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36
나는 작가다 136화
136화
선아 누님과 만나기로 한 점심시간.
‘글루밍런던’이라는 영국식 가정식을 하는 가게로 초대했다.
테이블이 하나뿐이지만, 원테이블은 아니었다.
그냥 손님이 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앉히는 곳인데, 이곳 사장님이 내 팬이라서 런치 타임만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테니 날 위해 통째로 내달라고 했다.
로맨스 작가들과 계약할 때 데려가기도 했으며, 이 주변에서 내랑 관계가 있는 업체들 중 여성분들을 대접해야 할 때 종종 왔다.
대부분 나랑 오고 싶어 했다.
뭐, 내가 잘나서 인기가 많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아니, 잘난 건 맞나?
하지만 방금 언급한 여성들은 내가 좋아서라기보단 이 가게에서 이리 먹기 어려워서였다.
나랑 오면 아예 전세 내듯 빌려서 우리끼리만 먹을 수 있지만, 평상시 일반 손님으로 올 경우 다른 손님과의 합석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여긴 예약제도 아니고 오면 오는 대로 받았으니까.
정말 예약제 받는 건 나나 몇몇 단골 말곤 해주질 않았다.
그래서 여자분들이 좋아했는데, 선아 누님을 대접하는 건 처음이군.
딸랑!
“여, 이 작가.”
가게에 미리 와서 작품을 위해서 정리하는 노트를 보던 중 누군가 문 열고 들어와서 날 불렀다.
이 작가라고 부를 만한 여자는 선아 누님밖에 없었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선아 누님 말고도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만 오는 줄 알았더니 생각해 보니 내가 말했던 드라마들 모두 작가가 둘이었던 게 기억났다.
‘항상 둘이 작업했지, 그러고 보니.’
“오셨습니까, 누님?”
“어, 이쪽은 너 정말 보고 싶어 했던 작가들이야. 인사해.”
“반갑습니다, 이준경입니다.”
초면에 대체로 악수를 먼저 내밀었는데, 둘이나 있으니 누구에게 먼저 하기도 그래서 간단히 묵례로 대체했다.
두 작가 역시 내게 간단히 묵례로 화답했다.
“반갑습니다. 조영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 곽상훈입니다. 이준경 작가님, 팬입니다.”
“아니, 이 친구가? 저도 팬입니다.”
“나이 잔뜩 먹은 남정네 둘이서 잘한다. 어린 남자애 두고 사랑싸움하니?”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선아 누님은 참 거침없다.
날 두고 서로 팬이라는 두 작가를 단숨에 게이로 만들면서까지 까버리시다니.
선아 누님의 한마디에 조영훈 작가와 곽상훈 작가가 모두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들에게 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아 누님이 참 거침없으시죠? 다들 앉으시죠.”
“아, 옙!”
그렇게 모두 착석했다.
자리에 앉은 뒤 선아 누님이 가게 내부를 한 번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가게 분위기 좋다? 너도 남자 좋아하니?”
두 작가에 모자라 나까지 한 방에 보내려고 하는 선아 누님의 농담을 듣곤 사레가 들렸다.
“쿨럭! 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내가 데려올 작가들이 남자 둘이라곤 생각 못했던 거야?”
“그야 전 모르죠. 이름만 알던 분들이니까요.”
절대 선아 누님이 데려올 두 작가들을 위해서 잡은 게 아니라고 밝히자 그녀가 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날 위해서 준비한 거니?”
“아무렴요. 이번에 강서윤 씨 섭외도 해주셨는데, 이 정돈 대접을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윤이 섭외한 것치고, 한 끼면 약하지 않니?”
강서윤 섭외를 빌미로 또 한 번 대접하라는 걸까?
거기에 대해서 난 딱 선을 그었다.
“그래서 누님께서 부탁하셔 가지고 이분들과 뵙기로 한 거지 않습니까?”
“녀석, 한마디를 안 져요. 그냥 한 번 더 대접한다고 하면 되지.”
매정하단 듯이 쳐다보는 선아 누님.
그녀에게 난 오히려 섭섭하단 듯이 반응했다.
“에이, 누님! 누님이 연락하시고 오시면 제가 언제든 대접하죠.”
“그래?”
“예.”
