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
1화 – 이제 와서 소주가 달면 어쩌란 거냐
와, 젠장. 이제 와서 소주가 달면 어쩌란 거냐.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시는 소주의 달달함에 나도 모르게 의지가 흔들렸다.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나저러나 다 부질없지.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완전히 밀폐된 쪽방. 내 앞엔 비닐조차 뜯지 않은 번개탄이 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
통영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 그래, 잘 생각했어.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잘 할게.”
“아이고, 유 이사님. 이제 기레기 아닙니다. 이 팀장이라고 불러주십쇼.”
“하하. 나랑 있을 땐 편하게 해도 돼. 우리 좀 자유로운 회사 생활해 보자고.”
기자 생활하면서 만났다가 절친이 된 유일조선 유연성 이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거기 가면 이대로 독거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내가 선택한 삶과 강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의미가 다르거든.
그게 뭐 중요한가. 예전에 겪은 한 번의 실패로 연애에 대한 미련은 접은 지 오래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다 혼자 가는 법이지!
결국, 제의를 수락했다.
숨 막히고 진 빠지는 서울 생활에서 벗어난 목가적인 생활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부른 사람이 유연성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유연성이 누군가! 유일조선 오너의 외아들 아닌가!
몇 년만 잘 버티면 꽃길만 걸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그가 말한 포부가 내 가슴을 마구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너야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내 꿈은 딱 하나야.”
“유일조선을 세계 1위로 만들겠다고?”
“응, 맞아. 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봐.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고. 혹시나 내가 일찍 죽으면 네가 그 소원 좀 대신 이뤄주라.”
“아이고, 우리 유 이사님은 만수무강하실 테니까 국민연금 기금고갈 걱정이나 하세요.”
“하하.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우리 열심히 해 보자. 너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10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유일조선 홍보팀장으로 통영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거제와 함께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메카 통영! 충무김밥과 윤이상이 나를 부른다.
무엇이든 그랬겠지만, 처음엔 아주 좋았다.
“이 팀장, 할 만해?”
“아휴, 이제 좀 사람답게 사는 것 같네.”
“뭐 전엔 짐승처럼 살았던 것처럼 그러냐.”
“진짜 기레기 생활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있는 말 없는 말 가져다 소설 써서 겨우 마감치고, 숨 좀 쉬겠다 치면 여기저기 끌려가 밤새 부어라 마셔라. 와, 진짜 이러다 길바닥에서 입 돌아간 채 뒈지면 어쩌나 걱정했다니까.”
“그래서 여긴 일이 할 만하다는 거네? 그럼 일을 더 줘야겠네. 하하.”
물론, 조선소 바닥 일이 만만하진 않았다. 노가다 끝판왕인데 쉬울 리 없지. 그래도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우면 백팔번뇌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갑이었던 기자에서 을인 홍보팀 직원으로 바뀐 것 말고는 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충무김밥 비싼 것도 좋았다. 난 바다와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나 봐.
잊고 지냈던 호연지기가 되살아나는 기분, 그것 참 괜찮았어.
우리 회사는 창립 5년 만에 세계 10대 조선사라는 위엄을 달성하며 아주 잘나갔다. 나도 그 덕에 날마다 선박 수주 보도자료 만들어 뿌리기 바빴다.
말 그대로 배에 돛 단 듯 순항을 거듭했다. 이대로 몇 년만 가면 다섯 손가락, 아니 유연성의 꿈이자 내 꿈이기도 했던 세계 1위 달성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우리 회사, 장난 아니었다니까.
그러나 유연성의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란 말이 씨가 됐다. 순탄했던 인생 이모작에 난데없이 가뭄이 찾아왔다. 기껏 파종했는데, 비가 안 오면 어쩌란 말이냐!
유사 이래, 아니 빅뱅 이후 최대 호황이라는 해운ㆍ조선 시황이 출근길 급똥이라도 온 것처럼 흔들리더니, 바닥 모르고 추락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시발스러운 사건 때문이었다. 찢어 죽일 양키 새끼들!
