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who got stronger through trading RAW - chapter (153)
150 대초원 게이트(2)
연구실에는 자판기가 없다. 하지만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고, 그 냉장고는 포션 조제 연습을 위해 채워 둔 약초와 영초, 그리고 S급 조제사에게 의뢰를 받아 조제한 한약이 있었다.
“드세요.”
“아, 감사합…….”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던 류페이가 찻잔, 정확하게는 찻잔에 담긴 액체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를 확인하고 한율에게 물었다.
“영약입니까?”
“네. 신체 능력이 강화된다거나, 마나 홀이 커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노폐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약이죠.”
“…….”
“왜요?”
“아, 아닙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류페이가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었다.
목을 넘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잠시 놀랐던 류페이가 찻잔을 내려놓고 한율을 바라봤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도와 달라고요?”
“……네.”
중국에 초대형 게이트가 생성된 직후, 개인 수업을 하지 않는 오후에 방문한 것이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해 잠시 어색한 미소를 그렸던 류페이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영약을 한 모금 마신 한율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말씀하세요.”
“가족들이 한국에 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
한율이 가만히 류페이를 바라봤다.
스파이 확률이 80%가 넘었음에도 류페이는 하양이의 시험에 통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말을 뱉어 독대를 요청했다.
시간이 없었고, 간신히 남는 시간을 만들어 류페이를 연구실에 초대했을 때에는 먼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지만 말이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까?”
“아닙니다.”
“중국 측에서 가족들을 언급하며 협박을 합니까?”
“아닙니다. 지금은.”
“이후에는 그럴 것이다?”
“예. 예상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니죠.”
마법사들의 가입 이후, 한율은 협회, 국가 그리고 그룹의 도움을 받아 개인은 물론 가족들의 상황까지 확인했다.
“분명 제 가족들은 당국, 그리고 협회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경호원도 붙어 있죠.”
“다른 말로 하면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이 감시를 받고 있고, 경호원이라는 이름으로 감시원이 붙어 있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흐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율은 그런 류페이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즉, 가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그들이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예.”
“우리나라도 꽤 귀찮게 할 텐데.”
“하지만 중국과는 다르게 감시를 붙이지는 않겠죠.”
귀화 권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처럼 가족을 볼모로 삼아 자신의 팔과 다리를 묶지는 않을 것이다.
한율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원하는 것은 두 가지. 초원 게이트 소멸과 가족의 안전 및 자유인가요?”
“예.”
“언제까지요?”
“선생님께서는 언제까지 가족들이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귀화할 생각은 없다.
협회의 압박을, 국가의 압박을 이겨 낼 힘을 갖췄을 때 가족들과 함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한율이 류페이를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대답이 아닌 질문을 던졌다.
“저들이 원하는 건 뭡니까?”
“중급, 상급 마나 호흡법, 그리고 선생님의 귀화입니다.”
“설명했죠?”
“예. 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리 선배님처럼 시간이 지나면 중급, 그리고 상급 마나 호흡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류페이에게 말했다.
“4서클.”
“……멀군요.”
“5서클에서 줄인 겁니다. 어쨌든 그 정도면 국가의 압박에도, 협회의 압박에도 가족을 지키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아, 지금 당장 중국 쪽에서 원하는 게 있습니까?”
“마법서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네. 잘만 하면 두 가지 부탁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
“일단 기다려 주세요. 며칠 안에 다시 부를 테니까요.”
“…….”
류페이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는 한율의 생각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알겠습니다.”
자신에게 바로 알려 주지 않는 것에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류페이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고,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김환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협회장님?”
***
A급 게이트의 폭주로 너무나 큰 피해를 본 중국은 자신들만으로는 초원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없다고 판단,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당연히 전화로, 메일로, 영상 통화로 할 수 없어 사람을 보냈다.
중국 헌터 협회 서열 2위, 창웨이가 넥타이를 고쳐 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대한민국.
국가와 협회는 다른 국가는 몰라도 대한민국의 지원 요청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법사 한율.
적들을 단번에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자, 한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율이라는 헌터 한 명이 수십, 수백의 헌터들이 할 수 있는 활약을 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협회와 중국은 한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서열 2위인 창웨이를 파견했다.
“들어가십시오.”
회의실 입구.
고개를 살짝 숙인 헌터가 옆으로 물러서자 창웨이도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 인사를 받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김환성.
