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 입찰 들어간다!
우리나라 육지 중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통영이다.
크레인 움직이는 소리, 철판 용접하는 소리, 대형 블록들이 서로 맞닿는 소리 등 체험 삶의 현장 소리가 가득한 이곳 조선소에도 봄이 스믈스믈 밀려 들어왔다.
봄이 찾아왔음은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점심을 먹기 무섭게 밀려오는 이 졸음. 내가 지금 한가하게 낮잠과 싸울 때가 아닌데! 도시상선 이 새끼들은 왜 아무 소식이 없어!
도시상선 실사팀 다녀간 지 한참인데, 뭐 이렇다저렇다 말도 없고, 그렇다고 LNG선을 발주하겠다는 얘기도 없다. 변비라도 걸린 듯 답답하기 그지없다.
시황분석팀에 쳐들어갔다. 유일조선의 국정원, CIA, 모사드. 도시상선이 왜 이리 굼뜨는지 알려주라!
“윤 과장님!”
“이사님, 오셨습니까? 뭐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이고, 얼굴에 급하다고 쓰여 있습니까?”
“어제 매운 닭발 먹고 주무신 것처럼 아주 다급해 보이십니다. 하하.”
시황분석팀장인 윤두병 과장이 내 심리상태를 아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 나 출근길 급똥 온 사람처럼 마음이 급하니까 비데 쾌변 기능이 되어주라.
“도시상선 관련 기사들 모니터링하고 있죠?”
“그럼요. 매일매일 전 세계 언론 다 뒤져서 찾고 있습니다. 브로커 리포트들도 꼼꼼히 보고 있구요.”
“그래서 LNG선 발주 소식이 안 들리는 이유가 뭡니까? 입찰참여 의향서 보낼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소식도 없고……. 이거 죽겠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보니까 동경전력이랑 LNG운송계약 체결은 확정된 것 같더라구요.”
“아니 계약 맺었으면 바로 LNG선 발주공고를 때려야지. 왜 이리 질질 끈답니까? 그럴 거면서 실사팀은 왜 보내서 사람 설레게 했는지 원.”
“하하. 좀 진정하시구요. 제가 살펴보니까, 아마 셰일가스 프로젝트 일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발 뭐라도 좋으니, 저를 진정시킬 얘기를 해 주세요.”
“이번 운송계약이 미국 햇필드 에너지의 셰일가스를 수입하는 것이거든요. 그 프로젝트의 수출 개시가 2013년 2월이에요. 아직 여유가 좀 있죠? 그래서 진행속도가 이렇게 만만디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아직 3년이나 남아서 그런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게 LNG운송 같은 경우는 해운사랑 조선사랑 짝지어서 들어가는데, 이번 건은 해운사한테 맡기는 방식이잖아요?”
“도시상선은 처음이니까, 더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 오히려 반대라고 봅니다. 굳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충분한 검토 시간을 갖는다랄까요? 뭐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춘향이가 이몽룡 기다리듯이 하염없이 기다려야겠네요. LNG선 신조선으로 발주하는 건 확실한 거죠?”
“네, 그것도 확정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동경전력이랑 햇필드 에너지랑 계약한 것이 15년짜리거든요. 그만한 계약인데 중고선 투입할 리가 없죠. 지금 나오는 얘기가 17만4000cbm급 4척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아마 척당 2억2000만 달러 내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넉넉잡아 9억 달러짜리가 되겠네요. 선가를 들으니 더 초조해집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선가 때문이라도 발주를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선가가 떨어지는 상황이잖아요? 한두 달만 버텨도 몇백만 달러씩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이러나저러나 발주가 늦어질 모양인가 보네요. 그래도 발주는 확정됐다고 볼 수 있으니까 좀 기다려 보자?”
“네네, 그렇습니다. 저희 팀에서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좋은 소식 나오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좀 기다려 보시죠.”
“과장님이 딱 정해주세요. 언제까지 맘 편히 기다리면 될지요.”
“으음. 아마 석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6월! 아마 그때쯤엔 입찰공고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기다려 보자.
돈 먹는 하마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는 시황분석팀이 그러라고 얘기하니 그래야지 뭐. 우리 시황분석팀이 허투루 일하는 건 아닐 테니까. 매년 들어가는 신문, 리포트 구독료만 어지간한 연봉 값이다. 돈값을 하고 있으리라 믿으니, 기다려 보자고.
