 가장 긴 뿌리 끝부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들려있었다.
반짝!
희미한 가로등에 노랗게 빛나는 것은 분명 노란 실반지였다.
아무 무늬가 없는 실반지였는데 두께는 그래도 제법 되었다.
여자가 끼었던 것이 아니라 남자가 끼었을 것 같은 두께와 모양이었다.
반지가 드러나자 꼬물이는 반지를 뒤로 돌렸다.
마치 아이가 좋은 장난감을 등 뒤로 감추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ㅈㅁ?
“정말이야. 아무도 안 뺏어. 원하면 더 좋은 것도 줄 수 있어.”
ㅈㅁ? ㅈㅁ? ㅈㅁ? ㄴㅈㄲㅇ?
“그래 정말, 정말 너 줄게.”
정말? 나줄꼬야?
“네가 발견했으니 네 거야.”
꼬물이가 실반지를 단단히 붙들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모르지. 이제 들어가자. 꼬물아!”
꼬물!
꼬물이가 냉큼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올 때는 힘겨웠지만 들어갈 때는 누구보다 쉽게 들어가는 꼬물이었다.
대기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부분의 힘만 풀면 자동으로 대기실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대기실에 돌아간 꼬물이는 정말 소중한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실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사이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본 후 어두운 골목을 벗어났다.
그제야 나호가 안심을 하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지 않아도 돼. 초기의 혼란은 줄여주는 것이니까.”
이곳 과수 던전도 대변혁의 날 엄청난 피해를 만들어 낸 던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던전을 정리되고 난 후에는 이곳 던전보다 풍요로운 던전은 없었다.
안쪽에 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과일을 철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농사를 짓든 풍작이었다.
무슨 나뭇가지든 꺾어다 이 던전에 꽂기만 하면 과일이 열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풍요를 선물해주던 던전이었다.
일본 놈들은 이 던전을 신이 자신들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했었다.
던전이 넓었다면 일본을 다 먹여 살리고도 남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 던전은 화순 던전 넓이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던전의 크기를 대중소로 나눈다면 중에 속했지만 중간급에 속한 던전 중에서는 좁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워낙 농사가 잘 돼서 대형 던전에서 나는 농산물에 버금가는 수확물을 거둘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풍요의 신이 자신들에게 허락했다고 떠들던 던전은 더 이상 일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던전은 한국으로 옮겨가서 우리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터전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 던전을 어떻게 활용하면 가장 좋을지 온갖 구상이 떠올랐다.
초반에 클리어만 잘 해주면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의 보금자리로도 좋을 것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재해가 거의 없으니 어르신과 아이들이 살기도 그만이었다.
특히 각성을 하지 못한 일반인들이 농사를 짓고 나무를 돌보며 살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이런 던전에 아이들이 뛰어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생길 던전들을 미리 다 클리어 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
대변혁의 날만 깜짝 등장했다가 피해만 양산하고 사라진 던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던전들을 클리어 했다면 상시 던전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변혁의 날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후의 1회성 던전은 클리어하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피해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한 거야. 초반에 피해를 줄이기만 해도 다른 나라와 엄청난 격차를 벌리게 될 거잖아.”
“은근 위험한 발상을 하네.”
나호의 말은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우리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던전을 찾아다녔다.
전생에 도쿄에만도 적지 않은 던전이 있었는데 더 이상의 던전과 던전 덩굴은 발견할 수 없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집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첫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월평리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왔다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마을이 주는 느낌이 또 달라진 것 같았다.
나호가 가리킨 곳은 회사 앞의 논이었다.
논두렁을 만약고 어르신이 거닐고 계셨다.
그 뒤로 아이들 몇이 졸졸 따르고 있었다.
새끼오리를 데리고 물가로 이동하는 어미오리를 보는 것 같았다.
“이사 오셨다고 하더니 논에 나가계시네.”
만약고 어르신을 모시고 오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취업이었다.
자식들을 취업시켜준다고 하자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어르신이 바로 이사를 결정했단다.
죽기 전에 자식들 제대로 자리 잡는 거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는데 어르신은 분명 병을 이겨내실 것이다.
“아직 마나가 깃들지 않았잖아.”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은 우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더라. 만약고도 그랬는지 모르지.”
전생에 어떻게 해서 만약고가 미우라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이라는 이름이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물건이고 실제로 위대한 일을 해낸 물건이었다.
이제 그 물건이 우리 손에서 더 많은 일들을 해낼 것이다.
어르신을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음식냄새가 가득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올 걸 아셨어요?”
“알았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너는 기억을 하니 듣고 싶기도 했고.”
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했다.
물론 속까지 평온할 리는 없지만 말이다.
이번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총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성격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혹시라도 자책하지 마세요. 독도도 있고 아버지 마나통도 제가 확보했으니까요.”
“네가?”
“예.”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니 다행이네. 이거 아들 신세를 지게 돼서···. 미안하다. 대한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비세계에서도 기억의 공백이 존재하는 것 같았거든요.”
“기억의 공백?”
도깨비 마을
123.도깨비 마을
“예. 다음 회차로 이동을 하면 이전 회차에서 있었던 일이나 알았던 정보를 모두 기억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마 정신적인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환이 되면 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된다.