“그럼 우리 집 근처에 괜찮은 가게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한 번 더 사라.”
자기 동네로 와서 사란 말에 난 그건 또 아니라며 양팔을 교차시켰다.
“에이, 그건 아니죠.”
“뭐가?”
“누님이 오셨으니까 제가 대접하는 거니, 당연히…….”
이어질 내 말을 눈치챈 선아 누님이 치고 들어왔다.
“네가 오니까 내가 대접하라고?”
“네.”
“하여간 한마디를 안 져요. 그럼 한 번 놀러와. 내가 대접할게. 어차피 서윤이도 한 번 봐야 하잖아?”
배우 강서윤과의 미팅을 어떻게든 자기 동네에서 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죠?”
아마도 내 부탁이긴 했으나 중간에서 연결고리가 되어 부탁해 준 건 그녀였으니 강서윤에게도 한 끼 대접하려는 것 같았다.
선아 누님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어떤 가게를 갈 건지 밝혔다.
“그럼 서윤이랑 셋이 먹게 우리 집 근처로 와라. 제주도 은갈치 구이 정말 튼실한 놈들로 해주는데 있는데, 거기나 가자.”
선아 누님이 사는 동네가 한남동이었는데, 거기서 제주도 은갈치 구이를 정말 크게 하는 걸로 유명한 가게라면 나도 잘 알았다.
다른 곳일 수도 있겠으나 혹시 거기가 맞는지 확인했다.
“아, 거기 압니다. 한남동, ‘제주식탁’ 말씀하시는 거죠?”
“뭐야, 이미 가봤었어?”
꽤나 야심차게 준비하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자 김이 빠진 듯한 반응이다.
거기에 대해서 난 흐뭇한 미소를 내비췄다.
이래 봬도 ‘글 쓰는 미식가’였으니까.
“암요, 가봤죠.”
“그럼 굳이 위치 안 알려줘도 되겠네.”
“넵.”
“그럼 서윤이랑 볼 날짜만 정해지면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배우 강서윤과의 미팅 자리를 약속 잡은 선아 누님이 데려온 두 작가에게 미안하단 듯이 말했다.
“호호, 내가 너무 준경이랑만 이야기했나? 정작 이 자리를 원했던 건 너흰데?”
“아닙니다.”
“맞습니다. 누님께서 이야기하시는데, 다 끝나고 저희가 이야기를 꺼내야죠.”
“다 끝났으니 이제 이야기 나눠봐. 난 식사나 할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자리 나와 준 쟤한테 해야지.”
그렇게 선아 누님은 두 작가와 나의 자리를 마련해 줬고, 나한테 감사하란 말에 대해 겸손하게 대응했다.
“에이, 누님한테 감사하셔야 하는 게 맞죠. 누님 아니었으면 이런 자리가 마련 안 됐을 테니까.”
“하여간 이야기들 나눠봐.”
“옙!”
그렇게 선아 누님은 식사를 하고, 난 드라마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히터’란 형사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망나니 강력계 여자 팀장이 검사 남자친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면 사람도 되고, 자기 여동생을 살해한 범인에게 복수까지 하는 드라마였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히터.
영어로 하면 ‘Heater’.
가열을 목적으로 하는 장치로서, 망나니 주인공이 인간미로 심장을 예열하고 복수를 위해서 뜨거워지는 드라마였다.
여자 주인공으로 드라마 ‘선덕’에서 ‘미실’ 역할을 맞은 조현영이 캐스팅됐다고 했다.
‘조현영과의 인연이 여기서부터 있었나 보구나.’
하지만 조현영과의 협업으로 대박을 친 드라마는 ‘선덕’이었다.
‘히터는 평범했나?’
솔직히 이 작가들의 드라마인 히터는 내 기억 속에서 그리 큰 비중을 갖질 못했다.
대박을 친 드라마라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이런 대단한 작가들의 드라마인데 대박을 치지 못했다?
그럼 답은 하나다.
‘상대 작품이 뛰어났단 건데…….’
거기서 난 히터의 방영 시기가 어느 정도일지 물었고, 그러자 당시에 히트작이었던 드라마가 떠올랐다.
‘아, 내 여자의 남자랑 싸웠구나.’
