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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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빌딩?”
치안총감은 왠지 귀에 익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좌관이 부랴부랴 달려와서 귓속말로 설명했다.
“저번 주에 출입 금지, 퇴거령이 떨어진 빌딩입니다. 중심기둥의 부실함이 발견돼서 정밀 진단에 들어갔었고, 사실상 철거 명령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시공사의 반발이 심해서 행정소송 진행 중이라 철거가 무기한 보류된 상태였습니다.”
“그럼 내부에 아무도 없었겠군?”
“예, 정밀진단 작업도 완전히 끝났고 건물 주변이 완전히 봉쇄된 상태라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좋아, 그 건물만 쏙 무너졌다 이거지?”
“영상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잠시 후 현장에서 무인 드론이 촬영한 사진이 전송되었다.
비교적 선명하고 깨끗한 해상도의 사진 속에서는, 혼자만 쏙 붕괴된 건물의 잔해가 보였다. 바로 붙어 있는 주변 건물들은 외벽이 파편에 조금 긁혔을 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대종빌딩만 완벽하게 부서진 모습에 치안총감은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인명피해가 아직까지 0이라는 사실은 정말 기적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괴수의 위치는?”
“현재 강남역 인근을…… 으아악! 담성전자 서초사옥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뭐, 뭐야!”
치안총감은 심장이 떨어질 듯이 철렁거렸다.
하필 다른 빌딩도 아니고 담성그룹 본사라니!
담성그룹 장학생으로서 그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만약 부회장님께서 이 일을 듣는다면 얼마나 자신의 무능함에 혀를 차실 것인가.
“빌딩 내에 있는 인원들이 전부 대피 중입니다! 다행히 괴수는 인명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괴수가 인간 학살에 흥미가 넘치는 타입이었다면, 벌써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강남을 활보하는 곰 괴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작게는 치안총감, 크게는 서울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피를 완료했습니다! 으아악! 괴수가 갑자기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뭐, 뭐라고?”
건물 내부가 텅 비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비싸디 비싼 담성전자 서초사옥이 박살나기 시작하니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치안총감은 어느 쪽에 감정을 할애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그 옆에 있는 담성화재 본사까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토르는 담성전자 빌딩을 적당히 때려 부순 후, 바로 옆에 있는 담성화재 본사까지 쳐들어가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빌딩 잔해를 집어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두 주먹으로 빌딩을 마구 때려 부수며 철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담성전자 빌딩을 습격할 때부터 이미 소식이 쫙 퍼진 터라, 반경 500미터 이내에는 거의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거리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차량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개인 소지품이 가득했다.
담성전자와 담성화재 빌딩까지 부수고 난 토르는 네 발로 다시금 대로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토르는 신기할 정도로 방치된 차량은 건드리지 않은 채, 그저 아스팔트만 밟으며 정처 없이 서쪽을 향해 걸었다.
―담성전자, 담성화재까지 박살나버렸네.
―기적인 건 아직까지 사망자가 0이라는 점. 부상자도 도망치다가 발에 치이고 걸리고 넘어지고 자빠진 사람들이 100%.
―저 괴수, 꼭 무슨 사람들 겁주는 걸 즐기는 것 같지 않냐?
―마치 고등한 지능을 가진 지적 생명체가 말 못하는 하등생물들 집을 부수면서 무서워서 도망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프라임 공격대는 아직도 멀었나?
―멀었다. 그리고 프라임 공격대가 온다고 해서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저 괴수, 이스라엘의 티라노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 보인다. 지능 자체는 티라노보다 훨씬 똑똑한 듯해.
―경찰이고 군인이고, 그저 괴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네.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진짜…….
―중국이 핵을 써도 어쩌지 못한 게 바로 괴수야. 경찰이나 군대 따위로는 어림도 없지.
이미 토르의 출현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SNS를 통해 괴수의 실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걱정하고, 환호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청와대가 아끼고 아껴 두었던 카드를 꺼냈다.
「김호 대통령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서울 남부, 과천, 광명, 부천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즉각 모든 생계 활동을 중지하고 경찰과 군대에 지시에 따라 피신해 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자 전시에 준하는 상황입니다! 서울 남부, 과천, 광명, 부천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시고 경찰과 군의 지시에 따라 피신해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엄령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미 토르가 대종빌딩에 이어 담성전자, 담성화재까지 화려하게 때려 부수고 난 뒤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계엄 선포를 통한 강제 피신 조치가 다소 늦게 발동된 감이 있었다.
「이제서야 겨우 제 말을 듣는 건가요?」
“면목이 없습니다.”
화면 속의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개만 조아렸다.
유지웅이 김호 대통령과 직접 면담을 하는 것은 청와대 측으로서 부담스럽기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종의 대화창구 완충지대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오른팔이 망신당하는 게 행정부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이었다.
처음 양평에 괴수가 나타났을 때부터 유지웅은 서울의 피신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1,500만 명이 넘는 서울에 그런 조치를 취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괴수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순식간에 강남 중앙까지 밀고 들어왔다.
