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진조선 서울 본사. 계절이 겨울에 접어들면서 쌀쌀해진 탓일까? 우진조선 사무실엔 냉기가 가득 흘렀다.
사상 최악의 위기에 최악의 실적.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던 것에 비해 성과가 너무도 미미했다. 시장질서 흐린다는 욕까지 먹었지만, 실속조차 차리지 못한 초라한 성적서.
우진조선 영업본부는 그야말로 초상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봐. 안 부장.”
“네, 본부장님.”
“너 승진 안 할 생각이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같은 월급쟁이한테 별 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입으로만 그런 소리하면 뭐해? 영업쟁이가 실적으로 증명을 해야지, 안 그래?”
안상식 부장은 속에서 쓰린 기운이 밀려왔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분위기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큰돈을 들여 연임에 성공한 우진조선 사장은 취임과 함께 칼을 휘둘렀다.
계속 죽을 쑤던 영업본부가 가장 큰 희생자였다. 본부장은 만기를 채우고 퇴직했지만, 그 외 임원들은 죄다 잘려나갔다. 혁신에 속도를 낸다는 이유였지만, 실은 장사 못 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상무보 승진을 기대했던 안 부장은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승진 인사에서 물 먹은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자신이 일개 부장이었기에 그 칼부림에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안도감과 별도로 새로 임명된 영업본부장은 정말 미친 듯이 쪼아댔다. 물량이 안 나오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본부장님, 올해는 상황이 특수하지 않습니까? 매년 2000억 불씩 발주되던 것이 올해는 고작 300억 불도 안 찰 정도였으니까 그러려니 해야죠. 이제 심기일전해서 내년에 드라이브 제대로 걸겠습니다.”
“안 부장, 넌 그게 문제야. 너 부장 달 때 동기들보다 3년 먼저 달았다고 으스댔던 거 기억나냐?”
“하하. 뭐 철없던 시절이었죠.”
“기억은 나나 보네? 난 기억도 안 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난 최연소 임원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고. 아이구야, 여기 와서 보니까 아직도 부장을 달고 있네? 그래놓고 뭐? 그러려니 해야죠? 상황이 특수해? 나 참.”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어쭙잖은 소리할 거면 꺼내지도 마.”
“네, 네.”
안 부장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역시나 꾹꾹 눌러 참았다.
아니, 수주실적 떨어진 것이 자기 탓인가? 영업을 책임지는 본부장이 한낱 부장한테 잘못을 떠넘기는 꼬라지에 몹시 불쾌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월급쟁이한테는 일상다반사 아니었던가.
“올해 수주실적이 30억 불도 못 넘게 생겼어. 이거 심각한 일이라고. 대흥이나 순양보다 많이 수주했다고 좋아할 거야?”
“그건 아닙니다.”
“유일조선 얘기 들었어?”
“네, 소문은 접했습니다.”
“아, 그런데도 이리 한가하세요?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유일조선 수주실적이 100억불 넘겼다는 얘기가 있다고. 고작 유일조선 따위한테 밀릴 생각이야?”
“결코 아닙니다!”
“좋아. 그럼 답이 나왔네. 올해까지 수주 100억불 달성하자고. 오케이?”
“네?”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황당.
안 부장은 그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작 2달 남짓 남았는데, 그 사이에 70억 달러나 더 수주해야 한다고? 미친 거지?
“아니,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유일조선한테 밀릴 생각 없다면서?”
“본부장님, 아무리 그래도 70억 불을 어떻게 두 달 동안 뽑아냅니까?”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그 정도 의지도 없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죽을힘을 다해서 100억 불 채우겠다는 의지로 일하라 이거야! 알겠어?”
“아, 네.”
“저가수주니 뭐니 그딴 소리 다 필요 없고, 어떻게든 수주목표 달성하자는 걸로 결론이 났으니까 각오들 해.”
본부장은 새로운 지침을 전달하며 기존보다 더 공격적인 영업을 지시했다.
우진조선은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수주가뭄으로 현금 유입량이 급감하면서 자금조달 부담이 묵직해졌기 때문이다.
“현실을 냉철히 바라봐야 해. 빅3라고 하지만, 우리는 대흥이나 순양하고 달라. 걔네는 돈이 넘쳐나는 곳이야. 돈이 없어? 그럼 계열사 동원해서 유상증자하면 그만이라고. 우리는?”
