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 명예 게르만인 곽호신 부장(2)
“아! 부장님! 맨디젤과 다이알로그는 잘 하고 오셨습니까?”
우리 회사의 명예 게르만인 곽호신 부장의 국제전화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냈다. 마음처럼 기쁜 내용일 것이라 기대하며.
역시나.
-맨디젤 측에서 대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본사에서 정식 제안이 오는 대로 검토해서 확답을 주기로 했습니다.
“아, 그래요? 이야,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하루라도 빨리 숙소를 바꿔드려야겠습니다아!”
-하하. 이사님께서 물신양면으로 신경 써주신 덕입니다. 그러면 후속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안 그래도 좀 전에 제안서 보냈으니까 한 번만 더 닦달해 주세요. 저는 가서 악수만 할 테니, 부장님께서 기초공사 좀 잘 해주세요.”
-걱정 마시고, 여기 오실 준비나 하시죠.
“아이고, 그럼 바로 날아가겠습니다. 맥주 맛있는 집들 예약 좀 해 주세요.”
독일에 뼈를 묻게 될 곽 부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행운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는 즉시 출장을 가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니, 당장 짐 싸야겠다.
계속되는 출장. 그래도 이런 출장은 언제든 환영이다. 맨디젤이 GSOF 프로젝트, 이건 입에 잘 안 붙네. 그러니까 암모니아추진선 개발에 참여하겠단다.
험난하디 험난한 기술개발에 기술의 명가 독일, 그것도 인류사의 혁명과도 같은 디젤엔진을 개발한 맨디젤이 함께 한다고 하니, 출장 따위를 두려워할 텐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춰야하는 법이지!
기술개발. 말은 아주 좋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기술개발이다.
특히나 기초학문 기반이 약하고, 기업들이 당장 돈이 안 되는 R&D에 투자하길 싫어하는 우리나라는 더 그렇다.
쥐꼬리만 한 돈을 주고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분위기에서 연구원들은 성공확률이 낮다 싶으면 아예 착수조차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R&D는 당장 상용화 가능한, 그것도 성공확률이 아주 높은 쪽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라고 다를 건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활용하기에 앞서 R&D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했다. 기술연구소를 진짜 기술연구소가 되도록 돈을 때려 박았고, 박사급 인재들을 대거 채용했다. 회사 말아먹을 셈이냐는 아버지의 고성을 한 귀로 흘리며.
그렇게 에코십과 LNG추진선으로 대표되는 혁신을 만들어냈다. 물론, 쏟아부은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인력을 믹서기로 갈았을 정도로 들들 볶기도 했다.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죽겠다는 소리를 했지만, 죽지는 않았잖아? 난 한 번 죽어본 사람이라고. 내가 그만큼 절박했어. 월급 많이 주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라.
이제 우리 회사는 미지의 영역으로까지 손을 뻗기로 했다.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차세대 선박 개발.
첫 단추가 잘 꿰어졌다. 맨디젤이 오케이 사인을 준 건 우리의 GSOF 프로젝트가 항해를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시작했으니 이미 반이나 했다.
기쁜 마음에 어깨를 들썩이며 정한호 전무 방문을 걷어찼다.
“전무님!”
“무슨 일이야? 뭐 집 나간 며느리라도 돌아왔어?”
“저랑 같이 독일 가시죠. 맥주 원 없이 마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오호라. 맨디젤한테서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어?”
“안주는 소시지로 하시죠. 그나저나 여권 있으시죠?”
이번 출장은 정 전무와 동행이다. 매번 해외출장마다 김태우 본부장이랑 갔던 것이 좀 질릴 타이밍이었는데 아주 잘 됐지.
“맨디젤이 오케이했다니까, 제안서 답변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럼 바로 일정 조율해서 독일로 넘어가시죠.”
“허허. 맨디젤이 이러다 우리 하청업체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계약상으론 우리가 갑이고, 맨디젤이 을이긴 하죠.”
“하하. 맨디젤을 을이라고 하는 기개가 아주 멋져. 그래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하지 말어. 하룻강아지라고 욕먹어.”
“로열티로 먹고사는 맨디젤한테 도리어 로열티를 받아먹으니 이제 좀 어깨에 힘주고 다녀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협상할 때는 로열티를 좀 높여야겠습니다. 전무님, 자신 있죠?”
“아이고. 난 그냥 사진이나 찍고 올 테니까 그런 골치 아픈 일은 자네가 알아서 해.”
