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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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3부, 서(序)
143# 3부, 서(序)
대재앙이 일어난 지 반년.
사막지대에 둥지를 틀고 있던 샌드웜을 마지막으로, 대륙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재앙급 카름들은 남김없이 격퇴되었다.
그러나 대륙에 드리워진 암운이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의문이 남았다.
대체 어째서 이 많은 카름들이 동시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과거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난 이 카름들이 나타난 게 단지 우연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기억했다. 과거 발레기우스의 혁명 선언 중, 위원회가 이레귤러를 조작하여 의도적으로 카름을 만들어냈다는 고발이 있었음을.
어떤 사람은 말했다.
이번 원정으로 대략 천 명에 달하는 정예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다! 북부와 서부, 동부, 남부의 소중한 목숨들이 먼지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중앙위원회는 무엇을 잃었는가? 정작 중요할 때 몸을 사리면서 뒤에서 지시만한 그들에게, 과연 이 땅을 지배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또 다른 사람도 외쳤다.
이 재앙으로 이득을 본 자가 있다면, 중앙위원회일 것이다! 반군의 세력은 약화되었으며, 통제가 미치지 않던 각 지방의 군벌들도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중앙위원회야 말로 이 참혹한 재앙의 유일한 승리자다!
온 세상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모두가 의구심을 품었다.
혹시……. 어쩌면…….
중앙위원회가 이번 일의 배후가 아닐까? 라는 의구심.
한번 시작된 의혹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번져갔다. 동기가 확실했고, 무엇보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위원회는 저 의혹들을 떨쳐낼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당황한 위원회는 의심을 조장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사들을 통제하고, 중앙왕가의 가주 이름으로 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여론 진화에 최선을 다했으나, 이미 번지기 시작한 의심의 불길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대재앙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백만 명. 재앙으로 인해 동료를 잃고, 가족을 잃고, 연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분노는 위원회가 예상하는 범주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반군 이후 사상 처음으로 반 위원회의 기치를 내건 봉기(蜂起)가 일어났다.
그 시작은 동부 왕국 라만이었다.
십존, 스펠브레이커 플랑기스가 주도하여 일으킨 반란은 동부 왕국 라만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만의 왕조가 멸망했고, 가주를 비롯한 왕가의 일원들은 모조리 참수당하여 광장에 목이 걸리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엔 노인이나 어린아이, 부녀자와 사내의 구분이 없었다.
‘위원회의 개. 이 낯짝에 침을 뱉으시오.’
광장에 효수된 라만 가주. 그 목에 걸린 팻말에 적혀 있는 어구였다.
플랑기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라만 왕국의 직계혈족을 모조리 처형한 뒤, 방계혈족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을 모조리 붙잡아 광장 한복판에 줄줄이 전시품처럼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구경꾼들이 모였을 때쯤, 남성은 전원 참수하고, 여성은 그 자리에서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노예가 된 여성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발가벗긴 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은 다음, 모여든 시민들에게 마음껏 즐기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플랑기스의 이 만행이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후일 조심스럽게 이 사건에 대해 다룬 언론에 따르면, 그날 성난 시민들에 의해 윤간 당하다 죽어버린 여자들만 삼백여 명에 달하고, 그 중에는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시민들의 분노는 컸다. 라만 왕국의 옛 수도는 에덴. 마룡 티아마트에 의해 궤멸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입은 그 도시다. 그 배후로서 위원회가 지목된 지금,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은 섬뜩한 창날이 되어 위원회의 목줄을 향했다. 여기엔 시민과 헌터를 구분할 필요조차 없었다.
라만에서 일어난 대대적 봉기는 위원회를 크게 당황시켰다. 특히 군중의 손에 왕가 하나가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중앙의 시온과 이레브, 서부왕국 군다르가 주축이 된 중앙위원회는 중앙의 전력을 정비하여 봉기가 일어난 동부지역에 급파했다.