그다음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헌터 협회 소속인 각 부서의 책임자들.
그다음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헌터 협회가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헌터인사 수석 비서관 유지태.
아직 비어 있는 자리에 잠시 시선이 닿았던 창웨이가 사람들의 시선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괜찮습니다.”
통역가의 도움을 받아 김환성의 부탁을 이해한 창웨이가 미소와 함께 대답하고 다시 비어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명패도 올라와 있지 않은 자리.
하지만 그 자리가 김환성, 유지태 다음이었기에 시선이 갔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회의 참석자가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아직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 김환성이 답하려 할 때였다. 무언가를 느낀 듯 잠시 뒤를 돌아본 그가 창웨이에게 말했다.
“지금 오고 있군요.”
끼이익.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창웨이는 물론 그의 뒤에 서 있던 중국 협회 소속 헌터들도 고개를 돌렸다.
“어, 제가 가장 마지막인가요?”
“그래. 회의 시작까지 아직 5분이나 남았으니 늦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이네요. 또 시간 착각한 줄 알았는데.”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김환성과 말을 주고받은 회의 참가자, 한율이 창웨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창웨이는 한율을 바라보지 않았다.
“…….”
그의 시선은 한율과 함께 회의실을 찾은 소년에게 향했다.
***
“많은 헌터들을 파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B등급, 그리고 A등급으로 이뤄진 팀을 파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이 파견되는 팀은 헌터 협회에 소속된 토벌대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상황을 설명하던 김환성이 ‘하지만’이라는 단어에 딱딱하게 굳어 버린 창웨이에게 말했다.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은 따로 지원 요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아쉬움이 남는, 어떻게든 재요청을 해야 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해 긴장했던 창웨이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하고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길드장, 한율을 바라봤다.
“매우 긴박한 상황이니 지금 당장, 회의에 참석한 마법사의 탑과 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예. 상관없습니다. 지원에 다른 보상 문제가 남았지만…….”
어깨를 으쓱한 김환성이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중국 헌터 협회의 창웨이라고 합니다. 과분하게도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했던 한율이 천천히 허리를 숙인 류페이가 귓속말을 건네자 작은 미소를 그렸다.
“마법사의 탑을 책임지고 있는 한율입니다.”
한율이 말했고, 류페이가 통역했다.
“…….”
10분이라는 짧은 회의가 이어질 때도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류페이는 마치 한율의 오른팔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뒤에 서서 오로지 전방만 바라봤다.
“500억.”
“역시 차이나 머니. 아, 이건 통역하지 말고.”
의뢰비로 500억을 불러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한율이 류페이에게 통역 거부를 요청하고 잠시 고민했다.
“참가 인원은요?”
“한율 님은 반드시 참가해야 합니다.”
“길드원이 참가하면?”
“B급은 50억, A급은 100억입니다.”
“S급은요?”
“예?”
“S급.”
“…….”
눈을 깜빡이며 한율을 바라보던 창웨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A급 헌터는 김세혁과 송아연.
B급 헌터는 이대한과 문수원.
마법사의 탑에서 활동 중인 헌터들을 떠올린 창웨이가 물었다.
“이강현 헌터, 또는 채현수 헌터가 마탑에 가입했습니까?”
“아뇨. 송아연 헌터가 S급에 올랐습니다.”
“…….”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창웨이의 시선이 김환성에게 향하는 순간, 김환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한 달 전에 S급 경지에 올랐습니다.”
한 달보다 더 됐다.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송아연이 직접 자신의 경지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등급 재조정 심사를 아직 하지 않았지만 송아연 헌터는 S급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창웨이가 다시 머리를 굴렸다.
“S급 헌터는 300억.”
“제가 S급 헌터보다 크군요.”
“마법사시니까요.”
창웨이의 대답에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율이 작은 미소를 그렸다.
“250억만 받겠습니다.”
“예?”
한율이 의뢰비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대신 두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을 받아 주려던 창웨이가 입을 다물었다.
“…….”
“……일단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정정하겠습니다. 부탁은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들어보시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일단…….”
한율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주먹을 쥔 그는 엄지만 펼쳐 뒤에 서 있는 류페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류페이는 마법사의 탑 소속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아뇨. 모르십니다.”
천천히 고개를 저은 한율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
“류페이는 마법사의 탑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