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34)
34화 – 미친 짓 한 번 해 보자
수비 준비가 끝났으면 공격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1위로 가는 길, 수비보다는 공격이 더 중요하다.
키코만 잘 막아내면 회사가 망하진 않을 테니, 이젠 과감한 투자로 빅3 따라잡아야지!
“자, 키코는 그렇게 결론 났으니까 강 전무가 마무리 잘 하고. 시간 너무 오래 지났으니까 다음 발제로 바로 넘어가지. 유 실장, 발표해.”
이젠 조선소 확장계획을 박수로 추인 받을 때다.
전생에서는 총 3단계에 걸쳐서 조선소를 확장하기로 계획했었다. 3단계까지 완료되면 빅3 중 하나인 순양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버금가는 규모가 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금융위기에 처맞기 전까지는.
2단계 확장이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 타이슨 핵주먹 한 대 맞으면서, 3단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나가리 됐다.
내가 두 달 넘게 붙잡고 만든 계획은 전생에 세웠던 3단계 확장까지 미리 끌어다 한 방에 뽑아버리겠다는 것이다. 2년 간 총 5천억 원을 쏟아붓는 야심찬 계획.
솔직히 이건 모르겠다. 말 그대로 치킨게임 들어가자는 거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빅3를 따라잡겠다는 중위권 조선사들은 중국에, 필리핀에 대형 조선소 짓겠다고 나섰고, 한려수도와 음악의 도시 통영을 선박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난리다.
빅3라고 가만히 있겠나. 대흥중공업은 2조 정도 들여서 군산에 대형 조선소 세울 계획이고, 우진조선과 순양중공업도 대형 플로팅 도크와 해상 크레인 추가 도입을 결정했다.
솔직히 빅3 말고는 하나도 안 무섭다. 죄다 망할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키코 욕만 했는데, 좋은 일도 하는구만. 경쟁사들 싹 끌어안고 남해로 들어갈 고마운 녀석 같으니.
내 걱정은 오로지 빅3뿐이다.
조 단위 돈도 우습게 끌어올 수 있고, 연구인력도 압록강 넘는 중공군처럼 많은 그놈들과 맞짱 떠서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회의 참석자들의 태클은 다른 방향으로 들어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 좋은데, 우리가 그만한 투자를 할 여력이 있습니까? 말이 5000억이지, 실제 공사 들어가면 돈 훨씬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어휴.”
“투자자금 마련이야, 계획이 결정되면 제가 어떻게든 해 봐야죠. 그게 제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돈이 있냐는 태클에 어머니가 철벽방어에 나섰다. 돈 마련할 뾰족한 수가 없을 텐데도 자신 있게 얘기하는 우리 어머니! 이렇게 아들 기를 살려주시네.
돈? 미안하지만, 1년 만 어떻게 버텨보자. 딱 1년 후엔 미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따끈따끈한 돈이 쏟아질 테니까. 그 얘기를 할 수 없으니 이 악물고 버텨보자는 소리만 해 보자고.
“올해는 굉장히 힘들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초긴축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내년엔 인도되는 선박이 많아서 자금 사정이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성군과 통영시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지자체 지원? 그거 립서비스 아닙니까? 끽해야 산단 개발계획 변경하는 거나 실시계획 승인해 주는 거 좀 빨리 처리해 주는 것 말고 더 있습니까?”
김 본부장이 공만 잡으면 태클로 드리블을 막는다. 저번 단독회담에서 태클 걸겠다고 예고했으니 각오는 했다.
근데 태클 들어오는 발길이 매섭다. 발바닥이 보일 정돈데? 김 본부장!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우리 회사 빅4로 만들겠다는데, 이러면 안 되지!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이게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만, 저희가 원래 국제중공업 마산조선소 부지를 매입할 계획이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 똥밭을 사기로 했었다고? 아니, 그걸 매입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허허, 거 참.”
웅성웅성.
아버지는 딴청을 피운다. 거 봐요. 그거 사면 안 된다니까요. 혹해서 비싸게 샀다가 한 번도 안 쓰고 헐값에 당근나라에 올릴 뻔 했다니깐.
“그런데 그 계획을 철회하고 여기에 더 투자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회장님, 그렇지요?”
“어, 어. 으흠.”
“저희가 마산조선소 매입하면 그만큼 대출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걸 포기하고, 통영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한 만큼 통영시에서도 최대한 대출을 알선해 주기로 했습니다. 빠듯한 건 마찬가지지만, 여기 계신 임원분들께서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면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일은 유 실장이 저지르고, 수습은 우리 보고 하란 소리네? 하하.”
