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94
나는 작가다 094화
94화
“네?”
평소에 장난스럽게나 툭툭 공부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한 적은 없어서 꽤나 당황하는 설아.
이렇게 당황하니 머쓱하긴 했다만, 그래도 설아의 어머니나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이야기였다.
“네 나이에 비해선 잘 팔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어도 황제 로키 당시 나만큼은 팔고 싶어 했잖아?”
“그렇긴 했죠.”
“근데 결과가 나왔잖아. 찍었던 출간부수에다가 300부 증쇄로 선방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네 수준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건 아직 부족함이 있단 거지.”
“그래도 이 정도면 잘된 거지 않아요?”
공부를 지금 정도로만 하고 계속 소설을 쓰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녀석이 하루에 만 자를 쓰기 위해서 쏟아붓는 시간을 감안하면 공부에 그리 집중하지 않으리라.
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수준에 만족해? 그럼 나도 더 이상 공부하란 이야기는 안 할게.”
“아니이…….”
평소와 다르게 꽤나 단호한 목소리를 내니 설아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더 이상 내가 뭐라 말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인생은 자기 거다.
선택 역시 본인이 해야 했다.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해 더 이상 난 설아에게 관여하지 않았다.
“먹자.”
곱창으로 쌈 하나를 쌀 때였다.
“너무해요.”
“응?”
“공부하라고 일부러 이러시는 거잖아요.”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이미 안다면 감출 필요는 없었다.
단지 명확한 이유만 알려줄 뿐.
“널 위해서란다.”
“…….”
잠시 침묵하는 설아.
아마도 다시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고민하는 설아의 공간에 끼어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방금 싼 쌈을 입에 넣고 먹으면 불판만 쳐다봤다.
꼬들꼬들한 곱창 하나, 막창 하나, 쫄깃쫄깃한 염통 하나 그리고 상큼하게 부추무침을 넣고 한 입.
크게 쌈 싸서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어댔다.
두 번 정도 싸먹고 한 번 더 싸면서 기다리던 난 설아에게 결정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냐는 걸 다른 말로 물었다.
“자, 먹어야지. 먹어야 잘 자라지.”
방금 싼 쌈을 설아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고민 끝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있던 설아가 내가 건넨 쌈을 앙! 하고 입안에 쑥 넣었다.
꽤 크게 싼 쌈을 한입에 넣은 설아.
우걱우걱 씹으며 마지막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결정을 내린 것처럼 입안에 있던 걸 빠르게 씹어서 꿀꺽 삼켰다.
입안에 있던 쌈이 사라지기 무섭게 설아가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어디 한 번 싸부 말처럼 어른이 될 때까지 공부만 열심히 해볼게요. 대신 매화신검 완결 지을 때까진 싸부네 집에서 원고 쓸 수 있게 해주세요.”
“안 돼.”
이 자식이 그 틈을 이용해서 멋대로 우리 집에 들락날락하려고 한다.
기껏 공부하라고 말해둔 입장에서 설아가 계속 내 근처에 있으면 좋은 영향을 끼치긴 어려우리라.
때문에 안 된다고 했더니 녀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따졌다.
“왜요?!”
“이제 나도 신작 준비하고 영화 쪽 공부하려면 바빠질 거야.”
“영화 쪽…….”
잠시 영화 쪽과 관련된 걸로 뭔가 생각하는 설아.
소설가가 아니면 영화 관련 종사자가 되고 싶어했던 설아였으니 오히려 방금 전 말도 나쁘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
그쪽으로 고민하는 설아에게 난 틈을 주지 않고 나무랐다.
“그리고 인마.”
“네?”
“작가라면 어느 장소, 상황이 되더라도 완결을 내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독자들과의 약속이라고.”
“치이, 알았다구요.”
완결은 독자들과의 약속이다.
평소에 자주 한 말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결국 모든 게 정리된 것 같았다.
설아에게 다시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자, 결정됐으면 밥이나 먹자.”
“네에.”
조금 축 처지는 대답.
그때부터 나랑 설아는 곱창을 먹어댔다.
중간중간 설아는 영화 쪽으로 뭘 할 건지 물어봤고, 난 영화 시나리오나 대본 그리고 그쪽 계통으로 현대판타지를 쓸 거라고 알려줬다.
평소 날 동경하던 설아였기 때문일까?