그렇게 잘나갔던 회사가 금융위기의 역풍을 정면에서 제대로 맞아버렸다. 바람이 분다 싶으면 피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우리 회사는 아주 상남자여, 시발. 뭐 피할 새도 없었지.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배만 빨리 만들어달라는 선주들은 고개를 뻣뻣이 세운 채로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계약금 안 돌려준다고? 그럼 앞으로 너네한테 절대 발주할 일 없을 텐데, 괜찮겠어? 중국이 싸게 만들어 준다던데, 거기로 가야겠네. 뭐? 가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럼, 우리 얘기 좀 할까?
선주들의 협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2년 가까이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하아. 정수야.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우리 정말 열심히 했잖아! 이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유 이사, 아니 연성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잖아. 더 열심히 해 보자고.”
“아니야. 이제 희망 따윈 없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어…….”
유연성의 절망에도 나는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유일조선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주지육림을 선사했던 기자들에게 사정하고 또 사정했다. 손가락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빌고 굽실거렸다.
개새끼들. 얻어먹을 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하더니……. 끈 떨어진 사람이라며 대놓고 드러내는 본색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유연성 말이 맞았다. 희망 따윈 없었다.
“이 미친 은행 새끼들! 왜 보증을 안 서주는데!”
“우리 망할 것 같데. 기껏 힘들게 수주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야. 흑흑.”
“야 인마. 왜 울어!”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수야, 미안해.”
개새끼……. 왜 울고 지랄이야.
회사가 망하든 말든 난 다시 기자질 하면 삼시 세끼 쌀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회망퇴직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난 무조건 회사를 살려야 했다. 내 전 재산이 들어갔단 말이다…….
입사 당시 유연성은 연봉 넉넉하게 맞춰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었다.
조선소 확장에 맞춰 새로 들어가는 구내식당들 운영을 맡으라는 달콤한 제안 말이다.
뺑이는 노가다가 치고, 돈은 함바집이 가져간다고 하지 않나!
결국, 있는 돈, 없는 돈에 은행 돈까지 끌어모았고, 지인 돈까지 보이는 족족 다 긁어서 함바집 사장님이 됐다. 그야말로 묻고 더블로 간 셈이다.
그저 투자이자 부업이었지만, 수입은 본업보다 더 좋았다. 함바집에 돈 복사기라도 있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돈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으니, 회사 다닐 맛 달달했지.
그런데 결국 일장춘몽이었다. 잘나가는 건 개미가 언덕 오르듯 느릿느릿했지만,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회사가 와르르 무너지는 판인데 함바집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회사의 적자는 정신없이 늘어났고, 내 빚도 같이 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였던 유연성은 결국 이성을 놓아버렸다. 회사는 망해가고, 부모님은 영어의 몸이 됐으니, 멘탈이 갈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을 테지. 그 착하디착한 놈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마지막 잎새 같았던 친구마저 그리돼 버리니, 나도 이성을 지키기 힘들었다.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고, 버틸 수도 없었다.
어쩐지 인생이 너무 순탄하게 잘나간다 싶었어. 시발.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딱 하나뿐이다.
더러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징글징글했다고 말하리라.
통영 일대에서 번개탄 판매가 늘어났다는 웃지 못할 소리를 떠올리며, 번개탄을 샀다. 혼자 가기 적적해 소주도 2병 샀다. 더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한때 잘나갔던 과거를 안주 삼아 병나발을 불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희석식 소주의 달달한 뒤끝을 애써 잊으며 번개탄에 불을 붙이려…….
아 씨. 수분 섭취가 너무 많았어. 마지막 가는 길, 물은 버리고 가자. 안 그래도 집주인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갈 땐 가더라도 깔끔하게 가자.
아이고, 마지막 버리는 물이라고 시원하게 콸콸 잘도 나온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 녀석에게도 미안하다.
변기물을 내리고 방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미끄덩.
꽝.
우와, 씨. 이게 뭐고. 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 나네. 의식은 왜 이리 흐려지는 거냐.
***
이게 뭐고!
눈물이 났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렇게 사르르 정신을 잃었는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그걸 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죽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연옥 같은 건가? 천국 가기 전에 묵은 때를 벗겨내는 곳이 있다고 하더니, 이게 그건가? 아니면 운 좋게 다시 살아나는 뭐 그런 건가?
나도 모르게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이 와중에도 뻘생각을 하는 나란 놈은 대체!
죽길 잘 했어. 내가 이리 삶에 미련이 많은 놈이었다니……. 희망도 기댈 곳도 없는 그딴 삶에 미련 가져서 뭐 한다고. 끌끌.
