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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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두각(頭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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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이 사전에 공지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이리스 헌터들은 속속들이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모여든 헌터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니, 이전 대회의 때 집결했던 인원들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
“문수 형님, 오셨습니까.”
“아, 가이탄, 자네 왔나.”
가이탄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허문수는 휑하니 을씨년스러운 회의실의 정경을 보더니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사람이 이것밖에 모이지 않은 겐가?”
장내에 집결한 인원은 고작 열 명 정도로, 이전 회의에 비하면 반절밖에 되지 않았다.
“그게… 아마도 이 인원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으응? 그건 무슨 소린가?”
가이탄의 말에 허문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모인 헌터들은 1군과 2군이 뒤섞여 딱히 인원 간에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점이라면, 임유진, 신소율, 데모나, 이두식 등 초창기 아이리스 멤버들이 빠지지 않고 모여 있다는 것 정도일까.
“모든 인원을 소집한 게 아니었나?”
허문수가 의문스레 중얼거리자, 비어있는 상석의 옆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임유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출을 받은 인원은 여기 오신 분들이 전부예요. 오너가 오면 자초지종을 설명드릴 테니, 궁금한 점이 있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그녀의 말에, 허문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은 치미는 궁금증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깔끔한 정복으로 갈아입은 노구덕이 그 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기다란 치맛자락으로 은빛 의족을 절반쯤 가린 소피아도 함께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일어날 필요는 없으니 다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분주히 일어서는 헌터들을 향해 작게 목례를 취한 노구덕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상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중앙의 노구덕을 위시로, 좌측에는 아이리스 헌터진의 대표격인 임유진이, 우측에는 행정 참모이자 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소피아가 자리했다. 이후로 나머지 헌터들이 제각기 자리를 찾아 앉자, 노구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두꺼운 입술을 떼었다.
“오늘 여러분을 이렇게 모이게 한 것은, 긴급히 공표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자리한 헌터들은 하나같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소리 내어 의문을 표출하진 않았다. 권좌에 앉은 노구덕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차분하고 진중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공표에 앞서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입에 담는 말은 결코 클럽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내용입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에 제한을 둔 것도 보안상의 이유 때문이지요.”
몇몇 헌터들의 얼굴색이 살짝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일부는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는 낯빛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노구덕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니, 그럴 만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괜한 일에 말려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와, 한편으로는 노구덕이 앞으로 말할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다양한 얼굴들을 앞에 둔 노구덕은 무쇠처럼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해서, 제 얘기를 들어주실 분들은 새로이 아이리스와 계약을 갱신하셔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요. 갱신 내용은… 대충 계약기간 5년에 단계적인 급료 인상, 계약기간 도중 클럽을 이탈할 경우 막중한 책임을 묻는 조항이 들어가겠군요. 이 조항이 발동될 경우 최소한 5년치 급료는 한번에 물어낼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
급료부분을 제외하면, 한마디로 아이리스 전속의 노예계약을 맺겠다는 소리다. 막중한 무게가 실린 노구덕의 말에 덩달아 회장의 분위기도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헌터가 클럽과 맺을 수 있는 계약의 최대한도는 5년이다. 최대한도라는 말은 그만큼 5년 계약을 맺는 사례가 드물다는 얘기다. 헌터가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 관례적으로 1~3년 이내의 기간에서 재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곳에 모인 전원과 최대기간으로 계약을 맺겠다는 노구덕의 발언이 얼마나 큰 책임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클럽으로의 이적을 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헌터 입장에서 5년 계약은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5년 계약이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시장에 클럽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헌터와 5년 계약을 맺었다가 해당 헌터가 갑작스런 기량하락이나 장기부상에 노출되면, 클럽으로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그렇기에 5년 계약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헌터는 비교적 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이곳에 모인 헌터들이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5년 계약… 급료가 여기서 더 인상된다면 확실히 정말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
이런 당근을 제시할 정도면, 자연스레 그 반대급부에 대한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헌터들 중에는 사정이 복잡한 자들도 끼어 있었다. 블랙 랩터에서 임대된 가이탄과 실렌이었다.