죽음도 반복해서 겪게 되고···.
이런 일들을 모두 기억하면서 멀쩡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비세계에서 잘 살아갔다.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바로 기억의 공백이었다.
일부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공백은 회차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아마 아버지께서는 7회차가 시작됐을 때 제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 기억했다면 방아쇠를 당겼겠지. 네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럼 우리도 안심할 수 없겠네?”
큰아버지께서 긴장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큰아버지는 전생에 각성하셨어요. 그러니 지금처럼만 하시면 문제되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도울 거고요. 문제는 어머니세요.”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지만 전생에 어머니는 각성하지 못했다.
전생에 3월에 마나통을 잃은 아버지께서는 이번 생에서는 7월에 잃으셨다.
어머니는 전생에 5월에 마나통을 잃으셨다.
앞으로 한 회차, 회차마다 고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비세계에서의 나는 어땠니?”
어머니께서 조금 굳은 표정으로 물으셨다.
“현재로는 무척 잘 적응하고 계셨어요. 이번에도 그룹에서 4위를 하셨을 만큼 잘 하셨죠.”
“네가 도와줬다면서.”
“제 도움이 없었어도 충분히 합격선에는 들고도 남았어요.”
“과연 그랬을까?”
“확실해요. 제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백 명 넘게 제거한 상태였거든요.”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어머니의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현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
“물론이죠. 이곳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난 후에 세 분 모두 비세계에서 몰라보게 달라졌는걸요.”
“그래? 그럼 나는 당분간 운동에 매진해야겠다. 여보. 그래도 되죠?”
“그래야지. 당신이라도 각성을 해야지. 우리 둘 모두 짐이 될 수는 없잖아.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내가 다 할 테니까 당신은 몸 만드는 것만 집중해.”
아버지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도 운동 멈추시면 안 돼요. 변한 세상 살아가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거든요. 작은 변이체 정도는 잡을 수 있어야 하고요.”
“알았다.”
각성을 하셨으면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는 육체 단련을 소홀히 하셨어도 됐을지 모른다.
육체계열로 각성할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성하지 못하면 몸을 움직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큰아버지를 도와 길드와 월평주식회사를 운영하시겠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몸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더 열심히 운동을 하셔야했다.
“알았다. 일을 하면서도 정말 죽어라 움직이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니 실감이 나. 네가 말한 믿지 못할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마나통을 잃기 전이라고 해서 세 분이 내 말을 의심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마나통을 잃고 나시니 현실이라는 것이 더 느껴지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후로도 몇 가지를 더 의논했다.
그 중에는 던전 이식에 관한 것도 포함되었다.
도쿄에서 가지고 온 과수 던전 덩굴은 아직 이식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대기실에 세 개의 덩굴을 보관 중이어서 이식해야 하지만 내가 소유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미개방 던전은 들어가서 클리어를 하면 소유권이 내게 넘어오면서 내가 관리할 수 있지만 던전 덩굴을 이식하는 것은 소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클리어를 하고 소유권을 가져가버릴 수도 있고, 대변혁까지 던전이 생성되지 않아서 내 소유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은 각성자가 없어서 이런 생각까지는 과한 것이 사실이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대기실에 보관할 수 있는 던전 덩굴이 다섯 개여서 심는 것을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 분과 이야기를 하고 화순을 떠나 장거리 워프게이트를 품고 있던 던전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라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보름에 한 번 정도는 던전이나 던전 덩굴이 보이는지 확인을 할 생각이다.
그러려면 더 바빠지겠지만 이 정도의 수고는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던전을 찾아 해맬 때였다.
강원도 횡성의 치악산 자락을 올라가고 있는데 꼬물이가 뜬금없는 반응을 보였다.
이곳은 던전이 있던 곳은 아니었다.
전생에 치악산 던전은 산의 정상부근에 던전이 형성됐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삼분의 일도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 뭐가 있는 거야?”
꼬물!
X
꼬물이가 바닥에 X를 그렸다.
뿌리를 사정없이 가로 저으며 아니라는 몸짓을 병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금반지를 찾아낸 이후 꼬물이는 지금까지 네 개의 금붙이를 더 찾아냈다.
물론 제대로 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심하게 부서진 귀걸이나 팔찌조각 같은 것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금으로 된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꼬물!
ㄷㅈㄷㄱ
“이 근처에 던전 덩굴이 있다고?”
꼬물!
던전 덩굴은 죽지 않으니 덩굴이 있다는 말은 이 근처에 던전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전생에 횡성의 치악산에 던전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던전에는 장프가 자라고 있었고, 당연하게 장거리 워프게이트를 품고 있었다.
대부분 장거리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은 단거리 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장단거리 워프게이트가 있는 것과 같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장거리 워프 게이트 일곱 개 중 하나여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던전 덩굴 있어!^
^ㄷㅈㄷㄱ^
“알았어. 안내해 줘.”
^ㅇㅇ^
꼬물이가 바닥에 글을 쓰면서 갑자기 앞뒤로 산 모양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양이 꼬물거리는 꼬물이를 꼭 닮아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쫑? 쫑!