선박용 엔진의 절대강자 맨디젤. 혹자는 스위스 바르질라와 함께 양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원톱이다. 점유율 70%대인 맨디젤과 20%대인 바르질라를 양강이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
안 그래도 잘 나가는 맨디젤이 금융위기 이후로 더 잘 나가고 있다. 점유율이 80%대를 넘어섰을 정도이다. 그게 누구 덕? 그렇다. 바로 우리 회사 덕이다. 그 많은 발주물량에 죄다 맨디젤 엔진을 장착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젠 큰 소리 좀 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공동개발 건 협상하러 갔는데 아메리카노 안 내놓으면 막 뭐라고 해 버릴 테다.
“그래서 이번엔 독일만 찍고 바로 복귀하는 건가?”
“비싼 비행기값 내고 독일까지 갔는데, 여기저기 좀 돌아다녀야죠.”
“아이고, 나 보고 영업도 하라고 하겠네?”
“그럴 생각으로 프랑스 CMM에 찾아간다고 얘기해 놨습니다. 저번에 한 번 흔들어 놨으니, 이번에 다시 가서 우리한테 발주 안 하면 죽인다고 협박이라도 해놔야죠. 그런 협박을 할 때는 전무님께서 옆에 계셔 주셔야 효과가 만땅입니다.”
비싼 돈 들여 출장 가는데 독일만 찍고 오기는 많이 아쉽지. 프랑스 CMM을 찾아가서 다시는 중국배 안 찾도록 수갑이라도 채워놓고 올 생각이다.
“CMM이 또 발주하기로 한 거야? 그 PFM이 발주한 컨테이너선 말고 또 있어?”
“머지않아 대규모로 발주할 겁니다. 미리미리 찾아가서 약도 팔고 협박도 해놔야죠. 참! 춤과 노래는 필수입니다.”
“춤까지 춰야 해?”
“그럼요. 김태우 본부장님이 얼마나 춤을 잘 추시는지 모르시죠?”
“그놈이 그런단 말이야? 여기서는 온갖 얌전을 다 떨더니 밖에 나가서는 새는 바가지 노릇을 하나 보구만?”
“독일 출장을 김 본부장님도 같이 가면 좋겠지만, 지금 브라질에서 한참 바쁘시잖아요. 이번엔 전무님이 김 본부장님 대신 술상무 역할도 해 주셔야 합니다.”
“허허. 이거 춤은 자신이 없는데……. 태우 그놈은 왜 이때 브라질을 가서 말이야.”
암모니아추진선을 개발하니 마니 하는 바쁜 와중에도 영업본부는 돈을 벌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브라질로 영업본부 인원들이 총출동한 것도 노다지를 캐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난 발라가 40만 톤짜리 벌크선 발주하겠다고 했을 때,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 근데 그걸 진짜 해 버릴 줄이야.”
“호주가 중국에 철광석 그리 대량으로 팔아먹는데, 발라가 가만있다가는 굶어죽게 생겼잖습니까? 브라질이 호주 철광석이랑 가격 맞춘다고 해도 운송비 붙이면 경쟁이 안 되는데 별수 없죠.”
“그렇다고 40만 톤짜리를 발주해? 벌크선이 그걸 버틸지 모르겠구만. 그거 항만에 입항이나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브라질 철광석기업 발라가 중국에 철광석 팔아먹겠다고 금융위기 터지기 직전에 무려 40만 톤짜리 철광석운반선을 100척이나 발주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호주랑 경쟁하려면 한 번에 많이 실어서 내보내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였다. 그러나 다들 미쳤다고 했고, 실제로 미친 짓이었다. 금융위기 터져서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
전생과 마찬가지로 이번 생에서도 기업들의 투자 결정은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발라가 진짜로 발주를 했기 때문이었다. 1차로 19척을 발주했고, 한숨 고르다가 최근에 다시 발주를 재개했다.
“우리야 수주해서 잘 짓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수주는 가능할 것 같고?”
“영업본부에서도 희망이 보이니까 총출동하지 않았겠습니까?”
“흐음. 그래서 독일 가서는 내가 대신 춤추고 노래 불러야 한다 이거구만?”
“오늘부터 콜라텍에 가서 연습 좀 하시죠.”
정 전무의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니, 진짜로 믿는 것 같다. 독일 가서 우리 아재의 현란한 춤사위를 구경할 수 있겠군.