“오너,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아이리스에 임대된 입장이라 임의로 계약사항에 변동을 줄 순 없습니다.”
가이탄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노구덕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건 괘념치 마십시오.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예? 해결되다니요?”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가이탄이 머리를 모로 기울였지만, 노구덕은 거기까지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하나만 고르시면 됩니다. 이 자리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냐, 아니면 문을 열고 나갈 것이냐. 간단하지요?”
좌중은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기실 여기서 노구덕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인원이라고 해봤자, 가이탄, 허문수, 나타샤 세 사람 정도였다.
나머지 임유진, 신소율, 실렌, 소피아, 이두식, 데모나는 저마다의 사정은 각기 달라도 노구덕과, 또는 아이리스와 계속 함께 가기로 잠정적인 결정을 내린 인원들이었으니까.
‘응?’
얌전히 임유진의 옆에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의 얼굴빛을(특히 나타샤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던 신소율은 불현듯 이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일부 인원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상기 아저씨랑, 도현이 아저씨도 없네? 진솔이도 그렇고.’
최근 임유진이 이끄는 2군에서 최고의 콤비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는 권도현과 김진솔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구덕과 사적으로도 꽤나 친분이 깊은 장상기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은 확실히 의외였다.
‘에이, 아저씨가 어련히 잘 하겠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서 떠들 사안은 아니었다. 신소율은 나중에 개인적으로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한 사람이 높이 거수하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착 달라붙는 흑색 타이즈를 입은 여인, 나타샤였다.
“오너,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나타샤 헌터.”
삽시간에 쏠린 시선들. 항상 당당하던 평시와는 다르게, 살짝 주저하던 나타샤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혹시 불법적인 일에 관계된 건가요?”
“그렇다고 하면 그렇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지요.”
나타샤의 보기 좋게 그을린 얼굴이 수 차례 떨림을 보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따지듯이 물었다.
“너무 애매모호한 말인 것 같은데요. 조금 더 확실히 말해주세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소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클럽에서 운영 중인 사업체 중 몇 곳은 공공연하게 불법이 자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다만 위험도를 물어보신 거라면… 예, 어쩌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요.”
“목숨이 위험하다고요?”
나타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롭게 벼린 듯한 데모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 어차피 헌터란 족속들, 목숨 내놓고 돈벌이 하는 건 매한가지잖아?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굴어?”
데모나와 나타샤는 둘 다 ‘팜므파탈’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헌터들.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질타를 받은 나타샤로서는 당연히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속 편한 소리 하네. 정해진 레귤러를 탐사하는 거랑 대놓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게 어디 같은 줄 알아?”
“그렇게 싫으면 징징대지 말고 이 자리에서 나가던지.”
“이익…!”
자신의 논리를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데모나의 대꾸에, 말문이 막혀버린 나타샤였다.
“저는 큰형님을 따를 겁니다.”
“허허, 살만큼 살았는데 뭐가 두렵겠나. 얘야, 너는 어떠냐?”
“저야 뭐… 할아버님만 좋으시다면, 그걸로 됐어요. 호홋.”
이두식의 지원사격을 시작으로, 허문수, 그리고 실렌의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이미 노구덕에게 단단히 코가 꿰인 실렌이 여우짓을 하는 게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그런 사실까지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
신소율, 임유진, 소피아, 데모나의 의사야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남은 것은 갈피를 잡지 못한 나타샤와 첫 질문을 한 이후부터 쭉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는 가이탄 뿐이었다.
잠시 후, 꾹 감겨 있던 가이탄의 눈꺼풀이 번쩍 올라갔다.
“…그간 쭉 지켜본 바, 오너가 괜한 말을 할 분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헌터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 한번쯤은 이런 도박을 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가이탄 씨!”