꾸루?
음머어?
안하던 표시를 하니 쪼롱이를 비롯한 소환수들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게. 비슷함에서 오는 동질감 같은 거겠지.”
꼬물이가 고구마를 먹는 것을 본 이후로 소환수들은 꼬물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와서 친근하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냄새는 어찌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 정말 던전이 있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던전도 있나?”
아직 던전이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완전히 형성이 되고 나면 던전은 누가보든 확연히 던전인 것을 알 수 있다.
던전입구 양쪽으로 덩굴이 휘감긴 기둥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존재하지만 던전입구가 이렇게 좁은 경우는 몇 번 보지 못한 것 같다.
“입장해야지.”
전생에 발견되지 않았다면 1회성 던전이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미개방 던전인 관계로 덩굴손의 검사 없이 던전에 입장할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입장하겠다고.”
[이 던전은 직접 입장하셔야 합니다.]저 작은 문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들어가야지. 어쩌겠어. 욱여넣어봐야겠다.”
“네가?”
나에게 5미터를 벗어날 수 없는 나호가 나보다 먼저 던전을 들어간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먼저 들어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체이니 분명 가능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호가 먼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ㄴㅎㅋㅋ^
^ㅈㅅㅎ!^
“알았어! 조심할게.”
나호가 시원스럽게 웃는 동안 나는 던전의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입구에 어깨가 꽉 끼어서 정말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들어가는데 앞에 뭐라도 나타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눈앞으로 뭔가가 쓰윽 지나갔다.
속도가 무척 빨랐는데 분명 생명체였다.
그 순간 쪼롱이가 그대로 대기실을 출발했다.
쪼롱이의 뒤로 꾸루와 반반이가 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얗고 여린 뿌리가 내 볼을 감쌌다.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소환수들이 반응한 것 같았다.
다른 곳 같으면 힘으로 뚫고 금세 들어가겠지만 이곳은 던전의 입구였다.
유난히 길고 좁은 통로형 입구!
빨리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나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힘을 최대한 빼고 꼬물이가 꼬물거리듯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미 소환수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소인국에 온 것 같아.”
비좁은 통로형 입구를 지날 때 분명 뭔가가 지나가서 긴장을 하며 던전에 들어섰는데 들어온 순간 긴장이 풀려버렸다.
분명 던전이라 긴장을 해야 하지만 주위의 풍경이 워낙 아기자기해서 긴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입구에서 기다리니 잠시 후 소환수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행이 있었다.
“강아지인가? 쥐는 아닌 것 같은데?”
“토이 푸들?”
꼬물!
가까이 다가온 생명체를 본 꼬물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열심히 공부하던 뿌리를 대기실 입구에 대고 있었다.
나오라고 허락하면 당장 나와서 다가온 생명체를 만져볼 것 같았다.
뮤! 뮤! 뮤! 뮤!
마치 죄인이 잡혀온 것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생명체는 매우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신기한 소리를 냈다.
쪼! 쫑!
고급스럽게 보이는 분홍색 털을 가진 생명체를 위협하는 쪼롱이었다.
툭 치면 데구르 굴러갈 것 같은 생명체가 움찔하더니 혼을 내는 쪼롱이가 아니라 그 옆에 선 반반이의 눈치를 보았다.
뮤! 뮤!
조금 전과 달리 공손해진 몸짓을 취하는 생명체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쫑! 쪼로로로로! 쪼쪼로로롱!
쪼롱이가 제법 길게 설명했다.
던전입구를 통과할 때 놀라게 했던 녀석을 잡아왔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더 이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깨비^
“뭐라고?”
^도깨비^
쪼롱이의 말을 받아쓰는 것인지 아니면 생명체 말을 받아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문을 가진 순간 시스템이 의문을 해소시켜주려는 듯 메시지를 전해 왔다.
[띠링! 축하합니다. ‘던전 도깨비’를 발견하셨습니다. 던전 ‘도깨비 마을’이 강대한 님의 소유로 넘어옵니다.]“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클리어가 됐다고? 뭐가 클리어 조건이었어?”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도깨비 족장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처음으로 마주한 도깨비가 족장인 관계로 소환수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도깨비?”
던전 도깨비와 도깨비가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에 도깨비를 소환수로 둔 사람이 생각났다.
초반에 상당한 활약을 하다 사라진 사람으로 소환수인 도깨비에 의해 처리가 됐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회귀 초반 특성에 소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인사동을 이 잡듯이 뒤졌었다.
하지만 도깨비와 인연을 맺어줬다는 물건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던전에서 도깨비라고 하는 생명체와 인연이 닿았다.
뮤! 뮤! 뮤!
도깨비라고 하는 생명체는 아주 작은 토이 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둥글둥글 미용을 시킨 푸들 강아지를 축소시키면 딱 눈앞의 생명체와 흡사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분홍 도깨비가 앞발을 세우고 몸을 세웠다.
몸을 세우자 더 동그랗게 변했다.
모든 발이 털 속으로 감추어졌기 때문이었다.
굴리면 또르르르 소리가 나는 공 모양의 장난감이 생각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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