그러나 막 동부를 향해 떠나려던 중앙군은 북부에서 들려온 또 다른 소식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명왕 강문식을 주축으로 한 ‘북부연합’의 선포. 그리고 북부연합은 결성과 동시에 위원회의 만행을 지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달아 불의의 펀치를 얻어맞은 위원회. 그러나 경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부의 봉기와 북부연합의 결성…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약속이나 한 듯 각 지역에서 새로운 세력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중에는 과거 ‘구왕조’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던 이들도 있었다.
북부 왕국 우르카. 그 후계자인 그룬가르드가 스스로의 손으로 부모의 목을 베고, 북부연합과 마찬가지로 위원회를 규탄하며 새로이 세력을 일으켰다. 그 이름은 ‘북부동맹’. 청룡왕 이정이 그와 함께했다.
북왕 아이벤이 살아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북부의 분열이었다.
남부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남부 왕국 말리크의 후계자였던 이그니스가 권좌를 이어받고, 위원회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특히나 샌드웜 원정을 손수 지휘하며 남부연합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그니스였기에, 그의 배신이 위원회에게 가져다 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위원회는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렸다. 그들의 처지는 이제 침몰직전의 나룻배나 다름없었다. 그 강대했던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고, 천지사방에는 그들을 성토하는 울림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듭된 분열에도 굳건하게 유지되던 중앙위원회마저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더는 위원회 소속으로 득을 볼 게 없다 여긴 군다르마저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즈음, 군다르 악시밀리온 왕조의 새 얼굴은 체스터였다. 새로이 가주가 된 체스터는 기존의 왕가가 쥐고 있던 이권을 과감히 내버리고, 서부의 유력한 클럽들을 감싸 안는 유화책으로 새로운 연합체를 구성했다.
항간에는 체스터가 강압적인 방법으로 가주를 끌어내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런 소문은 상당수의 서부 클럽들이 체스터에게 가담하고, 도미니온(Dominion)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연합체가 성공적으로 발족하면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퀸젤은… 군다르 왕가의 주인이 바뀐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며칠 사이에 거듭된 이탈로 손발이 잘려버린 위원회에는 이제 시온과 이레브의 잔존 세력들만이 남았다. 가장 강대했던 두 왕국이 합쳐진 세력인 만큼, 여전히 그 전력은 강력했지만 잘려나간 곁가지들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이 들고 일어난 세력들이 공공연히 반 위원회를 표방하고 있는 현재, 무모하게 병력을 파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의미다.
결국, 그나마 있던 통제력마저 상실한 중앙위원회는 그 명칭을 이레시온으로 바꾸었다. 수 세기 동안 대륙을 통치하던 위원회란 이름이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그간 잠잠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던 잠룡이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검왕 김정인. 동부의 대도시 라스바덴과 살타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자유연합 리베르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깃발을 펼친 것이다.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김정인의 독자적인 행보는 그 이전부터 돋보였던 만큼, 언젠가 그가 독립 세력을 일구리란 예상은 식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하고 있던 차였다. 단지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리베르타의 독립 선언이 아니라, 그 공표문 안에 담겨 있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리베르타는 기존의 클럽과 헌터라는 개념을 용인하지 않는다. 리베르타 내의 모든 이들은 리베르타 소속의 국민이며, 법 앞에 평등하고, 무한한 자유를 누릴 것이다.’
검왕 김정인은 국가를 선포함과 동시에, 그간 허울만 남았던 클럽과 헌터 시스템의 공식적 철폐를 선언했다. 그뿐 아니라 대륙 최초의 신분제 폐지와 민주정을 주창하여 내세웠다. 그는 공식적으로 리베르타의 지배자였지만, 왕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개 대표였다.