정 상무가 회의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로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그러나 김 본부장의 일그러진 얼굴은 쉬이 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유 실장, 이거 내가 자꾸 트집 잡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아닙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아까 키코 얘기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공급 과잉이 두드러지고 있어. 이 타이밍에 조선소를 대대적으로 확장한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
도크가 생긴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한 정 상무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본부장은 자기가 잘 납득시킬 테니까 걱정 말라고 큰 소리 치더니, 돌하르방처럼 웃고만 있네. 가히 통영의 미소라 할지니라.
돌하르방에게 아무 언질도 못 받은 것처럼 나오는 본부장을 이 자리에서 설득시켜야 한다. 소설 한 편 거하게 써야겠구만.
“본부장님, FGSS라고 들어보셨습니까?”
“FGSS?”
“네, 퓨얼 가스 서플라이 시스템이라고 해서 LNG를 연료로 하는 엔진에 가스를 공급하는 시스템입니다. 육상용 LNG엔진을 선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죠. 빅3나 엔진메이커들이 연구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나?”
그거 연구 들어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아무 말 대잔치는 아니다.
우리나라 조선이 세계 짱이지만, 전혀 손을 못 대는 분야가 있다. 배의 핵심 오브 핵심인 메인 엔진, 그 중에서도 앙꼬라 할 수 있는 대형저속엔진이 그렇다.
유럽회사 2곳의 엔진만이 배에 들어간다. 왜? 선주들이 그것만 요구하니까. 그만큼 확실하기도 하고, 카르텔이 바늘 찌를 곳 하나 없을 정도로 탄탄하기 때문이다.
“빅3도 그렇고, 엔진 메이커도 그렇고, 대형저속엔진 개발이 어렵겠다 싶으니까 부속품을 개발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것이죠. 그 일환으로 FGSS란 것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구요.”
“그러니까 가스엔진 나오는 거랑 야드 확장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데? 가스엔진이 새로운 것도 아니잖아?”
“가스로 움직이는 선박이야 있죠. 그러나 끽해야 몇천톤짜리 작은 배에 불과합니다. 지금 맨디젤이나 빅3, 엔진메이커들이 달려들고 있는 건 바로 대형선입니다. 대형선도 앞으로는 벙커씨유가 아니라 LNG로 움직인다는 얘기입니다.”
“LNG선이야 도크가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자네 말은 LNG를 연료로 하는 대형선이 나오니까 그것을 위해서라도 도크가 있어야 한다?”
빙고!
아마 내후년쯤일 것이다.
우진조선이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FGSS 특허를 받는데 성공했다. 그걸로 로열티 짭짤하게 받아먹으면서 재미를 봤고, 경쟁자들은 특허가 무효라며 소송도 걸고 난리도 아니었다.
연간 10조원의 가치를 가진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다들 눈 돌아갈 수밖에 없지.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니까. 바로 가스로 움직이는 대형선 말이다.
글로벌 넘버원 엔진사인 맨디젤이 가스를 연료로 하는 2행정대형저속 엔진을 개발했고, 그 엔진은 우진조선이 개발한 FGSS를 붙여야 제대로 돌아갔다.
우연치곤 운이 아주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맨디젤이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LNG추진선은 대세가 됐다. 게임체인저니 뭐니 아주 난리였지.
선박이 지구온난화 주범 중 하나로 꼽히면서 더러운 벙커씨유 그만 쓰라는 환경규제가 힘을 얻었고, 정유업계도 돈 안 되고 욕만 먹는 벙커씨유 생산량을 줄였다. 때마침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게임 끝.
자, 이제 막 떠들어 볼까나.
“결국 빅3가 이 시장의 키포인트를 가스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LNG 물동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고, 그에 발맞춰 LNG추진선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렇지. 이젠 대형선도 가스로 움직이는 시대가 올 것이야. 그건 다른 말로 대형선도 환경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지!”
정 상무 추임새 좋고.
“네, 맞습니다. LNG추진선이 대세가 될 텐데, 문제는 가격이죠. 결국은 경제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일 텐데, 저는 이 점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회사 들어온 지 반년도 안 된 놈의 구라 좀 들어보라지. 후후.
“답은 선박의 초대형화입니다.”
“초대형화?”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카타르 LNG선을 보면 21만CBM급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상선도 대형화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커져야 환경규제와 경제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대형선의 기준이 제각각 아닌가?”
“작년에 인도된 컨테이너선 엠마머스트가 1.5만TEU급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전 이것보다 더 큰 배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5만TEU급보다 더 큰 배가 나올 것이라고? 허허.”