“그래, 뭐 까짓것! 회사를 위한 일인데 뭔들 못 하겠어? 맨디젤 가서 협상 잘 끝내고, 선주들 만나서 애교도 떨어주고! 가자고!”
그렇게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출장일을 기다리며, 목욕재계하며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면 좋겠지만, 난 그럴 형편이 되질 못 했다. 직원들을 그렇게 들들 볶아놓고, 정작 내가 니나노하고 있으면 쏟아지는 욕에 얼마나 장수할지 엄두도 안 난다.
내가 요즘 가장 들들 볶는 직원을 찾아갔다. 시황분석팀 윤두병 팀장이다. 이것저것 조사해 달라고 던져줬는데, 나를 계속 피해 다니는 것이 출장 전에 결판을 내야겠다.
“팀장님! 이제 그만 도망 다니시죠.”
“아이고, 지금 막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한 5시간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약을 팔아도 먹을 만한 약을 파셔야죠. 관장을 해도 그 정도는 안 걸리겠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알아봐 달라고 하셨던 것들이 생각 외로 조사하기 쉽지가 않네요.”
“파악한 것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제가 그거 못했다고 뭐, 잡아죽이기라도 합니까?”
“골리앗크레인에 매달릴까 봐 불안에 떨며 지냈습니다.”
나에 대한 어떤 괴소문들이 퍼지고 있는지도 조사해 보라고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온다. 다행히 결심을 굳히기 전에 윤 팀장이 조사결과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CMM 말입니다.”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 움직임이 있습니까?”
“그게 확실치가 않습니다. 브로커들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더라구요.”
“팀장님 판단은 어떠십니까?”
“머스트라인이 그렇게 치고 나오니, 발주를 안 할 수가 없죠. 그건 확실합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요. 으음.”
“빨리 얘기 안 하면 진짜 골리앗 크레인에 매달릴지도 모릅니다.”
“하하. 뜸도 들이고 그래야 극적인 효과가 배가 될 텐데, 참 아쉽네요. 아, 알겠습니다. 말씀 드릴게요. 제가 봤을 때는 CMM이 선주사 통해서 발주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 발주를 하지 않고, 선주사한테서 용선하는 식으로?”
“네, 맞습니다. 아마 직접 발주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중국쪽 입김에 영향을 받을 테니까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용히 있을 리가 없거든요.”
“오호라. 그렇다면 우리한테 발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게……. 그저 제 추측이라서요.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바닥에서 활동하면서 든든한 단골을 여럿 만들어 놨다. 무조건 우리에게 발주할 호구, 아니 친구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주할 수 없다. 해운사 몇 개 잡아놨다고 우리가 배불리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CMM이란 거만한 고객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데 공을 들였건만……. 우리에게 발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분 좋으니 윤 팀장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자, 다음.
“차세대 선박 개발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이사님, 절 그냥 골리앗 크레인에 매달아주세요. 이건 진짜 모르겠습니다. 원래 이런 일은 극비로 추진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단서가 나오는 법인데, 차세대 선박 개발은 도무지 단서가 안 나오네요.”
“IMO 환경규제가 가시화되고 있으니, 당연히 차세대 선박 개발 움직임이 있어야 정상 아닙니까?”
“그렇죠. 대흥중공업이야 항상 뒤늦게 움직이니까 빼놓고, 우진조선이나 순양중공업은 분명 뭔가 해야 하는데, 보안을 잘 유지하는지 뭐 나오는 얘기가 없네요. 혹시 조사가 미흡하다고 해서 사약을 내리실 생각이십니까?”
“흐음. 사약으로는 그라목손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단서가 안 나온다는 건 아직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것도 같은데요.”
“오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역시 긍정의 힘!”
“그럼 우리가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만 잘 끝내면! 시장을 씹어먹을 수도 있겠네요.”
뭐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초긍정으로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해진다. 잘 될 가능성이 있으니, 출장 가서 주둥이 신나게 털어주면 되지 않을까 싶네.
“부디 이번 출장에서 좋은 성과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 며칠 안 본다고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죠?”
“그것도 조금 담겨 있긴 합니다. 하하.”
윤 팀장의 진심이 담긴 송별사를 끝으로 쌓이고 쌓인 일을 다 처리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곽 부장이 얼마나 유명한 맥주집을 섭외해 놨을지 기대되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