“우리 영업본부가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그거야. 우리가 계속 수주해서 선수금을 계속 받아와야 한다고. 3분기에 현금 흐름 살펴봤어?”
“그것까진 아직…….”
“영업한다는 새끼가 진짜. 그러니까 네가 부장 자리에서 썩고 있는 거야. 영업하는 놈이면 당연히 살펴봐야지!”
“죄송합니다. 오늘 중으로 다 체크하겠습니다.”
“됐고. 긴말 않겠어. 1조야, 1조! 순 현금 감소분만 1조라고. 오케이? 그거 다 채운다는 생각으로 영업 임해. 알았어?”
1시간 걸친 긴 갈굼 끝에 풀려난 안 부장은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회복기를 거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되돌아봤다.
올해 초 상황은 최악이었다. 금융위기의 바이러스들이 퍼지면서 모두 다 지갑을 닫았고, 닫을 지갑이 없는 이들은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우진조선은 선방했다.
상반기까지 그 누구도 수주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안 부장은 선주들과 친분을 이용해 수주를 받아왔다. 물론, 경쟁사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가격을 후려친 덕분이었지만.
그렇게 3분기까지 30억 달러를 수주하며 수주 세계 1위 조선사가 되기도 했다. 1년 전 이맘때 110억 달러를 수주한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흐름이 꺾인 것은 하반기부터였다. 대흥중공업과 유일조선이 협공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안 부장은 계속된 수주실패의 원인을 찾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최저가를 제시한 것이 확실한데도 수주에 실패한 것은 다른 원인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에코십? 그건 무슨 중2병 허세 걸린 놈의 네이밍이야?”
“부장님, 이게 소문이 자자합니다.”
“뭔데 소문이 자자하다는 거야?”
“환경규제 다 준수한 최초의 배라고 하던데요.”
“환경규제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거 적용하려면 10년도 더 있어야 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근데 핵심은 그게 아니라 연비라고 합니다.”
“그 말 같지도 않은 30% 절감? 지나가는 똥개가 똥 처먹다 웃을 일이야. 그게 말이 돼? 그거 죄다 사기라고 하는 거 몰라? 이 바닥에 그렇게 사기 치면서 한 몫 땡겨가는 애들이 어디 한둘이었냐 이거지.”
안 부장은 확신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스페인 누마리타임에 쳐들어가 따져 물었을 때도 연비 30% 절감은 믿지 않았다. 그건 그저 허위과장 광고일 것이라고, 허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다들 긴가민가 했는데요, 얼마 전에 스파이더탱커스 LR탱커 2척이 인도됐거든요? 나오는 말들이 심상치 않아요.”
“무슨 말이 나오는데?”
“기존 동급선에 비해서 연료 사용량이 35%까지도 줄어든다는 말이 있어요. 스파이더 쪽에서 운항 데이터 공개하면서 아주 공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란 말도 있고.”
“아니, 그거 구라라니까.”
“시험운항 데이터가 버젓이 돌아다니는데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파랑새를 찾아 그토록 헤맸지만, 파랑새 따위는 없었다.
연비 절감 30%라면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BWTS니, SOx나 NOx 등 오염물질 배출도 대폭 줄였다고 하지 않나. 현존하는 기술로 만든 가장 완벽한 선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답답한 마음에 기술연구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우진조선 기술연구소 강수호 소장입니다.
“소장님, 저 안상식입니다.”
-어, 안 부장. 어쩐 일이야?
“아, 진짜 이러다 다 죽게 생겼어요. 살게 좀 해 주십쇼.”
-무슨 일인데, 다짜고짜 살려달래?
“아니, 경쟁사들은 에코십이라면서 발주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데, 우리는 뭐 하는 겁니까?”
-여기도 지금 뺑이 치고 있다고. 아니, 시벌. 뭐 좀 할라치면 특허 다 걸려 있어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 유일조선 그 새끼들이 아주 꼼꼼하게도 해놨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연비 절감 설계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연구소에서 저번에 신형이라고 보내줬잖아?
“아 나, 진짜. 고작 10% 절감되는 거로 어디 가서 약을 팝니까? 지금 30% 넘었네 어쩌네 말 나오는 상황에서.”
-아니, 내 말을 안 들었어? 다 특허 걸려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까. 그렇다고 라이선스 계약이라도 하면 몰라. 여기가 뭐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고, 주문하면 바로 나와?
“소장님. 여기 필드 뛰는 놈들은 뒈지기 직전이라구요. 연구소에서 뭐라든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이, 안 부장. 근데 말을 듣자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안 좋아지고 말 게 어디 있습니까? 다 뒈지게 생겼는데.”