시황분석팀에 갔다온 지 삼 일째. 에라이, 이 돈 먹는 하마 새끼들아!
“유 이사! 도시상선한테서 연락이 왔어! 입찰 들어가니까 참여 의사를 밝히라고 말이야!”
김태우 영업본부장의 하이 텐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든 생각은 시황분석팀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야겠다는 것이었다. 몇 달 걸릴 테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라며!
“한없이 늦어질 것 같더니, 결국 입찰 들어가는군요! 용량이랑 발주 척수는 어떻게 됩니까?”
“17만4000cbm급에 4척인데, 협상 과정에서 2척에 옵션 2척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하네.”
용량이랑 척수는 맞췄네. 그거라도 맞췄으니 해병대 캠프를 보내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입찰에 전념하자.
“본부장님, 이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입니다. 잘 알고 계시죠?”
“그럼! 우리 영업 쪽은 요새 일도 없고, 오로지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조건 성사시켜야지. 그리고 이걸 해야 우리가 LNG선 시장에 명함을 내밀 것 아닌가?”
“맞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것들이 이번에 수주에 성공해야 빛을 발합니다. 본부장님께서 이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주셔야 합니다.”
“우리 여정에 마침표라……. 허허. 그거 좋군. 내가 이거 수주 못 하면 사표 쓴다는 각오로 덤벼볼 테니까, 한 번 기대해 보라고.”
“기대 말고 확신을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응? 어, 그래. 무조건 수주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허허.”
말로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우리 아재들.
이번에도 보란 듯이 수주해 올 테니 아무 걱정 말란다. 그럼 난 내 사무실에 짱 박혀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면서 팔자 좋게 있으면 되겠군.
……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내가 어디 그럴 놈인가!
도시상선의 이번 LNG선 발주, 무조건 먹어야 한다. 영업본부만 뺑이 치도록 놔둬서는 안 되지. 전사적인 지원! 그래서 난 바쁠 수밖에 없다니깐.
회장실 문을 벌컥.
“회장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이 자식, 또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어디 잔치라도 열리나 보구만. 그래서 도시상선이 LNG선 발주하기로 한 거야?”
“맞습니다! 총 여섯 개 조선사에 입찰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도 그중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구요!”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라. 귀 안 먹었어, 이놈아.”
“우리 유일조선이 LNG선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는데! 어찌 속삭일 수 있겠습니까아아!”
“아휴, 저 썩을 놈. 그래서 나 보고 손 회장한테 전화라도 한 통 하라는 거냐?”
“우리 회장님, 관심법이 대단하십니다!”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긴 하다만, 그런다고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되려나? 이 바닥은 결국 경험과 돈으로 결정하는 일이란 말이지. 물론, 우리가 그 핸디캡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하는 일은 맞지만…….”
내 아버지. 참 묘한 분이셔. 평소엔 허세 작렬, 마초미 뿜뿜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냉철해진다니까.
아버지 말대로 전화 한 통 한다고 뭐 얼마나 달라지겠냐만은, 지푸라기가 보이면 일단 잡고 봐야지.
“경험과 돈! 저희한테 없는 건 경험뿐입니다. 이미 돈의 힘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응? 그건 무슨 소리야?”
“회장님께서 그동안 손 회장님과 내기 골프 치시면서 돈을 가마니째로 갖다 바쳤지 않습니까! 이제 그거 돌려받아야죠. 손 회장님도 양심이 있으면 이젠 베풀 때도 됐다고 봅니다.”
“크흠. 아니, 그건 말이야. 당연히 볼은 내가 더 잘 치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매몰차게 형님 같은 분한테 그럴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그리 알라고.”
“당연히 회장님의 실력을 믿지요! 그동안 영업하신다면서 내기 골프에서 고의로 지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그 결실을 가져올 때입니다. 손 회장님께 잘 말씀해 주세요. 압박 팍팍!”
“하긴. 이런 일엔 모두가 매달려야지. 참! 너도 잘 알아둬라.”
“뭘 말씀이십니까?”
“손 회장님이 갈치조림을 참 좋아해. 너 서울 가서 회장님 만날 일 있으면 갈치조림집 가는 거 잊지 말고.”