내가 영화 쪽 시나리오나 대본 쪽도 알아본다고 하니 꽤나 관심을 보였다.
‘아예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지도…….’
영화 쪽으로 간다고 치면 배우 강설아가 되기에 최적일 터.
소설가가 되려는 강설아의 경우 어떻게 해도 배우로 갈 만한 건덕지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서 차 한 잔을 더 마신 뒤 난 설아와 헤어졌다.
그게 나와 작가 강설아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곱창을 사주면서 공부하라고 한 뒤 설아는 잠시 유학을 떠났다. 이탈리아 쪽으로.
내 말에 설아가 더욱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겠다며 자기 부모님에게 말해서.
그렇게 설아를 떠나보낸 뒤 난 신작인 ‘이 탑의 끝을 잡고’를 이경수 팀장을 통해서 출간하고, 여전히 ‘판타지스타’를 영화 극본으로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렇게 2003년이 다가왔다.
* * *
2003년.
워낙 다사다난했던 해인 2002년을 떠올리며 난 생각해 봤다.
“음, 대통령이 바뀌는 것 말고 무슨 일이……아!”
대통령이 바뀌는 해에 아주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하철 참사.
꽤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사건이었다.
거기서 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막아……?”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거로 돌아온 현재 모든 사건들은 내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내가 아닌 그 당사자들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꾼다라…….”
거기서 난 계속 있던 많은 사건, 사고들이 떠올랐다.
대부분 그 사건, 사고들을 보면 한 가지 문제점이 뚜렷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재빠른 대처와 구조를 해주지 않은 잘못된 사고방식들.
그 사고방식만 잡혀도 죽지 않아도 될 생명들을 더욱 많이 살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바꾸지?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빠르게 조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웅시하는 소설이라도 써볼까?”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이걸로는 국민들의 사고를 일깨우긴 힘들어.”
신작을 써서 판다고 치더라도 ‘베스트셀러 작가’란 딱지에 현혹되어 안 보더라도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맥시멈 100만 명 정도밖에 안 됐다.
국민이 몇천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턱도 없는 수치였다.
고민하던 찰나.
“아!”
한 명이 떠올랐다.
내게 이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고 방법이 떠올랐다.
“으, 성용 형님하고 철이가 뭐라 하려나?”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일단 짤막한 단편 소설을 하나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주문하면 무료로 배포하게 만들고, 각종 공익광고를 내려고 계획했다.
안지훈 선수에게 모델을 부탁하며.
계획을 세우기 무섭게 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일단 성용 형님에겐 짤막한 공익을 위한 단편 하나를 쓸 거라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무료 배포로.
공짜로 뿌린다고 했으니 뭐라 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성용 형님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 좋은 일하네. 해보자.”
“어? 뭐라고 안 해요?”
너무 예상 밖의 반응이라 당황한 내게 성용 형님은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뭘 뭐라고 해?”
“몇 천만 부 찍으려면 아무리 책이 조그마해도 돈 좀 들 텐데요?”
“어차피 네 돈 쓰는 건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그리고 그런 좋은 취지라면 나도 환영이지.”
“그래요?”
“어, 그리고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냐?”
“음?”
그래도 회사 자금으로 해야 할 일인데 걱정할 필요가 왜 없나 싶었는데, 이어진 성용 형님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돈 들어가는 건 철이가 고민해야지, 흐흐.”
“그러네요.”
그래, 돈 관리는 철이 일이지.
성용 형님과 공익광고를 위한 작품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고 난 바로 철이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이렇게 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괜찮겠냐?”
태풍 루사 끝나고 비업무용 부동산을 산 거나 영화 투자로 뭐라 했던 걸 떠오르면 또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뭐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철이 역시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 해라.”
“응? 쓸데없는 돈 쓴다고 뭐라 안 하냐?”
“네 돈이기도 하고, 이번 건 공익을 위해서 무료로 쓰는 거라며?”
“근데?”
“비업무용 부동산 투자하던 건 기부처럼 보이긴 해도 원조이고 자산이 잡히다 보니 줄었어도 세금이 떼이지만, 이번 건 완전히 공익을 위해서 무료로 파는 거라서 매출로 잡히지 않고 쓰기만 하니 미리 준비만 잘하면 내가 골치 아플 건 없으니까.”