내 여자의 남자.
2007년 드라마로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
오죽했으면 당시 저녁 예능 프로그램 중 잘나가던 ‘한글플러스’의 시청률까지 영향을 줘버렸다.
당시 저녁 예능 프로그램 중 1등은 ‘한글플러스’였는데, ‘내 여자의 남자’란 드라마가 잘되면서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다음 예능 프로그램을 봐서 시청률이 떨어졌단 걸 잘 알았다.
이런 걸 기억하는 걸 보며 새삼 내가 편집자로서 정말 열심히 일했단 건 떠올렸다.
‘후, 강현우 작가의 프로듀서 원고를 봐주면서 진짜 별 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정말 오랜만에 몇 년 간 내 원고에만 집중하다가 이런 자리가 마련돼서 회귀하기 전 편집자였던 내 인생을 떠올리게 됐다.
하기야 그런 작품들 덕분에 잔지식이 많아져서 회귀한 후인 이번 생에서 많은 도움을 봤다.
만약 내가 평범한 회사원이었더라면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
‘어쨌거나 ‘내 여자의 남자’와 싸우면 히트작이 되긴 어렵단 건데…….’
거기서 난 한 가지 제안을 꺼내기로 했다.
강제로 방영 시기를 늦추자곤 할 수 없으니 현재 내 입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제가 드라마 대본을 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작가님들에겐 제가 쓴 극작가 원고를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내 물음에 작가가 둘이라 그런지 서로 하나씩 다른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 대본을 보신다고요?”
“작가님의 극작가 원고를 봐달라고요?”
이것 참 난감하다.
질문이 하나였으면 바로 답할 텐데, 둘이서 서로 다른 질문을 던져 버리니 어디부터 답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 내 난감함을 읽곤 두 작가가 알아서 조율해 줬다.
“일단 드라마 대본을 보신다는 것부터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러시죠. 어차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긴 합니다. 제가 몇 편의 영화랑 불꽃새를 찍으면서 극작가물을 쓰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방송국 관계자분들에게 이런, 저런 대본들을 받으면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흠, 그렇군요. 그럼 극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때문에 저희 드라마 대본이 보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 정확한 목적은 방영 시기를 늦출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하는 길을 택하는 게 맞았으니까.
아무리 내가 평소에 배우는 부업이라고 쉽게 말해도 내 인생이 걸린 일이니 쉽게 넘길 순 없었다.
뻔히 성공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만큼 고구마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대놓고 방영 시기를 늦추고 싶다고 할 순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어차피 연기를 하려면 대본을 보긴 해야죠?”
“그럼 저희 드라마에 출연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연기를 위해 대본을 본다.
즉, 출연한단 소리였다.
그걸 찰떡같이 알아들은 작가들에게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아 누님하고 이렇게 오시기도 했거니와 방금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내용이 꽤 흥미로워서 출연할까 싶습니다. 단!”
“단?”
“드라마 대본을 보고서 제가 수정 좀 할 부분은 수정하고 싶어서요. 주제 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만…….”
거기서 식사를 하며 우릴 보던 선아 누님이 내 편을 들어줬다.
“주제가 넘긴, 원래 출연하는 배우들도 대본을 보고서 아니다 싶으면 수정하고도 하는데, 뭘. 그치?”
선아 누님의 지원 사격에 오히려 드라마 작가들도 수긍했다.
“그렇죠. 오히려 작가인 저희나 감독들도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건 배우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수정하자고 하면 함께 의견을 나눈 뒤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 싶으면 바꿉니다.”
“뿐만 아니라 방금 이 친구가 말한 것처럼 배우들이 연기를 하기 때문에 가끔씩 저희가 대본을 쓰거나 감독들이 디렉팅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부분은 배우 분들에게 맡기죠. 이따금씩 저희가 열심히 대사를 써놔도 그걸 애드리브로 바꿔서 감독님들 마음에 쏙 들어서 바꾸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거든요. 그치?”
“암.”
이렇게 생각해 주니 참 고맙다.
내가 쉽사리 이야기 못한 이유가 뭔지 밝혔다.
“다행이네요. 저도 작가라서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드릴 때 좀 조심스러웠거든요. 소설 작가들은 자기 글을 남이 바꾼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