가이탄 마저 돌아서자, 홀로 남은 나타샤는 손톱을 깨물며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일. 노구덕은 턱을 들어 결단을 내릴 것을 재촉했다.
“나타샤 헌터. 가급적 빨리 결정해 줬으면 합니다.”
“…휴우. 여기서 어떻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어요?”
“확실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계약 갱신, 하도록 할게요.”
나타샤에게서 확답을 받아낸 노구덕은 흡족한 미소를 띤 채, 임유진에게 약속한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아래에 보관하고 있었던 중형 배낭 하나를 꺼내놓았다.
“아공간 배낭…?”
누군가가 무심코 중얼거리기 무섭게, 임유진은 배낭의 입구를 확 열어젖혀서는 그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마구잡이로 쏟아 부었다.
투둑. 툭.
배낭 속에 들어있던 물건들은 대부분 낡은 서책들이었다. 최소한 만들어진지 수년은 된 듯, 하나같이 노랗게 빛이 바랜 종잇장들을 본 헌터들은 잠자코 앉아 노구덕이 설명을 해주길 기다렸다.
“…이제부터 할 얘기는, 언론에 따로 공표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철저히 비밀엄수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노구덕의 음성은 좀 전과는 비할 바 없이 낮아져 있었다. 속삭이는 듯한 그의 음성에,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말을 보다 분명하게 듣기 위해서였다.
노구덕은 그 얼굴들을 한번 스윽 훑어본 뒤 말을 이어나갔다.
“의문의 습격자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말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냥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놈들의 손에서 간신히 탈출한 뒤, 우리는 습격자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주변 산간지대를 끝없이 맴돌아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부상자도 있었기 때문에 몸을 추스릴 곳이 필요했지요. 그렇게 은신처를 찾아 헤매다, 마침 딱 적당한 동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서책들은 그 동굴에서 얻은 부산물입니다.”
“그, 그러면 이 책들이…?”
노구덕은 씨익 웃는 것으로 가이탄의 더듬거리는 말을 받아주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클럽들이 꿈에서라도 보길 원한다는 스퀘어의 유산, 즉 오리지널(Original)입니다. 돈 주고도 사지 못할 보물들이지요.”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연참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온호갱님 / 피콜로보다는 슈렉이… 슈렉은 나팔관인가?
fewfqew / 그래서 요새는 전투근육이 됐어요.. 효도르보다 조금 나온 정도?
소장로네 / 그러면 스토리 진행이 더뎌질 것 같아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카론느 / 분량상, 그리고 새로워진 구더기 기술들을 미리 알면 재미없는 관계로 임유진과의 대결씬은 생략했습니다. 곧 써먹을데가 있거든요
월병인 / 아내라긴 뭐하고 첩? 정도로 실렌이 있죠. 소율이한테 들킨..
Spriggan / 와아아아아아! 만으로 모든게 가능하신 그분들..
트릭스타 / 하지만 바퀴벌레라면?
㈜지나가는?곰딩이 / 하.. 워해머 저도 참 좋아합니다
windcircle / 다시 충실히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보커 / 글쎄요 그건 어떻게 될지?? ㅎㅎ
四兩發千斤 / 감사합니다
Tantania / 소피아 에피소드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 걱정마세요! 육노예가 될진 모르겠지만…
북치네 / 분량상.. ㅠㅠ 외전격으로 쓰기엔 제 시간이 너무 모자라네요. 윗 리리플 보시면 유지니와의 전투씬을 생략한 이유를 달아놓았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hohokoya1 / 넵 감사합니다
가식적썩소 / 수정했습니다!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콜마 / 완전회복… 회복… 회복은.. 후.. 스포조심!
호야[虎夜] / 이거이거 조만간 한번 가야겠군요.. 씬을!
SW스윈 / 뇌물 잘 받았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