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 치킨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상선의 꽃이자 세계 무역의 핵심은 바로 컨테이너선이다.
중요성만큼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선사들의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 금융위기 이후 무역량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경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은 도태된 자의 몰락으로 결론 난다. 머스트라인이 촉발시킨 치킨게임은 경쟁을 완화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경쟁을 가속한다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
경쟁에 지친 누군가가 죽어야 끝나는 이 치킨게임. 머스트라인은 국제해운이 희생양이 되길 바라고 있고, 나는 그걸 막아내야 한다.
막자. 그래야 내가 큰 재미를 볼 수 있고, 우리나라 경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머스트라인이 새로 결성한 얼라이언스에 국제해운이 합류하면 된다. 국제해운의 파산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곳이 머스트라인이라 쉽지 않겠지만, 까짓것 부딪혀 보는 거지. 하던 대로 막 내질러 보자고.
“머스트라인 계산으로는 CMM 얼라이언스의 점유율이 어떤 경우라도 30%가 넘지 않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맞습니까?”
머스트라인의 라스 울리히 사장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럼요. 우리가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우리가 아무리 못해도 거기보다 점유율이 더 높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를 야기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에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죠.”
“흐음. 그렇군요.”
“왜요? 의견을 달리합니까? 미스터 유의 말이라면 귀담아들을 자세가 돼 있지만, 이번 건은 제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
3등 CMM이 추진하는 얼라이언스의 점유율은 28% 정도로 머스트라인보다 딸리는 건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머스트라인의 계산이 맞다. 그러나 새로운 선사를 추가한다면?
“울 사장님이 보기에 5위 에버라인은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에버라인이요? 거기야 일본 선사들의 얼라이언스로 가겠죠. 끽해야 1만3,000TEU급만 운용하는 곳이 가봐야 어디로 가겠습니까? 설마 CMM 쪽에 붙는단 소리는 안 하겠죠?”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걸로 보시는 거군요?”
“당연하죠. 에버라인은 메가 컨테이너선에 관심 없다고 밝혔고, 알다시피 거긴 대만 선사입니다. 중국 선사들이랑 손잡을 리가 없어요. 고로 에버라인이 CMM 얼라이언스에 합류할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손잡는다면요?”
“응? 그 확신에 찬 눈빛은 뭡니까? 또다시 신통력을 발휘하는 겁니까?”
“제가 우리 울 사장님 보겠다고 여기까지 날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주할 것 다 했고, 더 발주하겠다고 해도 못 받을 상황인데도 찾아온 이유 말입니다.”
울리히 사장의 자신만만함이 한풀 꺾였다. 내 예언과 신통력을 여러 차례 경험해 본 사람이라 감히 한 귀로 흘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흐음……. 그래서 에버라인이 CMM 쪽에 붙는다? 그것까지 계산하면 점유율 35%가 나온다?”
“빙고!”
대만 선사인 에버라인. 한때 세계 1위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의 컨테이너선사이다.
메가 컨테이너선은 업계 공멸을 부른다며 절대 발주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만큼 새로운 얼라이언스 체제엔 끼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재편될 얼라이언스는 메가 컨테이너선 확보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앞에 신념 지키기가 쉬운 일이던가.
절대 발주하지 않겠다던 에버라인은 머지않아 메가 컨테이너선을 발주할 것이고, 그걸 바탕으로 CMM의 얼라이언스에 들어가게 된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내후년쯤이지만, 현상이 2년 정도 앞당겨지고 있으니 아마 조만간일 것이다.
참. 에버라인의 메가 컨테이너선이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돼 길막을 해버린 사건도 있는데, 그건 얘기 안 해야지.
“미스터 유, 그대가 그리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니……. 이거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에버라인이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한다는 정보는 어디서 얻은 겁니까?”
“그쪽 못지않게 이쪽 경쟁도 장난 아닙니다. 배 한 척이라도 더 수주하려고 온갖 곳을 쑤시고 다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구요.”
“우리가 수주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대흥중공업에 발주할 모양입니다. 에버라인이 원래 대흥중공업이랑 친분이 좀 있지 않습니까?”
“대흥중공업에서 정보를 얻었다? 그거 믿어도 되는 정보입니까?”