그건 좀…….
회장실을 나와 설계부서장 김응윤 이사 방문을 벌컥.
“이사님! 소식 들으셨죠?”
“아이고, 유 이사가 이젠 파발마 노릇을 다 하네. 허허. 회사에 통신원들 많으니까 그리 안 뛰어다녀도 되네.”
“소식 들으셨으니, 각오도 되셨죠?”
“이거 보니까 닦달하러 오셨구만? 우리 회사 저승사자라더니, 그 명성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야. 허허.”
“이젠 저승사자 취급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사짜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김 이사 말대로 닦달하러 왔지만, 눈빛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이미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데, 옆에서 라이터 켜봐야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안 그래도 김 본부장님이 이번 건 무조건 수주해야 한다고 한바탕 쏟아내고 갔으니까 염려 말아. 아주 죽이는 견적에 최고의 설계로 승부 볼 테야. 유 이사 덕에 인력이 이렇게 충원됐는데, 그거 하나 못 하면 다들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우리 김 이사님 계시니 아주 든든합니다. 저야 뭐 격려나 해 드릴 겸 왔을 뿐입니다.”
“허허. 격려를 말로만 하면 그게 격려인가? 우리 직원들 뺑이 치고 있는데 기름칠이라도 해 주면서 격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이죠! 제가 그래서 치킨이라도…….”
호기롭게 얘기했다가 아차 싶었다.
설계부 직원이 무려 850명이야. 1인 1닭이라고 쳐도 천만 원이잖아……. 내 월급은 키코 막는다고 죄다 적금으로 빠지고, 몇조 자산가라고 해도 내가 맘 편히 쓸 수 있는 돈은 없고.
“유 이사, 왜 말을 하다 말어?”
“아, 잠시만요. 금방 다시 오겠습니다.”
이럴 땐 아빠 찬스지. 아버지!
“뭐라고? 설계부에 통닭을 돌리겠다고?”
“이번 수주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곳입니다. 설계를 얼마나 아름답게 뽑아주느냐에 성패가 걸린 것이죠. 격려 차원에서 단백질 보충해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니, 근데 왜 나 보고 돈을 달라고 하는데? 너 돈 많은 거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말이야.”
“그야, 아버지께서 우리 회사의 든든한 ATM…….”
“이놈 새끼는 이제 내 등골까지 빼먹으려고 하네. 그래서 얼마면 돼?”
“딱 1장만 주시죠. 나머지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10만 원으로 되겠어? 뭐 그 정도야 회장이 한턱 내야지. 허허.”
“조금만 더 포부를 키워주시죠. 다들 회장님을 칭송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할 것입니다.”
“10만 원이 아니야? 그럼 100만 원? 허허. 이놈 새끼, 아주 제대로 뽑아먹을 생각이로구나. 허허허.”
“아버지, 조금만 더……. 호기롭게 영 하나만 더 붙여주시죠.”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실로 아름다운 욕지거리를 들으며 아빠 카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 쏟아진 욕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이번 수주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카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김 이사 방문을 벌컥.
“유 이사, 오늘따라 엄청 바쁜가 봐?”
“이사님. 이거 회장님께서 내리신 하사품입니다.”
“허허허. 이거, 먹고 죽으란 소리 아닌가!”
“설계부 직원들 배때기에 기름칠 좀 넉넉하게 해 주시죠. 회사와 우리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아쉬운 대로 견적설계랑 기본 설계팀만……. 마구 긁다 보면 제 생명이 단축될 수 있습니다.”
“역시 직원 생각하는 이는 우리 유 이사뿐이야. 내가 영업본부랑 잘 꿍짝짝해서 성과 얻어낼 테니까, 맘 편하게 먹고 있으라고. 너무 안 긁을 테니까 걱정말고.”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드리는 말씀인데, 전 진짜 격려 차원에서 온 겁니다. 압박하고 닦달하러 온 게 절대 아닙니다.”
“알지, 아주 잘 알지. 유 이사가 어디 그럴 사람인가! 허허허.”
저 눈빛은 그럴 사람이라고 확정한 눈빛인데…….
뭐든 좋다. 수주 성공했다는 소식만 가져오면 내가 동네 똥개가 된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