-야!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네 졸병이야? 이 새끼가 오냐오냐해주니까 겁대가리가 사라졌네? 어린놈의 새끼가 말하는 싸가지를 봐라-
“아, 진짜. 또 시작이네. 됐습니다. 말을 말죠. 그럼 끊습니다.”
뚝.
“꼰대 새끼, 할 말 없으니까 나이 타령이야.”
안 부장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분을 삭였다. 하여간 실력도 없는 영감들이 임원이라고 앉아서 월급 축내는 꼬라지란……. 분은 삭혔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확연한 기술격차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 말이다.
일단 부딪혀 보자. 대흥중공업 영업본부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 세상에! 우리 안상식 어르신께서 먼저 전화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까?
“내가 시댕, 마음속으로 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말자고.”
-네가 그냥 전화할 놈은 아니고, 또 뭔데 그래?
“형. 에코십 대체 뭐야? 진짜 30% 넘게 연비가 절감돼?”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 그냥 결론만 얘기하면 그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쫄리지? 어지간한 후려치기로는 힘들걸? 하하.
“아니, 형네는 뭐 자존심도 없어? 천하의 대흥중공업이 고작 유일조선 같은 허접이한테 라이센스를 받아?”
-야, 다 죽게 생겼는데 자존심이 웬 말이냐? 그러는 너네는 자존심이 졸라 쎄서 그렇게 가격 후리고 들어가셨어요?
“아, 됐고. 그래서 그게 뭐 좀 먹혀?”
-기다려 봐라. 아직 연말까지 2달 남았지? 긴장해야 할 것이다. 하하.
이런 개불 알탕 같으니. 개불 For you나 먹어라.
답은 하나였다. 기술격차도 우스워 보일 정도로 가격을 후려치는 것.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건조계약서를 들고 오라고 했으니, 그 방법뿐이다.
경쟁사나 언론에서 저가수주니, 외화유출이니 하면서 비난을 쏟아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골이 지끈거렸다.
멍하니 걷다 보니 안 부장은 광화문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기자 하나 불러서 미리 약을 쳐놔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선일보 이곽희 기자. 연락 안 한 지 좀 됐으니, 뭐라도 사 먹어야겠군.
-안 형, 오랜만이유.
“이 새끼 말하는 싸가지 좀 봐라.”
-바쁘니까 그 정도만 합시다. 뭔 일이에요?
“요새 뭐 기삿거리 넉넉해?”
-형, 나 사회부로 옮겼어.
“뭐? 사회부? 핫바리도 아니고 무슨 그 짬밥에 사회부냐? 뭐 사쓰마와리라도 하는 거야?”
-아, 시바. 기분 개 같으니까 말 좀 예쁘게 합시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안 부장은 오늘도 참아야 했다.
이 바닥에서 싸가지 없는 거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젠틀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였으면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물어보면서 고막에서 피 나올 정도로 내질렀을 텐데, 아쉬운 사람은 본인이었다.
“아, 그래. 뭐 원래 부서 옮기고 그러는 거잖아? 근데 자리 옮겼으면 연락이라도 해 주지 그랬냐. 좀 섭섭하네.”
-아니, 내선일보 기자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
“휴우. 뭐 그렇다 치고. 그러면 조선소 출입은 누가 하는 거야?”
-형, 내가 지금 좋은 말이 안 나올 것 같거든? 내가 남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 그쪽으로는 관심 끊었으니까 그리 알어.
“아, 그래. 수고해라.”
안 부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터져 나오는 분을 못 참고 핸드폰을 집어던지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전화통화 안 된다고 들을 갈굼을 생각하니 감정이 통제되는 인체의 신비란.
화도 못 내, 그렇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혈압이 올라 혈관이 미어터질 지경에 다다랐을 때, 유일조선 유연성 그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 부장님. 혹시 출근은 전철로 하십니까?”
처음엔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출근길에 갑자기 신호가 왔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전철역 화장실을 갔는데, 운 좋게 딱 한 자리가 있는 거예요. 냅다 들어갔는데 변기 뚜껑이 덮여있어요. 뚜껑 열 수 있겠어요?”
정말 급하지 않은 이상에야 그거 못 열지.
유연성의 말, 붙지 말고 피하란 소리인가? 안 부장은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아, 시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안 해! 시부랄. 자르든 말든 맘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