“이보세요. 제가 대흥중공업 오너의 사위가 될 사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게 또 그렇게 연결되는 겁니까?”
유선아, 미안해.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조상도 팔고 처가도 팔고, 뭐 그래. 이해해주라.
컨테이너선사들의 치킨게임은 점유율 싸움이나 다름없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점유율로 운임 후려치기를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점유율은 컨테이너선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는데, 그건 다른 말로 운영하는 노선이 많다는 의미이다. 머스트라인이 그걸로 승부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더 높은 점유율을 들고 나오면 환장하겠지.
울리히 사장 얼굴에서 걱정과 근심이 살짝 엿보였다.
“흐음. 에버라인이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CMM 얼라이언스에 들어간다는 것도 가능성이 높겠군요.”
“가능성이 높은 정도가 아니라, 확정이라니까요. 제 말 믿어서 손해 본 적 있습니까?”
“없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겁니까?”
“MSI와 UAMC로도 안 되면, 새로운 파트너를 구해야죠. 점유율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될 일 아닙니까?”
“새로운 파트너? 20위까지는 다 얼라이언스가 정해졌고, 그 밑에 허접들은 끼워줄 필요도 없죠. 파트너로 삼을 선사가 없는데, 누굴 말하는 겁니까?”
“세계 8위 선사는 왜 무시하십니까?”
“국제해운이요? 하하하.”
그래, 많이 웃어둬라. 이따 작별 인사할 때는 국제해운과 얼라이언스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하게 될 테니.
“국제해운이 합류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거긴 곧 망할 선사 아닙니까? 돈 없어서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도 못하는 판인데…….”
“2만2,000TEU급으로 20척을 발주하겠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LNG추진선으로.”
“하하. 농담이 지나치군요. 코리안의 애국심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국제해운이 우리나라 회사라고 해서 구라 치는 것 같습니까? 이 진지한 눈빛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허허. 거참. 뭡니까?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는 겁니까? 국제해운은 살아날 수가 없어요. 누군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왜! 미스터 유는 아니라고 하는 겁니까?”
“국제해운이 메가 컨테이너선 확보를 준비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냐? 그 배를 우리가 건조할 것이니까요. 아시다시피 LNG추진 컨테이너선은 우리 주특기입니다.”
울리히 사장의 확고함이 꽤나 누그러졌다. 그러나 표정에서는 여전히 부정하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미스터 유. 그거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한다니요?”
“국제해운은 메가 컨테이너선, 그것도 20척이나 확보할 자금력이 없어요. 냉큼 수주했다가 국제해운 망해버리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겁니다.”
“울 사장님이 얼라이언스에 받아들여 주면 망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기업이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했고, 미국의 사모펀드로부터도 대규모 투자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래도 망하리라 보십니까?”
국제해운이 망해선 안 될 또 다른 이유. 그건 내가 이스턴캐피탈을 통해 국제해운의 회사채를 꽤나 사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안 망하면 연 7%짜리 달달한 수익이 보장되지만, 망하면 휴지조각 된다고.
울리히 사장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치이지만, 그래도 처음의 자신만만하면서도 완강한 태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야부리를 털면 넘어올 것 같다.
“미스터 유! 대체 코리아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니, 실적이나 부채비율을 보면 국제해운은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회사입니다. 근데 안 망한다구요?”
“말씀드렸잖습니까? 모기업에서 유상증자 때리기로 했고, 미국계 사모펀드에서도 투자하기로 했다고. 거기에 메가 컨테이너선 20척까지. 이제 얼라이언스 가입만 완료하면 망할 리가 없습니다.”
“하하. 그 말은 얼라이언스 못 들어가면 망한다는 소리 아닙니까? 국제해운이 망해버리면 유일조선은 메가 컨테이너선 건조하다가 쪽박 찰 수 있으니, 여기까지 와서 얼라이언스 가입을 설득해 보겠다?”
예리한 새끼, 정확히 알고 있네.
알고 있는데도 얼라이언스 가입에 머뭇거린다면? 실패한 적 없는 내 방식을 꺼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울 사장님은 국제해운이 그쪽 얼라이언스에 들어가는 게 싫습니까? CMM 얼라이언스가 점유율이 더 높은데도?”
“미스터 유의 말대로 에버라인이 CMM 얼라이언스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아직 확정된 것이 없죠.”