특히 담성전자 빌딩이 습격당했을 때에는 청와대도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 현 정부에는 친담성그룹 인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에 더욱 부담이 컸다.
청와대는 자신들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유지웅에게 전략 자문 요청을 했다.
유지웅은 처음에 싸늘하게 연락을 받았지만, 그것은 안일하게 대응한 정부에 대한 질책이었을 뿐, 전략 자문 요청 자체는 피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이게 마지막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자주 일어날 일입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이렇게 안일하게 대했다가는 국명이 헬조선에서 제니스타운으로 바뀌는 게 순식간입니다. 아, 어감은 이게 더 낫긴 하네요.」
“그, 그런…….”
「제 말이 농담 같으세요? 만약에 이번에 나타난 괴수가 지룡이나 티라노 같은 괴수였다면 지금쯤 서울은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요? 자강도 꼴이 나지 않았을까요?」
“…….”
완전히 불타버린 자강도를 떠올린 비서실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자강도가 폐허가 된 것은 사실 지룡이의 습격보다는 중국으로의 유입을 두려워한 중국군의 무단 융단 폭격 때문이었지만.
「괴수는 오직 레이더로 이뤄진 공격대로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재래식 병력으로는 유인하는 정도가 다예요. 그런데 그 유인 작업도 노련하게 잘해야지, 어설프게 했다가는 오히려 괴수를 자극하는 결과만 됩니다. 중국이 어떻게 됐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
중국의 몇 개 성은 지룡이 때문에 쑥대밭이 되긴 했다.
하지만 그것에는 프라임 공격대의 지분이 더 크지 않은가? 비서실장의 얼굴이 더욱 굳어진 이유였다.
「온순한 괴수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참에 괴수 피난 매뉴얼을 구축할 수 있도록 충분히 경험을 쌓으세요. 물론 훈련이 아닌 실전 상황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어선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우리는 도착하는 대로 수송기에서 바로 뛰어내릴 겁니다. 옮겨 탈 시간이 없으니까요.」
통신이 끝나고, 유지웅의 모습이 사라지자 청와대 안보회의실을 감돌던 적막이 드디어 걷혔다.
“시민 피난 작업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불협화음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례가 없던 대규모 피난이다 보니 현장에서도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야만 해.”
김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중대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서울처럼 인구가 밀집된 곳에서 저런 강력한 괴수가 제대로 날뛰기 시작한다면…… 사람 수십 만 명 죽어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 비난은 오롯이 자신을 향할 것이다.
괴수가 등장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여태껏 제대로 된 피난 대응 매뉴얼도 구축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안일하고 무능한 것들 같으니!’
김호 대통령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측근들을 둘러보며 속으로 분한 마음을 삭혔다.
“희생은 용납 못합니다. 다들 일 똑바로 하세요. 더 이상의 무능함을 보이지 말란 말입니다.”
“……예, 각하.”
“그리고 앞으로 괴수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체계적인 대응책을 수립해서 가져오길 바랍니다. 적어도 일주일 안으로 내가 초안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예, 각하.”
계엄령까지 발동했다지만, 피난 작업은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애초에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그 많은 인구가 한순간에 탈출한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인구를 흡수해야 할 주변 수도권 도시까지 잇달아 피난 명령이 내려 있으니, 수도권은 지금 서울을 중심으로 완전히 혼란투성이였다.
일산 등 계엄이 선포되지 않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불안함을 느끼고 피난을 서두르고 있었다. 서울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위성 도시들은 생계 활동을 멈춘 채, 여차 하면 피난을 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주가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동시에 발동하는 등 주식선물시장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이때가 기회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아!”
유지웅은 자산관리담당인 김범석에게 주식선물시장을 무차별로 접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김범석은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은 채 착실하게 그의 지시를 따랐다.
하늘같은 주인님이라면 저런 귀여운 아기곰 괴수 따위쯤이야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으시겠지. 그게 바로 김범석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믿음이었다.
하한가로 풀려나온 우량 기업 물량을 쓸어 담는 것은 물론이고, 극도의 불안함을 느낀 외국인 대주주나 국내외 기관들과도 비밀리에 교섭해서 계약 체결을 이뤘다.
“근데 이건 주가 조작 아니야?”
“어차피 토르가 아니고 다른 괴수가 나타났어도 벌어질 일이야. 언젠가는 한 번, 아니 앞으로 몇 번이고 겪게 될 일이야. 그냥 나라 전체가 맞는 예방주사 비용이라고 생각해야지.”
유지웅은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대괴수 시절 초기에는 혼란밖에 없어. 안정기가 될 때까지 주식 따위는 하면 안 돼. 안 그럼 한강의 수온이 36.5도까지 오를 거라고.”
자신이 항상 서울을 보호해줄 수는 없다.
막말로 미국에 출장을 간 사이에 괴수가 나타나면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전 시간축에서 괴수 출현 초반에 증시 시장이 붕괴하고 무수한 개미 투자자들이 자살했던 이유도 바로 그 혼란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지웅은 지도를 확인했다.
“여의도까지 앞으로 20km……. 좋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군.”