“그렇구만.”
“그것보다 거기까지 처리하고 나면 나 잠시 해외 좀 다녀와도 되냐?”
자식, 어쩐지 쉽게 받는다 했더니 이거 때문이구만.
그나저나 갑자기 뜬금없이 해외를 다녀온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웬 해외?”
“열심히 번 돈으로 여자친구랑 에티오피아 가서 힐링 봉사 좀 하고 올라 그런다.”
“여자친구?”
“어.”
“결국 지혜 씨가 받아줬어?”
어떻게 꼬셔 보려고 부하 직원으로 받았던 이지혜.
귀엽게 생기고 일도 열심히 해서 여직원으로는 최고였다.
단지 노는 건 좋아하지만, 연애나 결혼은 생각이 없던 독신주의자였던 게 문제.
결국 이지혜와 철이의 관계는 의남매가 되어 버리며 직장에선 깔끔하게 업무적 관계만 가졌다.
근데 여자친구가 생겼단 말에 드디어 이지혜의 마음을 돌렸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란다.
“아냐, 걘 그냥 내 부하 직원이지.”
“엥? 지혜 씨가 아니야?”
“어.”
“그럼 누군데?”
“그게…….”
누군지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철이.
반응을 보니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누군지 궁금하다.
“왜 말을 못 하냐?”
“은정 씨다.”
“응?”
“김은정 씨라고.”
“……여배우 김은정?”
“어.”
여배우 김은정.
‘애국가를 부르며’에서 조각미남의 대표주자인 장두준의 아내역을 맡은 그녀였다.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겨 걱정되던 그녀와 사귀게 되다니.
“자식, 능력자네. 김은정 씨 팬이라 미팅을 간다더니 여자친구로 만들어와?”
“흐흐, 나중에 소개시켜 주마. 지금은 누구 만나기 그렇다더라. 슬슬 영화 연기에 몰입해야 하는 연습해야 한다고.”
“그렇구만. 제수씨, 잘 챙겨라.”
“인마, 제수씨라니? 형수님이지.”
서로 나이가 같으니 우위에 서려고 형수니, 제수니 따지게 되자 난 깔끔하게 정리했다.
“네, 그래서 우리 철이 팀장 월급이랑 연애를 누구 덕분에 하게 된 거죠?”
“형님, 제수씨 잘 챙기겠습니다.”
“오냐.”
역시 자본주의 사회지.
그나저나 여자친구랑 해외를 나가는데,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에티오피아를 가나 싶었다.
“근데 왜 에티오피아냐?”
“이번에 촬영하는 작품 배경이 6.25전쟁이잖아.”
그 이야기를 들으니 왜 에티오피타를 가는지 깨달았다.
“아아, 참전국이라서 가는 거야?”
“어, 이번 작품에서 연기 몰입하려고 6.25전쟁에 대해 알아보곤 갑자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에티오피아 봉사를 다녀오고 싶다더라고.”
“그래?”
“6.25 당시에 에티오피아란 국가가 자기들 국가를 지켜야 할 정예군인 황실 근위대랑 지상군 6,000명 이상을 파견한 고마운 곳이라고. 근데 도움 받은 우린 이렇게 잘살고 있는데, 정작 에티오피아는 군부 쿠데타로 공산주의 정권이 되어 버려서 우리나라를 도왔단 이유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재산도 빼앗기고 일자리도 못 갖게 했다더라.”
갑자기 뜬금없이 에티오피타가 어떤 나라인지 설명하는 철이. 아마도 김은정에게 들은 이야기인 것 같았다.
여자친구한테 배운 지식을 자랑하는 철이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역사학자 납셨네.”
“흠흠, 이게 다 여자친구를 잘 둔 덕이지.”
그나저나 참전국인 에티오피아로 봉사라……. 왠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이야기를 듣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됐고, 회사에서 기부하는 형태로 돈 좀 들고 가.”
“엉?”
갑자기 회사 돈으로 기부 좀 하라니 당황하는 철이.
녀석에게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고마운 국가에게 뭔가 할 수 있다면 해야지. 얼마나 떼어가면 되겠냐?”
최근 행보를 보면서 철이 녀석은 어이가 없단 듯이 반응했다.
“이 자식, 넌 행복한 왕자라도 되냐? 아주 눈알까지 뽑아서 베풀겠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