김 본부장이 스프에 밥 말아먹는 소리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 믿기지요? 앞으로 2만TEU짜리도 나오고, 40만톤짜리도 나오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LNG추진이야 개조만 하면 되니까 일단 배를 키우는 방향으로 시장이 돌아가지 않을까, 그게 제 고민의 결과입니다.”
“뭐 그럴싸하긴 한데, 그렇게 큰 배가 가능할지 모르겠군.”
“브라질 발레가 40만톤짜리 벌크선을 확보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초대형선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지요!”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웅성웅성.
발레가 40만톤짜리를 발주한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물론 거짓말이죠. 그 무지막지한 배가 이 세상에 언급되기 시작한 게 내년부터니까.
팩트와 구라를 적절하게 조합한 선동에 다들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김 본부장 빼고는 다 내 말에 동조하며 불끈거리는 의지를 다독이기 바빴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가 망할 것이란 생각은 1그램도 안 했을 테니까, 잔치 한 번 크게 벌려보고 싶겠지.
“좋습니다. 어차피 육상건조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도크가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리스크가 크다 이 말입니다. 이제 막 탱커 만들고 있는데, 대형선 건조? 그것뿐입니까? 당장 빅3랑 경쟁을 해야-”
“자자, 김 본부장. 생산 쪽은 내가 확실하게 잡을 테니까, 자네는 걱정 그 정도로 하고 수주나 많이 받아오셔. 우리가 처음 유일조선 세울 때 주변에서 얼마나 말들이 많았는지 아나? 그걸 다 이겨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지.”
정 상무가 창업 멤버인양 대못질에 나섰다. 내가 알기론 회사 세우고 3년 있다가 온 걸로 아는데…….
다들 김 본부장을 쳐다본다. 수주만 해 오면 건조는 걱정 말라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들이다. 모두가 예라고 하면 예라고 해야 제맛이지.
“이거 뭐 15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입니다. 허허.”
1994년이었을 것이다. 순양중공업이 세계 최대인 3도크를 준공한 해 말이다. 빅3의 대규모 설비 투자가 절정에 달했을 시기였다.
그 때도 다들 미쳤다고 했다. 설계와 용접이 세계 최고인 일본을 무슨 수로 따라잡느냐는 패배주의적 인식이었겠지. 그러나 이 바닥은 왕 회장의 ‘해 봤어?’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었다.
미쳤다는 대규모 투자는 일본의 뻘짓으로 신의 한수가 됐고, 우리나라 조선은 그렇게 세계 1위가 됐다. 김 본부장은 그 때를 떠올리며 이 미친 짓이 미친 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그렇지! 우리도 그 때 빅3들처럼 미친 짓 한 번 해 보자 이거지!”
“자자, 제가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남들처럼 따라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법입니다. 과감할 땐 과감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본부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상무의 샤우팅에 이어 아버지가 점잖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아버지는 내 계획이 아주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표정만 봐도 그렇다.
당신 딴엔 과감하겠다고 900톤급 골리앗 크레인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아들은 그게 과감이면 홍 감독의 불륜도 로맨스라며 코웃음을 쳐서 그런가?
간에 기별이라도 가려면 도크 정도는 파 줘야지요! 내 눈빛발사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뭐, 저한테 결정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허허.”
“본부장님이 제일 반대를 하시니 그렇지요. 우리 유 실장 말이 허황되게 들리긴 해도 패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그간 갈고 닦은 기량으로 뒷받침해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아이고,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허허.”
김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크 한 번 시원하게 파 봅시다!
아버지가 회의가 길어져서 몹시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더 할 얘기 있습니까? 없으면 이대로 회의 끝냅시다. 유 실장은 확장계획 차질 없이 추진해. 승인 받는데만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서두르라고.”
“넵!”
“그리고 정 상무는 선종, 선형 늘리는데 집중하고. 비싼 돈 들여서 도크 파놓고 제사 지낼 생각 아니라면 말이야.”
“걱정 마시죠. 안 그래도 지금 설계팀 닦달하고 있으니까. 해 넘어가기 전에 깜짝 놀랄 결과물을 내놓겠습니다. 하하.”
“하여간 말은. 본부장님은 야드 확장과 설계 확보에 맞춰 영업전략 잘 세워주길 바랍니다.”
“곳간이 마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일사불란한 지시에 돌아오는 대답도 시원시원했다. 내가 저질러놓고 우리 아재들이 책임져주는 이 회사.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군.
더도 말고 딱 10년만 이렇게 가자. 당연히 망할 일도 없을 것이고, 빅3를 제치고 조선업계 넘버원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