생각이 참 무서운 것이 한 번 떠오르면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귀신같이 달라붙는 것이다. 이 썩을 놈의 생각!
그래서 내가 새롭게 태어나면 어떨까? 미친놈이라고 되뇌면서도, 난 그걸 생각하고 있다. 거참.
뭐가 됐건, 새로운 삶. 썩 달갑지 않다.
순탄할 줄 알았던, 실제로 순탄하게 흘러갔던 내 삶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 회귀라면 모를까.
회귀? 그러면 말이 다르지. 그건 솔깃하잖아.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던 그 상황도 회귀라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왜 망했고, 어떻게 망했는지 너무 생생하다.
난 학교 다닐 때도 한 번 틀린 문제는 다신 안 틀렸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들, 그거 다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유일조선을 세계 1위로 만들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자신 있다.
솔직히 많이 억울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패자부활전조차 없이 그렇게 보내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
우리 회사는 그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나와 유연성 뿐이 아니었다. 그 많은 직원들도 헌신적으로 일했고, 기꺼이 희생했다.
참 고생들 많았지.
회사가 그렇게 되고 나서는 통영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걸어 올라가 회사 살려달라고 소리치기도 했고, 무릎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삼보일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 뭐해. 채권단 새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몇 명이 생을 달리했는지 원.
머릿속에 스쳐 가는 그들 모습에서 수많은 이정수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그것도 잠시.
젠장할.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분명하다. 피를 그리 흘렸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다.
그래, 이건 죽기 직전의 마지막 유희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정신착란이라고 하겠지.
그걸 깨닫자마자, 슬슬 의식이 흐려져 갔다. 이제 진짜 죽는구나. 내가 원하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뭐 어때.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거지.
가자, 그 어떤 고통도 없는 그곳으로.
***
“아후, 시발. 머리야.”
응? 죽었는데, 머리가 왜 아프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이 모포와 침낭, 너무 익숙하다. 설마…….
“유 병장님. 잠이 안 오십니까?”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디인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낯선 관물대가 보였다.
유…연성?
내가 아는 유연성은 딱 한 명이다. 유일조선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보자며 내 손을 힘껏 잡았던 그 녀석. 나 원 참.
이 보셔. 누군지 모르겠지만, 거 장난이 지나친 것 아니오? 죽었다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에 시달리지 않나, 진짜 죽고 나니까 누군지도 모를 놈으로 깨어나고.
죽고 나서도 이 개 같은 상황이라니, 이놈의 인생 참 버라이어티하다.
“유 병장님?”
저놈은 왜 저런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데?
이 개 같은 장난, 속는 셈 치고 응해주자. 이러다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이 지랄 하면서 데리고 가겠지. 못된 저승사자 새끼들.
나를 유 병장으로 부른 불침번을 불렀다.
“오늘이 며칠이지?”
“하하. 전역하는 게 실감이 안 나십니까? 9월 18일, 유 병장님 전역일 맞습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다. 군대 다시 끌려가는 꿈같이 끔찍한 것이 없지. 오늘 전역이라면, 이 정도 악몽이야 참을 수 있다.
“9월 18일이라. 몇 년이지?”
“아이, 진짜. 왜 그러십니까? 2006년 9월 18일. 전역일 맞지 말입니다.”
2006년이란 소리에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다. 유연성이 제대하고 유일조선에 들어간 해가 아닌가!
나한테 몇 번을 얘기했었다. 처음에 진짜 고생 많이 했다면서, 2006년을 잊을 수 없다고 말이다.
내가 진짜 회귀라도 한 것일까? 내가 진짜 유연성이 된 것이야?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내가, 내가 아닐지라도 난 살아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매일 같이 붙어있었던 그 녀석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결론은 하나다. 뭐가 됐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죽기 직전에도 과거 운운하면서 패자부활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거 고약한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관찰카메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정신 좀 차리자. 지금이 몇 시지?
아! 안 돼!
빰빠 빠빠빠 빠라빠빠
이번엔 진짜 소름 돋았다. 평생을 들어도 익숙하지 않을 이 기상나팔 소리. PTSD가 작렬했다.
유연성의 삶, 그 첫날은 강렬한 PTSD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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