“오호라. 그래서 제 말을 못 믿겠다? 그럼 별수 없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간다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밥도 안 먹고 그냥 가겠다고요? 왜 또 그럽니까? 무슨 협박을 하려고…….”
“머스트라인 잘 되기만을 바라던 사람의 말도 못 믿는데, 어찌 겸상을 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프랑스나 들릴 생각입니다.”
“프랑스는 왜요?”
“CMM한테 국제해운 받아주라고 무릎 꿇고 사정해야죠. 뭐, 잘된 일이죠. CMM도 우리한테 LNG추진 컨테이너선 발주했으니까, 국제해운이랑 궁합이 잘 맞겠죠. 에버라인에 국제해운까지 들어가면……. 이야, 아주 시장을 씹어먹겠네요.”
“하하하.”
울리히 사장의 웃음에서 비즈니스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저건 찐웃음이다.
“이거 또 당했습니다. 하하.”
“뭘 또 당해요?”
“미스터 유, 그대의 협박질에 매번 당해놓고 또 이렇게 당한단 말이죠. 이러다가 미스터 유의 호구라고 소문나겠어요. 하하.”
“그럼 국제해운 받아주실 겁니까?”
절레절레.
뭐야, 이 새끼. 이랬다저랬다.
“미스터 유의 말이라면 인어공주가 코리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이거군요?”
“그렇죠. 우리 얼라이언스의 출범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섣부르게 결정하고 싶지 않군요. 에버라인이 CMM 얼라이언스에 합류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와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요?”
“국제해운이 메가 컨테이너선 20척 확보를 확정해야 합니다. 그럼 국제해운의 가입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뭐, 그 전에라도 협상팀을 보내는 것까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얘기라도 들어보죠.”
“확실하죠?”
“제가 미스터 유처럼 구라치는 사람입니까? 하하.”
“좋습니다. 이제 악수하고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말을 많이 했더니 배고파 죽겠습니다.”
“하하. 제가 죽이는 곳으로 예약 잡아놨습니다. 제대로 즐겨봅시다.”
일단 물길은 만들어 놨다. 그 물길에 물이 흐르게 만드는 건 국제해운과 머스트라인이 할 일이지 싶다.
바로 정원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이 새끼는 왜 또 전화를 안 받아?
-여, 여보세요?
“형님!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주무십니까?”
-연성이냐? 아, 이 새끼. 이 새벽에 전화질이냐.
급한 마음에 시차를 생각 못했네. 단잠을 깨워서 미안한데, 좋은 소식 전해줄 테니까 참고 들어.
“형님! 머스트라인이 오케이 사인 내렸습니다.”
-뭐? 정말이야? 얼라이언스 가입 받아준대?
“그건 국제해운에서 할 일이죠. 협상 테이블 차리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까, 최고 전문가들로 팀 꾸려놓으세요.”
-이야, 이 새끼 이거 진짜 꾼이네? 이거 잠이 다 깬다야. 하하.
“우린 깜보 아닙니까? 이렇게 밥상 잘 차려놨는데 엎어버리면 안 됩니다. 아셨죠?”
-그걸 말이라고! 하하. 고생 많았다야. 그래서 언제 귀국이야? 고기 대접 한 번 제대로 해야지.
“공짜로 일한 거 아닙니다. 저 몸값 비싼 사람이니까 인건비는 확실하게 챙겨주셔야 합니다.”
-오케바리! 내가 대흥중공업 지분 최대한 모아볼게.
“메가 컨테이너선 20척도…….”
-알았어, 인마. 그건 차차 얘기하자고.
차차 얘기하자고? 이 새끼 이거 아직 배가 덜 고팠네?
욱할 뻔했지만, 잘 참아냈다. 국제해운 두고두고 빨아먹으려면 비위 맞춰줘야지. 남의 돈 빼먹기가 이리 힘든 일이다.
국제해운 살리기 1차 관문은 잘 넘긴 것 같다. 최종관문은 국제해운이 진짜 정상화되고, 머스트라인 얼라이언스 가입을 확정하는 것일 테다. 늘 하던 대로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좋은 결론이 나오겠지.
결론 나올 때까지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미뤄둔 일을 끝내야겠다. 이제 슬슬 순양그룹에서 안달이 났을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