처음, 그의 선포를 들은 이들은 드디어 검왕이 미쳤다며 그를 비웃었다. 상식적으로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헌터들이 국가라는 틀에 얽매일 리 없지 않은가. 지금 독립을 선포한 많은 세력들이 클럽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헌터들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시스템이 사라진다면, 헌터들은 거취 이동의 자유가 사라지고 한 단체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군 소속이 된다면 까다로운 군율(軍律)에 자유를 제한받게 된다.
김정인의 세력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헌터들이 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받아들일 리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과는 달리 리베르타는 무너지지 않았다. 급속한 전력의 이탈도 없었다. 리베르타에 소속된 헌터들은 그대로 리베르타의 충실한 군대가 되어 인접한 라만 왕국의 영토를 집어삼켰다.
리베르타가 보란 듯이 세력의 확장을 이루자, 김정인을 비웃던 이들은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검왕의 독립 선포가 결코 분위기에 휩쓸려 서두른 것이 아니었음을.
리베르타의 독립 선언은 말하자면 몇 년에 걸쳐 차근차근 기반을 다진 후에 쌓아올린 금자탑이었다. 시민들과 헌터들이 충분히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후에, 김정인은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렸던 것이다.
리베르타에 소속된 헌터들. 그들에겐 지금껏 다른 헌터들이 지니지 못한 소속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건 긍지라고 봐도 좋았다. 특히 동부 지구의 특성상 그들 대부분이 지구 출신의 헌터였기에, 김정인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데 별 거부감이 없었다.
리베르타의 성공 사례를 목도한 다른 세력들은 슬금슬금 클럽 시스템의 폐지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헌터들을 클럽이란 틀 안에 따로따로 두는 것보다 일괄적으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으니.
물론, 급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천천히 발판을 다져온 리베르타와는 다르게, 그들은 소속 헌터들을 고취시킬 만한 어떤 사상적, 물질적 토대도 없었으니까.
김정인과 리베르타를 기점으로 한 변화의 물결이 천천히, 미약하게나마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오랫동안 대륙에 뿌리내려져 있던 클럽과 헌터 시스템의 해체, 그리고 완전한 국가의 출현.
어찌 보면 이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제도를 총괄하는 위원회가 힘을 잃어버렸고, 시스템 자체는 붕괴되었으며, 그로 인해 타 차원의 헌터들을 공급하는 ‘드래프트’가 사라져버렸다. 새로운 헌터들을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연적인 생식을 통한 방법 뿐.
그를 위해선 안정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위한 보금자리가 필수적이었다. 즉, 이곳저곳 다른 클럽들을 전전하는 게 아닌, 장시간 한 곳에 정착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가 성립되는 데에도 좋은 명분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클럽이 난처한 지경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부터 단일 세력을 이루며 내부 단속을 철저히 했던 세력들은 큰 잡음 없이 시류에 편승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아이리스가 주축이 된 서부의 ‘철의 동맹’ 같은.
어찌 됐든, 스퀘어 대륙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전까지가 카름과 인간의 생존을 건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간 믿음을 잃어버린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그리고, 흉악한 카름들 또한 건재했다.
북부의 북부연합과 북부동맹.
서부의 도미니온.
남부의 솔라리스(Solaris).
동부의 리베르타와 팔콘, 혼란에 빠진 구(舊) 라만.
중부의 이레시온.
그리고 수괴인 발레기우스가 자취를 감춘 이후, 동부와 남부로 분열한 반군.
거기에 더해 앞다투어 할거한 수많은 군소 독립 세력들…….
대륙의 패자가 되기 위한 사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제가 몸 상태가 아직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로 3부 시작을 하려니 조금 부담이 되네요..
하지만 너무 오래 쉬면 안되겠지요!
말씀드렸다시피 3부는 5년 이후를 다룰 예정입니다. 지금 저렇게 여기저기 누더기처럼 나뉜 상태로 5년이 지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장성한 소냐를 등장시킬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하군요. 허허허허..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3부 시작 기념으로 오랜만에 맥주나 마시고 자야겠네요. 많이 피곤합니다 ㅠㅠ
독자님들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